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3)
493화.
검로가 끊임없이 변화한다.
1백? 1천? 1만?
모르겠다.
도저히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음과 동시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듯도 했다.
하나이자 1만.
서우진의 ‘신룡안’으로도 도저히 감지할 수 없는 경지의 검이, 전신을 노리고 다가왔다.
‘못 막는다.’
서우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반 슬레인의 검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모든 힘을 개방한다면, 강제로 깨부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서우진의 진짜 힘은 혼돈기와 스킬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오직 검과 육신의 힘만으로는 반 슬레인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니, 고작 인지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했다.
몇 단계나 더 높은 차원에서 이어지는 검격이다.
지금의 서우진으로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그래도…….’
가만히 서서 당할 순 없다.
최소한의 발악이라도 해봐야 한다.
이것은 실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훈련이자, 가르침이었으니까.
뜻이 일자, 육체가 움직였다.
반 걸음 뒤로 물러나며, ‘카 라니엘’을 들어올렸다.
그 한 수만으로도 전면으로 짓쳐드는 검로가 모조리 차단된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반 슬레인의 검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위치에서, 서우진의 모든 곳을 노리고 있었으니까.
피비비비비비빗-!
가느다란 혈선과 함께 핏방울이 튀었다.
마치 그물에 뒤덮이기라도 한 것처럼, 전신에 격자무늬의 검흔이 새겨졌다.
“크으으윽!
깊게 베이지는 않았다.
생사결이 아니었으니까.
단순히 살가죽에 흠집이 난 정도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고통스러웠다.
육체의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타격이 훨씬 심각했다.
‘설마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이야.’
반 슬레인의 경지가 지고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은 그 발끝에 미치기도 힘들다는 것 역시, 이미 충분히 체감하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오롯이 걸어온 노기사의 검은, 감히 몇 년 남짓 동안의 경험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은색의 빛이 다가왔다.
그것은 검(劍)이자, 한 노인의 일생(一生)이었으며, 서우진이 닿지 못한 극의(極意)였다.
헛웃음이 났다.
너무도 까마득한 경지에, 어찌해 볼 엄두도 나질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런 수준이라면!’
서우진의 능력에 반 슬레인이 도달한 검의 경지가 합쳐진다면?
못해도 지금보다는 수배에서 수십 배는 강해질 수 있다.
물론, 지난한 길이 될 것이다.
어쩌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예 도전도 하지 않을 순 없는 일.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서우진은 기어서라도 저곳까지 도달하리라 다짐했다.
‘일단은 눈앞의 검부터 막아야겠지만.’
‘카 라니엘’이 번개처럼 솟구쳐 올랐다.
혼돈기를 봉하고 오직 육신의 힘으로 휘둘러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와 힘이었다.
쩌어어어어엉-!
반 슬레인의 검과 충돌하며, 귀를 찢는 듯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크윽!”
분명 늦지 않게 막았음에도, 예리한 마력이 전신을 훑고 지나간다.
“나쁘지 않네. 다행히 그간 게으름을 피우진 않은 모양일세.”
반 슬레인이 흐뭇한 음성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허억- 허억-!”
서우진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접전이었지만, 지칠 대로 지쳤다.
그렇게나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는데도, 결국에는 몰아쉬는 지경까지 왔다.
“호흡을 고르게.”
반 슬레인은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허억- 가, 감사합니다.”
서우진 역시 힘겹게 ‘카 라니엘’을 수습하며, 고개를 숙였다.
방금 전의 격돌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달았다.
막막하기만 하던 미래에, 미약하게나마 희망의 등불이 피어 오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반 슬레인에게 감사해야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상승했어.’
놀랍게도 이 한 번의 대련으로, 서우진은 자신의 검술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느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반 슬레인가 도달한 경지가 지극하다는 뜻도 되었다.
“앞으로 매일 새벽과 저녁에 한 번씩 검을 나누세나.”
바라던 바다.
아니, 오히려 부족했다.
눈을 뜨고, 다시 잠에 들 때까지 쉴 새 없이 반 슬레인과 함께 검을 휘두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을 훈련시켜 줄 수 있는 또 한 명의 기사가 남아 있었으니까.
“흘흘- 그럼 어디, 이번에는 이 늙은이의 차례인가?”
대체 언제 다가온 것일까?
성스러운 갑주를 입고, 흥미로운 눈으로 서우진을 바라보고 있는 여기사가 있었다.
“프레이야 님.”
서우진이 눈을 빛냈다.
“바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그 잠깐 사이 호흡이 완전히 되돌아왔다.
전신에 상처들 역시 빠르게 아무는 중이었고.
살짝 지치기는 했지만, 이 역시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니었다.
“좋구나.”
프레이야가 순백의 검을 뽑아 들었다.
아이에르의 신성기사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주신의 축복이 깃든 신성검이었다.
“어디 한번 온 힘을 다해 덤벼보거라.”
다시 한번 검광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죽겠다.”
눈을 뜬 서우진이 앓는 소리를 냈다.
훈련이 끝난 것은 동이 틀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를 번갈아가며 상대한 것이다.
제아무리 체력이 넘친다 해도, 그 두 사람의 검을 계속 받아내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덕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서우진은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점심때인가?”
창문 밖으로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끄응-”
온몸이 삐걱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좋구나.’
몸이 힘든 것과는 별개로, 서우진의 표정은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지난 새벽에 얻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렇게만 계속 수련에 매진한다면, 목표로 하는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자만하지는 말자.”
레벨을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의 경지를 끌어올리는 것 또한 수준이 높을수록 어려워진다.
지금 조막만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앞길이 활짝 열린 건 아니다.
끝없이 정진하고, 쉼 없이 달려야만 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마력회로를 따라 혼돈기를 순환시킨 서우진이, 기지개를 켰다.
찌뿌둥하던 몸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들 뭐하고 있지?”
아침 식사는 끝마쳤을 것이다.
어쩌면 점심도 먹었을지 모르고.
서우진은 방을 나서며 ‘신룡안’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기감이 영역을 넓히며, 라이마론 전역을 감쌌다.
“음…….”
대부분 숙소를 벗어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도시 이곳저곳을 누비는 듯했다.
“구경이라도 하는 건가?”
교역도시라고 했으니, 볼거리는 많을 것이다.
비록 상황이 좋지 않아 분위기는 가라앉았겠지만, 그래도 숙소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보다는 나을 테고.
“오늘 하루는 그냥 두자.”
자신을 따라 치열한 전투를 몇 번이나 겪은 이들이었다.
싸움이 끝난 후에도 제대로 쉬지 않고, 여기까지 따라 왔고.
차라리 제국으로 갔다면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마다하고 따라온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쯤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게 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난 일단 밥부터 먹고.”
계단을 내려가자, 어제 보았던 사내가 맞이해 주었다.
“이제 일어나신 모양입니다.”
지배인이었나? 아니면 직원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아, 네. 식사를 좀 하고 싶은데요.”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1층 한쪽에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설마 뷔페냐?’
테이블 위로 온갖 종류의 음식들이 쌓여 있었다.
마치 호텔 조식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시면 됩니다.”
서우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시를 들었다.
‘이야, 한국에서도 이만한 서비스는 못 받아봤는데.’
그 흔한 해외여행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우진으로선, 호텔식 뷔페 느낌이 나는 식사는 처음이었다.
괜히 설레는 느낌에 콧노래를 부르며, 접시에 이것저것 담기 시작했다.
‘맛도 괜찮고.’
나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정말 괜찮았다.
‘이 정도면 이 여관을 만든 게 과거의 용사들 중 한 명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어.’
지구의 지식을 이용해 이런 시설 하나쯤 만들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음?”
한창 그렇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거대하고도 익숙한 마력이었다.
“밥 먹었어?”
서우진이 손을 들며 물었다.
“아직요.”
“그럼 와서 같이 먹자. 여기 밥 잘하네.”
“알겠음요.”
김다혜였다.
녀석은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시에 빵 몇 조각을 담아 서우진 앞자리에 앉았다.
“그걸로 되겠어?”
양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이지아와 비견될 정도로 작은 키와 덩치의 소유자였으니, 그리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충분요.”
서우진의 걱정 어린 표정에도, 김다혜는 고개를 저으며 빵을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거리는 게, 왠지 다람쥐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서우진은 피식- 웃으며 다시 식사를 재개했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시간이 계속됐다.
그러다 문득 서우진이 물었다.
“네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어?”
뜬금없는 질문.
하지만 김다혜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나름요.”
“어디까지 가능한데?”
“음…….”
포크를 내려놓은 김다혜가 눈을 끔뻑였다.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모양이었다.
“1만 5천 명?”
서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어?”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었다.
“천오백이 아니라, 1만 5천이라고?”
“맞음요.”
김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물론 녀석이 마력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대한의 효율을 갖춘 물건을 ‘소환’하려고 노력한 것은 알고 있었다.
거기에 100레벨을 돌파하며 마력량이 엄청나게 상승했다는 것도.
그것들을 감안해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수, 수준은 어떤데?”
서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묻자, 김다혜가 빵을 베어 물며 대답했다.
“세 번 정도요.”
응, 이해 못하겠다.
앞뒤 다 잘라내면, 아무리 서우진이라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본 김다혜가 입안에 든 빵을 삼키며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조라네스의 공격을 세 번 정도는 막을 수 있음요.”
조라네스라면 녀석이 직접 싸워본 권속의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일반 병사들이 그런 강력한 공격을 세 번이나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물건을, 1만 5천 개나 만들 수 있다는 말이었다.
‘미친…….’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
서우진이 아니라, 그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김다혜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럼 사실이라는 건데.’
서우진은 밥을 더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빵을 작게 배어먹는 김다혜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