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5)
495화.
“잘 지냈어요?”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
두 사람과 함께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수련한 서우진이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림자 사이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내며 인사를 건네왔다.
“…아샨타.”
서우진은 일말의 놀람도 없이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방에 오기 전부터 그녀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쳇, 놀라지도 않으시네.”
아샨타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제국에서 요한을 돕고 있어야 할 그녀가, 레닌스탕의 교역도시인 라이마론에 나타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요한이 내린 임무 때문에요.”
아샨타는 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들었다.
“시작되었어요.”
딱딱한 음성.
서우진은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느끼며, 종이를 받아 들었다.
“으음.”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이게 사실입니까?”
“네. 바로 어제 들어온 소식이에요. 길드에서도 확실히 확인을 거친 것이고요.”
“전멸이라…….”
마왕의 권속과 맞닥뜨린 제국군이 전멸했다.
단순히 전력의 30%가 날아가, 전투를 이어갈 수 없다는 뜻의 전멸이 아니었다.
정말로, 대다수의 병력이 전사했다.
“피해가 크군요.”
“병사 7만과 기사 1천이 거의 모두 사망했어요. 남은 생존자를 다 합쳐봐야 3백도 채 되지 않을 거예요.”
궤멸적인 수준이다.
심지어는…….
“용사들도 일곱 명이나 전사했고요.”
서우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젠간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살아서 행복하게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는 건, 동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저토록 많은 수가 한 번에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권속을 막아냈다는 거예요.”
그렇다.
그 수많은 생명이 희생한 대가로, 제국을 향했던 마왕의 권속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일까?
서우진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전사한 용사들의 이름은 알고 있습니까?”
“그건 여기요.”
고이 접힌 쪽지를 꺼낸다.
서우진이 주저하다, 그것을 받아 들곤 읽었다.
‘…하아.’
눈에 익은 이름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사 폐기 계획에 대해 전파하며, 모두 한 번씩은 만나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친분은 없을지언정, 이름과 얼굴 정도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김현호라는 이름의 용사가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해요. 만약 그가 없었다면 아무런 성과도 없이 피해만 더 늘어났을 거라고.”
김현호.
서우진의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는 용사였다.
‘이십대 초반쯤이었지?’
많아야 스물세 살 정도일 것이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겁이 많았으며, 딱히 열정적이지도 않았던 용사.
그래서 굳이 친교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 이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어.’
김현호는 겁이 많았다.
싸우기 싫어했고, 불평과 불만이 많았다.
그랬던 그가, 누구보다 앞에서 권속과 맞서 싸웠다.
C급에 100레벨도 되지 못한 녀석이…….
“정말 처절한 싸움이었대요. 두 팔이 뜯겨져 나가자, 이로 물어뜯으면서까지 권속의 발을 붙잡았을 정도로요.”
그런 필사의 각오로 싸웠고, 결국엔 승리했다.
비록 희생이 크긴 했지만, 마왕의 권속들 중 한 명을 해치운 것이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샨타가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네요.”
김현호는 죽었다.
양팔이 찢겨져 나가고, 한쪽 다리가 터졌으며, 눈이 모두 뽑혀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로.
“제국에서는 희생된 용사들을 위한 장례식을 거행한다고 하더라고요.”
서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뒤통수를 치려고 작정하고 있는 놈들이 장례식이라니.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서우진이 정중하게 물었다.
“가능한 거면요.”
“그곳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시신을 여기로 가지고 와주세요.”
아샨타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방금 제가 제국에서 장례식을 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의 넋을 제국이 기리도록 두고 싶지 않아서요.”
용사 폐기 계획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아샨타로선, 서우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흐음.”
잠시 고민한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다.
요한과 정보 길드의 능력이라면, 그들의 시신을 빼돌리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제국에서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요한에게 물어볼게요. 만약 허가가 떨어지면, 곧장 시행하는 걸로 하고요.”
아샨타 혼자서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죠. 그래도 웬만하면 들어주었으면 합니다.”
“노력해 볼게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서우진이 저렇게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찜찜했다.
“아무튼 당신이 없는 전장에서, 처음으로 울려 퍼진 승전보예요. 비록 피해가 어마어마하긴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고무적이었다.
C급과 B급의 용사.
그리고 기사와 병사들로만 만들어낸 기적이었으니까.
모든 병력의 사기를 올리기엔 충분한 업적이었다.
“그렇군요.”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픔에 마음이 미어지듯 아프긴 했지만, 이것 역시 익숙해져야 할 일이었다.
“레닌스탕에도 권속이 하나 있는 건 알죠?”
아샨타가 물어왔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머물고 있는 중이죠.”
“자리를 잘 잡았어요. 길드에서 예상하는 다음 공격 지점도, 라이마론이거든요.”
“언제쯤으로 예상합니까?”
“음, 빠르면 내일. 늦어도 3일 이내.”
다행이다.
조금만 더 늦게 이곳에 도착했다면, 서우진은 다시 한번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만 확인했을 텐데.
“상대할 수 있겠죠?”
“물론입니다.”
적은 하나다.
파괴된 다마이론의 흔적을 봐도, 다른 마수나 몬스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대할 수 있다.
“다행이네요.”
아샨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힘들다고 했으면, 그이도 불러오려고 했는데.”
“…그이?”
생소한 칭호다.
하지만 서우진은 아샨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디아로크를 말하는 겁니까?”
“아, 네.”
아샨타가 눈웃음을 지었다.
“허-”
둘의 사이가 심상찮아 보인다 했더니, 어느새 연인관계가 된 모양이었다.
‘축하를 해줘야 되나?’
이런 때에 연애라니…….
괜히 부러우면서도 착잡했다.
“녀석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디아로크는 레닌스탕의 공작이다.
심지어는 왕실도 뒤집어엎으며, 이 왕국의 가장 큰 권력자이기도 했다.
그런 디아로크라면, 이런 때에 타국에 나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레닌스탕 왕궁에 있어요. 전쟁 준비를 마치고, 언제든 출동할 태세를 갖추고 있죠.”
아샨타는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였다.
“우진 씨한테 고맙다는 말도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레닌스탕으로 와줘서 한시름 놓았다고.”
“그걸 알면 와서 좀 도우라고 해주시죠.”
“하하- 그러기엔 그이가 좀 바쁘거든요.”
초극의 경지에 든 마법사라면 큰 힘이 될 텐데.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의 디아로크는 직접 전쟁에 나서기보단, 병력의 운용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
“일단 알겠습니다. 라이마론으로 오고 있는 권속은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아샨타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자리에 멈춰 서고는 말을 이었다.
“우진 씨가 한 부탁은, 최대한 빨리 이뤄지도록 노력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들었을 때, 아샨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빨리도 가는구만.’
정보 길드의 핵심 인물로서의 능력이 충분했다.
“후우-”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일곱 명.’
김현호를 포함한 용사가 일곱 명이나 사망했다.
그건 단순히 전력의 하락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고향에서, 같이 이 세계로 넘어왔던 어린 녀석들.
이 싸움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평화로운 생활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죽은 것이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이들을 위해 싸우다가.
가슴이 아팠다.
만약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깊은 친분이 있었다면, 서우진은 분명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자.’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그러니 이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를 계속 위로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래도 안 되겠군.”
오늘밤은 술의 힘을 좀 빌려야 할 것 같았다.
서우진이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처음 보는 얼굴의 직원이 그런 서우진을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술 있습니까? 도수 높은 걸로.”
“마침 오늘 아침에 들어온 괜찮은 술이 있습니다.”
“그럼 그걸로 한 병 주세요.”
서우진의 말에 직원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곧장 술을 가지러 갔다.
1층 로비에 마련되어 있는 작은 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다들 자는 모양이군.’
오랜만에 맘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다들 재밌게 놀다 들어와서 곯아떨어졌다.
덕분에 서우진은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그때 직원이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술 한 병을 가지고 왔다.
“세계수의 눈물이라는 위스키입니다. 1년에 단 100병밖에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죠.”
‘비싸겠구만.’
1년에 100병이라니.
그런 귀한 걸 어떻게 이런 여관에서 구한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이 술의 가격을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괜히 물어보았다간 마시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상큼한 과일 향과 함께 독한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고급술인 게 확실했다.
“샷 잔에 물 두세 방울을 떨어뜨린 뒤 마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직원은 기다란 쇠 젓가락 같은 것으로 물방울을 떨어뜨린 뒤, 잔을 서우진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연 얼마일까?
괜히 입을 댔다가 파산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손을 뻗어 조심스레 술잔을 받아 들고는 눈을 감았다.
‘미안합니다.’
옆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감사합니다.’
죽음으로 적을 막아내 주어서.
서우진은 마음속 깊이, 목숨을 잃은 용사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곳에선 편히 쉬길.’
불평할 일도 없고, 두려워할 일도 없는 세상에서.
마왕 같은 놈하고는 싸울 필요도 없이, 평화롭게 안식하길.
술을 한 번에 들이켰다.
달콤하면서도 쓰디 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한 잔 더.”
이걸론 부족하다.
아직 여섯 잔은 더 마셔야만 했다.
서우진은 그렇게 말없이 혼자, 독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병이 모두 비워질 때까지.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라이마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