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97)
497화.
벤다.
그리고 또 벤다.
‘카 라니엘’이 공간을 가로지를 때마다 짐승의 육체에 검흔이 새겨졌다.
첫 일격에 입혔던 생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깊은 상처였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
짐승의 입에서 터져 나온 포효 역시 처음과는 다른 뜻이 섞여 있었다.
그때는 그저 분노로만 가득차 있었다면, 지금은 고통이 가미되었다.
피부와 살점, 그리고 근육까지 모조리 끊어지는 듯한 통증.
이름 모를 짐승은 자신의 전신에 가득 새겨지는 자상에, 점차 광기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아.’
더욱더 광폭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지금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마왕화’를 하지 않고도 충분히 몰아세울 수 있었으며, 놈이 발악하면 할수록 상대하기가 더욱 수월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성장했나?’
그건 아니다.
검에 조금 익숙해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언컨대, 제대로 성장했다고 자신할 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 짐승 한 마리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해 낼 만했으니까.
서걱-!
‘지고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오러가 놈의 다리를 베었다.
치이이이익-!
초고온의 열기 탓에, 찢어진 피부가 타오르며 역한 냄새를 풍겼다.
결코 얕지 않은 부상이었다.
그 증거로, 짐승은 상처 입은 다리를 땅에 제대로 딛지도 못했다.
그르르르르르르르-
놈의 눈이 조금 신중해졌다.
서우진의 검이 심상찮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니,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굶주림과 분노, 그리고 살기로 가득찬 본능이 그것을 억누르고 있던 것일 뿐.
하지만 더는 무시할 수가 없다.
그리 길지 않은 공방 끝에 얻은 건, 일방적인 농락이었으니까.
아무리 본능이 앞서는 짐승이라 하여도, 생존을 위해서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 봐야 바뀔 것은 없어.”
몸을 낮추고, 들끓어 오르던 살기를 응축시키는 놈을 보며 말했다.
“네놈이 쉽지 않은 상대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위협적인 건 아니거든.”
손을 휘저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누런 숨결을 걷어냈다.
뚝- 뚝-
붉은 핏물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상처 입은 짐승은 정제된 살기를 품은 눈동자로, 서우진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 단순하게 달려들기만 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
서우진은 그런 짐승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름은 말할 수 있나?”
기대를 갖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다만, 권속들은 하나같이 모두 이름이 있었기에 문득 궁금해진 것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짐승의 입에서 단어가 흘러 나왔다.
[므락쿠.]이름일까?
아니면 단순한 으르렁거림에 지나지 않을까?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름을 말한 것이 맞다 해도, 그 외의 다른 말을 할 수는 없는 듯 보였으니까.
의사소통 자체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래, 므락쿠. 이제 슬슬 끝을 내자.”
서우진이 ‘카 라니엘’을 겨누었다.
잿빛으로 타오르는 화려한 오러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력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르르르르르르-
겁을 먹은 것일까?
므락쿠의 자세가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살기는 끝도 없이 상승하고 있었다.
마치 짐승이 아닌, 예리한 검 수백 자루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섬뜩하구만.’
만약 놈이 자신이 없는 곳에서 용사들과 충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용사들은 강했지만, 므락쿠의 강렬한 마기와 살기에 노출된다면 본래 실력의 절반도 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놈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다행이었다.
자신이 이곳으로 와서.
“염라십이천검.”
단번에 가용 가능한 모든 혼돈기를 쥐어짜 냈다.
싸움을 길게 끌 이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최대한 빠른 승리 후, 다른 권속들을 찾아 움직여야만 했다.
‘단번에 끝낸다.’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미룰 필요가 없다.
혼돈기가 ‘카 라니엘’을 타고 흘러 들어가며, 지옥의 불길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므락쿠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짐승의 형태를 지녔다면, ‘염라십이천검’은 지옥을 통째로 벼린 검이다.
코를 찌를 듯한 유황 냄새가 모조리 증발하며 흩어졌다.
더는 이 자리에 므락쿠의 존재감 따위는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직 서우진.
그의 압도적인 힘만이 주변 모든 공간을 뒤덮었다.
콰아앙-!
므락쿠가 땅을 박차며 짓쳐들었다.
다리 하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속도.
지금까지 보여줬던 것의 몇 배나 빨랐다.
참고 참으며, 응축했던 힘과 살기를 단번에 터트린 결과였다.
너무도 빠른 움직임에 채 움직이지 못한 공기가 겹겹이 쌓이며 층을 만들었다.
그리다 찢겨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음속을 돌파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주변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므락쿠의 육체는 그보다도 한 발 먼저 서우진에게 접근했다.
‘빠르다.’
처음 므락쿠를 봤을 때, 서우진은 놈의 육체 능력만큼은 강가스테어 이상이라고 판단했다.
그건 절반만 맞았다.
므락쿠의 육체가 강가스테어를 넘어선 건 맞지만, 설마 아르제베토에 육박할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놈의 신형은 한 줄기의 빛이 되어, 아르제베토의 붉은 검과 같은 속도로 서우진의 육신을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들었다.
‘그래도 괜찮아.’
‘카 라니엘’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염라십이천검’이 발동되었다.
찰나를 찰나로 쪼갠 것보다 더 짧은 시간.
열두 개의 붉은 빛이 공간을 뛰어넘어 므락쿠에게 도달했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불타오르는 지옥과 연결되어 있는 열두 개의 나락문(奈落門).
고작해야 므락쿠의 가슴께밖에 오지 않는 크기였지만, 그 안은 심연보다도 깊었다.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 허무(虛無)의 사슬이, 안쪽에서 무심하게 튀어나왔다.
열두 개의 문에서 열두 개씩.
총 144개의 사슬이 짓쳐드는 므락쿠를 휘감았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단숨에 살을 찢고, 뼈를 부수는 사슬의 힘을 견뎌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딴 육체의 고통 때문에 울부짖는 것이 아니었다.
지이이이이익-
끌려간다.
144개의 사슬이 므락쿠를 나락문 안쪽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놈은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결코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서우진을 향해 달려들던 걸 포기하고, 물러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끼기기기기긱-!
사슬이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졌다.
‘으음.’
그것을 본 서우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위태로운 모습이긴 했지만, 설마 저 정도로 버텨낼 것이라곤 예상치 못한 것이다.
‘짐승은 짐승이라는 건가?’
생존을 위한 본능은, 식욕이나 살기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뒤로 물러났다.
이대로라면 ‘염라십이천검’으로도 놈을 끝장내지 못할 듯했다.
“쯧.”
결국 서우진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커다란 스킬을 사용하느라 혼돈기가 텅텅 비어버렸지만, 지금 움직여야만 했다.
스윽-
반 걸음.
고작 그 정도의 보폭을 내디디며 ‘카 라니엘’을 휘둘렀다.
그 어떤 스킬도, 혼돈기도 담겨 있지 않은 검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검의(劍意)는 확고했다.
‘벤다.’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한 횡베기는, 너무도 쉽게 므락쿠의 옆구리를 베었다.
쩌억-!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고작해야 출혈을 조금 일으킬 정도에 불과한 수준.
하지만 이 베기의 진짜 의도는, 놈에게 부상을 입히기 위함이 아니었다.
므락쿠의 눈이 부릅떠졌다.
자신의 육체가 얼마나 거대한지 생각해 본다면, 그저 바늘에 찔린 것과 별다를 바 없다.
하지만 다르다.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이 사슬을 벗어나 살아남겠다는 뜻이 꺾였다.
아니, 의지가 잘려 나갔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검(一劍)이었다.
주르르르르륵-!
속절없이 몸이 끌려갔다.
뒤늦게 다시 힘을 주며 반항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아아아아아아아악-!
피를 토하는 것과 같은 포효가 터져 나왔다.
땅에 박아 넣은 발톱이 빠지고, 기다란 혈로가 만들어졌다.
몸을 비틀며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서우진은 지옥을 향해 다가가는 므락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죽어라.”
가슴이 시릴 정도로 싸늘한 음성.
그것을 들은 므락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기와 광기가 사라지고, 오직 공포로 가득찬 눈빛으로 서우진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열두 개의 나락문 중 하나의 문턱을 넘는 순간, 놈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졌다.
살과 뼈가 분해되고, 피와 체액이 증발했다.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소멸.
므락쿠는 비명도 더 내지르지 못한 채, 그렇게 지옥의 밑바닥에 처박혔다.
쿠우웅-!
‘염라십이천검’으로 열었던 나락문이 굳게 닫혔다.
방금 전까지 흉포한 존재감을 뽐내던 므락쿠의 모습을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흔한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그 존재를 잃었으니까.
서우진은 씁쓸한 눈빛으로 놈이 서있던 곳을 바라봤다.
“아직 멀었군.”
너무도 쉽게 처리했다.
강가스테어나 아르제베토와의 전투를 생각해 보면, 전투라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의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만족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검으로만 상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를 통해 얻은 것을 생각해 보면, 오직 검만 사용해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여겼다.
하지만 막상 싸워보니 예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계속 싸운다면 어떻게든 이길 수야 있겠지만, 스킬을 사용하는 것보다 효율이 좋을 순 없었다.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안심했다.
‘지금 부족하다는 건, 아직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야.’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열렸다.
이제 그곳을 걸어가면, 언젠가 도착할 것이다.
서우진이 해야 할 건, 묵묵하고 진득하게.
가야 할 길을 가야 하는 것뿐이다.
‘카 라니엘’을 집어넣었다.
손아귀에 남아 있는 검의 무게가 사라지자, 싸움이 끝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서우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다음은 어디지?’
요한의 길드에 정보를 좀 요청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권속이 어디쯤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놈인지.
확실하게 정보를 얻은 뒤 움직이면 될 것 같았다.
터벅- 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출발할 때와는 달리, 서우진의 발걸음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다.
그렇게 홀가분한 모습으로 동료들과 용사들, 그리고 승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라이마론의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