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
#4화.
드레이카스가 멈췄다.
‘착각이 아니야.’
죽음을 눈앞에 두자 사고가 가속되며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줄 알았다.
만화나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 아니던가?
하지만 드레이카스는 실제로 다리를 멈추고 움직이지 않았다.
‘뭐지?’
수십 명의 병사를 박살 내고, 아일린마저 전투 불능의 상태로 만든 괴물이다.
그런 놈이 서우진의 앞에 멈추었다.
마치 겁이라도 먹은 것…….
‘겁?’
말도 안 된다.
누가 봐도 겁을 먹고 떨어야 할 건 이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진은 드레이카스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무슨?’
“배짱 좋은데?”
“용사치곤 꽤나 소심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그때, 바로 등 뒤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나도 태연한 음성.
“아직 성장도 제대로 하지 못한 용사는 뒤로 빠져라. 여기서부턴 우리가 맡을 테니.”
서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푸른색의 갑주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기사단.”
왕국 시온과 매시브 가디언이 자랑하는 기사단, 푸른 방패였다.
“네 헛짓거리는 잘 구경했다.”
테스테론의 목소리였다.
언제나처럼 비아냥거리는 말투였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덕분에 아일린이 살았군.”
테스테론은 그 말과 함께 서우진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 주곤, 드레이카스를 향해 달려갔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지?’
드레이카스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기사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자책했다.
서우진도 분명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에 아일린 말고도 다른 기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실제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직접 듣지 않았던가?
두려움과 긴장에 생각이 굳어 그 사실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얼마나 웃겼을까?’
아일린이 시간을 버는 사이, 드레이카스와의 전투를 준비하는 그들 앞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것을 보며 웃었을 기사들을 상상하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니까 왜 혼자 달려드냐고요.”
서우진은 자신의 옆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일린에게 괜한 핀잔을 주었다.
“그게 제 역할이니까요.”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서 죽는 게요?”
최소한 서우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다행히 살아남긴 했지만 말이다.
“만약 제가 거기서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당신이 위험했을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위험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일린은 그 1%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드레이카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놀라긴 했지만, 이 정도는 부상의 축에도 들지 못했다.
놈에게 죽어나간 병사들에 비하면 말이다.
“다들 엄청 강하네요.”
서우진이 기사들을 보며 감탄했다.
고작 십여 명이 거대한 괴물을 몰아붙이는 중이었다.
아니, 회를 뜨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검이 움직일 때마다 드레이카스의 살점이 뭉텅뭉텅 썰려 땅에 떨어졌으니까.
놈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기사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테스테론의 거대한 검이 드레이카스의 목을 베었다.
쿠웅-!
바윗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대가리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전장을 정리하라!”
검을 휘둘러 붉은 핏물을 떨쳐 낸 테스테론이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기사단이 나서자 전장에서 한 발 물러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강하네.”
기사들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경이로울 정도였다.
특히 테스테론.
그의 강함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근육만 키운 헬창인 줄 알았는데.”
아일린은 물론이고, 다른 기사들과 비교해도 확연히 눈에 띄었다.
“테스테론 경은 상급 기사예요.”
왕국 시온에서도 다섯 명밖에 없는 상급기사.
테스테론은 그중 한 명이었다.
일신의 무력은 말할 것도 없었고, 지휘 능력 역시 뛰어났다.
뭐, 성격 때문에 큰 인기는 없었지만 말이다.
“드레이카스가 최상위 몬스터이긴 하지만, 테스테론 경도 만만찮은 강자죠.”
아일린의 음성은 담담했다.
하지만 표정은 달랐다.
‘분한 건가?’
입술을 짓씹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분해하는 것 같았다.
자신은 잠시 멈추는 것조차 버거웠던 괴물을 저들은 가지고 놀 듯 사냥해 버렸으니…….
아직 하급기사에 불과한 아일린으로선 그럴 만도 했다.
물론 서우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
‘내가 볼 땐 충분히 강한데 말이지.’
저런 괴물의 돌진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우진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아일린의 모습을 보니 조금 감탄스러웠다.
“서우진 씨.”
아일린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분한 표정은 그사이 사라지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 네?”
서우진이 눈을 끔뻑이며 쳐다보자, 아일린이 말을 이었다.
“용사들의 성장 방법에 대해선 알고 계시죠?”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창과 레벨.
이 두 가지만 보더라도 용사들의 성장 방식은 매우 직관적이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면 되죠.”
매시브 가디언으로 오기 전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때 이미 숙지를 해둔 상태였다.
“맞아요.”
본래 이 세계 사람인 아일린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매커니즘이었다.
수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전투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용사들은 고작 몬스터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강해진다.
그것도 자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하게.
솔직히 질투가 나긴 했다.
누구는 잠잘 시간도 아껴가며 강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용사들은 자신들의 세계를 도와주기 위해 온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답답함을 속으로 삭이며 최대한 지원을 해주는 수밖에.
“다른 왕국의 용사들은 이미 성장을 시작했어요.”
“……벌써요?”
자신은 아직 적응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다른 놈들은 벌써 성장 중이라니.
괜히 뒤처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빠르고 편한 길을 선택했죠.”
“그게 뭔가요?”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애초에 레벨 업을 통한 성장이라는 방식 자체가 그 어떤 것보다 빠르고 편한 길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이전에 소환된 용사들은 그걸 ‘버스’라고 불렀다고 하더군요.”
아일린은 혹시 그게 무슨 뜻인지 아냐는 눈빛을 지었다.
“아…….”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저 단어 하나가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그렇군요. 확실히 버스를 타면 더 쉬워지겠네요. 그리 위험하지도 않을 테고.”
아직 용사들은 초인의 영역에 들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기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레벨 업을 한다면?
‘그야말로 개꿀 버스지.’
그 말을 들은 서우진은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아일린과 테스테론을 비롯한 강력한 기사들.
그리고 수백 명의 병사.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토벌을 진행한다면 생각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레벨 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아일린의 말에, 서우진의 그런 기대감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할게요. 우리 시온은 그 방법을 쓰지 않을 겁니다.”
“……네?”
아니 왜?
이전 세대부터 착실하게 보증되어 온 방법을 안 쓰고 굳이 어려운 길을 간단 말인가?
‘안 그래도 위험한데!’
풀어졌던 서우진의 표정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드레이카스 같은 괴물과 직접 싸워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였다.
“시온은 그런 나약한 방식으로 기사를 육성하지 않아요.”
자존심? 자부심?
대충 그런 감정이 잔뜩 버무려져 있는 아일린의 단호한 음성에 서우진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난 기사가 아니라 용사인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용사도 아닌, 마왕의 적성을 갖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놈들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도망은 이미 글렀으니 최대한 빨리 강해져야만 했다.
99명의 용사와 이 무식한 시온의 기사 놈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그런데 빠르기는커녕 오히려 뒤처지게 생겼다.
“물론 안전은 최대한 보장해 드릴 거예요.”
“그게 되겠냐?”
“네?”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고 말았지만, 서우진은 그런 것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아일린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되지?’
방법은 두 가지다.
어떻게든 걸리지 않고 여기서 도망을 치든지, 아니면 토벌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든지.
하지만 두 방법 모두 위험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나마 둘 중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는…….
‘토벌인가?’
혼자서는 이 얼어붙은 대지를 벗어날 자신이 없었다.
보급품도 하나 없이 이곳을 빠져나가다간, 분명 얼마 지나지 않아 동사할 게 분명했다.
반면 토벌은 조금 다르다.
전투를 해야 했지만 수많은 보급품이 있었고, 기사와 병사들도 있다.
아일린이 최대한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했으니, 그리 쉽게 죽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저런 놈들이 많습니까?”
서우진이 병사들에 의해 해체되고 있는 드레이카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지금은 한 마리에 불과했기에 다행이지, 만약 저런 게 떼로 나온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었다.
아일린도 자신을 지켜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드레이카스는 최상위 몬스터예요. 하지만 그만큼 개체 수가 적죠.”
그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놈보다 위험한 몬스터는 얼마든지 있어요.”
각 개체는 약하지만 수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에라스.
새하얀 눈 속에 숨어 있다 암습을 가하는 나이르도.
매년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몬스터들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위험한 건…….
“크라토스.”
6번째 마왕의 권속이자, 지상 최강의 마수.
사실 크라토스에 대한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만약 6차 마왕 강림 때의 기록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놈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지금까지 토벌에서 크라토스를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정확히는 크라토스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는 지역까지 토벌을 진행하지 않는다.
거리도 거리였지만, 굳이 그놈을 토벌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일린의 말에도 서우진의 표정은 펴질 줄 몰랐다.
그에게는 크라토스든 그냥 야생 곰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어차피 둘 중 무엇을 만나든 죽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서우진의 걱정과는 별개로, 숙영지로의 이동은 재개되었다.
이젠 형체도 남지 않은 드레이카스의 사체와 함께, 장장 여섯 시간을 더 걸은 후에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씨발.’
서우진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몬스터에 대한 걱정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보단 이 살인적인 추위가 훨씬 큰 문제였다.
“이러다 진짜 얼어 죽겠네.”
“죽지 않아요.”
서우진의 투덜거림에 아일린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걸치고 있는 외투에는 보온 마법이 걸려 있어요. 고위급 마법은 아니라 추위를 전부 막아주진 못하지만, 최소한 얼어 죽는 것 정도는 방지할 수 있죠.”
그 말에 서우진이 자신의 옷을 내려다봤다.
병사들이 걸치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투.
지금까진 신경쓰지 않았는데, 마법이 걸려 있었다는 사실에 서우진은 살짝 놀랐다.
“이런 옷이 흔합니까?”
“그럴 리가요.”
아직 성장이라곤 1도 하지 못한 용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마법 물품이다.
병사들처럼 이런 날씨에 익숙한 것도 아니라, 정말로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레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을 바라본 서우진은 이내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대단하네요.”
이 추위에서 그리 오래 걸었음에도 숙영지를 구축하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매년 하는 일이니까요. 주기적으로 훈련을 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놀라웠다.
‘우리나라 군대에 데려가면 죄다 에이스 취급받겠네.’
괜한 잡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었군.”
흠칫-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반 슬레인?’
바로 그의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