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4)
514화.
전세는 팽팽했다.
아니, 결과만 놓고 보면 유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껏 패배한 전선은 없었으니까.
홀로 마왕군을 상대할 수 없는 약소 왕국들조차도, 주변국들의 지원을 받아 놈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승리를 논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것.
놈들을 막아내는 것은 성공하고 있었지만, 병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비슷한 규모의 전투를 몇 번만 더 치른다면, 더는 포위망을 구축할 수 없을 정도로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물론, 계속해서 추가 병력이 지원되고 있긴 했다.
이 세계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었으니, 병력을 아끼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왕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일반 병사들을 압도하는 마수와 몬스터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병사들과는 달리, 그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놈들을 이만한 피해를 입으며 계속 막아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두 번째는 권속들이다.
몇 번이나 말을 해왔던 것이지만, 이번 8차 강림 전쟁은 이전과 다르다.
권속의 수준도, 숫자도.
차원이 달랐다.
다행히 이계 용사 소환 마법이 대성공하지 않았더라면, 진즉에 패배가 확정되었을 정도였다.
수많은 지원을 한 몸에 받은 용사가 엄청나게 강해지긴 하겠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순 없었으니까.
용사가 있는 전장을 제외한 다른 곳은, 권속들에 의한 학살이 자행될 게 뻔했다.
이번에 소환된 용사의 수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권속이란 존재는 여전히 이번 전쟁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마왕.’
서우진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래, 마왕이었다.
가장 강력하고, 두려우며, 거대한 적.
놈은 아직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차원의 벽을 넘으며 새어 나오는 마기만으로도 마왕이 얼마나 최악의 존재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 놈이 넘어온다면, 이 전쟁은 반드시 패배한다.
서우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나는 아직 약하니까.’
권속 한둘 정도는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셋이면 장담할 수 없었고, 넷 이상이라면 필패다.
그리고 마왕은 그런 권속들을 몽땅 합친 것보다도 강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강하겠지.’
아주 짙디 짙은 예감이었다.
마왕이란 놈의 힘은 권속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마왕화’를 한 서우진조차 아직 놈에게 닿을 수 없다고.
만약 마왕이 세상에 완벽한 강림을 끝낸다면, 그때부턴 승리를 위한 전투가 아닌,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거다.’
서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죽어버린 숲, ‘팔로타인 라세’가 눈에 들어왔다.
저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거대한 악의(惡意).
그 주인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내는 것은 말이다.
‘그래야만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어.’
정말로 가능할지는 서우진도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해야만 한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엔, 적의 힘이 너무도 강했다.
“걱정되나요?”
언제나 그렇듯, 계수지였다.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팔로타인 라세’에서 시선을 떼었다.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써봄 직한 방법은 있었지만, 그게 통할지는 모르겠다.
“저희가 옆에서 도울게요.”
계수지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서우진을 제외한 용사들 중 가장 강하다.
치열하다 못해 참혹하기까지 한 전투를 계속해서 치르며, 무려 108레벨에 도달했으니까.
구동환이 아직 106레벨에 불과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녀의 성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확실히 권속들을 사냥하는 게 레벨을 올리기에는 좋아.’
서우진과는 달리 다수가 합공하는지라 폭발적인 레벨 업을 하지는 못했지만, 착실하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S급인 엘리트 친구들조차 105레벨을 넘어서지 못했는데, A급의 계수지가 그들을 압도하는 것을 보면 신기했다.
‘뭐,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고.’
서우진은 계수지를 바라봤다.
그녀의 뒤로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말하진 않았지만, 서우진의 기분이 어떠한지는 모두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걱정은 자기들이 하고 있구만.’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저들이 걱정하는 건 강림을 저지하는 것이 아닌, 서우진이었다.
혹시나 무리하진 않을지, 그래서 잘못되지는 않을지.
그리고 혼자서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진 않은지.
그간 수많은 일들을 함께 헤쳐 와서 그런 것일까?
저들은 이제 단순한 동료가 아닌, 가족과도 같이 느껴졌다.
‘가족이 다른 가족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서우진도 저들을 걱정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니던가.
“감사합니다.”
작게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아저씨! 저만 믿어요! 내가 마왕이든 권속이든 못 나오게 쾅! 뚝배기를…….”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낀 이지아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했다.
짧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전쟁을 걱정하지 않는 평범한 시간으로 되돌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네가 나오는 족족 죄다 때려 눕혀줘라, 좀.”
“물론이죠!”
헤실헤실 웃으며 대답한다.
“위치는 나한테 맡겨라. 내가 바로 찾아서 가르쳐 줄 테니까.”
강병규의 ‘탐색’이라면 가능했다.
“제 물약들이라면 강림지의 정화도 어느 정도 가능할 거예요.”
박민성의 상태 이상을 해제하는 물약이라면, 어느 정도는 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한마디씩 내뱉었다.
어떻게 해서든 마왕의 강림을 저지하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말들이었다.
물론, 결국 마지막은 서우진이 직접 해내야 할 일이겠지만…….
“그렇게 모두 힘을 합치면, 놈을 막아낼 수도 있겠네요.”
서우진은 웃으며 그들의 호의를 받아주었다.
“그래도 그에 대한 의논은 다음에 하죠.”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서우진이 고개를 들어, 저 멀리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아직 시야에는 잡히지 않는 거리.
하지만 똑똑히 느껴지고 있었다.
이 세상의 명운을 건 전투가, 저곳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온.’
그리고 브로바이슨.
두 왕국이 몬스터들을 막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조금 서두를 수 있겠습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물론이네. 달리는 것까진 무리더라도, 속보 정도는 충분하다네.”
젤론이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뒤로, 15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따르고 있었다.
“그럼 속보로.”
“전 병력에 이르라! 지금부터 진군 속도를 높인다! 적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쿵- 쿵- 쿵-!
발을 맞춘 병사들의 진군에 땅이 울려 퍼졌다.
서우진은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앞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만 기다려라.’
* * *
“미친…….”
브로바이슨의 병사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몬스터?
그놈들이 강한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굳이 이제 와서 놀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병사가 놀란 건 몬스터가 아닌, 시온에서 내려온 병사들 때문이었다.
‘저, 저게 가능한가?’
분명 객관적인 힘은 시온의 병사가 몬스터에 미치지 못한다.
마력도 볼품없었고, 체구 역시 현저히 작았으니까.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건 시온의 병사들이었다.
자신들이라면 몬스터 한 마리에 대여섯 명은 달라붙어야 간신히 상대할 수 있었겠지만, 저놈들은 달랐다.
둘, 혹은 혼자서도 몬스터의 멱을 따고 있던 것이다.
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별거 아닌데?”
“야, 이놈들 약하다! 몽땅 쓸어버려!”
시온의 병사들은 마치 이런 전투가 익숙하기라도 한 듯, 일상처럼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정예라더니…….’
그 광경을 보던 이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솔직히 그들의 행색을 처음 봤을 때 무시하던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가죽갑옷은커녕, 거적데기 같은 털옷이나 몸에 칭칭 감고 있었으니까.
하나같이 왜소하고 비쩍 곯은 모습은, 병사라기보다는 거지가 더 어울렸다.
그래서 정예 중 정예 병사라는 말은 헛소문으로 치부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오히려 소문이 실제보다 못했다.
시온의 병사들은 진실로 강했고, 용맹했으며, 거침이 없었다.
콰과과과광-!
폭음이 터져 나왔다.
병사들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쪽을 향했다.
‘저게 뭐냐!’
몬스터들이 허공에 비산하는 것이 보였다.
기사들의 돌입을 견뎌내지 못한 채, 온몸이 박살나며 날아오른 것이다.
‘푸른방패 기사단.’
시온이 자랑하는 최강의 기사단이다.
저들 역시 일반적인 기사들의 실력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최상급 기사 두 명에, 상급 다섯, 그리고 나머지는 중급과 하급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벌이는 학살은, 제국의 백은 기사단보다도 인상적이었다.
‘대체 북방은 무슨 동네기에, 저딴 괴물들이 득실득실한 거지?’
그저 춥고, 척박하고, 빈곤한 곳이 아니란 말인가?
시온의 전투를 본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설원의 괴물들에 비하면 하잘 것 없는 놈들이다. 망설이지 말고 모조리 쳐 죽여!”
푸른방패 기사단의 선봉에서, 근육으로 똘똘 뭉친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테스테론.
상급을 넘어 최상급에 이른 기사였다.
그는 그야말로 폭풍처럼 몬스터들을 박살내고 있었다.
거대한 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대여섯 마리의 몬스터가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베었다기보단, 부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고작해야 50명도 되지 않는 기사들이 몬스터의 군집을 가로지른다.
단 1초도 멈춰 서지 않고,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허어-”
그러한 비현실적인 전투 광경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실로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 봐야 약소국. 우리 브로바이슨의 훨씬 뛰어납니다.”
“정녕 그리 생각하나, 게데인?”
브로바이슨의 총사령관, 게데인이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 때문에 반박하긴 했지만, 그 역시 시온의 병력이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우리에겐 당신이 있지 않습니까?”
게데인이 고개를 들어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중년의 귀족을 바라봤다.
브로바이슨 역사상 처음으로 초극의 경지에 이른 자.
칼라인이었다.
“그래, 그건 그렇지.”
칼라인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평범한 인간들의 기준일 뿐이었다.
초극의 경지에 오른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칼라인은 여전히 시온을 무시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기엔 검귀가 있으니까.’
이 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시온의 검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존재들 중 하나였다.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초극의 경지에 이른 강자였으니까.
칼라인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반 슬레인에게는 미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네만, 지금은 접어두는 게 좋을 걸세. 일단 시온은 적이 아닌, 아군 아닌가.”
생각보다 더 강한 힘을 지녔다고 해서, 서로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시온이 강하면 강할수록, 브로바이슨의 피해가 줄어드니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게데인은 상해 버린 자존심을 억지로 누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칼라인은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계속해서 도움만 받을 순 없으니, 나도 이만 출정하겠네.”
“부탁드립니다.”
게데인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서로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브로바이슨의 위엄을 세우려면 칼라인의 힘이 필요했다.
그런 게데인의 모습에 칼라인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게나.”
브로바이슨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저 북부의 촌놈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주고 올 테니.
칼라인은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억지로 삼키며, 전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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