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5)
515화.
반쪽짜리.
이전에 서우진에게 들었던 평가였다.
경지는 드높으나, 그에 걸맞은 움직임은 보이지 못했으니까.
‘온실 속의 화초나 다름없었지.’
칼라인도 그것을 인정하는 바였다.
물론,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말이다.
‘나단이었던가?’
그곳에서 칼라인은 진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봤다.
자신이 가문의 지원을 받으며 수련만 해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전장.
팔이 날아가고, 눈알이 터지며,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황에도 그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결코 뚫리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홀로 수만의 마수를 막아선 용사도 있었으니까.
자신으로선 꿈도 꿀 수 없는 행동이며, 의지였다.
그때 깨달았다.
초극의 경지에 오른 자신의 힘은 정말로 반쪽짜리라는 것을 말이다.
‘아직은 그들과 같은 거친 잡초가 되지 못했다만…….’
칼라인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가문이 휘청거릴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구한 보검이었다.
스르릉-
예리한 쇳소리와 함께, 은백색의 검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좋아.’
전세는 유리하다.
시온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활약을 해주고 있는 덕분이었다.
브로바이슨 군 역시 악착같이 몬스터들을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시온에 비하자면 확실히 부족하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우리도 만만찮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유치한 자존심이라고 욕을 해도 상관없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하지만 그만큼 왕국의 위신은 중요했다.
‘아니,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병사들의 사기가 걱정되었다.
시온에서 파병을 나온 놈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자신의 병사들이 주눅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보기만 한다면, 본래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자신들이 촌놈들이라 평가했던 놈들보다 못하다는 자괴감이 들 테니까.
‘그래선 안 되지.’
칼라인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답게, 강대한 마력은 그의 신형을 마치 새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으로 떠받쳤다.
후우웅-!
수십 미터나 날아오른 칼라인의 시선이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저기가 좋겠군.’
유리한 전황에서도 밀리는 곳은 존재했다.
한눈에 봐도 위태로워, 당장 대열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전선.
칼라인은 곧장 그곳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물러나라! 이 더러운 족속들아!”
마력이 듬뿍 담긴 외침과 함께, 오러 다발이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과과과광-!
수백 개에 달하는 오러에 몬스터들이 터져 나갔다.
굳이 섬세하게 제어하지 않았기에 예리함보단 파괴력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우와아아아아!”
“칼라인 경이 오셨다!”
밀리던 형세가 순식간에 뒤집히자, 브로바이슨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무려 초극의 경지에 오른 존재가 지원을 와주었으니, 생존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희열과 함께 자부심이 샘솟는다.
브로바이슨도 시온에 못지않은,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놈들을 쳐 죽여주십시오!”
“저 촌놈들에게 브로바이슨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십시오!”
억눌려 있던 감정들을 터뜨리며 칼라인을 향해 호소했다.
“이젠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왔으니.”
타악-
조각난 몬스터들의 살점 사이로 내려선 칼라인이 근엄하게 말했다.
마력이 섞인 탓에 주변에 있는 모든 병사가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사기가 치솟아 올랐다.
단순하긴 해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아군의 사기를 올려주기에는 말이다.
칼라인은 괜히 우쭐해지는 느낌이었지만, 애써 그것을 감추며 무뚝뚝한 표정을 유지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군.’
지난 전투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만 받다가, 이렇게 환호성을 받자 영웅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칼라인은 더욱 무게감을 잡으며 몬스터들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면서 자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을 병사들을 상상했다.
수많은 몬스터를 향해 홀로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검사.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이번 강림 전쟁이 잘 마무리된다면, 자신은 브로바이슨의 다신 없을 영웅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덤비거라, 이 마왕의 하수인들아! 내 오늘 너희에게 브로바이슨의 정의가 살아 있음을 똑똑히 보여……?”
몬스터들에게 근엄한 호통을 치던 칼라인이 말끝을 흐렸다.
‘뭐, 뭐지?’
주변이 조용하다.
방금 전까지 환호성을 지르던 브로바이슨의 병사들도, 온갖 흉악한 소리를 내뱉던 몬스터들도.
전장을 종횡무진하던 시온의 병력들도.
모두 입을 다문 채,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 위?’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고개를 들어올렸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
햇빛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허공에 떠 있는 저들의 존재감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누구……!’
미처 생각이 끝나기도 전.
칼라인은 저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만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들은, 오직 용사들뿐이었으니까.
심지어 칼라인에게는 익숙한 마력들이 대부분이었다.
“영웅놀이가 재미있었나 봐?”
다시는 절대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우진.”
칼라인이 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그림자들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라고 하기엔 얼마 안 지났지?”
마치 깃털이 내려앉듯, 가볍게 땅에 착륙한 서우진이 손을 들며 아는 척을 했다.
하지만 칼라인은 그에 화답하지 못했다.
그럴 정신이 없었으니까.
‘저들이 여긴 왜?’
아니, 올 순 있다.
용사들이 전장에 지원을 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자신이 영웅이 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났냐는 것이다.
“회포는 나중에 풀고, 일단은 여기 정리 좀 하자.”
“자, 잠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칼라인이 서우진을 불러봤지만, 이미 늦었다.
서우진과 동료들이 이미 몬스터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오오오오오오-!!!”
설상가상으로, 후방에서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삼국 연합의 다른 두 왕국, 레닌스탕과 트리안의 지원군이 도착하는 소리였다.
‘이런 망할!’
칼라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 *
테스테론은 멀리서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마력이나 마기와는 다른, 아주 이질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익숙하군.’
테스테론은 이 기운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마력을 집중하자, 그 힘을 내뿜고 있는 존재가 시야에 들어왔다.
피식-
실소를 흘렸다.
“혹시나 했더니만…….”
역시 D급의 애송이 용사 아닌가?
물론, 지금은 그가 비웃기엔 너무도 강해져 버린 상태였지만 말이다.
“푸른방패 기사단은 이대로 본대로 복귀한다.”
테스테론이 휘하의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너무도 뜬금없는 명령이었지만, 그에 반문하는 녀석들은 아무도 없었다.
전시에 지휘관의 명령을 어길 정도로 덜떨어진 놈들도 없는데다, 애초에 테스테론이 왜 저런 명을 내렸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우진인가?”
테스테론의 바로 뒤에 있던 제라드가 물었다.
“그래. 녀석이 왔다.”
“이것 참. 언제 저토록 강해진 건지…….”
이전에 다른 용사들과 리나르를 데리고 매시브 가디언에 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때도 강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예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
“괜히 저 녀석들이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으니, 우리는 돌아가는 게 낫겠군.”
전장에 아군이 남아 있지 않아야, 마음껏 날뛸 수 있을 터였다.
그만큼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것도 쉬울 테고.
푸른방패 기사단은 그대로 말머리를 돌려,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시온의 병사들 역시 천천히 뒤로 빠졌다.
그 와중에도 전열을 흩트리지 않는 모습은, 과연 정예들이라 칭찬을 받을 만한 모습이었다.
일사불란.
시온의 병력은 마치 썰물처럼, 순식간에 전선을 뒤로 물렸다.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브로바이슨 군과는 비교가 되는 모습이었다.
‘어디 한번 보자, 얼마나 강해졌는지.’
테스테론은 대검을 휘둘러 앞길을 막고 있던 몬스터들을 토막 내고는, 시선을 돌렸다.
과연 훈련이 아닌, 실전에서의 서우진이 얼마나 강한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을 해보고 싶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
몬스터들이 쓸려 나간다.
일이백으로 표현할 수 없는 숫자였다.
최소한 네 자릿수의 몬스터들이, 서우진의 일검에 목숨을 잃고 있었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하는 것 같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북방의 칼바람에 흩날리는 눈발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서우진을 제외한 다른 용사들의 힘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손을 한 번 휘두르고, 스킬을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몬스터들이 갈려 나간다.
눈 몇 번 깜빡일 동안, 수천, 수만 마리가 죽어나자빠졌다.
놈들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쯧, 하여간…….’
용사란 족속들은 너무도 불합리했다.
물론, 그렇다고 불평할 때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테스테론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용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전투가 끝났다.
* * *
‘늦지 않았군.’
솔직히 훨씬 늦게 도착했어도, 시온과 브로바이슨 군은 전투에서 승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사상자는 늘었을 것이다.
서우진은 서두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각 군의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향했다.
“쉬고들 계세요. 금방 얘기 끝내고 돌아올 테니까.”
서우진의 말에 뒤를 따라오려던 동료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괜찮으시겠어요?”
계수지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은 기색을 풍겼다.
“괜찮을 겁니다. 오히려 저희가 한 번에 몰려가면, 압박한다고 생각해서 괜히 반발할 수도 있어요.”
서우진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기에, 계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변 전장을 정리하고 있을 게요.”
서우진이 저렇게 자신있어할 정도면, 끼어들어 봐야 방해만 될 게 뻔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동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준 서우진은 곧장 지휘소로 걸어갔다.
꽤 많은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무려 네 개의 왕국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서우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천막의 입구를 열고 들어갔다.
레닌스탕의 디아로크.
트리안의 젤론.
브로바이슨의 칼라인, 게데인.
그리고 시온의 테스테론과 제라드.
그 외에도 참모로 보이는 이들 십여 명까지.
꽤 많은 이의 시선이 서우진의 얼굴을 향했다.
‘괜히 긴장되는구만.’
계수지에게는 자신 있게 말을 했지만, 솔직히 쉬워 보이진 않았다.
저들을 설득하는 일은 말이다.
서우진이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승리한 것부터 축하를 할까요?”
가볍게 분위기를 푸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