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16)
516화.
자축은 빨리 끝났다.
그보단 논의할 일이 더욱 중요했으니까.
서우진이 마왕의 강림 자체를 저지하겠다는 말을 꺼내자, 예상했던 것처럼 반대 의견이 튀어나왔다.
“전에도 말했지만, 불가하오.”
젤론의 말이었다.
“나 역시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브로바이슨의 입장은 거부요.”
칼라인과 게데인도 고개를 저었다.
‘뭐, 기대도 안 했다.’
저들이 몇 마디 말을 들었다고 서우진의 의견에 덥석 고개를 끄덕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그가 노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었다.
“흐음.”
디아로크가 눈을 감고 고민하고 있었다.
“넌 어때?”
서우진이 녀석을 향해 물었다.
“잘 모르겠군.”
말을 아낀다.
“나 혼자서라면 열 번이든, 백 번이든 네 말을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병력을 이끌고 ‘팔로타인 라세’로 들어가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괜히 애꿎은 이들의 목숨까지 걸며, 서우진을 따르긴 힘들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
오히려 디아로크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일단 레닌스탕은 보류고.’
이번엔 시온 쪽을 바라봤다.
테스테론과 제라드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그토록 두려웠던 근육덩어리였지만, 지금은 왠지 친근했다.
“시온은 어떻습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흐음…….”
테스테론이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터질 듯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진중하다기보단 조금 무서워 보일 정도였다.
“우리에겐 권한이 없거든.”
대답은 그런 테스테론이 아닌, 옆에 있던 제라드에게서 흘러나왔다.
“권한 말입니까?”
서우진의 물음에, 제라드가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직 한 명. 영주님의 명령만 들으니까. 그분의 결정에 따를 거다.”
반 슬레인은 이곳에 없다.
서우진과는 반대방향으로 ‘팔로타인 라세’를 돌고 있었으니까.
“영주님이 받아들인다면, 그냥 따르겠다는 말씀이시죠?”
“맞아.”
제라드의 말과 동시에, 테스테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두 사람이 현재 시온 군의 지휘를 맡고 있긴 했지만, 이런 큰일을 결정하는 건 무리인 모양이었다.
‘반대 둘에, 보류 둘이라…….’
나쁘지 않다.
서우진은 아직도 눈을 감고 고민하고 있는 디아로크를 다시 쳐다봤다.
“병력을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면?”
녀석이 눈을 떴다.
“그게 무슨 말이지?”
“소수정예로 움직인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말이야.”
병력을 단 한 명도 데리고 가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최소한으로, 실력이 뛰어난 자들만 선발해서 들어간다면?
“소수라…….”
디아로크는 눈살을 찌푸리며 머리를 굴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원한 이들로 한정한다면, 우리 레닌스탕은 따르겠다.”
“디아로크 공!”
깜짝 놀란 이들이 소리쳤다.
설마 디아로크가 저런 황당한 계획을 받아들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떻겠소?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그건…….”
“자살행위 같소?”
젤론의 만류에 디아로크가 물었다.
“크음…….”
차마 그렇다고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로 봐선,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보시오, 젤론 대장군. 저놈은 말이오.”
디아로크의 손가락이 서우진을 가리킨다.
“결코 질 싸움은 안 하는 놈이오.”
서우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헛소리였으니까.
하지만 굳이 입을 막지는 않았다.
저 녀석은 지금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아주 비겁하고, 약삭빠른 놈이라는 거지. 그런 녀석이 승산도 없는 일에 저토록 적극적으로 나설 리가 없소. 분명 세워둔 비책이 있을 거요.”
…도와주려 하는 것 맞나?
‘그냥 이때다 싶어 욕하는 것 같은데.’
서우진이 찝찝한 표정으로 디아로크를 노려보았다.
“아무튼 나는 저 녀석에게 빚도 있고, 솔직히 성공만 한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도 있으니까 따를 생각이오.”
녀석은 담담하게 그리 말을 하고는 팔짱을 꼈다.
반론을 더는 듣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끄응.”
젤론이 곤란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내뱉었다.
디아로크가 저렇게 나오면, 서우진의 말을 마냥 무시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흥,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게데인이었다.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서우진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브로바이슨은 그렇게 결정을 내린 건가?”
게데인의 옆에 앉아 있는 칼라인을 향해 물었다.
그는 잠시 눈치를 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반대하긴 했지만, 왠지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뭐, 그렇게 하시던가.”
하지만 서우진은 그들의 대답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팔로타인 라세’에 들어가는 인원은, 많아도 1천 명을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칼라인의 힘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준.
서우진은 브로바이슨이 빠져도, 전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크, 크흠.”
칼라인이 괜히 헛기침을 내뱉었다.
“트리안은 어쩌시겠습니까?”
브로바이슨이 빠진다는 마당에, 트리안이라고 크게 필요한 이들은 아니었다.
다만, 젤론이 합류한다면 병력의 운용이 훨씬 수월해진다는 장점이 있긴 했다.
‘웬만하면 같이해 줬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서우진은 칼라인이나 게데인보단, 젤론이 함께하길 바랐다.
그들의 힘은 대체가 가능했지만, 젤론의 통솔력은 따를 자가 드물었으니까.
“…고민을 좀 해보겠네.”
“제, 젤론 장군?”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을까?
당연히 자신들처럼 거부할 것이라 생각했던 게데인이 깜짝 놀라며 그를 불렀다.
“만약 저이의 말대로 마왕이 강림을 막을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한다면, 도전해 볼 법하지 않겠소?”
실패한다면 뼈가 아프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그보다 더 한 이득은 없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도박에 가까운 심정이지만, 한 번쯤은 베팅을 해볼 만한 방법이었다.
“허나, 결정은 나중에 하겠소. 도착할 이들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니.”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 그리고 다른 국가의 이야기까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십시오.”
어차피 출발은 모두 한자리에 모인 뒤에 하려고 했다.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이곳을 정리하고, 휴식을 취한 뒤, 내일 이동하죠.”
전투는 계속된다.
조금이라도 빨리 계획을 실행하려면, ‘팔로타인 라세’의 주변 정리를 어서 끝내야만 했다.
“그렇게 합세.”
젤론이 고개를 끄덕였고, 디아로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내일 출발하는 걸로 하지.”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걸어 천막을 벗어났다.
“브로바이슨은 뭐……. 알아서들 하시고.”
눈을 끔뻑이고 있는 두 사람을 흘깃 본 서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테스테론, 그리고 제라드.
“우리는 오랜만에 회포를 좀 풀까요?”
모르긴 몰라도 동료들 역시 저들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건방진 녀석.”
테스테론이 서우진을 향해 픽- 하고 웃어 보이고는, 그 거대한 덩치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가지, 병사들도 네 녀석을 보고 싶어 할 테니.”
꽤나 익숙한 얼굴들이 많을 것이다.
시온의 병력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매시브 가디언에서 함께 싸웠던 이들이 대부분일 터.
서우진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테스테론, 제라드와 함께 천막을 나섰다.
“나도 먼저 들어가 보겠소.”
젤론이 마지막으로 빠져나가자, 안에 남아 있는 건 브로바이슨의 두 귀족뿐이었다.
왠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느낌에, 칼라인은 입술을 짓씹었다.
‘젠장.’
조금 전까지 자신은 브로바이슨의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영웅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중간에 서우진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방해를 받은 것도 열불이 날 지경이었는데, 이젠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마치 길바닥에 놓인 돌멩이를 보듯, 브로바이슨과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었다.
으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데인 역시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악다문 것이다.
“감히 우리를 무시해?”
그는 고작해야 ‘병기’ 따위에 불과한 서우진이, 유구한 전통이 있는 브로바이슨 왕국의 귀족을 무시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칼라인은 그런 게데인을 바라봤다.
화가 나는 건 그와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우진을 향해 뭔가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마음을 먹기엔, 서우진의 힘이 얼마나 막대한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이 아무리 발악을 해봐야, 서우진은커녕 그의 동료들에게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게데인은 아직 어리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이 미숙하다는 뜻이었다.
브로바이슨에서도 가장 강력한 권세가의 핏줄로 태어나, 지금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오죽하면 왕실 주최의 회의에서도 자신에게 바득바득 대들 정도이지 않은가.
칼라인은 게데인이 혹시나 헛짓거리를 하진 않을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서우진에게 잘못 걸렸다간,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불똥이 튈지 몰랐다.
“흐, 흐흠. 진정하게.”
애써 담담한 음성으로 게데인을 진정시켜 보았다.
“진정은 당신이나 하시오! 나는 못 하겠으니!”
“다, 당신?”
칼라인이 눈을 부릅떴다.
설마하니 자신에게 저따위로 막말을 할 줄이야!
하지만 참았다.
이 이상 더 흥분하면, 정말로 돌이키지 못할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라, 게데인 프라우드.”
진득한 마력까지 담아 무겁게 이야기하자, 그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리 안하무인이라 할지라도,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의 마력 앞에서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천한 놈이 감히 우리를 무시하지 않았소?”
조금 진정이 됐는지, 게데인이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고 저놈들을 응징할 순 없다.”
“왜 그렇소이까? 제깟 놈이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지만, 우리에겐 용사들을 폐…….”
“그만.”
화아아아아악-!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였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었다.
특히나 주변에 용사들이 바글거리고 있는 지금은, 결코 내뱉어선 안 될 이야기였다.
“미, 미안하오. 내 생각이 짧았소.”
칼라인이 작정하고 뿜어낸 기운은, 고작 상급 기사에 불과한 게데인이 받아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전신이 굳어지는 듯한 두려움에,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지금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감정을 죽여라. 언젠가 이 대가를 받아낼 때가 올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놈들을 써먹을 구석이 무궁무진했다.
오늘의 수모를 갚아주는 건, 마왕을 몰아내고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딱 좋지.’
희망으로 가득찬 마음을 꺾어,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수 있었으니까.
칼라인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서우진이 나간 천막 입구를 바라보았다.
‘너의 오만함을 탓해라, 서우진.’
지금 당장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서우진은 자신이 품은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었다.
그날 벌어질 일은, 모두 그가 스스로 자처한 것이다.
칼라인은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 그리 생각했다.
“일단은 우리도 돌아가도록 하지.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두 사람은 무겁게 가라앉은 심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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