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4)
524화.
세계수는 정말 놀라울 정도의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마목 따위랑은 비교도 되지 않는군.’
서우진은 감탄하며 순백의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크기는 고작해야 십여 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팔로타인 라세’의 다른 나무들과 비교해도,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괜히 엘프들이 신성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으로 모실 만하네.’
주변을 뒤덮은 마기로 인해 상당히 쇠약해진 상태일 텐데도 저런 생명력이라니…….
서우진은 손을 들어 가만히 세계수의 나뭇잎에 손을 가져다 댔다.
줄기나 가지와 마찬가지로 새하얀 색의 나뭇잎은, 그 자체만으로도 희귀한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 라니엘’을 제작할 때도 세계수의 일부분이 들어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허리춤에서 낮은 진동이 느껴졌다.
‘카 라니엘’이 반가움에 몸을 떨고 있는 듯했다.
서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나뭇잎에 닿았던 손을 떼었다.
“정말 신비롭네요.”
옆에서 계수지가 감탄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러네요.”
서우진이 동의했다.
세계수의 기운도 기운이었지만, 신비롭다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겉모습도 대단했다.
“마치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에요.”
그녀의 말에 서우진이 피식- 웃었다.
애초에 이 세계는 판타지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으니까.
“여기에 캠프를 만들어야겠습니다.”
“찬성이에요.”
세계수의 생명력 덕분일까?
소모된 체력과 마력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하루만 머물러도, 완벽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배터리 같은 장소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자 천여 명의 병사가 열심히 숙영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생명력이 가득한 공간에 있다 보니, 조금 전과 달리 활기가 넘쳐 보였다.
‘좋군.’
신난 이지아가 김다혜를 끌고 뛰어다니고, 다른 동료들도 오랜만에 긴장감을 푼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서 좀 쉬자.’
잠시간의 평화.
큰 싸움을 앞에 둔 지금, 이 정도의 여유는 부려도 좋을 듯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숲에서는 밤이 빨리 찾아왔다.
특히나 ‘팔로타인 라세’는 더욱 그러했다.
숲을 뒤덮은 죽음의 기운 때문인 것 같았다.
서우진은 세계수 옆에 지어진 커다란 천막에 앉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명할 때가 됐지.’
그간 너무 미뤄왔다.
이젠 정말 동료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말을 하는 김에,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에게도 할 생각이었다.
들은 강림 전쟁 이후에도 함께해야 했으니 말이다.
계속해서 비밀을 품고 있어서야, 자유로운 행동이 힘들 수도 있었다.
‘디아로크는 대충 알고 있을 테니, 상관없고.’
녀석은 자신이 백시우와 싸울 때 ‘마왕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신경쓰는 것 같진 않았다.
‘뭐, 내가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해주기도 했으니.’
머리를 긁적인 서우진은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밖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우진의 얼굴이 긴장감이 떠올랐다.
차라리 마수들이랑 싸우는 게 나을 정도로 긴장이 되었다.
동료들을 믿기는 했지만,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신하며, 분노를 넘어 적대감을 지니게 된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그런데도 불안했다.
“후우-”
자기도 모르게 깊게 심호흡을 한 서우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저희 왔어요!”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이지아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로운 분위기에 기분이 좋은지,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녀석을 시작으로, 뒤에서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아홉 명의 동료와 반 슬레인, 프레이야, 디아로크, 그리고 아일린과 리나르까지.
서우진이 자신있게 내 사람이라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전부 온 것이다.
신난 이지아와 멍한 김다혜를 제외하면, 모두가 살짝 굳은 표정이었다.
과연 서우진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듯했다.
저녁 식사 후 모여달라고 말하는 서우진의 분위기가 심상찮았으니까.
“다들 오셨네요.”
서우진이 애써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무슨 일인데 다 모이라고 한 게냐?”
영문을 모르는 프레이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대충 짐작하고 있는 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서우진의 말만 기다렸다.
“음, 말씀드릴 게 있거든요.”
서우진이 조금 무겁게 대답하자, 프레이야는 잠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불러 모을 정도면 중한 이야기인가 보구나.”
뭔가 딱딱해진 분위기를 읽은 프레이야는, 더 묻지 않고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서우진이 그들을 둘러봤다.
이 상황을 궁금해하는 사람, 불안한 표정을 짓는 사람, 가만히 서우진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각양각색이었지만, 모두 자신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건 똑같았다.
‘후우-’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어쩌면 오늘.
많은 것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계가 형성되고, 예전과 같은 분위기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얘기를 해야지.’
서우진은 마른침을 삼키곤,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저는 ‘마왕’입니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했다.
모두 눈을 부릅뜨고 서우진을 바라만 보고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귀를 의심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 그게 무슨……?”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이번에도 프레이야였다.
그녀는 경악을 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왕? 마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불신으로 가득한 그녀의 음성에,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경거망동하진 않았다.
가장 흥분한 프레이야마저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에 손을 가져다대긴 했지만, 그것을 뽑지 않은 것이다.
“설명이 필요하겠군.”
반 슬레인이 조용히 말했다.
무겁고 진중한 그의 음성이 울려 퍼지자, 다들 서우진의 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행인가?’
솔직히 한두 명쯤은 공격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서우진은 조금 가벼워진 부담감을 느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물론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마왕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직업이 ‘마왕’이니까요.”
처음 이 세계에 소환되었을 때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그때의 막막함과 두려움.
왜 자신이 그들을 속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왜 이제야 밝히는지.
감정의 굴곡은 없었다.
그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입에 담을 뿐이었다.
“진즉 밝힐 생각은 왜 하지 못했습니까?”
구동환이었다.
가장 먼저 ‘마왕화’를 한 서우진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질책이 담긴 음성으로 물었다.
“두려웠으니까.”
그 대답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서우진의 입에서 두렵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우리가 당신을 공격하기라도 할…….”
“아니, 그게 두려운 게 아닙니다.”
계수지가 더듬거리며 하는 말을 끊었다.
“그간 쌓아왔던 인연이 끊어질까 봐.”
씁쓸한 음성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을 잃을까 봐. 그게 두려웠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담담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심이 너무도 무거웠던 것이다.
“난 또. 그게 뭐 심각한 일이라고.”
그때, 디아로크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뭐?”
서우진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녀석을 쳐다봤다.
이게 심각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심각하단 말인가?
“저놈이 진짜 판데모니엄의 지배자인 것도 아니고. 그냥 용사의 직업이 ‘마왕’이라는 것뿐이잖아?”
디아로크는 정말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거라고.”
미친놈.
여기서 직업의 귀천이 왜 나오냐?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녀석의 말에 딴죽을 걸 뻔했다.
“‘검병’이나, ‘마왕’이나. 오히려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인데, 무슨 청문회를 연 것처럼 이러는지 모르겠네.”
“맞는 말이군.”
놀랍게도 반 슬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조금 놀라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중요한 건 누구의 편이냐는 것이지. 그리고 자네는 분명 우리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듯,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 둘이 그렇게 말을 하자,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그렇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죠? 아저씨가 없었으면 우린 벌써 죽었을 걸요? 그러니까 고마워해야지. ‘마왕’이면 뭐 어때요? 아저씨는 착한 마왕인데!”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일까?
이지아가 손을 번쩍 들고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어린아이의 유치한 의견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가장 정확한 말이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이지아의 말이 통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짓기엔, 서우진이 그간 해온 일이 너무도 많았다.
“아이에르의 병사들을 학살한 것도 네 녀석이었더냐?”
순식간에 싸늘해진다.
실제로 온도가 1도쯤 떨어진 것 같았다.
프레이야의 날카로운 시선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검은 존재’.
비록 온전한 서우진의 정신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기는 했지만, 학살을 부정할 순 없었다.
“왜 그랬더냐? 네 힘이라면 굳이 그 불쌍한 녀석들을 죽이지 않아도…….”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전에 구동환을 향해 했던 말이었다.
“필요했다?”
프레이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서우진은 대답했다.
“그들은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으니까요.”
전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살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투가 진즉 끝나고, 점령지의 백성들을 향한 약탈과 살인, 강간과 방화 따위는 아니다.
그건 분명한 범죄이고, 인간으로써 해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에르의 병사들은 그러한 짓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그것이 사실이더냐?”
프레이야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실한 주신의 병사들이 그딴 짓을 저지르다니?
“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합니다. 제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것을 보증해 줄 수 있는 존재도 있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한 증인이었다.
“성왕에게 물어보시면 확인해 줄 겁니다.”
성왕 오이언.
그날, 그 전쟁에 참가했던 그라면, 서우진의 결백을 증언해 줄 수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프레이야가 당황했다.
“…일단, 알겠느니라.”
성왕의 이름이 나온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날의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면, 사실관계를 확실히 확인해야만 했다.
‘됐군.’
더는 따져 묻는 사람이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