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25)
525화.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서우진이 어떠한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는지도 알았고, 학살에 대한 해명도 들었다.
모두 이해가 되는 수준이었으니, 굳이 질책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직업이 ‘마왕’이면 등급이 뭐예요? D급은 아닐 거 같은데. 혹시 SSS급이에요?”
이때다 싶었는지, 이지아가 물었다.
동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음…….”
서우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D급은 아니었으니까.
“SSS급도 아니야.”
“응? 그럼 SSSS급이에요?”
“지아야, 설마 S가 끝도 없이 늘어나겠니?”
어이가 없었는지, 옆에서 계수지가 풋- 하고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분위기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
이지아의 행동에 다들 미소를 지은 것이다.
“SSSS급도 아니야.”
“그럼요?”
녀석은 정말로 궁금한지, 눈까지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서우진이 ‘마왕’이든, 무슨 짓을 저질렀든.
그딴 건 관심도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긴장감이 풀어진 서우진이,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측정 불가더라고.”
“…네?”
다들 고개를 갸웃한다.
측정 불가라니?
단어 그대로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뜻인가?
“헐.”
구동환이 헛웃음을 터트렸고, 뒤늦게 이해한 이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SSS급의 백시우도, 감히 자신들이 넘볼 수 없는 재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재능이면, 대체 얼마나 대단하다는 말일까?
“어, 어쩐지. 너무 빨리 강해지더라니.”
“그 정도 등급은 돼야, 저런 괴물이 될 수 있구나…….”
서우진의 강함에 어떠한 비밀이 있었는지 안 동료들이 입을 떡 하고 벌렸다.
“허허- 이것 참.”
반 슬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끄럽구먼.”
그는 머쓱한 표정으로 찰랑거리는 은발을 쓸어넘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반 슬레인은 서우진이 D급 용사인 줄 알고, 여러 조언을 해주지 않았던가?
“그런 줄도 모르고 어떻게든 강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매시브 가디언에서 토벌을 나갔을 때였다.
낮은 등급의 용사도 결국엔 마왕을 무찔렀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반드시 그 방법을 찾아주겠다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반 슬레인은 그때를 떠올리며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닙니다. 영주님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만약 반 슬레인이 없었다면, 이렇게 강해질 순 없었을 것이다.
다른 용사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레벨만 올리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었겠지.
실전 경험도, 검의 실력도.
모두 반 슬레인이 도와준 덕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다.
서우진은 진심을 담아 그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험험.”
헛기침을 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 늙은이가 자네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일세.”
불안과 긴장이 풀린 것을 넘어, 이제 훈훈함까지 흘렀다.
서우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풀렸다.’
물론, 아직 완전히 해명이 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프레이야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오이언에게 확답을 듣지 않는 한, 그녀는 서우진에게 찝찝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서우진이 아이에르의 병사들을 수천 명이나 죽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정당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성왕이 직접 증명해 줄 수 있다고 하니 더는 나서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하다.
누구 하나 칼을 뽑고 덤벼들진 않았으니까.
“몰아붙여서 죄송합니다.”
그때, 구동환이 다가오며 사과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자신의 행동이 서우진에게 압박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니요. 오히려 늦게 이야기한 제 잘못이 큽니다.”
이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조금만 더 컸다면, 이런 자리까진 안 와도 되었을 터.
서우진은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다.
“어쨌든 더는 감추신 게 없는 것 같으니, 이제 진짜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가 된 것 같군요.”
이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구동환은 서우진과의 관계가 조금 더 끈끈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듯했다.
‘비밀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덕분이겠지.’
이런 식으로라도 해결이 되어서 참 다행이었다.
밤이 점점 더 깊어가기 시작했다.
서우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동료들과 잡담하며, 오랜만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했다.
* * *
쩌적- 쩌저적-
공간에 새겨진 공간이 점점 더 그 크기를 키워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처음 권속들이 넘어올 때 생긴 균열은, 이제 수십 미터에 달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아직인가?]균열의 앞을 지키고 있던 누군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정한 왕의 강림이다. 그리 쉬울 리가 없지.]옆에서 여덟 개의 머리가 달린 드래곤이 대답했다.
그간 모습을 감추고 사라졌던 크라토스였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글쎄…….]누군가의 질문에 크라토스가 모든 고개를 휘저었다.
지금까지 강림했던 왕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가 오시는 중이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10일 이내에는 완전히 벽이 허물어질 듯하다.] [10일이라…….]느리다.
지금 당장에라도 왕을 영접하고 싶었건만, 그렇게나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다니.
하지만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시선을 옮겨 크라토스를 바라보았다.
[쓰레기들의 청소는 어찌 되어가고 있지?]감히 왕의 길을 막아서는 벌레 같은 놈들.
모조리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이곳을 지키고 서 있어야 했으니까.
[안타깝게도, 밀리는 형세다.] [무어라?]누군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전장으로 향한 권속들이 몇이던가?
그중에는 왕의 첫 번째 검이라 불리는 아르제베토도 있었다.
그런데도 밀리고 있다니?
벌레들의 발악이 그토록 강하단 말인가?
[이미 대부분의 권속들은 목숨을 잃었다. 마수와 몬스터들로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크라토스는 분노가 섞인 음성으로 으르렁거렸다.
[원인이 무엇이지?]예상대로라면, 지금쯤 주변을 모조리 초토화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강림지 근처도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 이유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용사.]누군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번에 소환된 용사들의 힘이 예사롭지가 않다.]격이 다른 왕이 강림하듯, 차원이 다른 용사들이 소환되었다.
[특히 그중 하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다.] [‘혼돈의 왕’을 일컬음인가?] [그렇다.]그들은 이미 서우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대략적으로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그딴 낡은 예언 속의 존재가 감히 왕의 행보를 막아서다니…….]누군가는 타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놈을 처리할 방법은 있나?] [한 가지 생각 중인 것은 있다.] [무엇이지?]크라토스의 대답에 누군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인간들을 이용하는 것이지.] [인간?]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안에 담겨 있는 끝없는 심연에, 크라토스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정신을 차리곤 대답을 이어갔다.
[왕의 추종자들이 인간들의 국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 그 녀석들을 이용한다면 꽤나 재미있는 일을 연출할 수 있을 듯하다.]정확한 계획은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이겠지?]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실패한다 해도, 적지 않은 타격은 줄 수 있을 터.]크라토스는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좋아. 원하는 바를 실행하도록.]누군가는 크라토스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크라토스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은 누군가는 점차 크기를 늘려가는 균열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쩌저적- 쩌적-
쉴 새 없이 커졌다.
이 정도의 균열이라면, 권속 수십 명은 넘어올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왕은 머리카락 한 올조차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것만 봐도 강림하는 마왕의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왕이시여.]누군가는 자신의 왕을 떠올렸다.
어느 날 갑자기 판데모니엄에 나타난, 미약한 존재.
너무도 약해, 지나가던 마수에게도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기 시작했다.
판데모니엄의 그 어떤 존재도 그만한 성장 속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는 지배자들도 그러했다.
고작 150년.
한 명의 지배자가 탄생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미약했던 존재가 판데모니엄의 모든 이의 머리 위에 서기까지, 150년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싸움과 전쟁, 피와 죽음이 난무하던 곳이 평정되었다.
판데모니엄이 탄생한 뒤, 지금껏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업적.
그것을 새로운 왕이 해냈다.
모든 존재가 고개를 숙여 왕을 경배했고, 경외했으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분의 앞길을 막지 마라.]단순한 지배자가 아닌, 진정한 왕.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분이 이 땅에 강림한다.
그전에 미리 길을 치워놓아야만 했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할 것이다.]그는 사라진 크라토스를 향해 말했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눈에 살기가 서렸다.
세상 전부를 찢어발길 것만 같은, 흉포한 살기였다.
웬만한 존재들은 그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멈출 정도.
[아무리 너라 해도 나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터이니.]쩌저저적- 쩌저적-
빠른 속도로 넓어지는 균열을 보며 속삭였다.
* * *
아침 해가 뜨고, 밖으로 나온 서우진이 가장 먼저 본 것은 김다혜였다.
그녀는 세계수 앞에 주저앉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컨디션은 어때?”
자연스럽게 다가간 서우진이 물었다.
스윽-
김다혜가 고개를 돌려 서우진을 바라봤다.
“좋음요.”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무리하긴 했지.’
병사들을 위해 사용한 스킬은, 서우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담겨 있었다.
김다혜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세계수의 생명력이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하루 만에 모두 회복될 순 없었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서우진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한 녀석.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녀석.
병사들이 죽을 때마다, 김다혜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았다.
최대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듯했지만, 서우진의 시선을 피할 순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무리한 것이겠지.’
생명을 존중하는 그녀의 마음이 기특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알았음요.”
김다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서우진은 그 대답을 믿지 않았다.
‘또 반복하겠지.’
그런 녀석이니까.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자, 아침 먹어야지.”
김다혜가 무리하지 않게 하려면, 자신이 더욱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은 속으로 그리 다짐하며, 김다혜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순백의 나무가 두 사람의 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