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30)
530화.
반 슬레인은 희열에 잠겼다.
이런 기분을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일까?
매시브 가디언에서 벗어난 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지금처럼 기분 좋은 싸움은 처음이었다.
마치 손과 발이 여러 개로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들어왔으면 좋겠단 생각과 동시에 누군가 들어왔고,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 그에 맞춰 스킬과 마법이 날아들었다.
마치 저들과 한 몸이 되어 싸우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좋구나!’
흥이 났다.
그러한 반 슬레인의 기분은 검에 그대로 드러났다.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예리함이 배가됐다.
그럴수록 크라토스의 비늘에 새겨지는 검흔의 수가 늘어났다.
서걱- 서거억-!
새하얗던 놈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전신을 뒤덮은 것이다.
[이 벌레 같은 것들이!]크라토스가 분노를 토해냈다.
본래라면 이 정도 상처쯤은 곧장 회복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프레이야가 쉴 새 없이 뿜어대는 신성력 때문이었다.
마기를 몰아내고 주변을 잠식한 신성력은 크라토스의 모든 능력을 감쇄시키고 있었다.
힘, 속도, 마기, 그리고 회복력까지.
손과 발을 묶인 채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거기에 놈이 상대해야 할 이들은 모두 초극의 경지에 도달했거나, 그에 근접한 자들이었다.
크라토스 혼자서는 모두를 상대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했다.
[대체 언제 오는 것이냐, 고르도란!]거대한 포효와도 같은 외침이 ‘팔로타인 라세’에 울려 퍼졌다.
분노를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자인 고르도란이 온다면, 이런 벌레들은 쉽사리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크라토스가 애타게 찾는 고르도란은 오지 못한다.
서우진의 손에 죽었으니까.
이제는 놈의 차례였다.
“크라토스, 지상 최강의 마수라 불리는 짐승이여.”
반 슬레인이 검을 들어, 놈을 겨누었다.
들끓는 마력이 신성력으로 인해 증폭되어 검으로 밀려들었다.
은색의 오러가 타오른다.
크라토스가 만들어낸 얼어붙은 대지가 끓어오를 정도로 뜨거운 열기가 퍼져 나갔다.
“그간 자네가 저지른 패악질을 보았다네.”
여섯 번째 마왕의 권속으로서 수많은 인명을 해했다.
그것에 대한 건 당시의 기록에 생생하게 적혀 있었다.
끔찍하고, 토악질 나오며, 분노를 토해낼 수밖에 없는 악행들.
“이제야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겠구나.”
반 슬레인이 담담히 말했다.
[누가 나를 벌할 수 있단 말이더냐? 그것이 가능한 건 오직 한 분뿐이다.]크라토스의 살기와 광기로 물든 눈동자가 반 슬레인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건 너 따위가 아니지.]이 세계에서만 수백 년을 살아왔다.
판데모니엄의 생을 합하면, 그보다 몇 배는 더 길었고.
그 기나긴 삶의 끝을 이곳에서 맞이할 순 없었다.
“그래, 자네 말도 틀리지 않네.”
반 슬레인은 천천히 검을 들어올렸다.
담겨 있는 마력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그보다 많은 마력을 다룰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검의(劍意)는 다르다.
오직 두 사람.
서우진과 프레이야만이 그 광대한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내 팔을 곧게 뻗은 채, 하늘을 향해 검을 들어올린 반 슬레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를 징치하는 건 내가 아니야.”
고개를 젓는다.
“그 더러운 입과 손에 희생된 이들이지.”
검이 떨어져 내렸다.
무겁게.
아주 무겁게.
크라토스가 지금껏 저질러 왔던 악행의 업(業)이 담긴 듯, 한없이 무겁고 진중한 검이었다.
[웃기지 마라!]크라토스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토해냈다.
[나는 왕을 기다리는 자! 네 까짓 놈의 날붙이에 당할 내가 아니다!]마기가 폭발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듯, 그 힘은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크으으윽!”
놈을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반 슬레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검은 무진장(無盡藏)의 힘을 담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육체를 통제할 마력이 부족했다.
마기에 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단 뜻이었다.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절대 발을 떼지 않았음에도, 미끄러지듯 육체가 점점 멀어졌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가면 될 터인데!’
반 슬레인이 이를 앙다물었다.
비릿한 혈향이 풍겨져 왔다.
너무 강하게 입을 다문 탓에, 잇몸에서 피가 새어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 일검.
그것만 휘두른다면, 놈의 벨 수 있었다.
‘크으으으으!’
속으로 신음하며, 고통마저도 원동력으로 삼았다.
아주 조금, 놈의 마기에 저항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였다.
[죽어라. 그리하여 왕의 발에 밟히는 영광을 누리거라!]상상을 초월하는 마기는 차가운 북풍(北風)이 되어, 반 슬레인의 피부를 찢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놈을 벨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온갖 스킬들을 사용했다.
프레이야 역시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그런데도 반 슬레인을 밀어내는 힘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발악하듯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다.
마치 반 슬레인만 처리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 같았다.
[네놈을 산채로 얼려…….]광기로 젖어 있던 크라토스의 음성이 끊겼다.
‘음?’
반 슬레인의 시선이 놈을 향했다.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다섯 개에 달하는 놈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 안 된다!]두려움으로 가득한 외침이 터져 나온다.
동시에 쉴 새 없이 압박하던 마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처음부터 그딴 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지금!’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틈을 놓쳐선 안 된다는 것!
반 슬레인은 망설이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쿠웅-!
강력한 진각에 대지가 진동했다.
그리고 끝없이 무거워지던 검이, 완전히 떨어져 내렸다.
—!!!!!
소리는 없었다.
뭔가 베이거나, 부러지는 소음 따위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반 슬레인은 확신했다.
손끝에 감각이 느껴졌으니까.
일 검에 다섯 번의 참격.
주르륵-
크라토스의 다섯 머리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린다.
이미 붉게 물든 육신을 다시 한번 적실 정도로 많은 양의 출혈이었다.
[내, 내가… 이런 곳에서?]멍하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만 아니었다면.]크라토스의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
그건 목을 자른 반 슬레인이 있는 쪽이 아니었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이미 안배는 모두 끝났으니.]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누구를 향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에 신경쓸 정신은 없었다.
스으으으윽-
다섯 개의 머리가 동시에 흘러내린다.
쿠우웅-!
그리고 땅에 떨어졌다.
단번에 모든 머리가 잘린 놈은 더는 회복하지 못했다.
프레이야의 신성력 때문이 아닌,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이긴 건가?”
반 슬레인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은 뒤쪽에서 들려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서우진이었다.
본진은 다시 한번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귀한 이들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사제들은 다시 한번 신성력을 동원해 그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자네였군.”
가장 먼저 몸이 회복된 반 슬레인이 말했다.
질문의 의도는 명확했다.
밀어붙이던 크라토스가 갑자기 멈칫한 것.
그리고 마기가 사라진 것.
그 모든 건 서우진 때문이었다.
“뭐, 저는 딱히 한 게 없는데요.”
서우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서우진이 한 일이라곤, 그저 얼굴을 드러낸 것뿐이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크라토스는 패닉에 빠져, 마기를 흐트러뜨렸다.
서우진을 향한 두려움?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백시우를 비롯한 사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는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유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르도란.
그 강력한 권속이 서우진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서우진만 홀로, 그것도 멀쩡한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게 뜻하는 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바로 고르도란의 죽음.
크라토스가 전혀 상정하지 않았던 상황이 벌어지자, 빈틈이 생기고 만 것이었다.
반 슬레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었고.
결국 서우진이 한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얼굴만 내보인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가?”
반 슬레인이 고개를 주억였다.
서우진이 겸양을 떨고 있긴 했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만약 서우진이 아니었다면, 이 싸움은 패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고맙네.”
“…별말씀을요.”
서우진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도움을 받은 걸로 치면, 자신이 몇 배는 더 많이 받지 않았나?
고작 이런 일 하나로 감사인사를 받기엔, 서우진의 얼굴가죽이 그리 두껍지 않았다.
“아, 아무튼. 놈이 마지막에 한 말은 무슨 뜻일까요?”
재빨리 대화의 주제를 돌렸다.
더는 반 슬레인에게 낯뜨거운 감사를 듣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흐음.”
반 슬레인이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젊음을 되찾은 뒤에는 길게 자라 있던 수염도 모두 사라졌지만, 일종의 버릇이었다.
“분명 안배라고 했었지?”
그렇다.
안배는 모두 끝났다고 했다.
죽어가는 와중에 내뱉은 말이었으니, 분명 적지 않은 의미가 담겨 있을 터.
하지만 짐작가는 게 없었다.
“혹시 마왕이 벌써 강림한 건 아니겠죠?”
일단 떠오르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그건 아닐 걸세.”
반 슬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마왕이 강림했다면, 일단 우리가 이 안에서 편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불가능했을 테니.”
마왕은 홀로 건너오지 않는다.
기록에 의하면, 수많은 군세와 권속을 이끌고 차원의 벽을 넘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이 생기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절대 모를 수 없는 물건도 함께 오니까.”
반 슬레인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마왕성.”
이름 그대로였다.
마왕은 자신의 격에 맞는 성과 함께 강림한다.
지금껏 출몰했던 마왕성 중 가장 작은 게 웬만한 도시보다 컸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심지어 이번에 강림하는 마왕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지닌 존재로 예상되지 않던가?
분명 눈에 띄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다른 뜻이라는 건데…….”
짐작이 가질 않는다.
“일단 한번 알아봐야겠군요.”
“무리는 하지 말게. 지금은 큰 싸움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걸세.”
“알겠습니다.”
일단은 눈앞에 둔 싸움부터 제대로 끝마쳐야 한다.
그 이후에는 대신 정보를 모아줄 조력자가 있었으니, 쉽게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쉬십시오. 움직이는 건 이틀 후에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부상자가 너무 많았다.
그들이 회복하기 전에는 움직일 수 없었다.
“면목이 없군.”
반 슬레인이 고개를 숙였고, 서우진은 웃었다.
“그런 말씀은 마시고요. 저는 그럼 가보겠습니다. 동료들 상태도 좀 확인해야 할 것 같으니.”
서우진은 반 슬레인을 뒤로하고, 천막을 나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