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35)
535화.
베고, 베고, 또 벤다.
무려 10만, 혹은 그 이상.
뇌리에 박힌 균열의 모양을 따라, 모든 힘을 때려 박아 그것들을 베어냈다.
하나를 파괴할 때마다 느껴지는 거대한 반탄력에 전신이 뒤흔들렸다.
‘버틴다. 버텨야 돼.’
당장에라도 육체가 붕괴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춘다면 그땐 정말로 죽을 지도 모르니까.
갈 곳을 잃은 이 거대한 힘은 반드시 스스로를 공격할 것이다.
서우진은 점차 혼미해지는 의식을 강제적으로 붙든 채, 계속해서 ‘카 라니엘’을 내리그었다.
하지만…….
“쿨럭!”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눈과 귀, 코에서도 출혈이 시작됐다.
육체에 가해지는 충격을 더는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아…….’
서우진이 붉게 물든 시선으로 남은 균열의 수를 세어보았다.
고작 셋.
‘……빌어먹을.’
10만 개에 달하는 균열을 모조리 파괴했건만, 세 개가 남고 말았다.
‘X발, 세 개라니.’
허탈했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여 시도한 일이었건만, 결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구나.’
점차 감겨오는 시야를 느끼며 서우진은 자책했다.
북방, 토벌, 얼음 벌레, 병사.
그날 했던 자신의 잘못과는 스케일의 차이만 있을 뿐, 다를 게 없었다.
혼자만의 아집으로, 이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트리고 말았으니까.
‘방법이 없나?’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수 있다면, 미처 끊어내지 못한 균열도 마저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순간 서우진은 ‘마테아의 광명’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걸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상황에 성물의 기운까지 섞인다면, 재앙이야.’
죽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한 문제는…….
‘다른 사람들도 죽어.’
저들의 힘으로는 그 폭발의 여파를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몰살(沒殺).
서우진은 그 끔찍한 결과를 결코 바라지 않았다.
‘물러나자.’
이번 일은 완벽히 실패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지금 당장 병력을 물리고, ‘팔로타인 라세’를 빠져나가야…….
쩌엉-!
“크으윽!”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누군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반 슬레인?’
서우진은 그 음성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이런, 젠장.’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이 쓰러지는 것을 본 이들이 남은 균열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든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자신에게 힘을 몰아주며 약해진 그들로선, 균열을 파괴할 여력이 없었으니까.
서우진의 예상대로 그들은 속절없이 튕겨져 나갔다.
단 한 명, 프레이야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녀는 놀랍게도 하나의 균열을 파괴했다.
신성력이라는 특수한 힘 덕분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분명 한계가 존재했다.
남아 있는 세 개의 균열 중, 단 하나만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그만.’
저건 못 없앤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정말 이곳에서 모두 몰살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때,
쩌저적-!
균열의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속도였다.
마치 끊어진 거미줄을 복구하듯, 순식간에 그 수가 불어났다.
두 개에서 네 개로, 열여섯 개로, 256개로.
눈 깜짝할 새에 균열은 이전의 형태를 완전히 복구하고는, 그 이상으로 거대해졌다.
끝이다.
차원 간 통로를 파괴하는 건 수포로 돌아갔고, 이제 놈이 넘어온다.
안 그래도 압도적이던 마기가, 폭발하듯 그 크기를 불려 나갔다.
서우진조차 가슴이 갑갑해지고, 숨이 막힐 정도로.
‘도망쳐!’
간절함을 담아, 감겨오던 눈을 부릅떴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의 뜻을 이해해 주길 바랐다.
그런 서우진의 뜻이 전해진 것일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하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사람, 바로 김다혜였다.
심지어 녀석은 입에서 피화살을 뿜으며 뒤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김다혜가 서우진의 눈빛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서우진의 상태를 확인할 여력도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서우진은 김다혜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쳐라! 지금 당장!’
서우진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본 김다혜가 표정을 굳혔다.
알아들은 것일까?
부디 그러길 바랐다.
* * *
김다혜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균열은 폭발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있었고, 동료들은 쓰러졌으며, 서우진은 죽음을 눈앞에 둔 것만 같았다.
이런 혼잡한 상황에서, 그녀가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김다혜라 할지라도,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함요?’
모르겠다.
줄어들었던 균열은 본래의 크기 이상으로 커졌고, 자신들을 이끌어줘야 할 서우진은…….
문득 땅에 쓰러진 그를 바라본 김다혜가 얼굴을 굳혔다.
피눈물을 흘리며, 붉게 물든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듯한 눈치였다.
하지만 도무지 눈치를 챌 수가 없었다.
애초에 그것이 가능했다면, 그토록 고립된 삶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뭐임? 대체 뭐임요?’
그래도 뜻을 읽기 위해 애를 썼다.
전혀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그때, 서우진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오… 아니. 도?’
몇 번의 오류 끝에, 세 글자를 알아내는 것에 성공했다.
‘도망… 가?’
김다혜가 서우진의 입술을 읽었을 때였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끝도 없이 늘어나던 균열이 하나의 커다란 줄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압도적인 ‘힘’이 느껴졌다.
그것은 반 슬레인이나 프레이야, 심지어는 서우진조차도 아득히 넘어설 정도의 크기였다.
김다혜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왜 서우진이 도망을 가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마왕.’
그토록 막기 위해 애를 썼던, 마왕의 강림이 시작되었다.
김다혜는 다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지금의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반 병사들조차도, 이 현상이 심상찮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모두 물러나라!”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젤론이 병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천여 명의 병력이 균열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다.
“무, 물러서게!”
피를 토하던 반 슬레인의 말에, 균열을 향해 공격을 퍼붓던 이들도 물러났다.
계수지가 뼈가 부러진 팔로 서우진을 감싸 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행동은 더할 나위 없이 빨랐지만, 균열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훨씬 더 빨랐다.
화아아아아악-!
이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압도적이다, 거대하다 따위의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절대적인 존재가, 이 세계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김다혜는 몸을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다혜야!”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이지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퍼뜩- 정신을 차리곤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김다혜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늦었음요.’
뒤에서 짙은 살기로 똘똘 뭉친, 허허로운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은 피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용사들과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들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병사들은?
저 가공할 힘을 담긴 무언가를 피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저것을 피하려면 진즉 움직였어야 했다.
이제 와서 달려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거기에 서우진.
계수지가 안고 있었지만, 그 덕에 움직이는 속도가 떨어졌다.
병사들보다 낫긴 해도, 그 두 사람 역시 완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건 안 됨요.’
서우진과 계수지는 살아야 한다.
병사들 역시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막아야 해.’
다른 이들에 비해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자신.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고작 마수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자신.
그리고 결정적으로.
‘‘수호’가 있음요.’
김다혜는 서우진이 직접 선물해 준 목걸이를 손으로 매만졌다.
한 달에 한 번, 주변의 공간을 단절시킬 수 있는 마법이 새겨져 있는 물건이었다.
분명 서우진은 마왕쯤 되는 놈이 아니라면,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경계를 만들어낸다고 했었다.
‘마왕…….’
확신할 순 없었지만, 지금 날아오고 있는 무언가는 마왕일 확률이 높았다.
그것은 ‘수호’로도 완벽히 막아낼 수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김다혜는 망설이지 않았다.
‘살릴 수만 있으면, 상관 없음요.’
서우진, 계수지, 병사들.
그들의 목숨이 지닌 무게는 모두 동일하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저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이득이었다.
“자, 잠깐! 다혜야! 안 오고 뭐해!”
스스로 자신의 친구라고 우기는 이지아가 다시 한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다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이지아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동그랗게 뜬 눈도 보였다.
모두가 경악을 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에 새기듯 김다혜는 그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모두 확인했다.
그사이 뭔가를 눈치챈 구동환이 몸을 돌려 달려오기 시작했다.
“허튼짓할 생각하지 마!”
노란색의 원피스를 입고, 흉한 자세로 달려오는 그의 모습이 꽤나 우스웠다.
그의 뒤로 정신을 잃은 서우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김다혜는 얼굴의 근육을 움직였다.
지금껏 다른 사람에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던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미소(微笑).
그 누구보다 밝고, 천진하며, 순수한 웃음이었다.
“괜찮음요.”
텅텅 비어버린 마력을 바닥까지 끌어 모으며, 목에 걸려 있는 ‘수호’를 발동시켰다.
“김다혜!”
“너 무슨 짓이야!”
동료들이 달려온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저들의 힘으로는 이 경계를 넘어설 수가 없었으니까.
콰아아아앙-!
구동환의 ‘진혼’이 경계를 때렸지만, 흠집조차 가질 않았다.
이지아의 주먹이, 진태성의 바람이, 유홍설의 쌍검이, 김우람의 창이, 강병규의 단검이, 박민성의 물약이.
쉴 새 없이 경계를 두드려 댔지만, 이건 결코 뚫리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서우진이 그렇게 얘기했으니까.
김다혜는 여전히 얼굴에 가득 걸려있는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고마웠음요.”
곁에 있어줘서.
함께 행동해 줘서.
그리고 친하게 지내주어서.
이제는 자신이 그에 대한 보답을 할 차례였다.
몸을 돌리자, 칠흑 같은 어둠이 시야를 가득 채운 채 몰려들고 있었다.
‘내가 죽어도.’
절대 이 경계를 넘어설 순 없음요.
김다혜의 미소가 짙어졌다.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진짜 미소였다.
그리고…….
김다혜의 모습이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