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36)
536화.
지금껏 많은 사람이 죽었다.
평범한 백성이나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기사들마저도 상당한 피해를 냈다.
심지어는 용사들마저도 몇 명이나 희생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처럼 서우진의 동료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적은 없었다.
김다혜.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없고, 친화력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으며, 언제나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
이제 고작 이십대 초반의 어린 나이의 김다혜가…….
‘죽었다.’
믿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코앞에서, 도저히 뚫을 수 없는 경계를 세운 뒤.
마왕이란 놈의 공격에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포 하나 남겨두지 않고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도 전혀 후회는 없다는 듯 지금껏 보지 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강하게 심장을 옥죄어왔다.
“…자리를 피해야 한다.”
프레이야가 말했다.
하지만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동료를 눈앞에서 잃었는데,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비통함은 이해하나,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느니라.”
그녀의 말은 옳았다.
김다혜가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벌어준 시간이었다.
그것을 망연자실한 상태로, 내다버릴 순 없었다.
그건 그야말로 녀석의 죽음을 아무런 의미도 없게 만드는 짓이었으니까.
안다.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주 작은 유해라도.
하다못해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수습을 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자리를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정신 차리거라! 그 아이의 희생을 시궁창에 가져다 박을 생각이더냐!”
결국 프레이야가 호통을 쳤다.
김다혜는 이미 목숨을 잃었음에도, 녀석이 만들어낸 경계는 여전히 굳건했다.
저 암흑이 넘어오지 못하는 것만 봐도 확실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존재할 터.
시간을 지체한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최소한 서우진이 몸을 회복하고,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까지는 떨어져야만 했다.
“…가요.”
계수지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짓이겨진 그녀의 입술에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저 한 마디의 말을 하기 위해, 계수지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인내하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움직여야 해요. 다혜의 수습은, 훗날,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 하면 되니까.”
세포 하나까지 모조리 소멸해 버렸다.
유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설령 있다 한들, 시간이 지나면 유실될 확률이 너무도 컸다.
하지만 계수지의 말대로, 지금은 후퇴할 때였다.
서우진이 정신을 잃은 지금은 그녀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그렇게 뜻을 모았었으니까.
멍하니 경계의 너머를 바라보고 있던 이지아가 눈물을 쏟아내며 몸을 돌렸다.
몸이 바들바들 떠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나마 김다혜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었으니, 가장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
누구보다 빠르게 결정했다.
“이제 가요.”
이지아의 말에 모두 몸을 돌렸다.
미련이 남는지, 여전히 몇 번씩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결국 모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세계수로 가자꾸나. 그곳이라면 놈도 쉬이 뚫지는 못할 터이니.”
목적지는 정해져 있었다.
세계수.
‘팔로타인 라세’를 죽음의 숲으로 탈바꿈시킨 마기조차도 막아낸 그 신성한 나무라면, 어느 정도의 시간은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무겁고, 지친 발걸음으로 후퇴를 시작했다.
그렇게…….
김다혜는 죽었다.
* * *
‘오랜만이군.’
눈을 뜬 서우진이 가장 먼저 본 것은, 현실이 아닌 다른 공간이었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것은, 검은색이 아닌 회색으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회색이라…….’
서우진이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권속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던 ‘회색의 왕’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뭐, 그딴 건 됐고.’
색이야 무슨 상관이랴?
어쨌든 이 공간에서 눈을 떴다는 건 살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
‘다혜가 잘해주었나 보다.’
정신을 잃기 직전, 녀석에게 필사적으로 뜻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공감능력이 부족한 김다혜가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했건만, 다행히도 제때 몸을 피한 모양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또다시 반복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누군가가 희생되었다면?
서우진은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병사들의 죽음도 안타까운 마당에, 용사나 초극의 경지에 오른 존재들, 심지어 동료들까지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하면…….
‘섬뜩해지는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거지?’
불안과 불길함을 넘어, 슬픔과 고통까지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마치 가까운 누군가를 잃은 것처럼 말이다.
잠시 머리를 비우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죄책감 때문인가?’
그토록 자신하던 일이 또 실패했다는 것에 대한 책임.
그로 인한 감정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서우진은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애써 울컥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없나?’
공간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한눈에 모든 곳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공간, 그 자체만이 오롯이 존재할 뿐.
“흐음.”
심상의 세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체 여긴 뭐야?”
답답함에 짜증을 담은 음성을 내뱉었을 때였다.
[‘혼돈의 왕’이여.]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흠칫-
서우진이 몸을 움츠렸다.
‘무슨 목소리가…….’
세월의 깊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새겨져 있었다.
1천 년? 2천 년?
아니, 그딴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세계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기라도 한 것처럼, 끔찍할 정도로 권태로웠다.
“…누구냐?”
하지만 경계심은 들지 않았다.
목소리에게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고, 이 회색의 공간은 실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 없는 자. 잇는 자. 존재하는 자. 그리고 기록하는 자이다.]확실히 오래 살아온 것이 맞는지, 별명이 많기도 했다.
“이름은 됐고. 대체 여기는 뭐하는 곳이지? 왜 내가 이곳에 있는 거고?”
서우진이 묻자, 음성은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그대에게 기록의 일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혼돈의 왕’이여.]“기록?”
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기록하는 자라 하더니, 자기가 쓴 걸 보여주겠다는 말인가?
[그대가 왜 용사임에도 ‘마왕’의 자격을 얻었는지. 판데모니엄의 지배자는 어떠한 존재인지. 그리고 ‘이계의 마왕’들이란 무엇인지.]“그걸 가르쳐 주겠다고?”
서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껏 궁금해 왔던 것들이지 않던가.
그런데, 그런 걸 지금 이 타이밍에, 이러한 곳에서, 정체도 모를 존재에게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하다.]목소리는 여전히 끔찍할 정도로 짙은 권태감이 담긴 분위기로 긍정했다.
“왜지? 왜 지금이지?”
서우진이 물었다.
궁금했던 걸 가르쳐 준다니 고맙긴 했다.
하지만 지금껏 가만있다, 왜 이제 와서 말해준단 말인가.
당연히 의심부터 들 수밖에 없었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뭐, 그렇겠지.
그놈의 때, 때, 때.
대체 몇 번이나 저런 말을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네가 말하는 때라는 게 뭔데? 마왕이 넘어왔기 때문인가?”
서우진이 정신을 잃기 전, 균열은 폭발적으로 그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반드시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의 벽은 완전히 무너지고, 그 빌어먹을 마왕이 넘어올 게 분명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이미 넘어온 뒤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방금 이야기한 것들 뿐. 누설이 더는 불가하다.]직접 알아보라는 뜻인가?
서우진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멋대로 벗어날 수도 없으니.’
깨어날 때까지는 저 정체모를 목소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사실여부는 나중에 따져 봐도 되겠지.
서우진은 목소리의 말을 일단 신뢰하지 않고, 걸러듣기로 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대는 내가 기록한 것의 일부를 보았으니.]고개를 갸웃했다.
기록이라니?
그렇게 불릴 만한 건…….
“아, ‘이계 마왕록’?”
그것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무얼 짐작하고 있을 거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본디 그대는 용사가 아닌, 판데모니엄의 지배자로 소환이 될 예정이었다.]“…뭐?”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가 용사가 아닌, 마왕이 될 운명이었다고?”
[그러하다.]서우진의 격앙된 질문에도, 목소리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대답했다.
“잠깐, 잠깐. 그럼 지금 넘어오는 마왕도?”
설마 자신과 같은 지구인이라는 말인가?
이전에 ‘이계 마왕록’에서 본 적이 있긴 했다.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행한 일의 결과까지.
그땐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확인만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자신이 그들 중 하나가 될 뻔했다니?
[허나 내가 인과(因果)를 비틀어, 삼천세계(三千世界)를 거대한 시스템에 틈을 만들어내었다.]“네가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는 뜻인가?”
[그러하다.]뭐라고 해야 할까?
욕을 할 순 없었다.
다른 세계를 침공하여 학살을 저지르는 대신, 동료들을 만나 지키는 쪽에 설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감사를 표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간 서우진이 감당했던 일이 너무도 컸다.
[판데모니엄의 지배자는, 정체된 세계를 삭제하는 자. 그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들이 정화한 세계는 그보다도 많다.]갑자기 훅- 들어오는 말에, 서우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체된 세계? 정화?’
그 말은 곧, 지금 이 세계도 잘못되어 있다는 뜻이고,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마왕을 보낸다는 것인 듯했다.
여전히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용사는 신위(神位)에 반하는 자. 곧, 시스템을 부정하는 존재들에 의해 탄생되는 이들이다.]목소리는 서우진의 혼란을 배려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는 그 사이에서 탄생한 이레귤러. 즉, 시스템을 벗어난 유일한 존재이다.]“잠깐, 잠깐. 천천히 좀…….”
서우진이 손을 들어 목소리를 멈춰보려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대에게 한계는 없다. 시스템이 정한 규칙은 그대에겐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으니…….]목소리는 조금 달라진 감정을 담아 강하게 말했다.
[이후에 벌어질 육계(六界)의 미래는 그대의 손에 달려 있다. 하니 ‘마왕’이자 ‘용사’인 그대여.]회색의 공간이 차츰 옅어지기 시작했다.
서우진은 더 많은 설명을 듣기 위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한 발 빨랐다.
[부디 이 세계를 구하라. 그리하여 오만한 신위의 존재들에게, 필멸자들의 가치를 증명하라. 그것이 그대의 사명이니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