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37)
537화.
사명이라…….
서우진의 표정이 비틀린다.
‘누구 맘대로?’
자신에게 그러한 일을 맡긴단 말인가.
신이든, 악마든, 아니면 또 다른 어떠한 존재이든.
하필이면 자신에게 그딴 일을 맡긴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걸 또 외면할 수 없는 스스로가 짜증났다.
화가 난다고 거부한다는 건, 마왕에게 대항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죽겠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럴 순 없지.’
지금껏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데, 기분이 나쁘다고 죽음을 택할 순 없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서우진의 행동이, 저딴 목소리의 의도를 그대로 따른다고는 보장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서우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목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치 더는 듣지 않겠다는 듯이 서둘러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서우진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거대한 회색의 공간.
그 안을 홀로 남아 있던 서우진은, 이내 자신의 육체가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슬슬 깨어나는 중인가 보군.”
본능적으로 자신의 의식이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목소리는 일단 무시하자.’
사명이니, 육계니, 필멸자니.
도통 알 수 없는 말을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서우진이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마왕을 막고, 세계를 구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스스로를 구원해야만 할 테고.
‘할 일이 많아.’
정신을 찾으면, 곧장 다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균열은 결국 파괴하지 못했다.
그나마 프레이야가 나서며, 남아 있던 것들 중 하나를 파괴한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다들 잘 피했겠지?’
문득 밀려오는 불안감에 서우진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얼른 일어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상황을 파악해 보고 싶었다.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큰일은 벌어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었으니까.
서우진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의식을 깨우기 위해 집중했다.
몸이 옅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회색의 공간이 무너져 내리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서우진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 * *
“지금 당장 빠져나가야 합니다.”
칼라인이었다.
그는 두려움이 잔뜩 질린 채, 후퇴를 주장하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힘과 신분을 지닌 이들이 다수였음에도, 그 태도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칼라인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도망을 칠 순 없었다.
정말로 마왕이 강림한 것인지 확실치가 않았고, 이대로 물러난다고 해서 안전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할 수도 있단 얘기였다.
“세계수는 어떻소?”
반 슬레인이 칼라인을 외면하며 물었다.
“…그리 좋지는 않아요.”
주변을 살펴보고 온 계수지가 무감정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다혜가 죽은 이후, 그녀는 마치 커다란 무언가를 잃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용사, 특히 서우진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설마 김다혜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과 자책, 그리고 슬픔과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것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써 억누르고 있었지만, 오히려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이곳도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하겠군.”
세계수의 힘은 대단했다.
지금껏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생존해 왔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젠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균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며 급격히 상승한 마기가 너무도 빠르게 밀려들고 있는 탓이었다.
세계수의 넘치는 생명력으로도 그 마기를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때다 싶어 칼라인이 다시 끼어들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계획은 애초에 성공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우리 브로바이슨은 처음부터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우리 말이 옳았…….”
“지금 잘잘못을 따져서 무얼하겠다는 게지?”
지금껏 눈을 감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프레이야가 무거운 음성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책임을 질 사람이라도 찾아서 징치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 계획에 찬동한 자들을 모두 전범으로 몰아세우고 싶은 게냐?”
프레이야의 서늘한 눈빛이 칼라인을 향했다.
움찔-
그 안에 담겨 있는 막대한 힘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런 건 아니고…….”
결국 꼬리를 내리며 입을 다물 수 밖에.
프레이야는 그런 놈을 잠시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일단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결정은 해야겠군. 이곳에서 저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릴지, 아니면 곧장 이 저주받은 숲을 벗어날지.”
그녀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을 감고 세계수의 줄기 아래에서 누워 있는 사람.
서우진을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움직이고 싶지만, 저 아이의 상태가 마음에 걸립니다.”
반 슬레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육체가 크게 상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으나, 마력회로를 비롯한 내부가…….”
지금껏 살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서우진의 몸속은 그야말로 곤죽이 되었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무려 10만에 달하는 균열과 충돌한 대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사제들에 의하면, 그래도 자가 회복력이 빨라 죽지는 않을 것 같더군.”
놀라울 정도의 회복 능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를 치유하는 중이었다.
그 상세가 너무도 심각해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
이대로 둔다면 한 달 안에는 완벽히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문제는 한 달이나 버틸 수 없다는 것일 테고.’
프레이야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곳에서 마냥 세계수의 보호를 받으며 머물 순 없다.
저 신성한 나무가 쇠약해져 가는 속도를 보면, 기껏해야 일주일이나 버틸까?
어쩌면 그보다도 짧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기의 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짙어지고 있었으니까.
만약 이 마기의 주인이 직접 이곳으로 발걸음한다면…….
‘그 순간이 끝이겠지.’
그걸 생각한다면 칼라인의 말대로 지금 움직여야 한다.
그나마 지금이 가장 마기의 세가 약할 때였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군.’
가능하다면 서우진이 깨어날 때까지는 이곳에서 버티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었으니, 떠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숲을 벗어나 본대와 합류하는…….”
거기까지 얘기했을 때였다.
“으음…….”
작은, 아주 작은 신음이 들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미약한 소리였다.
하지만 여기에 모여 있는 이들은 평범함과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다.
가장 낮은 경지의 젤론조차도 상급에 달하는 기사였으니까.
모두의 고개가 한 번에 홱- 하고 돌아갔다.
방향은 같았다.
세계수가 있는 쪽.
정확히는 그 아래에 누워 있는 서우진을 향한 것이었다.
“우진 씨!”
가장 먼저 계수지가 반응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가 곧장 그곳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 장면을 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
“야, 인마! 괜찮냐? 살아 있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서우진을 향해 달려갔다.
“으으음…….”
그들이 도착할 때 쯤, 서우진의 눈꺼풀이 조금씩 움직였다.
가장 먼저 곁으로 다가온 계수지가 마른침을 살피며 서우진의 상태를 살폈다.
‘아직 회복은 안 됐어.’
여전히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그런데도 의식을 차리고 있는 중이었다.
‘세계수 덕분인가?’
서우진의 회복력은 대단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빨리 의식을 되찾을 순 없었다.
아무래도 세계수의 거대한 생명력이 도움을 준 모양이었다.
계수지는 손을 들어 동료들의 소란을 진정시킨 뒤, 조심스럽게 서우진의 머리를 받쳐 올렸다.
최대한 충격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는 한편, 조금이라도 빨리 완벽하게 정신을 차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괜찮아요?”
말을 걸었다.
파르르- 떨려오던 서우진의 눈꺼풀이 서서히 열렸다.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듯,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여긴?”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세계수 근처예요.”
계수지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것만으로도 현재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느, 늦지 않았군요.”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왕이, 강림, 한 겁니까?”
그러곤 묻는다.
계수지는 고개를 저었다.
부정의 뜻은 아니었다.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에 균열이 하나로 합쳐지고, 뭔가가 그곳을 통해 넘어오긴 했는데…….”
그 존재가 마왕인지, 아니면 새로운 권속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권속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강한 힘이 있었으니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전력이라면, 권속 몇쯤은 순식간에 때려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대항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저 밀려오는 흑색의 마기조차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존재가 단순한 권속이었다면, 이 전쟁은 아예 승산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왕은 그보다도 더 강하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니 마왕이어야만 했다.
“그렇, 군요…….”
서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마왕, 일 겁니다.”
정신을 잃기 전 느꼈던 그 끔찍한 존재감은 분명, 백시우와 같은 왕의 격이 있었다.
물론, 그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도 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한 격을 지닌 존재가 마왕이 아니라면 말이 되질 않는다.
“결국, 막지 못했군요.”
서우진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 거대한 적을 막기 위해 무리했건만, 결국에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앞으로 놈과 어찌 싸워야 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제가 어떻게든 할, 테니.”
마왕은 강하다.
하지만 자신은 성장할 수 있다.
놈을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레벨을 올리면 된다.
그사이 많은 이가 희생되겠지만, 그 시간만 버텨내면 된다.
서우진은 동료들의 불안을 지워내기 위해, 작은 미소까지 지었다.
자신이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인다면, 저들은 더욱 불안해할 것이다.
결국 사기의 저하까지 발생할 수 있으니, 힘들더라도 웃어야만 했다.
그리곤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무리한 계획에도 반대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와 준 것에 대한 감사를 담…….
‘응?’
눈동자가 흔들린다.
‘하나, 둘, 셋…….’
수가 부족하다.
보이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김다혜.’
언제나 이지아가 곁에 붙어서 데리고 다니던, 그 순하고 착한 녀석이 없다.
서우진이 계수지를 올려다보았다.
“다혜가, 보이지 않는… 어디 갔습, 니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굳어져 있던 표정이, 점차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코 듣고 싶지 않았던 대답이 들려왔다.
“죽었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