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38)
538화.
서우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아직 정신이 온전치 않아, 청력에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하지만 이내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계수지와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동료들의 표정이 모두 같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울음을 참는 듯한 얼굴.
아니, 이지아는 이미 울고 있었다.
억지로 참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그 말은 곧…….
‘다혜가 죽어?’
왜?
그 엉뚱한 녀석이 대체 왜 죽는단 말인가?
서우진이 멍하니 시선을 돌려 계수지의 눈을 마주쳤다.
‘아!’
슬픔으로 가득하다.
자신이 잘못 듣거나, 질 나쁜 농담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정말로.
녀석이 죽은 것이다.
서우진이 떨리는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거, 거짓말이죠?”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계수지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진 씨가 다혜에게 줬던 선물. ‘수호’를 사용했어요.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요. 대신 스스로를 희생했…….”
계수지가 말끝을 흐렸다.
더 입을 열었다간, 오열을 터트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멍청한.’
서우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김다혜에게 ‘수호’를 선물한 건, 그렇게 사용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불리한 전장에서 병사들을 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그걸 왜 그딴 식으로 사용한단 말인가.
으드득-
서우진이 이를 갈았다.
어찌나 세게 갈았는지, 어금니가 부러지며 피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료.
그중에도 생판 모르는 사람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던 김다혜가 죽었으니까.
그 녀석이 겪었을 고통은, 이딴 통증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을 테니까.
감겨 있는 서우진의 눈꺼풀 사이로, 결국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왔다.
‘미안하다.’
이런 무모한 계획에 참가시켜서.
‘수호’라는 쓸데없는 선물을 손에 쥐여 주어서.
그리고…….
‘고향으로 데리고 가지 못해줘서.’
너무도 미안하다.
서우진은 그렇게 소리 없이 울었다.
* * *
“…길었군.”
아주 먼 옛날, 신지환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던 존재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상쾌하다.
폐부를 가득 채우는 마기가 온몸의 활력을 북돋아주었다.
‘몇 년쯤 걸렸지?’
숲의 한가운데에 서서 가만히 자신이 지내온 세월을 손꼽아 보았다.
‘일단 200년은 훌쩍 지난 것 같은데.’
확실히는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도 치열하고, 참혹한 나날들을 살아온 덕분이었다.
대체 몇 번의 사선을 넘었을까?
백 번? 천 번?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것을 생각해 보면, 최소한 수만 번은 죽음의 위기를 넘어왔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오히려 자신이 죽음을 선고하는 존재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 길었어.”
갑자기 알 수 없는 세계로 끌려가, 살기 위해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 것이.
그 과정에서 많은 부하를 거느릴 수 있었고, 결국에는 녀석들과 함께 그 세계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었지만, 마치 게임과도 같은 시스템 덕분에 결국엔 도달했다.
“판데모니엄.”
왕이라 부르는 자들과 온갖 괴물들이 득실대던 곳.
신지환이라 불리던 이는, 그곳의 유일무이한 지배자였다.
“흐음.”
잠시 상쾌한 공기를 만끽하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판데모니엄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었던 나무와 풀이 보였다.
마기에 영향을 받아 모조리 죽어버린 뒤였지만, 그딴 건 상관없었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을 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했다.
“이 세계만 지우면 마침내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처음 판데모니엄에 소환되었을 때, 그에게 주어졌던 퀘스트였다.
퀘스트에 의하면 게데아라 불리는 이곳은, 정체된 세계였다.
그리고 정체된 세계는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차원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시스템은 그러한 곳들을 멸절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가치의 증명에 실패한 존재들은,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
그로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사실 그딴 건 상관없었다.
그저 주어진 퀘스트를 완료하고 집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수백 년간 피와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에게, 이 세계의 알지도 못하는 놈들을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있을 리도 없다.
‘빨리 끝내야겠군.’
신지환, 이제는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이 세계로 넘어와 가장 먼저 죽음을 선사한 존재.
‘아직 어린아이였지.’
기껏해야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기특하게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놀랍군.’
판데모니엄에선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희생이었다.
그런 고귀함을 고작 스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가 보여주다니.
살짝 감탄한 마왕은 결국 자신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에게 애도를 표했다.
“걱정하지 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너의 뒤를 따를 터이니.”
저승에 가서는 외롭지 않으리라.
고개를 돌렸다.
꽤 떨어진 곳에 생명력이 가득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도망친 이들도 그곳에 있었다.
‘꽤 강한 듯하지만…….’
어차피 자신의 상대는 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자신이 건너오기 전에 미리 보내두었던 부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중에는 쓸모가 있는 녀석도 있었고, 별 볼일 없는 녀석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적지 않은 힘을 품은 괴물들이었다.
솔직히 지금쯤이면 이런 정체된 세계쯤은 거의 쓸어버렸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틀린 모양이었다.
이곳으로 넘어와 가장 먼저 본 것이 부하가 아닌, 적들이었으니까.
‘어쩌면 모두 당했을지도 모르겠군.’
예상보다 강한 세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쨌든.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군.”
어린아이가 목숨을 바치며 만들어냈던 경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이곳을 벗어나도 될 것 같았다.
마왕은 그렇게 느긋하게 주변의 풍광을 만끽하며, 세계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의 뒤로, 수많은 군세가 파도처럼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 * *
슬픔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니, 길게 가질 수 없었다는 게 더 정확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그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김다혜를 향한 애도와 잘못에 대한 대가는 그 이후에 해야만 했다.
‘피해야 돼.’
지금의 자신으로선 마왕을 막을 수 없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만큼 적은 강대했다.
지금은 일단 자리를 피한 뒤, 힘을 키워야만 한다.
서우진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다혜… 를 제외한 다른 전사자가 있습니까?”
“아니요. 그 아이가 전부예요.”
정말이지, 대단한 녀석이었다.
아무리 ‘수호’의 힘을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홀로 그 마기를 막아내다니.
할 수만 있다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그건 이제 불가능했지만.
서우진은 잠시 먹먹해진 가슴을 가다듬은 뒤, 애써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후퇴해야겠습니다. 이곳에서 숲을 빠져나가기 위한 가장 빠른 쪽이 어디입니까?”
“동쪽일 것이오.”
젤론이 대답했다.
그도 확신을 하진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군을 이끌어온 그의 경험은, 꽤나 정확할 것이다.
“제국군이 포진하고 있는 방향일 가능성이 크니, 그곳으로 향하는 게 좋을 것 같소.”
이어지는 젤론의 의견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동쪽으로 움직이도록 하죠.”
이후의 움직임은 일사불란했다.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 행동 하나하나가 급박했기 때문이었다.
서우진 역시 강병규의 어깨에 기대어, 빠르게 움직였다.
“길잡이 좀 부탁한다.”
“나한테 맡기고, 넌 좀 쉬어. ‘탐색’이 먹통이 되긴 했어도,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니까.”
“그래. 너만 믿는다.”
마기가 짙어진다.
‘수호’가 해제되고, 놈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진군하라!”
젤론의 외침과 함께, 병사와 일행이 모두 동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수는… 없군.’
마왕이 강림했기 때문일까?
득실거리던 마수와 몬스터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왕이 있는 곳으로 몰려간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
길게 보자면 불행에 가깝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선 기회였다.
괜히 전투를 벌이느라 시간을 지체했다간, 마왕에게 따라잡힐 수도 있었으니까.
“다혜의 마지막은, 어땠어?”
서우진이 힘겹게 물었다.
죽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녀석이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강병규는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어깨로부터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당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침묵으로 일관하던 강병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흑색의 마기에 휘말렸다. 그리고 소멸됐지.”
소멸(消滅).
완전히 사라져서 없어져 버렸다는 뜻이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언젠간 남아 있는 유해라도 수습해야겠다 생각하던 서우진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는 녀석의 흔적조차 볼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다시 한번 이를 악다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말이다.”
그때, 강병규가 말을 이었다.
“웃더라.”
“뭐?”
서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다혜는 웃으면서 갔어.”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을 텐데, 웃었다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왠지 녀석이 어떤 생각으로 마지막을 맞이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다혜가 그렇게 환하게 미소 짓는 걸 처음 봤다. 정말이지 한 줌의 후회도 없어 보이는 미소였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함으로 동료들을 살렸다.
언제나 타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던 녀석.
김다혜라면 정말로 자신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서우진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그래, 웃으면서 갔구나.”
서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어서…….
마지막 생각은 억지로 삼켰다.
차마 다행이라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으니까.
‘편히 쉬어. 내 죄는 나중에 꼭 갚을 테니까. 그때까지는 이런 싸움하고 관계없는 곳에서 편히 쉬어라. 정말 미안하다.’
서우진은 속으로 수없이 사과하며 강병규의 어깨에 기댄 채 숲을 이동했다.
그런 일행의 뒤로, 섬뜩하리만치 거대하고 압도적인 마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치 숨을 옥죄여 오는 사신의 손길과도 같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