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4)
#53화.
홀로 남은 루데인은 마기가 풍겨오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스르릉-
은백색의 검날이 뽑혀 나오며, 예리한 살기를 품기 시작했다.
“나와라.”
어느 순간 자리에 멈춰선 루데인이 정면을 향해 말했다.
그으으으-
낮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적인 생명체의 울음은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훨씬 어둡고, 무거우며, 부정한 울음소리.
“부르타엘.”
루데인의 입에서 놈의 이름이 뱉어지자, 끈적끈적한 마기가 폭사되기 시작했다.
크으윽.
끔찍한 마기의 향기에 루데인이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그뿐.
게랄드의 마기처럼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건 아니었다.
화르르륵-!
루데인의 검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최상급 기사답게 너무도 쉽게 오러를 피워 올린 것이다.
덕분에 몸을 압박하던 마기가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에 부르타엘이라니.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군.”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번 일은 마왕의 추종자들이 계획적으로 일을 벌인 것이 아닌 듯했다.
“그랬다면 저놈이 출현했을 리가 없지.”
부르타엘은 마기에 침식된 짐승들 중에서도 네임드에 속하는 개체였다.
그 힘이 막강하여, 마경 헬데인 내에서도 독보적인 포식자다.
오죽하면 다크 엘프조차 놈을 피를 먹는 짐승이라 부르며 두려워할까?
마기에 침식된 것은 동일하지만, 관계로 보자면 둘은 원수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강림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보니, 이상 현상이 발생한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다크 엘프와 부르타엘이 손을 잡았다는 것보다 훨씬 그럴싸했다.
“하긴,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지.”
중요한 건 부르타엘이 눈앞에 나타났다는 것이었고,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동료들의 목숨 빚을 갚을 때가 왔구나.”
루데인은 부르타엘을 만난 적 있었다.
아니, 몇 번이나 생사를 걸고 싸웠다.
그때마다 부하들이 죽어나갔다.
그렇게 잃은 기사의 수가 무려 20명에 달한다.
하지만 루데인은 끝내 놈을 사냥하는 것에 실패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싸웠던 것이 5년 전.
그동안 루데인은 수련에 매진한 결과, 결국 최상급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이제는 잡을 수 있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놈은 강력했으니까.
하지만 그동안 갈고닦은 검이라면, 절대지지 않을 터.
“덤벼라, 더러운 짐승아.”
부르타엘이 달려들었다.
* * *
푸욱-!
흑검이 다크 엘프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놈을 마지막으로, 더는 두 다리로 서 있는 다크 엘프는 한 명도 없었다.
“하아, 하아-”
서우진이 숨을 몰아쉬었다.
확실히 다크 엘프는 강했다.
처음이야 기습의 묘를 살려 쉽게 처리했지만, 제정신을 차린 놈들의 힘은 강력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서우진과 기사들의 합공을 견뎌내진 못했지만 말이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기사들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이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것을 받아줄 정신이 아니었다.
‘루데인은?’
싸우는 도중 들려왔던 포효.
그 안에는 강력한 마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게랄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위협적인 기운이었다.
“부르타엘일 겁니다.”
옆에 있던 기사가 서우진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설명해 주었다.
“부르타엘?”
“마경에 서식하고 있는 짐승이지요. 보통 이곳까지는 나오지 않는데…….”
서우진은 주변을 돌아봤다.
용사들은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절해 있었고, 기사들의 상태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네.’
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시 숨을 돌리며 체력을 회복한 서우진이 몸을 돌렸다.
“저는 저쪽을 도와주러 가야 할 것 같네요.”
“예? 누가 부르타엘과 싸우고 있는 겁니까?”
그러고 보니 저들은 루데인이 함께 온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서우진은 이번에도 대답해 주는 대신, 몸을 날렸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루데인은 정말 강한 기사인 것 같았지만, 느껴지는 마기 역시 결코 범상치 않았으니까.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서우진은 일단 주변의 상황부터 파악했다.
“난리가 났군.”
이 근방은 이미 숲이라 부를 수도 없는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나무가 뽑히고, 땅이 뒤집어졌으며, 마기와 오러의 잔재가 남아 계속해서 파괴를 자행하고 있었다.
이 광경만 봐도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알 수가 있었다.
“최상급 기사라더니.”
확실히 상급 기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테스테론과 제라드도 엄청난 강자다.
반 슬레인과 다리엘을 제외하면 서우진이 본 인간들 중 가장 강했다.
하지만 루데인은 그 두 기사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당연했다.
상급 기사와는 달리 최상급 기사는 선택받은 자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했으니까.
재능.
그것이 없다면 일말의 자락도 엿볼 수 없는 경지였다.
그리고 루데인은 경지를 엿보는 것을 넘어, 발을 디딘 자였다.
그러니 약할 리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랑 이렇게 맞짱을 뜨는 괴물은 또 누구냐.”
부르타엘이라는 이름만을 들었을 뿐, 그 정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한 채 출발했다.
그걸 모두 듣고 있다간 늦을지도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까지 간 건지.”
꽤나 달려왔음에도, 아직까지 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길을 헤맬 걱정은 없었다.
전투의 흔적을 뒤쫓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렇게 10분여를 더 달리고 나자.
“저기군.”
드디어 루데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오러를 휘두르고 있었다.
콰아앙-!
오러는 나무 세 그루를 동시에 베어내고는, 그것도 모자라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위력.
하지만 루데인의 상대는 그런 검을 모조리 피해내고 있었다.
“……원숭이?”
처음에는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온몸이 노란색 털로 뒤덮여 있는 거대한 원숭이였다.
“아니, 고릴라인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지구에서는 저놈과 똑같은 동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놈의 이름이 부르타엘이고, 강하다는 것이었다.
“돕겠습니다!”
루데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지쳐 있었다.
호흡은 흐트러졌고, 마력 역시 불안정해 보였다.
“멈춰!”
루데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얼마나 급했는지, 꼬박고박 하던 존댓말도 때려치웠다.
아직 서우진의 실력으론 놈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가속.’
다시 한 번 스킬이 발동되며, 서우진의 몸이 빛살처럼 앞을 향해 쇄도했다.
그어?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인물에 부르타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내 신경을 끄는 것 같았다.
서우진의 검으로는 자신의 털끝도 다치게 할 수 없을 것이란 자신감 같았다.
“오러.”
화르르륵-!
루데인의 것과는 다른 푸른색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서우진은 한껏 방심하고 있는 부르타엘의 등을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스거억-!
그아아아아-!
방심의 대가는 꽤나 컸다.
루데인을 상대하며 작은 생채기도 입지 않았던 놈의 등에 길쭉한 검상이 새겨졌으니까.
절대 작은 상처가 아니었다.
저만한 부상을 입은 채로 서우진과 루데인의 합공을 받는다면,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것은 서우진의 착각인 듯했다.
“피해라!”
루데인이 경고성을 터트렸다.
‘피하라고? 갑자기? 왜?’
이해할 수 없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전투로 수많은 경험을 쌓은 서우진의 육체는, 이미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고 있었다.
뭔가가 서우진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끔찍할 정도의 예리함을 품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곽-!
공기가 찢어지고, 땅이 갈라지며,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다.
“으윽!”
서우진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을 땅에 박아 넣었다.
식은땀이 절로 흘러나왔다.
만약 0.1초라도 늦었다면, 그대로 반 토막이 날 뻔했다.
“…저건?”
서우진은 그제야 자신을 공격한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었다.
피였다.
털과 마찬가지로 노랗게 찐득거리는 피.
상처 입은 등에서부터 흘러나온 노란 혈액은 마치 채찍처럼 출렁이며 서우진을 노리고 있었다.
“놈의 마능(魔能)이다.”
루데인의 짤막한 설명이 귀에 들어왔다.
몬스터와는 다른, 마수와 마왕의 권속들에게서나 볼 수 있다는 능력.
“우리는 저것을 ‘혈종’이라고 불렀지.”
외부로 유출된 혈액을 무기로 삼아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작은 상처 따위는 놈을 더 강하게 해줄 뿐이다. 노려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즉사뿐이었다.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강해지니, 단번에 목을 베어내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후우-”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완벽한 기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서우진이 트롤 짓만 한 것은 아니었다.
“피를 조종하는 것에는 상당한 정신력이 소모된다. 그러니 너는 ‘혈종’을 맡아라. 그동안 내가 어떻게든 목을 잘라낼 테니.”
다만, 더 이상의 부상을 입히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루데인은 서우진을 경계하고 있는 부르타엘의 이목을 끌어당겼다.
“감히 한눈팔다니.”
루데인이 검을 휘둘렀다.
허공에 유려한 붉은 궤적이 그려졌다.
베기 하나만으로도, 서우진은 그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깔끔하다.’
저런 검은 반 슬레인에게서밖에 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깔끔하고 완벽한 가로 베기였다.
치명적인 일격에 부르타엘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날렸다.
놈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이 눈앞의 루데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부르타엘의 시선이 떨어지자, 서우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짓쳐 들어갔다.
이번에는 ‘가속’ 대신, ‘강격’과 ‘오러’를 사용했다.
쐐애애액-!
그런 서우진의 공격을 막기 위해 피가 공간을 갈랐다.
콰앙-!
‘젠장.’
‘강격’까지 사용했건만, 피는 그의 공격을 견뎌냈다.
웬만한 몬스터는 피떡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위력이었음에도, 아무런 타격조차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육체보다 오히려 피의 내구력이 더욱 강한 것 같았다.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던 피가 다시 서우진을 향해 내리꽂혔다.
파파파팟-!
서우진은 잽싸게 피한 자리에, 커다란 구멍들이 뚫렸다.
마치 송곳으로 꿰뚫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채찍처럼 휘두르는 것 말고, 찌르기도 가능했던 것이다.
‘마능이라니…….’
뭐 이런 사기적인 기술이 있단 말인가?
상처를 입을수록 강해지는 게 말이 되나?
노란 피는 계속해서 서우진을 노리고 움직였다.
우습게보다가는 이곳이 무덤이 될 지도 모르겠다.
서우진은 처음 보는 능력에 입술을 짓씹었다.
하지만 검을 멈추진 않았다.
자신이 직접 부르타엘을 죽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발하면 할수록, 놈은 이쪽을 신경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분산된다면…….
루데인이 그의 장담대로 목을 베어낼 것이다.
서우진은 그것을 믿고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콰앙- 쾅쾅-!
폭음이 터져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