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40)
540화.
병력의 철수가 시작된 건 서우진의 예상대로 하루가 꼬박 지난 뒤였다.
다행히도 마왕은 아직 이곳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니,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최소한 200레벨쯤은 되어 보이는 그놈이라면, 이 정도의 거리는 정말이지 눈 깜짝할 새에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서우진도 가능한데, 마왕이 불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는 건 무슨 의도가 있다고 봐도 되는 거겠지.’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철군은 시작되었다.
제국군뿐만 아니라, 가까운 모든 국가의 병력에게도 이 사실을 전달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제국이 직접 후퇴를 권유했으니, 모르긴 몰라도 전부 혼비백산하여 군을 물릴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한다……?’
서우진은 드류나크가 특별히 마련해 준 수레에 몸을 뉘이고 시선을 하늘에 둔 채로 생각에 잠겼다.
후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순 없었으니까.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고.
결국엔 그놈과 직접 담판을 지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패배는 불 보듯 뻔했다.
모든 용사와 초극의 강자들이 합공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의 차이일 뿐.
‘일단은 레벨을 올린다.’
이건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방법이었다.
하지만 무려 40레벨은 올려야 놈과 싸움이라도 가능할 정도였다.
‘이게 될까?’
지금까지 레벨을 올리는 것보다, 지금부터 200레벨을 달성하는 게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그만큼 필요 경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이게 가능하려면, 가능한 한 모든 지원을 받아야 할 텐데.’
제국뿐만 아닌, 대륙의 전 국가에서 서우진을 지원해 주어야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커진다.
무한대에 가까운 사냥감을 몰아주고, 쉴 새 없는 사냥을 하며, 레벨을 올려야 하니까.
‘물론 사냥감도 어느 정도의 격을 갖춘 놈들이어야만 할 테고.’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벨링과 함께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에게 검을 배우고, 다른 방법들도 찾아봐야 해.’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역시 신성력이었다.
하지만 이건 몇 번이나 고민을 해보아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마공에게 물어보자.’
서우진이 보는 마르테스는 모르는 것이 거의 없는 존재였다.
전지(全知)에 가까운 능력이 있는 듯했으니, 그녀와 이야기를 해본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스템.’
분명 회색의 공간에서 목소리는 서우진에게, ‘시스템의 간섭을 벗어난 존재’라고 이야기했다.
이계의 마왕들 역시 시스템에 속한 놈들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마공과 얘기해 봐야겠군.’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결국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왕이라는 놈이 최대한 늦게 움직이길 바라는 것밖에.
눈을 감았다.
어둠이 찾아왔다.
김다혜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죽어간 병사들의 마지막 모습도 보였다.
수백, 수천, 수만…….
서우진이 이 세계에 소환된 이후, 목숨을 잃은 자들의 잔상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찼다.
‘미안하다.’
서우진은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 * *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가끔 안면이 있는 용사들이 말을 걸어오긴 했지만, 그에 제대로 반응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더 강해져야 해.’
계수지의 시선은 앞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김다혜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상실은 시간으로 치유된다 하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하루하루 지날수록 더욱 괴로워질 뿐이었다.
‘다신 그런 일이 발생해선 안 돼.’
주먹을 쥔다.
108레벨의 A급 ‘싸울아비’.
용사들 중에서도 서우진을 제외하면 독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녀와 비견될 수 있는 사람은, 다섯 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약해.’
자신이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쯤은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애초에 김다혜처럼 그런 고귀한 뜻을 품을 정도의 인격자도 아니었다.
그래도 주변의 동료들은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장 강하니까.’
서우진의 힘이 닿지 않는 때와 장소라면, 자신이 그들을 지켜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실패했어.’
김다혜의 죽음은 그야말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슬픔과 충격을 주었다.
‘결코 다시는…….’
“수지 언니.”
문득, 옆에서 이지아가 말을 걸어왔다.
계수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괜찮아요?”
이지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어온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도 강하게 주먹을 쥔 탓에,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괘, 괜찮아.”
손에서 힘을 풀자,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서 피가 주르륵- 샘솟았다.
“손 이리 주세요.”
그것을 보고 있던 박민성이 다가오며 말했다.
“아니, 정말 괜찮은데.”
계수지는 고개를 저었지만, 박민성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강제로 손을 잡은 그가 품에서 물약을 꺼내 들더니,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부었다.
치이이이익-!
신성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작은 상처라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머리를 좀 식히는 게 좋으실 거 같네요.”
박민성이 말했다.
“네…….”
계수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동료들 모두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다들 모여보실래요?”
본래 박민성은 자신의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그저 상냥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친근한 이미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랐다.
한숨을 내쉬며 동료들을 불러 모으는 그는, 어딘지 모르게 믿음직스러웠다.
그 덕에 동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부상이 심각해 수레에 누워 있는 서우진을 제외하고.
“다들 힘드신 건 알고 있어요.”
박민성은 동료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며 말을 시작했다.
“다혜… 가 그렇게 갔으니까. 슬프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솔직히 김다혜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서우진과 이지아 정도가 전부였다.
그 둘은 녀석과 대화라도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마저도 힘들었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벽을 보며 얘기하는 듯한 기분만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동료였다.
서로의 등을 맡기고, 목숨을 맡기고, 함께 수많은 전장을 해쳐온 동료.
그런 김다혜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생명을 불태웠는데, 슬프지 않으면 정말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박민성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우울해한다고 해서 다혜가 살아 돌아오진 않으니까. 차라리 더욱 힘을 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집중해야만 해요.”
박민성은 자신의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더욱 짙게 미소 지었다.
“복수를 하려면요.”
복수.
그 한 단어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우울하고 가라앉았던 기색이 사라지고, 대신 활활 타오르는 분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 복수. 해야지.”
구동환이었다.
“지금 우리 힘으로는 힘들 거예요.”
이지아가 입술을 짓씹었고.
“그러니까 더 정신을 차려야 해요. 우진 씨를 도와서 그 빌어먹을 놈에게 한 방 먹여주려면…….”
계수지가 다시 한번 주먹을 꽉 쥐었다.
“손 조심!”
그걸 본 박민성이 계수지의 손등을 찰싹- 때리며 만류했다.
“흠흠.”
덕분에 그녀는 머쓱한 표정으로 손에서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지아 말대로 복수하려면 지금 우리의 힘으론 불가능해요. 그러니 더 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레벨로는 한계가 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유홍설이 손을 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긴 하죠.”
박민성이 민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동료들의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나서긴 했지만, 사실 그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저 수레 위에 누워 있는 서우진과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없네.’
‘없구나.’
‘생각이 안 나.’
다들 미간을 찌푸린다.
마왕을 혼자서 상대할 방법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서우진 옆에서 한 방 제대로 먹여줄 수 있는 정도.
딱 그 수준까지만 강해질 수 있으면 족했다.
그런데도 단기간에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 따윈 생각나질 않았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구동환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동료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동시에 표정이 굳어진다.
“저분에게 부탁할 수밖에요.”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쪽에는, 은발의 기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반 슬레인.
용사들은 굴리면 굴릴수록 강해진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는, 무섭기 그지없는 교관이었다.
“괘, 괜찮을까요?”
매시브 가디언에서 받았던, 그 혹독한 훈련을 떠올린 김우람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안 괜찮겠지.”
구동환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반 슬레인의 훈련은 지독하리만치 힘들었다.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벗어난 그들조차도 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으니까.
그 짧은 훈련 속에서도, 모든 체력을 완전히 소진한 채 기절하듯 잠이 들지 않았던가.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잖아.”
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해진다.
반 슬레인의 훈련을 받으면, 반드시 강해진다.
오죽하면 지금의 서우진조차도 그와 검술 훈련을 하며 더욱 성장했다.
자신들이라면 그 성장의 폭이 훨씬 더 클 터.
힘들고, 지치고, 괴롭겠지만.
“해보자.”
김다혜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해야만 한다.
그보다 더한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 마왕의 얼굴에 한 방 먹이고 말 것이다.
“호오, 기특한 생각들을 하고 있구나.”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놀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쯤은 이미 모두 눈치를 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야 경.”
순백의 갑주를 입고, 신성한 검을 허리에 찬 프레이야가 미소를 지으며 등 뒤에 서 있었다.
“저 검 귀신에게 훈련을 받겠다고?”
그녀의 물음에 계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단호한 결의가 느껴졌다.
그것을 본 프레이야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어디, 이 늙은이도 한 손 거들어주랴?”
윤기나는 검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제안을 한다.
계수지는 왠지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꼬리를 말지는 않았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김다혜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악마에게라도 부탁할 생각이었으니까.
“오히려 저희가 원하는 바입니다.”
계수지의 대답에 프레이야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렸다.
“오늘밤부터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너라. 검 귀신과 함께 너희를 제대로 키워줄 터이니.”
그러곤 멀어졌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동료들은,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다.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버텨내리라 다짐했다.
‘다행이군.’
오직 한 명.
박민성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료들이 조금이나마 슬픔의 그늘에서 벗어난 듯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잊어버리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젠 우울함과 무력감에 젖는 일은 없을 듯했다.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서우진이 누워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속으로 물었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