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41)
541화.
철군은 순조로웠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쉽고 빠르게 ‘팔로타인 라세’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민들은 이미 대피한 지 오래였는지라, 텅 비어버린 도시 안으로 물경 30만의 병력이 진입했다.
‘다른 곳도 괜찮은지 모르겠군.’
그러자 서우진은 제국군이 아닌, 다른 왕국들의 병력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마왕이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지 않았으니, 혹여나 다른 곳으로 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서우진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누워계시는 게 좋을 텐데요.”
옆에서 상태를 지켜보고 있던 계수지가 그런 서우진을 만류했다.
“괜찮습니다. 아니, 많이 괜찮아졌어요.”
강제로 다시 눕히려는 그녀를 향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우진 씨는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해요. 사제들 얘기 들었죠? 무리하면 회복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거라고 그랬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우진이 지금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인 것도, 그리고 무리를 하면 회복이 더뎌지는 것도.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순 없었다.
그러기엔 마음이 너무 조급했으니까.
“무리는 하지 않을 거예요. 잠깐 산책을 다녀올 생각이거든요.”
그 말에 계수지가 가만히 시선을 마주쳤다.
혹시나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서우진은 속으로 뜨끔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그럼 지아와 함께 다녀오세요.”
역시 혼자 보내주지는 않는다.
서우진은 거절하려 했지만, 계수지의 눈빛을 보곤 포기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침대에 눕히겠다는 의지가 강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럴게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계수지는 만족한 미소와 함께 문을 나섰다.
아무래도 이지아를 부르러 가는 모양이었다.
“하아-”
한숨을 내쉰 서우진이 잠시 침대에 누웠다.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일까?
왠지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들어차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고,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
‘정신 차리자.’
서우진은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강하게 쳤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은 정신이 드는 듯했다.
“지금은 앞으로의 일에 집중해야 돼.”
일단은 다른 왕국들의 상황을 알아보고 마왕의 동태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았다.
그 이후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 판단되면, ‘마테아의 광명’을 사용해 몸을 완전히 회복시키고.
‘다음엔 강해져야지.’
차근차근 계획들을 머릿속에 쌓아올렸다.
“아저씨!”
그때 방문이 쾅- 하고 열리며 이지아가 씩씩하게 들어왔다.
“산책 나간다면서요? 안 그래도 심심했는데 저랑 같이 가요! 괜찮죠? 안 괜찮아도 그래야 돼요! 수지 언니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까요!”
헤헤- 하고 웃으며 말을 쏟아내는 녀석의 얼굴을 보며, 서우진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붙여달라고 할 걸 그랬나?’
잠깐 후회가 되긴 했지만, 이제 와서 바꿔달라고 하면 이지아가 엄청 실망할 게 뻔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우진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 가자.”
끄응- 하는 신음과 함께 등을 떼는 모습에 이지아가 호다닥 달려와 몸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많이 아프죠?”
“아니, 버틸 만해.”
서우진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감지덕지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야 하긴 해도 움직일 순 있었으니까.
다시는 움직일 수 없게 된 그 녀석에 비하자…….
‘여기까지.’
서우진은 의도적으로 생각을 끊어냈다.
이 이상으로 깊이 들어간다면 스스로 무너질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런 서우진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이지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내 털어내곤 미소를 지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아까 보니까 도시 동쪽에 작은 호수가 있던데. 여기서도 별로 안 멀고, 산책하기엔 딱인 거 같더라고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재잘거리는 녀석을 보며 서우진이 씁쓸한 표정을 감추었다.
‘가장 힘든 건 이 녀석일 테지.’
자신도 슬프다.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상실감과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래도 이지아만큼은 아닐 것이다.
이 녀석은 김다혜의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까.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감정이 복받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나쁘지 않네.”
서우진은 그런 이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쵸? 그럼 지금 바로…….”
“그런데, 거긴 조금 이따 가자.”
신난 듯 말하는 이지아의 입을 막았다.
“어디 좀 들를 곳이 있거든.”
이지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 * *
아샨타는 짜증이 잔뜩 난 표정으로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병사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림자 사이에 숨어 있는 그녀를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곤란하게 됐네.”
처음부터 강림 전쟁이 편하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기대했다.
이번에 소환된 용사들 중에는 서우진이란 말도 안 되는 괴물이 있었으니까.
그라면 이전에 발발한 강림 전쟁과는 조금 다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라진 건 없었다.
서우진이 강한만큼, 마왕 역시 강대했으니까.
일곱 번에 걸쳐 소환된 이전의 존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듯했다.
“왜 하필 이때 태어나서…….”
한숨을 내쉰다.
조금 더 빨리 태어났다면, 이런 꼴은 보지 않고 평화로이 살다 갈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해 본들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었건만, 아샨타는 괜히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뭐, 그래도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지.”
요한이라는 뛰어난 사람을 만나 꽤 커다란 조직을 만들기도 했고, 평생을 함께할 반려도 만났다.
이 정도면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그게 이제 끝날지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대체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거야?”
아샨타가 이 도시에 도착한 건 사흘 전이었다.
제국군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
그들이 철군한다는 정보를 접하자마자 요한이 이곳으로 보냈다.
그간 수집한 정보들을 넘겨주고 새로운 사실들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차라리 그냥 찾아갈 걸 그랬나?”
거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몰래 잠입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지.’
초극의 경지에 이른 용사가 무려 열 명이나 되었다.
그들의 이목을 피해 다가간다는 건, 제국의 수호자인 암공도 불가능할 것이다.
해서 만나자는 신호를 표식으로 남겨두곤 여기서 계속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직 발견 못한 건가?”
거칠게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상을 입었다더니, 생각보다 상세가 더 안 좋…….”
“왔습니다.”
“흐읍!”
갑자기 등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아샨타가 기겁하며 몸을 홱- 돌렸다.
대체 언제 다가온 것일까?
골목 안쪽에는 병색이 완연한 서우진과 이지아라는 이름의 용사가 서 있었다.
“어, 언제 왔어요?”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음… ‘왜 하필 이때 태어나서’라고 말할 때쯤인 것 같은데.”
“그럼 한참 전이잖아요!”
대체 왜 기척을 내지 않았단 말인가.
“아, 그냥 무슨 혼잣말을 그렇게 하시는 건지 궁금해서요.”
서우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아샨타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뒤를 잡힌 정보 요원이라니.
아무리 상대가 서우진이라 하지만, 이건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요한이 알았다면 박장대소하며 비웃겠지.
“하아- 일단 알겠어요. 저를 따라오세요.”
한숨을 내쉰 아샨타가 둘을 데리고 한쪽으로 이동했다.
정보 길드에서 미리 준비해 둔 안가가 있는 방향이었다.
“누구예요?”
“아, 너는 처음 보는 건가? 내 일을 좀 도와주고 있는 분이야.”
“무슨 일이요?”
뒤에서 속삭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정보 길드랍니다. 저희 길드는 우진 씨와 계약을 맺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거든요.”
“와, 정보 길드!”
이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한다.
그 모습에 조금 기분이 풀리려는데, 질문이 이어졌다.
“그럼 크루시엘하고 누가 더 잘해요?”
움찔-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궁금한 것뿐.
하지만 그 한마디의 질문이 자존심에 살짝 상처를 냈다.
“…비슷해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정보 길드는 크루시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규모부터 예산, 요원의 능력까지.
어느 것 하나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앞선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저희 길드장이 대단한 사람이거든요.”
요한뿐이었다.
“맞아. 대단하지.”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러자 이지아는 더욱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으쓱해진 기분에 아샨타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자세한 얘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하죠.”
어느새 안가에 도착했다.
“여기에도 있었군요.”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구조의 건물이다.
“대체 없는 도시가 있긴 합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글쎄요?”
당연히 아샨타는 대답을 회피하며, 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파견된 요원은 그녀가 전부였던 것이다.
“이쪽으로.”
안가에서 가장 깊은 방으로 둘을 안내했다.
간단한 마법진까지 설치되어 소음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샨타는 의자에 걸터앉으며 운을 뗐다.
“어떻게 된 거죠? 갑자기 제국군이 철수한 이유가 뭔가요?”
살짝 무거운 음성이었다.
“예상하고 있는 게 맞을 겁니다.”
서우진의 대답에, 아샨타의 표정이 굳어졌다.
“완벽하게 실패한 모양이네요.”
“아쉽게도.”
마왕의 강림을 처음부터 막아내겠다는 계획은, 이미 정보 길드에 전달했었다.
덕분에 아샨타도 그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고.
하지만 마왕은 결국 강림했고, 그 대가로 서우진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어떻던가요, 이번에 강림한 마왕은?”
아샨타의 말에 서우진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강했습니다. 지금으로선 놈을 막아낼 방법이 전혀 없을 정도로.”
“…그 정도였나요?”
서우진의 음성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아샨타는 입술을 짓씹었다.
‘방법이 없다라…….’
그 말은 곧,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던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재앙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요한은 이미 예상했나 보네요.”
아샨타가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이게 뭡니까?”
요한이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던 서우진이, 그것을 받아 들며 물었다.
“만약 실패하고 ‘팔로타인 라세’에서 물러난다면,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요한이 말입니까?”
서우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새삼 그의 능력에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종이를 읽어 내려간 서우진의 얼굴에, 조금씩 놀람이 서렸다.
“이게 사실입니까?”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을 모두 읽어 내려간 서우진이 물었다.
“맞아요.”
아샨타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마공이 탑을 벗어나,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