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46)
546화.
몇 번이나 휘둘렀을까?
‘모르겠어.’
1만? 2만?
그 정도 수준은 넘어선 지 오래된 것 같았다.
하루 1만 번 휘두르는 훈련 정도는 평소에도 자주 했던 것이었으니까.
그때도 조금 지치긴 했지만, 지금처럼은 아니다.
‘팔에 감각이 없어.’
대체 지금 어떻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일린은 멈추지 않았다.
팔의 근육이 끊어지고, 인대가 늘어나는 고통이 엄습하고 있음에도.
절대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휘익-
검날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달리, 너무도 미약한 파공음이었다.
‘이대론 안 돼.’
아일린이 이를 악다물었다.
혼미한 정신 사이로, 어두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것도 못 했어.’
서우진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토록 노력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검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그저 보호받으며, 간신히 목숨만을 보존한 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은 죽기 직전의 부상을 입었고, 아직 어린 소녀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며 동료들을 살렸다.
그 과정에서 아일린은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서우진과 다른 용사들처럼 균열을 파괴하기 위해 달려들지도, 김다혜처럼 누군가를 지키지도…….
‘나는 그저 짐덩이나 다름없었어.’
일반 병사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나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서우진에게 도움은커녕, 방해나 되지 않았을까?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돼.’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다.
최소한 짐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검을 놓치고, 다시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찌직-
버티지 못한 근섬유가 찢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릿저릿한 통증과 함께.
‘흐으윽!’
비명조차 지를 힘이 없어, 속으로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건, 그간의 수련이 결코 녹록지 않은 덕분이었다.
털썩-!
옆에서 누군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나르.’
결국 녀석도 한계를 넘어선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함께 수련을 하려던 리나르는 마지막 남은 한줌의 체력까지 모조리 써버린 듯했다.
‘나도…….’
쓰러지고 싶었다.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 편히 몸을 뉘이고 싶었다.
끝없는 유혹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조금만 쉬자.”
“한두 시간 쉰다고 바뀌는 건 없어.”
“휴식도 훈련의 일환이라는 영주님의 말씀을 잊었어?”
“쉬자. 조금 회복한 다음 다시 하는 거야.”
“이 정도면 충분해.”
너무도 달콤한 말이었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 몰아세우기만 한다고 성장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했어.’
반 슬레인은 가혹한 훈련을 마치면, 항상 충분한 휴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래야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한계를 넘어선 훈련은, 몸을 망칠 뿐이야.’
자신은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놓을 수가 없어.’
쓰러진 서우진과 천천히 분해되며 죽어가던 김다혜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그러니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죄책감과 자괴감에 빠져, 몸을 학대하지 않으면 다신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바들거리는 팔로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체력과 마력은 물론이고 정신력마저도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쯤이었다.
뭔가가 머릿속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뭐지?’
아주 미약한 감각이었다.
뇌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된 그 느낌은, 서서히 그 영역을 넓혀갔다.
아일린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은 채, 그 느낌에 집중했다.
하지만 도저히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나쁜 기분은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원해.’
지쳐 버린 정신이 맑아졌다.
마치 오염된 머릿속이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
그 아찔한 쾌감에 아일린은 속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혼미해지던 의식이 빠르게 또렷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빠르게 영역을 넓힌 그 감각은, 이내 머리를 넘어 육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회복된다?’
끊어졌던 근육이 이어지고, 늘어난 인대가 팽팽하게 원상복구되었다.
피로는 사라지고, 어느새 그 자리를 활력이 자리잡았다.
쐐액-!
그 덕에 허공을 가르는 검격이 다시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마력인가?
하지만 여전히 마력회로에는 한줌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 탓이다.
그런데도 아일린은 이 감각이 마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깊은 곳.
어쩌면 생명과도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가장 중요한 기운.
그것이 활성화되며 육체를 감싸 안는 것만 같았다.
‘몸이 변화하고 있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육체가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중이었다.
뒤틀린 근골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꼬여 버린 마력 회로가 최적의 경로로 재배치된다.
아일린은 그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육체의 회복과 변화.
드드드드드드드-!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던 마력이 갑작스레 그 덩치를 키워 나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득할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다.
대기가 진동하고, 땅거죽이 갈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미증유(未曾有)의 거력을 버텨내지 못하고, 모두 부서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력이 증폭되었다.
두 배, 네 배, 열여섯 배.
먼지와도 같았던 기운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이전의 아일린을 휩쓸었다.
마력은 마치 대해처럼 광대해졌고, 그 깊이는 심연보다도 깊어졌다.
까드드드득-!
힘을 견뎌내지 못한 그녀의 검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갔다.
푸른방패 기사단이 쓰는 검조차, 그녀의 힘을 감당하기엔 너무도 약했다.
퍼석-!
결국 검이 깨져 나가며, 아일린은 손잡이만 남은 검을 휘둘렀다.
화르르르르륵-!
하지만 상관없었다.
푸른색의 불타오르는 오러가 검의 형상을 대신 유지해 주고 있었으니까.
공간마저 모두 베어버릴 듯한 검격!
최상급 기사에 불과하던 아일린이, 마침내 눈앞을 막고 있던 벽을 무너뜨렸다.
“아!”
눈을 떴다.
방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감각이 환상이 아니라는 듯, 검로를 따라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 너머.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계수지… 였지?’
서우진의 가장 듬직한 동료이자, 벽을 넘어선 존재.
그런 계수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하드려요.”
계수지는 놀란 기색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드디어 넘어섰네요.”
초극의 경지.
그 지고한 영역에 도달했다.
* * *
‘음?’
마르테스와 대화를 하던 서우진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아일린?’
낯익은 마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위기만 비슷할 뿐, 그 크기와 질은 이전과 너무도 달라졌다.
“또 한 명의 강한 조력자가 탄생하였구나.”
마르테스 역시 밖을 향해 시선을 던지다,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너와 함께 다니던 기사 아이가 벽을 넘어 섰느니라.”
서우진이 눈을 치켜떴다.
‘벌써 초극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언젠간 넘어설 것이라 생각했다.
아일린의 재능은 대단했으니까.
용사들과 비교하니 별 볼일 없어 보였을 뿐, 그녀는 검에 있어선 서우진을 발밑으로 볼 정도의 인재였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아일린에게는 레벨도 없었고, 아직 나이도 어렸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기사가 초극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선, 수많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
훈련도 훈련이었지만, 경험 역시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10년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벌써 벽을 넘어서다니.
서우진은 헛웃음을 지으며, 아일린의 마력이 느껴지는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행이지 않으냐?”
마르테스가 말했다.
“아, 네. 그렇긴 합니다.”
사실 아일린이 초극의 경지에 올랐다 해서, 당장 엄청난 전력이 되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 봐야 레벨로 따지면 100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강림 전쟁에서 커다란 활약을 하려면, 그보다 훨씬 더 농익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다행이라고 한 이유는 하나였다.
‘죽을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었으니까.’
최상급 기사와 초극의 경지 사이에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수준의 격차가 있었다.
강림 전쟁과 같은 스케일의 전투가 벌어진다면, 최상급 기사는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하지만 초극의 경지는 다르다.
최소한 허무하게 죽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왕과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서우진은 김다혜를 떠올리다, 이내 가슴에 묻어두었다.
조금 전에 다짐했던 것처럼 슬퍼하는 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좋은 징조로구나.”
마르테스가 작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일린이 벽을 넘어섰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럼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자꾸나.”
마르테스는 내려놓았던 찻잔을 다시 들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차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렸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뜨겁지 않아 좋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적시며 한 모금 들이켰다.
“지금 너의 힘으로는 그 ‘이계의 마왕’을 상대할 순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터.”
서우진은 잠시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그렇습니다만, 혹시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그녀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내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온 이유가 그것이라고.”
서우진의 표정이 밝아진다.
‘역시.’
마르테스는 해결법을 알고 있었다.
“그, 그게 무엇입니까?”
서우진은 다급한 표정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하지만 마르테스는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은 태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지 방법이 있느니라.”
‘두 개나?’
서우진의 눈이 커진다.
자신은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는데, 설마 그렇게 많을 줄은 상상도 못해봤기 때문이었다.
“하나는 당연하게도 레벨을 올리는 것이니라.”
“하지만 그건!”
시간이 없지 않은가?
서우진이 그렇게 따지기도 전에, 마르테스가 말을 이었다.
“‘소환석’을 기억하느냐?”
입을 다물었다.
서우진이 ‘소환석’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한동안 자신과 동료들을 성장시키는데 잘 써먹은 물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수량에 한계가 있고, 그것만으로는 레벨을 올리기에 무리가 있었다.
“너의 걱정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니라. 허나, 미리 짐작하여 절망할 필요는 없느니.”
마르테스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옆에 아공간이 만들어졌다.
마르테스는 망설이지 않고,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손바닥만 한 돌이었다.
‘소환석?’
하지만 이전에 봤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새겨진 마법진도, 그 안에 담겨 있는 마력의 양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순도가 높았던 것이다.
“너의 레벨을 올리기 위한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느니라.”
확신에 가득찬 음성과 표정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