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49)
549화.
‘이런, 젠장!’
서우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숨을 헐떡였다.
벌써 몇 시간째던가?
한 시간? 두 시간?
모르겠다.
도무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을 집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속으로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는 서우진의 손에는, 어느새 빼어 든 ‘카 라니엘’이 들려 있었다.
‘내 속도로도 따라잡질 못하다니.’
교만한 게 아니다.
160레벨에 달하는 서우진의 움직임은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로 빨랐으니까.
굳이 ‘마왕화’를 하지 않더라도, 그보다 빠른 존재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화아아아악-!
풀을 뜯고 있던 사슴이 ‘카 라니엘’을 너무도 쉽게 피해냈다.
아예 스치지도 못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사슴뿐만 아니라, 한가로이 볕을 쬐고 있던 토끼마저도 서우진의 공격을 피했다.
마수와 몬스터들을 물론이고, 마왕의 권속들마저 수없이 베어넘긴 검이다.
그런 걸 저런 평범한 동물들이 쳐다보지도 않고 피해내고 있었으니, 서우진으로선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후우우-”
심호흡을 했다.
‘조급해하면 안 돼.’
이 황당한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여유를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을 가다듬을 겸, 시선을 돌려 마르테스를 바라보았다.
혹시나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말도 해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1밀리미터의 움직임도 없이, 그저 서우진만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것도 저거 나름대로 대단하네.’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니.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경지에 올랐는지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일단 조언은 물 건너갔고.’
결국엔 혼자서 성공을 해내야만 했다.
서우진은 동물들을 살펴보며, 방금 전까지의 기억들을 복기했다.
‘그렇게 빠르진 않아.’
물론, 일반 야생동물에는 비할 바 없는 속도이긴 했다.
하지만 그게 서우진의 검을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피하고 있단 말이지.’
이건 속도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한 번 차근차근 알아보자.’
조급해진 마음을 완전히 가라앉힌 서우진이 토끼를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며 ‘카 라니엘’을 찔러 넣었다.
베기보다 훨씬 더 빠른 찌르기.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는 속도였다.
하지만…….
휘익-!
토끼는 이번에도 서우진의 공격을 피해냈다.
‘이건?’
눈이 커졌다.
지금까진 단순히 녀석들이 움직임이 재빨라 공격이 빗나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자세히 보니 아니다.
‘이건 빨라서가 아니라…….’
‘카 라니엘’을 뻗기로 결심한 그 순간, 토끼는 이미 회피를 하기 위한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예측?’
아니, 이건 그딴 게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예지에 가까워.’
근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한낱 지성도 없는 동물이 미래를 예지하는 것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야.’
설령 정말 야생동물의 본능 덕분이라 한들, 서우진의 공격을 피할 정도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예지나 다름없다.
서우진이 뒤를 돌았다.
마르테스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이 녀석들에게 도움을 주고 계신 겁니까?”
미래 예지는 마르테스 역시 갖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행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느냐?”
하지만 담담하게 대답하는 마르테스의 얼굴에는, 한 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아닌 모양이군요.”
확실하다.
이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살아가는 저 동물들은, 그에 걸맞은 능력이 있었다.
‘미래 예지라…….’
서우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대충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알겠군.’
보통의 방법이라면 놈들을 잡는 게 힘들 것이다.
공격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피할 테니까.
그야말로 궁극의 회피기술 아닌가?
‘하지만.’
서우진이 눈을 감았다.
그러곤 머리를 비웠다.
단 한 마디의 잡념도 떠올리지 않는다.
완전한 무아(無我).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에게 훈련을 받으며, 몇 번이나 느꼈었던 그때의 기억을 불러왔다.
서서히 모든 감각이 지워지기 시작했다.
시각부터 시작해, 청각, 후각, 촉각, 미각, 그리고 마지막 육감까지.
서우진은 세상을 잊었고, 세상도 서우진을 잊었다.
그렇게 천천히 ‘카 라니엘’을 휘둘렀다.
너무도 느릿해, 어린아이라도 쉽게 피할 수 있는 수준의 검격.
지금껏 서우진의 검을 쉽게 피해왔던 동물들이라면, 결코 맞지 않을 검격이었다.
그런데…….
서걱-
베였다.
사슴은 자신에게 검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목이 잘렸다.
“흐으읍-!”
동시에 서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처음으로 공격이 성공한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이 아니다.
‘이, 이건?’
죽어버린 사슴의 사체가 눈에 들어왔다.
2미터에 달하던 그 커다란 덩치가 서서히 빛으로 화하며, 서우진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신성력!’
처음 이 이름 없는 신의 무덤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기운이, 혼돈기와 뒤섞였다.
집중하지 않는다면 느끼지도 못할 만큼, 너무도 미약한 기운이었지만.
‘확실해.’
이건 이름 없는 신의 힘이었고, 그건 혼돈기와 합일(合一)하고 있었다.
서우진의 눈동자에 희열이 깃들었다.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방법 중 하나가 실현되고 있었으니까.
마력, 마기, 신성력의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가능하다니!
물론, 이 정도의 힘으로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서우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 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동물이 있었다.
‘이 녀석들을 모두 잡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막연하기만 했던 때에 비하자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할지는 감을 잡았으니까.’
그래도 수십, 수백 마리에 달하는 동물들을 모두 사냥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
“좋아, 한번 해보자.”
서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마르테스가 미소를 띤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이 정도면 되겠군.”
마왕, 신지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껏 그가 ‘팔로타인 라세’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였다.
세계수.
놀랍게도 자신의 힘에 대항해, 그 막대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는 신성한 나무 때문이었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라면 이딴 나무는 무시했을 것이다.
그의 목표는 세계수가 아니라, 이 세계의 지성을 지닌 존재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세계수를 확인하고는,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이게 살아 있었다면, 이 세계를 멸절시키는 게 불가능했겠지.’
세계수가 품고 있는 생명력은, 실체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즉,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세계수를 무시한 채 모든 존재를 말살했다면, 언젠가 다시 이 세계는 부활했을 터였다.
그래서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병력들을 시험 삼아 처리한 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이유는.
우득-
가지가 부러졌다.
웬만한 성인 남성의 몸통보다 굵은 나뭇가지가 자신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꺾이며 땅에 떨어졌다.
퍼석-
모든 생명력을 빼앗긴 가지가, 모래처럼 부스러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거대한 나무가 붕괴됐다.
엘프들의 어머니이자, 세계를 지탱하던 세계수가 무너져 내렸다.
쿠르르르릉-!
마치 멸망할 이 세계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듯, 그렇게 덧없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아무런 감흥도 없이 바라보고 있던 신지환이 몸을 돌렸다.
“카르뤼옌.”
“찾으셨나이까.”
그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권속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머리에 돋아난 양의 뿔과 여덟 개의 눈동자.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가죽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감히 신지환의 눈동자도 바라볼 수 없다는 듯, 극도의 공경을 표하고 있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구나.”
세계수의 기운이 예상보다도 강력했기에, 계획했던 시간을 훨씬 넘겨 버렸다.
“이제 슬슬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다.”
“마왕군 휘하 병력 50만과 마수 군단 2백만, 몬스터 군단 150만은 언제든 명에 따라 진군할 준비가 되었나이다.”
무려 4백만에 달하는 군세다.
‘팔로타인 라세’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인간들의 병력을 다 합쳐도, 절대 상대할 수 없는 규모 아닌가?
심지어 신지환의 최측근인 권속도 12명에 달하지 않던가?
이 정도면 이깟 세계 정도는 순식간에 밀어버릴 수 있었다.
“좋군.”
신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말과 달리, 그 어떤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집 앞 산책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방향은 정했느냐?”
신지환은 직접 나서서 뭔가를 계획하지 않는다.
그런 걸 해줄 존재들이 썩어날 정도로 많았으니까.
정말 중요한 결정이 아니라면, 모두 맡겨두는 편이었다.
그래서 진군 방향 역시 카르뤼옌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북쪽은 배제했나이다.”
신지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숲의 북쪽이라면, 얼마 전에 이 세계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가볍게 충돌해 본 곳이었다.
물론, 신지환의 입장에서나 가벼운 충돌이었지, 상대에게는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당시의 실망감을 떠올린 신지환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번엔 아래쪽인 모양이군.”
“남동쪽으로 결정했사옵니다.”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숲의 형태나, 이동경로의 지형, 적들의 규모 등등.
하지만 신지환은 그딴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건 카르뤼옌이 모두 고려해서 내린 결론일 테니까.
“남동쪽이라…….”
신지환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감각을 활짝 열어, 남동쪽에 있는 존재들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웬만한 왕국보다 더 넓은 면적의 숲을 가로지를 정도로, 감각의 영역이 광대하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르뤼옌은 크게 감격한 표정이 아니었다.
자신의 왕에게 이 정도는 쉬운 일이었으니까.
“나쁘지 않다.”
신지환이 감각을 거둬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꽤 많은 병력이 몰려 있었다.
적어도 수십만에 달하는 존재들이 느껴졌다.
심지어 꽤 강력한 마력을 지닌 존재들도 다수였다.
‘이 정도라면 여흥은 되겠군.’
본격적인 멸망의 길을 걷기 전, 몸을 풀기엔 적당해 보였다.
때마침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으니, 출발하기에 시간도 적당했다.
“모두에게 일러라. 완전한 밤이 찾아오면, 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존명(尊命).”
카르뤼옌이 극공경의 태도로 머리를 땅에 대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멸망이라…….’
혼자가 된 신지환은, 먼지가 되어 사라진 세계수의 잔해를 밟았다.
넘치던 생명력은 사라지고, 오직 허무한 죽음만이 남았다.
신지환은 그 감촉을 만족스러운 듯 만끽하다, 이내 걸음을 옮겼다.
방향은 남동쪽.
느긋한 걸음으로 숲을 헤쳐 나가는 그의 모습은, 마(魔)의 왕(王)이라 부르기에 충분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