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50)
550화.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니, 어쩌면 이주일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서우진은 무아지경에 빠져든 채 시간의 흐름도 잊고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았다.
머릿속을 비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주 조금의 잡념이라도 섞인다면, 동물들은 귀신처럼 그것을 알아차렸다.
덕분에 서우진은 한 마리를 사냥하고, 다시 정신을 가다듬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오래 걸린 것이었고.
하지만 다행히도 점차 빨라졌다.
한 백 마리쯤 사냥했을 때는 조금씩 감을 잡을 수 있었고, 2백 마리쯤 되었을 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5백 마리를 넘긴 지금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잊은 채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서걱-
뭔가가 베였다.
두께를 봐서는 사슴이나 물소쯤 되는 녀석 같았다.
서우진은 혼돈기에 미약한 신성력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물이 흐르듯.
본래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검을 움직였다.
이젠 검격이 아닌, 마치 검무(劍舞)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여상한 움직임이었다.
서걱- 서걱-
눈을 감고 무성의하게 휘두르는 ‘카 라니엘’의 검날에 동물들이 여지없이 쓰러졌다.
아주 작은 토끼조차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가 직접 본다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의 경지였다.
하지만 정작 서우진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검의 경지가 아득히 높아지는 것도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신성력이 혼돈기에 흡수되고 있다는 게 훨씬 더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몸속에 차오르는 충만감을 만끽하며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던 서우진은,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동시에 사라졌던 상념이 깨어났다.
‘응?’
검에 걸리는 것이 없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벤 것처럼.
아무리 서우진이 세상도 잊고, 자신도 잊은 상태이긴 했지만.
그래도 ‘카 라니엘’의 검날에 스러지는 존재의 감각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이게 대체 얼마만인지, 잠시 시력이 돌아오지 않을 정도였다.
“…없어?”
광활한 대지 위에 끝없이 늘어서 있던 동물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마리도.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끝이 났구나.”
뒤에서 마르테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무아에 빠지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조금 초췌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얼마나 지난 겁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하지만 마르테스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주지 않았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느니라.”
하긴, 그랬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보다, 그동안 무엇을 이룩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렇군요.”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신을 집중해 자신의 내면을 관조했다.
‘허허-’
헛웃음이 나온다.
혼돈기의 양은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수백 마리에 달하는 녀석들을 베어 넘기며 신성력을 흡수하긴 했지만, 그 양이 너무도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달라졌다.
양이 아닌, 그 질과 근원이.
‘세 기운이 하나가 됐어.’
마력과 마기로 이루어져 있던 혼돈기에, 신성력이 튼튼한 기둥을 세웠다.
세 가지의 기운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그것만으로도 서우진은 자신의 실력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에 드느냐?”
그런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마르테스가 물어왔다.
“엄청나군요.”
마음에 들고, 말고 할 계제가 아니다.
이건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의 거대한 변화였으니까.
특히나 마왕을 비롯한, 마기를 지닌 존재들을 상대할 때는 엄청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허면, 이제 이길 수 있겠느냐?”
주어는 없다.
하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서우진은 자신이 느꼈던 마왕의 편린과 자신의 힘을 비교해 보았다.
이전에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굳이 가늠해 볼 것도 없이, 자신의 패배가 확실했으니까.
둘 사이의 격차는 너무도 커서 감히 재보는 것조차도 허무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렇게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서우진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안 되겠군.’
서우진은 성장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마왕을 상대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불가능하다.
고작해야 힘의 일각.
그것을 감당하는 것도 버겁다.
놈의 진정한 힘이 그게 전부일 리가 없었으니, 아직은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직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서우진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엄청난 힘을 얻어 설렌 것도 잠시.
이 정도로는 턱도 없다는 걸 깨닫자,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아직이라…….”
마르테스가 그런 서우진을 바라보며,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잊은 모양이구나.”
그녀는 아공간을 열며,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소환석’.
이전에 서우진에게 선물해 주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물건이었다.
그것을 본 서우진의 눈이 커졌다.
‘아, 맞다!’
신성력에 마음을 빼앗긴 탓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또 다른 성장 방식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애초에 저걸 염두에 두고 마르테스의 뒤를 따라온 게 아니던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너에게는 한계가 없느니라.”
이전에 ‘기록하는 자’에게 들었던 말이다.
시스템을 벗어나, 한계가 없는 이레귤러.
그것이 서우진이었다.
“끝없이 성장하거라.”
마르테스는 손에 쥔 ‘소환석’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말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무언가가 소환된다.
그리고 그것은, 서우진이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였다.
* * *
권태롭다.
너무도 지루하고, 심심한 여정이다.
신지환은 심드렁한 얼굴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구경했다.
피와 살육, 죽음과 비명.
평범한 이라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신지환에겐 익숙하다 못해 평범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위기도 없고, 상대할 적도 없다.’
자신이 굳이 이 세계에 직접 올 이유가 있나?
아끼던 권속들 중 몇이 죽음을 맞이했기에, 조금은 기대했건만.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신지환은 문득 강림의 때를 떠올렸다.
‘그 아이는 꽤 괜찮았지.’
자신의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소멸을 맞이한 여자아이.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리 강한 존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죽음으로써 동료들을 지키고, 일순간이나마 자신의 공격조차 무력화시켰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는 신지환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용사라고 했던가?’
시스템이 준비한 또 다른 안배.
서로를 죽고 죽이며 변화를 촉진해 내는, 일종의 촉매제.
‘그런 녀석들이 많이 있다면 좋을 터인데.’
하지만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기대하기는 그른 듯했다.
수십만 명이 죽어나가는 지금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무료하시나이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가만히 전장을 바라보는 신지환의 감정을 읽은 것일까?
카르뤼옌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신지환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애써 감추고는 있었지만 두려움이 가득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흐음.’
본래라면 감히 허락도 없이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르뤼옌은 워낙 아끼는 권속이기도 했고, 지금은 너무 지루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실로 무의미한 행위가 아닌가?”
손가락을 들어, 허망하게 스러지는 인간들을 가리켰다.
이 세계는 정체된 세상이다.
그야말로 더는 살아갈 가치가 없는 곳.
그런데도 살아남기 위해, 저토록 발버둥을 친다.
저런다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닐진대.
무의미하고, 무가치했으며, 무용(無用)하다.
“참으로 그러하옵니다.”
카르뤼옌이 지당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지만 신지환은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재미없군.’
정말이지, 너무도 지루했다.
여기엔 조금의 관심도 더 주고 싶지 않았다.
신지환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킬 만한 존재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곳엔 없으니…….’
더 먼 곳을 뒤져서라도 찾아야겠다.
화아아아악-!
마기가 끝도 없이 퍼져 나갔다.
전장 너머, 아득히 먼 곳까지 그의 의식이 닿았다.
하지만 딱히 느껴지는 건 없었다.
고작해야 눈앞에서 죽어나가는 놈들과 별다를 바 없는 쓰레기들이 전부…….
‘음?’
그때, 뭔가 감각을 건드렸다.
‘뭐지?’
의식의 방향을 꺾었다.
아주 먼 곳.
신지환의 입장에서도 결코 쉽게 볼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장소.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
‘어디냐?’
그 존재를 정확히 느끼기 위해, 끝없이 마기를 쏟아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냈다.
‘거기들 모여 있었구나.’
눈앞의 버러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느껴졌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었다.
적어도 수십에서, 어쩌면 백이 넘을 수도 있다.
물론, 자신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지루함은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수준은 되는 듯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흠칫-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카르뤼옌이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언제나 무감정하던 신지환이 미소를 짓는 일은, 정말이지 드물었기 때문이다.
판데모니엄에서는 그의 미소를 본 자가 거의 없었다.
본 이는 대부분 처참하게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권태로움에 몸부림치던 그가 미소를 짓다니?
카르뤼옌의 입장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카르뤼옌.”
신지환이 그녀를 불렀다.
“하명하시지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카르뤼옌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이곳을 정리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아무리 늦어도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마무리가 될 것이옵니다.”
“아침 해라…….”
대충 다섯 시간 정도 걸린다는 뜻이었다.
신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앉아 있던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장이 마무리되면, 나의 자취를 따라오라.”
“그리하겠나이다.”
어디로, 무엇을 하러 가느냐고는 묻지 않는다.
왕께서 명하시니, 그저 따르면 될 뿐.
카르뤼옌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명령을 받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땐, 신지환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베니라오.”
비어 있는 옥좌를 바라보던 카르뤼옌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하늘 위에서 거칠디 거친 음성이 들려왔다.
마치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듯한, 기괴하고 소름이 끼치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카르뤼옌은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왕께서 명하셨다. 최대한 빨리 청소를 끝마쳐라.”
이건 전쟁이 아니다.
단순한 청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하겠다.”
베니라오가 사라지고, 카르뤼옌은 마기를 끌어올렸다.
왕의 명을 빠르게 수행하려면, 아무래도 자신까지 직접 나서야만 할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