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53)
553화.
확실하다.
이 세계는 착실히 종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용사들이 재앙을 막아내 줄 것이라는 희망은 꺼지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전면전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벌써 십여 명의 용사가 사망했다.
물론, 진짜 전력은 아무런 피해가 없다지만, 그건 마왕군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전쟁 초반에는 그래도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훨씬 컸다.
실제로 피해가 많긴 했지만, 그 이상의 승리를 거두었으니까.
마왕의 추종자들은 거의 지리멸렬했고, 차원을 넘어온 권속들도 모두 처리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승리에 대한 강한 확신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확신이 조금씩 다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안 좋은 쪽으로.
“전멸입니다.”
아그나의 보고에 황제가 침음성을 흘렸다.
“피해는 어느 정도더냐?”
“‘팔로타인 라세’의 북쪽 방어를 맡고 있던 네 왕국은 전멸했사옵고, 동쪽 지역의 일곱 왕국의 연합도 마찬가지 이옵니다.”
벌써 열 개가 넘는 왕국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물론, 아직 동원 가능한 병력이 소실된 수보다 많긴 했지만…….
“그 많은 전사자가 나왔음에도, 놈들의 군세는 변함이 없다는 뜻인가?”
“그렇사옵니다.”
마왕군의 기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가까스로 정보를 전해온 크루시엘 요원의 보고에 따르면, 적의 군세는 무려 400만.
제국 단독으로는 절대 막아낼 수 없는 규모였다.
“가능성이 얼마나 되느냐?”
황제가 물었다.
현재 최전방에 있는 제국의 병력은 약 150만 명에 달한다.
물론 한곳에 집결되어 있지 않고 퍼져 있긴 했지만, 전투가 개시된다면 빠른 속도로 지원이 가능한 거리였다.
거기에 각국에서 모인 초극의 강자들과 용사들까지 모여 있지 않은가?
그럼 절망적인 상태까진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그나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황제의 생각과 달랐다.
“필패입니다.”
“…필패?”
황제의 눈이 커졌다.
불리한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용사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이쪽에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필패라고?
“현재 전장에는 서우진과 마공이 자리를 비운 상태이옵니다.”
제국, 아니, 이 세계의 가장 강력한 존재를 뽑자면, 그 둘은 반드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들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다니…….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사옵니다.”
아그나가 송구스럽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젠장.’
안 그래도 요원들을 파견해, 어디로 향하는 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둘은 사라졌다.
문자 그대로 그 어떤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뭔가 단서라도 남아 있어야 추적이라도 할 텐데, 지금은 그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결국 둘의 행방을 찾는 건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함께 사라진 이유도 알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필패라는 판단이 든 모양이로구나.”
“…그렇사옵니다.”
제국군은 강하다.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병사들 역시 정예 중 정예였다.
수호자들은 어떤가?
한 명, 한 명이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벗어난 초인들이다.
거기에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 심지어 용사들까지 있다.
그런데도 승리는 요원했다.
만약 서우진과 마르테스가 있었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황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이 상황에 가정은 필요 없다.
오직 객관적인 판단과 계획으로, 일을 대비해야만 했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느냐?”
“후퇴해야 합니다.”
아그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불가하다.”
하지만 황제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선을 뒤로 물린다면, 제국의 전역이 전장의 불길에 휩싸일 테니까.
불리하더라도, 절대 전선을 이동시킬 순 없었다.
차라리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그곳에서 고착화시키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면 타국의 지원이 필요하옵니다.”
아그나 역시 그런 황제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곧장 다른 방법을 꺼내들었다.
“타국이라?”
“아이에르의 지원이 가장 절실하옵니다.”
아이에르.
그들의 대대적인 병력이 합류한다면, 조금이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성왕에게 기별을 넣도록.”
황제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사이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절대적인 적 앞에서는 1초라도 빨리 손을 잡아야만 했다.
“이미 요청한 상태이옵니다. 새로운 성왕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하옵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들어 능력에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일처리 하나만큼은 확실히 뛰어나긴 했다.
“주변국들에게도 현 상황을 알려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이 좋겠구나.”
“그리하겠나이다.”
병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적의 군세가 400만에 달한다니, 이쪽에서도 최대한 많은 숫자를 모아야만 했으니까.
“제국 내의 모든 병력 역시 수단을 가리지 말고 곧장 전장으로 보내도록.”
마법사의 게이트와 기차를 이용한다면, 순식간에 수송이 가능할 터.
아그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지원 계획을 세웠다.
그 이후로도 황제와 아그나는 몇 가지의 보고와 논의를 끝마쳤다.
“그럼 보중하소서.”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는지라, 아그나가 빠르게 알현실을 벗어나려 할 때였다.
“마지막으로.”
황제의 음성이 그녀의 발을 붙잡았다.
“하명하소서.”
아그나가 허리를 굽히며 답하자, 황제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서우진, 그 아이와 마공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에 힘쓰라. 크루시엘의 힘으로 부족하다면, 다른 조직의 힘을 빌리는 것을 허락하겠느니라.”
황제의 말에 아그나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노한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다른 조직이라니…….’
황제는 그저 효율을 위해 그리 명한 것이겠지만, 아그나의 입장에서는 크루시엘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황제의 신임이 이전만 못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그나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자존심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 하겠나이다.”
그 말을 끝으로 알현실을 벗어났다.
밖에서는 그녀의 최측근 요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합니까?”
황제와의 대화로 결정된 사항은, 이미 아그나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랬기에 크루시엘은 미리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아그나가 명을 내리기만 하면, 동시다발적으로 행동을 개시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해.”
품에서 담배를 꺼내 든 아그나가, 불을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요원이 바로 움직이려는데, 아그나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붙잡았다.
“요즘 눈에 거슬리는 정보 길드가 하나 있었지?”
후우- 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물었다.
“정보 길드… 아, 있습니다. 요즘 꽤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곳입니다.”
크루시엘은 요한의 정보 길드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규모가 너무 작았기에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그놈들한테 폐하의 이름으로 의뢰를 넣어.”
그 말에 요원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아그나의 입에서 다른 정보 조직에게 의뢰하란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도 저리 명한다는 건…….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폐하의 이름으로 의뢰를 넣으라고 하지 않은가.
그 말은 곧, 황제의 뜻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지금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반문은 하지 않는다.
황제의 입김이 닿은 명령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상, 의문을 갖는 것만으로도 불충이었다.
요원은 거의 날 듯이 복도를 달리며, 그대로 사라졌다.
“후우-”
연기가 뿜어진다.
그사이로 드러난 아그나의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자존심처럼.
* * *
“너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니라.”
서우진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응?”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이야기하는 중 아니었던가?
순간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머릿속을 정리했다.
‘‘소환석’으로 더는 레벨을 올리지 못해.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서 다른 몬스터나 마수들을 사냥하는 건 더 말도 안 되고.’
하지만 마르테스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레벨 업이 가능한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게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우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소환석’하고 비슷한 게 더 있는 겁니까?”
그러곤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건 아니니라.”
당연하게도 마르테스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런 게 있었으면 그냥 대충 설명하고 던져 주었지, 지금처럼 시간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럼 뭡니까?”
답답했는지라, 말이 조금 불손하게 튀어나왔다.
순간적으로 흠칫했지만, 다행히도 마르테스는 딱히 신경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저급한 존재 수백을 죽이는 것보다, 하나의 고위급 존재를 사냥하는 것이 더 낫지 않더냐?”
레벨 업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맞는 말이었다.
마수 수백 마리와 권속 하나.
둘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격차가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르테스는 작게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그 존재가 신의 격을 지녔다면?”
이번엔 대답하지 못했다.
신이라니?
너무 허황된 말이 아닌가?
‘당연히 그만한 존재를 사냥한다면 어마어마한 경험치가 들어오겠지만.’
애초에 그게 가능하긴 한지 모르겠다.
서우진은 지금껏 신이라는 존재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기껏해야 주신과 마테아라는 신이 지닌 힘의 파편을 느껴본 게 전부였다.
신성력.
본신의 힘도 아니고, 그들이 남겨놓은 유산에 불과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설령 직접 만날 수 있다 해도, 사냥은 불가능해.’
그게 가능한 힘이 있다면, 그냥 마왕을 때려잡았겠지.
“레벨이 엄청 오르기야 하겠지만, 현실가능성이 없는 얘기를 지금 할 이유가 있습니까?”
서우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마르테스를 바라봤다.
대체 왜 그런 얘기를 꺼내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신은 있느니라. 물론 이전의 힘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껍데기에 불과할지라도.”
그건 몰랐다.
지금 이 세계에 신이라는 존재가 강림해 있다고?
서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마르테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존재를 사냥한다면, 너는 마왕을 감당해 낼 힘을 얻을 수 있을 터. 어찌하겠느냐? 네게 신살(神殺)의 업을 쌓을 의지가 있느냐?”
신을 죽인다.
신을 밑거름 삼아,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
말은 쉽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무려 신이었으니까.
비록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존재라 할지라도.
자신의 행동이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서우진이 망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료들과 용사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인연을 맺어온 지인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김다혜.
‘그런 일이 또 일어나선 안 돼.’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고, 녀석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설령 신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해도.’
서우진이 입술을 짓씹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신을 죽인다.
그로 인한 대가는 자신이 홀로 치르면 된다.
서우진의 강한 의지를 엿본 마르테스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환희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좋구나.”
그녀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를 베어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