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54)
554화.
벤다?
무엇을?
서우진은 눈을 끔뻑이며 마르테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인형과도 같은 얼굴로 자신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을 베라는 듯.
‘뭐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신살(神殺)의 업을 쌓으라며?
대체 왜 그녀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단 말인가?
“무엇하고 있는 것이냐?”
마르테스가 조막만 한 입술을 열고 재촉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못했다.
‘잠깐 생각을 해보자.’
마르테스가 방금 전까지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렵진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은 직관적이었으니까.
덕분에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신이라고?’
눈을 끔뻑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마르테스가 말하는 신은, 본인이라는 뜻이었다.
서우진은 흠칫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초원.
한가로이 풀을 뜯어 먹던 동물들은 한 마리도 남지 않았지만, 그 평화로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길게 자란 풀들이 흔들리고,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이질적인 공간.
‘그러고 보니.’
여기가 이름 없는 신의 무덤이라고 했던가?
서우진이 다시 고개를 돌려 마르테스를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에 맺혀 있는 씁쓸한 감정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설마 이곳이 당신의 무덤입니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터무니없는 질문.
하지만 마르테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전, 나의 이름을 잃었을 때 만들어진 세계이니라.”
마르테스의 무덤은 죽음으로 완성된 장소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영락을 선택하여 이름을 잃고, 신성을 박탈당한 존재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대체 왜……?”
서우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한마디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수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질문이었다.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
왜 스스로의 영락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도대체 왜.
지금, 이 순간에 죽음을 결정한 것인지.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가 중요하더냐? 아니면 세계를 구할 힘이 중요하더냐?”
마르테스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환한 미소와 함께 온전히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뿐.
“나를 베어라. 그리하여 세계를 구할 힘을 얻으라. 이것이 나의 숙명이며, 운명일지니.”
저벅-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서우진을 향해 다가왔다.
“하, 하지만.”
당연한 소리였지만, 서우진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도움을 주었던 존재가 다짜고짜 자신을 죽이라는데 옳다구나! 하고 검을 휘두를 놈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마르테스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서우진은 뒤로 물러났다.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아-”
그런 서우진의 행동에, 마르테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의 의지는 오직 입에서 뱉어질 때만 굳건하구나.”
우뚝-
뒷걸음질 치던 서우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스스로의 목숨을 바쳐 다른 이들을 구한 아이의 복수. 동료들을 보호할 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네 입으로 말해왔던 그것은 모두 허상이더냐?”
아니다.
서우진은 고개를 젓고 싶었다.
하지만 마르테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모든 가치를 이룩하자면, 나를 베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지 못한다면, 네가 뱉었던 모든 말은 허무하게 흩어질 뿐, 절대 이룰 수 없으니.”
신살을 종용한다.
으드득하고 이를 악다물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머리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때, 마르테스가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바라는 일이니, 망설이지 말거라.”
손을 뻗어 서우진의 뺨을 어루만졌다.
“부탁이니라. 나의 이 길고 무의미한 삶을 끝내주어라.”
마음은 여전히 절대 그녀를 죽여선 안 된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 표정을 본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카 라니엘’을 들었다.
너무도 깊고 깊은 슬픔과 지칠 대로 지쳐 버린 존재의 피폐해진 감정이 가슴을 울렸다.
마르테스가 웃는다.
드디어 이 끝없고 무의미한 삶을 마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했다.
“베거라.”
‘카 라니엘’이 치솟아 올랐다.
상단세.
하늘을 꿰뚫을 자세를 취한 서우진은 마르테스의 눈을 바라보았다.
‘못 벤다.’
자신의 힘으로는 마르테스에게 죽음을 선사할 수 없었다.
아무리 레벨이 높고, 검술의 경지가 드높아진다 한들.
신의 격을 지닌 존재를 베기엔 한없이 부족했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깨달은 서우진은 자신이 가진 두 개의 성물 중 하나를 발동시켰다.
‘마테아의 징벌’.
단 한 번, 신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성물.
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드-!
혼돈기가 스며든 ‘마테아의 징벌’이 활성화되며 검에 깃들었다.
빙긋-
그것을 눈치챈 마르테스가 자상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이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을 죽여달란 부탁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을 감았다.
도저히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베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카 라니엘’을 내리그었다.
서걱-
뭔가가 베이는 듯한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아……!’
그 끔찍한 느낌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카 라니엘’은 정확히 마르테스의 가슴을 베었다.
그 예리한 검날에 베인 피부 속으로, ‘마테아의 징벌’이 스며들었다.
그 어떤 존재라도 죽일 수 있는 기운.
그것은 빠르게 마르테스의 육체를 좀먹기 시작했다.
“죄송, 합니다.”
서우진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부탁받은 일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한 행동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죄책감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고맙구나.”
하지만 마르테스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서우진을 향해 무한한 고마움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마테아의 징벌’의 힘으로 인해 전신이 붕괴되는 고통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드디어 진정한 안식을 취할 수 있겠구나.”
마르테스는 작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땅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서우진이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걱정할 필요도, 이유도 없느니라. 그저 평온할 뿐이니.”
마르테스는 그 어떤 때보다도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서우진을 바라보았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면, 하늘탑으로 가거라. 그곳에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느니라.”
하지 못한 말.
그녀의 과거사를 비롯한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거기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너와 용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도.”
서우진이 눈을 크게 떴다.
솔직히 반쯤 포기하고 있던 일이다.
마르테스가 방법을 한번 강구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그것을 알아낸 상태였다.
“내가 직접 보내주고 싶었으나, 이리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용서해 주려무나.”
“아니, 아닙니다.”
용서라니.
감사를 표해도 부족할 지경인데.
“하아아-”
숨소리가 약해진다.
서우진을 바라보던 눈꺼풀도 서서히 닫혔다.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마르테스의 생명이 완전히 꺼졌다.
무한하여 끝이 보이지 않던 마력이, 그대로 흩어졌다.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던 풀들이 자라 나무가 되고, 울창한 숲이 되고, 이내 끝이 보이지 않을 거대한 무덤이 되었다.
이름 없는 신의 무덤.
이곳은 그 이름처럼, 진정한 의미의 무덤이 되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우진의 레벨이 오르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지며 마르테스의 무덤을 오랜 시간 비추었다.
* * *
“정신차려!”
“집중해라, 집중!”
“대열 무너뜨리지 마라!”
고참 병사와 기사들의 외침이 전장을 가득 울렸다.
“후욱- 후욱-”
하지만 긴장과 두려움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너무도 거대한 적의 규모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으니까.
‘X발. 끝도 안 보이네.’
방패를 든 채, 최전방의 방어를 맡은 병사 한 명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100만? 200만?
셀 수도 없다.
한눈에 다 보이지도 않을 놈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으니, 가늠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거 이길 수 있나?’
병사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병사들과 그 너머에 있는 존재들이 보였다.
용사.
수십 명에 달하는 그들은, 평범한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저들이라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였다.
‘젠장.’
병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저 멀리 보이는 용사들의 표정 역시, 자신과 별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두려움과 긴장, 그리고 짙은 절망.
‘못 이기겠군.’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존재들조차도 패배를 직감한 얼굴이었다.
그러니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도망칠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물론 여기서 도망친다고 해서 살아남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어차피 이 전쟁에서 패한다면, 세계는 멸망할 테니까.
‘그래도 조금은 더 살 수 있잖아.’
멸망이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문득 떠올렸던 생각은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
둥둥둥둥-!
북을 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심장이 고동치는 것처럼 대지를 울리는 큰 소리였다.
‘글렀구나.’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
저 소리는 적들이 이동을 시작했다는 신호였으니까.
“대열 갖춰!”
“엉덩이에 힘 빡! 주고! 절대 밀려나지 마라!”
제국군은 몇 명이더라?
대충 150만 명쯤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거기에 타국의 지원이 속속 도착하며, 빠른 속도로 규모를 불려 나가고 있었고.
‘그래, 이길 수 있을 거야. 지금까지도 잘 막았잖아.’
도망치는 게 불가능해진 이상 죽어라 놈들을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으니, 차라리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번만 막으면 돼. 그럼 마법사들이랑 용사들이 나서서 전장을 정리할 거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둥둥둥둥둥둥둥둥-!
북소리가 빨라졌다.
그에 맞춰 심장도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놈들이 다가온다.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외형을 지닌 괴물들.
놈들은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수백만에 달하는 놈들의 돌진은,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린 막을 수 있다아아아아아!”
두려움을 떨쳐 내기 위한 고함을 내질렀다.
그리고,
인간들로선 절대 막아낼 수 없는, 압도적인 마기가 한 발 앞서 날아왔다.
‘어?’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듯한 거대한 폭발이 병사들을 휩쓸었다.
“시작인가?”
마왕 신지환.
그의 음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권태로운 표정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던 신지환이 명했다.
“단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전쟁, 아니, 학살이 시작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