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60)
560화.
마왕은 끔찍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아직 자신의 이름이 신지환이라는 것을 잊기 전.
그 처절했던 생존과 피로 얼룩진 싸움들.
하루를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죽여야 했던 적이 몇이며, 육신에 입은 상처가 몇이던가.
잠에 빠져들 때면, 항상 사신(死神)과 조우할 정도였다.
매일매일을 죽음과 함께했던 그 기나긴 시간.
그리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다.
그래서였다.
언젠가부터 동요하지 않았던 감정이 크게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잊고 있던 이름을 기억해 내며 느낀 기쁨과 당시의 끔찍했던 과거를 기억해 내며 느낀 분노.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에, 마왕 신지환은 실로 오랜만에 짜증이라는 것이 치솟아 올랐다.
그 원인을 당장에라도 파괴해 버리고 싶은 욕망도 함께였다.
손을 뻗었다.
별다른 스킬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목구멍까지 차오른 분노를 토해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위력까지 단순한 건 아니다.
서우진을 향해 투사된 마기와 맞닿은 모든 것이 소멸하고 있었다.
대기는 물론, 심지어는 이 세계의 근원인 마력까지.
마치 예리한 칼로 도려내기라도 한 것처럼, 마기에 닿은 공간 자체가 완벽한 무(無)로 돌아갔다.
—!!!!
덕분에 그 흔한 폭음조차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독하리만치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천공십이검!”
서우진이 다급히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동시에 이질적인 기운이 폭발하듯 치솟아 오르며, 허공에서 거대한 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스킬인가?”
처음 보는 종류였다.
열두 자루의 거검이라니.
이런 종류의 스킬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는 그 안에 담긴 힘도 놀라울 정도가 아닌가.
신지환은 순간 짜증스러웠던 감정이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흥미가 대신 채웠다.
‘다른 놈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정말 제법이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먼저 보낸 권속들이 왜 그렇게 속절없이 썰려 나갔는지 말이다.
저런 놈이 버티고 있었으니, 제아무리 강력한 놈들이라 해도 감당해 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신지환은 서우진을 인정했다.
그리고,
열두 자루의 거검과 마기가 충돌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힘과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이, 서로를 밀어내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키에에에에에엑-!
“피, 피해라!”
그 충돌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마왕의 군세와 제국군들이 순식간에 휘말리며,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양측을 합쳐 그 수가 무려 5만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서우진과 신지환.
그 둘은 그런 상황에 신경쓸 정신이 없었다.
‘이런 미친!’
서우진이 속으로 경악했다.
아무리 다급히 사용한 스킬이라고는 하지만, ‘천공십이검’은 엄청난 위력이 있었다.
단순 위력만으로 따진다면, 서우진의 스킬 중에서도 수위를 차지할 정도.
그런데 속절없이 밀렸다.
아니, 밀린다는 말조차도 사치였다.
마왕의 마기를 고작 1초도 막아내지 못하고 모두 부러져 나갔다.
열두 자루의 거검이 버틴 시간은 단 10초.
웬만한 도시 하나쯤은 초토화시킬 수 있는 스킬이,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크윽!”
서우진이 다시 한번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는지라 꽤 부담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콰과과과과과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마기의 파도를 향해 ‘카 라니엘’을 휘둘렀다.
이번엔 스킬이 아닌, 그저 베기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검의(劍意)는 결코 얕지 않았다.
반 슬레인과 프레이야가 직접 가르치고, 서우진이 체득한 검.
끝이 보이지 않는 깨달음이 ‘카 라니엘’을 통해 세상에 펼쳐진 것이다.
스아아아아악-!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예리하고 절대적인 참격이 쏘아졌다.
열두 자루의 거검조차 10초를 견뎌낸 것이 전부인 마기를 향해.
서걱-!
그리고 베어졌다.
신지환의 눈이 살짝 커지는 것이 보였다.
설마 고작 검 한 자루로 자신의 공격을 벨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X발.’
서우진은 속으로 욕설을 터트렸다.
손목에 전해지는 충격이 예사롭지 않았다.
‘신성력을 얻지 못했더라면 X될 뻔했네.’
마르테스의 무덤에서 얻은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신지환의 공격은 지금부터였으니까.
“검에 자신이 있나 보군.”
놈은 ‘카 라니엘’을 힐끗- 바라보고는 손을 들고 말했다.
“몰아치는 칼날.”
스킬이다.
그것도 꽤나 직관적인 이름과 효과를 지닌.
콰과과과과과과-!
마기로 이루어진 수백, 수천 개의 칼날이 이름대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서우진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 * *
‘도와야 해!’
계수지는 전장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 전에는 상황이 심각해 보여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이대로 그냥 물러날 순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서우진과 마왕의 전투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 따위는 함부로 끼어들 엄두도 나질 않았다.
‘도와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그때,
“한눈팔다니. 꽤 여유롭구나.”
싸늘한 음성과 함께, 등뒤에서 살기 어린 뭔가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흡!”
다급히 허리를 굽혔다.
스아아악-!
예리한 소음과 함께, 허리춤이 화끈해졌다.
‘검인가?’
시선을 내려 허리를 스쳐 지나간 것을 확인했다.
당연히 검날이나 마기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창인가?’
어두운 자줏빛이 감도는 기다란 창이 보였다.
창대 끝에 있는 날카로운 날에는 극한까지 응축되어 있는 마기가 서려 있었다.
‘쯧.’
속으로 혀를 찼다.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진 않았다.
다만, 위치가 좋지 않았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통증이 방해가 된다.
물론, 무리해서 움직이자면 못할 건 없었지만…….
“이제 정신이 좀 드나?”
카르뤼옌.
어느새 회수한 창을 쥔 채, 그녀가 계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네가 있었지.”
마왕의 압도적인 존재감 덕분에, 카르뤼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적은 마왕 하나가 아니다.
그 외에도 싸워야 할 수많은 적이 있었다.
‘저긴 우진 씨에게 맡겨야겠네.’
돕고 싶어도 지금으로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없는 일에 고민할 시간에 착실하게 적의 수를 줄이는 것이 낫다.
그렇게 결정한 계수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엘리트 친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경계태세를 갖춘 상태로 언제든 전투에 끼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든든하네.’
솔직히 마음에 드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리 좋은 인연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같은 편에 서서 싸우는 입장이 되니, 꽤나 안정감이 들었다.
계수지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따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그녀는 육체,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잡고, 때리고, 차고, 비틀고, 부수고…….
맨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파괴기가 그녀의 스킬에 담겨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특별히 반 슬레인이 가르쳐 준 체술까지.
“덤벼.”
계수지는 한껏 낮춘 자세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도발이었다.
물론 카르뤼옌쯤 되는 존재가, 그런 계수지의 수준 낮은 격장지계에 걸려들 리가 없었다.
그녀는 코웃음소리와 함께 창을 한 바퀴 회전시키더니, 그대로 마기를 쏘아냈다.
단, 계수지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플레임 월!”
화르르르르륵-!
기다렸다는 듯한 외침과 함께, 불꽃의 장벽이 치솟아 올랐다.
마기는 날카로웠지만, 작정하고 만들어낸 김태진의 스킬을 뚫을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콰아아아아아아-!
박진한이 거대한 탱크를 연상시키는 듯한 모습으로 돌진했고, 그의 머리 위로 드래곤이 날아올랐다.
‘나도!’
계수지 역시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카르뤼옌의 신경이 그쪽으로 분산되는 것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쿠웅-!
커다란 진동과 함께 계수지의 신형이 음속을 돌파했다.
‘돌개 차기!’
소리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계수지의 신형이 빙글- 회전했다.
그리고 발뒤꿈치가 아래에서 위로, 카르뤼옌의 턱을 노리고 치솟아 올랐다.
그제야 눈치챈 것일까?
돌아갔던 그녀의 시선이 다시 계수지를 향했다.
미미한 놀람이 서려 있었다.
아주 잠깐의 방심.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완벽한 틈을 노린 공격이었으니까.
‘아무리 권속이라 해도!’
이번엔 절대 막아낼 수 없다.
“어딜!”
카르뤼옌이 빠르게 움직였다.
횡으로 들린 창대가 발뒤꿈치의 경로를 막아선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육체와 창이 충돌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흐읍!”
생각보다 강한 위력에, 카르뤼옌의 육체가 위로 붕- 떠올랐다.
그런 그녀의 등을 박진한의 어깨가 가격했다.
으드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수지의 육체가 무기라면, 박진한의 육체는 흉기였다.
“너는 내 공격을 막았어야 했어.”
박진한이 스산한 목소리로 카르뤼옌을 비웃었다.
실제로 위력 자체는 계수지보다, 그의 스킬이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커흑!”
그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한 카르뤼옌이, 강렬한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부에 찬 공기를 토해낼 때.
드래곤이 입을 벌렸다.
“떨어져!”
임태은이 뾰족한 경고성을 터트렸다.
그것을 들은 계수지와 박진한이 동시에 뒤로 몸을 날렸다.
‘용의 숨결’.
드래곤이 가진 가장 강력한 권능이자 마법이 카르뤼옌을 향해 쏟아졌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마력으로 가득한 화염이 대지를 불태우고, 공기를 달구었다.
“딱 좋네.”
마지막으로 나선 건, ‘초열법사’ 김태진이었다.
‘용의 숨결’로 인해 적당히 달궈진 카르뤼옌을 본 그가, 손을 들었다.
“인칸데센트.”
작열하는 백열광이 터져 나왔다.
초고온의 열기를 품은 빛은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리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계수지조차도 눈을 뜨지 못하고, 열기를 피해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치이이이이이이-!
달궈졌던 대지가 용융(鎔融)되며, 붉게 타올랐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저 사이에서 절대 살아나올 수 없을 것이다.
100레벨이 넘는, A급 한 명과 S급 용사 세 명의 합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제아무리 카르뤼옌이 강력한 마왕의 권속이라 해도, 그 결과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 없…….
—!!!!!
“아아악!”
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너무 강렬한 충격파에 그녀뿐만 아니라 엘리트 친구들도 귀를 막으며 주저앉았다.
그리고 계수지는 알 수 있었다.
진짜 재앙은 이쪽이 아닌, 서우진과 마왕이 싸우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저들의 전투는, 고작 이 정도를 가지고 대단하다 자화자찬하는 게 부끄러울 수준이었다.
간신히 고개를 든 계수지의 눈동자에, 수천 개의 칼날이 세상을 쪼갤 듯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