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65)
565화.
생과 사.
승리와 패배.
전장 이곳저곳에서 이 두 가지의 결과가 연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승리.
다른 곳에서는 패배.
어느 쪽에서든 누군가는 죽었고, 희생되었으며, 심각할 정도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요른 경.”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엘프의 예민한 귀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낯이 익은 노기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젤론 공.”
트리안의 대장군, 젤론이었다.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이끌던 그가 후방의 지휘소에는 무슨 일일까?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그는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으신가요?”
요른이 물었다.
겉으로는 별다른 부상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지친 것 말고는 큰 문제도 없는 상태.
“괜찮지 않구려.”
하지만 젤론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도 무거운 음성.
그것을 들은 요른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황이 그렇게 좋지 않나요?”
후방에서 봤을 땐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권속들을 막고 있는 최정예들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군이 더 우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들은 잘 싸워주고 있던 것이다.
본진의 전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쪽은 불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선전하고 있었다.
지금껏 마왕의 군세를 상대로, 단 한 곳도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젤론의 표정을 보면, 직접 체감되는 부분이 다른 모양이었다.
“길어야 네 시간이면 무너질 게요.”
“…지금 뭐라고 하셨죠?”
네 시간?
요른은 자신도 모르게 최전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피를 뿌리며 용맹하게 적과 맞서는 병사와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처절하긴 하지만 그뿐.
어디서도 무너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에라도 방어를 넘어, 공세로 전환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정말로 진격할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병사들이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소.”
요른이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젤론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직 병력은 충분하지 않나요?”
지금도 지친 병사들을 후방과 교대하며 싸우는 중이다.
초극의 경지에 오르지도 못한 자들이 몇 시간이고 계속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쉴 새 없이 예비 병력들과 순환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던 것이다.
제국군의 병력은 무려 150만이 넘는다.
최후방에 있는 병력은, 지금도 창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한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계라니?
“체력의 문제가 아니외다.”
그런 요른의 속내를 짐작한 젤론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마기. 그 저주받을 기운이 병사들의 육체와 정신을 좀 먹고 있소이다.”
요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렇다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기에 대한 대책은 하늘탑에서 완벽하게 마련하지 않았던가?
마기를 차단하는 동패라면, 마수와 몬스터의 마기 따위는 모두 차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숫자가 부족할 리도 없었다.
하늘탑은 그것을 수백만 개나 찍어냈으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최소한 제국군은 보급받지 못한 병사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여 권속이라도 전투에 끼어든 건가요?”
아이템의 성능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마기라면, 병사들이 마기에 침식될 가능성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희박한 수준이다.
지금 권속들이 병사들을 핍박할 여유 따윈 없을 테니까.
설령 있다 해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전세를 뒤바꿀 정도의 마기를 뿜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건 아니오.”
역시 젤론은 그게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마왕.”
요른이 입을 다문다.
“그대도 그 힘을 느꼈을 것 아니오?”
젤론의 질문에 요른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아주 잠시에 불과했지만, 아직도 선명하다.
그 끔찍하고, 절대적인 힘이 말이다.
만약 서우진이 놈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 전쟁은 그 순간 패배가 확정되었을 게 분명했다.
마왕의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그 어떤 병사도 감히 무기를 휘두를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놈은 현재 이 전장에 없어요.”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 내기라도 하듯 고개를 휘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젤론이 무거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모르는 게요,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게요?”
의미심장한 물음이었다.
하지만 요른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한 젤론이 먼저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놈이 흘린 힘의 잔재가 여전히 전장을 휘감고 있소. 극히 적은 편린이라고는 하지만, 병사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중이외다.”
초극의 경지를 눈앞에 둔 요른은 몰랐다.
마왕의 흩뿌려 놓은 마기가 아직 대기 중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것이 병사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줄은.
“심각한가요?”
“지금 당장은 괜찮소. 하지만 곧 한계가 오겠지.”
젤론이 판단하기론, 그 한계가 바로 네 시간이었다.
“방법은 있나요?”
요른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병사들이 정말로 마왕의 마기에 침식이 된다면, 그때부턴 일방적인 학살만이 남는다.
마기에 저항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곤 모두 육체를 컨트롤할 수 없게 될 테니까.
가만히 서서 자신을 물어뜯는 마수와 몬스터의 이빨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을 터.
그전에 방법을 마련해야만 했다.
“나로선…….”
하지만 젤론은 고개를 저었다.
그라고 고민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에 가까웠기에 훨씬 더 치열하게 생각해 보았다.
마기의 침습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찾지 못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요른이라면…
세계수의 아이이자, 환상수 일족의 수장인 그라면 혹시 알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으음.”
요른은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바로 떠오를 리가 만무했다.
“아무래도 머리를 맞대야겠어요.”
혼자가 안 되면, 둘이서.
둘로도 안 되면, 셋까지.
같이 고민할 사람은 많을수록 좋다.
“하늘탑과 아이에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릴게요. 함께 상의해 보죠.”
네 시간.
그리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기엔 터무니없이 촉박한 것도 사실이다.
요른은 젤론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곧장 움직였다.
전장 이곳저곳에 퍼져 있는 이들을 한데 모으려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하아-”
홀로 남은 젤론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잘 끝나야 할 터인데.”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이 답답한지, 전장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너무도 어두웠다.
* * *
파아아앗-!
피가 터져 나왔다.
인간의 것과는 다른, 짙은 흑색의 끈적한 액체였다.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핏물은, 이내 땅에 떨어지며 그 자취를 감추었다.
혹시나 ‘혈종’과도 같은 이능이 발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돈 세계’를 이용해 아예 존재를 지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후욱-!”
서우진이 빠르게 호흡을 내뱉으며 손에 쥔 ‘카 라니엘’을 거꾸로 잡았다.
아래로 베었으니, 이제 위로 올려칠 차례였다.
수백 배의 중력이 가해지고 있었음에도 서우진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모두 그의 의지로 행해지는 것.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도 가벼운 움직임으로 검을 올려 베었다.
촤아아아악-!
다시 한번 피가 터져 나온다.
아쉽게도 목을 완전히 잘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괜찮다.
이번엔 허리를 반쯤 끊었으니까.
“으음-”
억눌린 듯한 신음과 함께, 신지환이 땅을 박찼다.
별다른 힘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놈은 이미 수십 미터나 이동해 있었다.
“어때? 나쁘지 않지?”
‘카 라니엘’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물었다.
이죽이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 내면에는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이 숨겨져 있었다.
‘아쉽군.’
완전히 베어버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첫 일격에 이 정도의 부상을 입혔다는 건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예전의 서우진이었다면 이런 부상을 입혔다 한들, 신지환은 눈 깜빡할 새에 회복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지.’
목과 허리가 덜렁거리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이동한 지 몇 초가 지났음에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정말 마르테스 님에게는 감사해야겠어.’
그녀의 안배로 인해 얻은 신성력 덕분이었다.
상극의 기운이 합일된 혼돈기가 신지환이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무감정하던 놈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오른 것을 보니 퍽- 마음에 들었다.
“신성력이라…….”
신지환이 손을 들어 목과 허리춤에 가져다댄다.
마기가 흘러나오며 육체를 복구하려 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도 느끼긴 했지만, 꽤나 성가신 힘이로군.”
놈이 가늘어진 눈으로 서우진을 노려보았다.
“주신의 것은 아닌 듯한데.”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힘을 가늠해 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애초에 신지환은 마르테스라는 존재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그녀의 힘은 이미 혼돈기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르겠군.”
역시나 놈은 고개를 저었다.
이 힘의 주인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관없겠지.”
하지만 신지환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심각해 보이는 듯한 치명상을 입었지만, 사실 이런 육체의 상처는 그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더욱 거대한 마기를 끌어올리자, 지지부진한 회복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눈으로 봐도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빠른 회복.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딜!”
물론, 서우진은 놈이 저대로 나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생각 따윈 없었다.
‘혼돈 세계’의 공간을 움직였다.
마치, 아니, 실제로 땅을 접어 이동했다.
신지환조차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서우진은 놈의 등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스아아아악-!
소름이 끼치는 참격이 쏟아졌다.
이전에 신지환을 베었던 것보다도 예리하고, 강력한 힘이 담긴 검이었다.
‘척추를 끊는다.’
제아무리 마왕이라 해도 신지환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척추를 잘라낸다면, 회복할 때까진 육체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서우진에게는 그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공격하고, 공격하고, 공격하고.
반격할 시간 따윈 주지 않고 놈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베어내기 위해서.
‘카 라니엘’이 놈의 피부를 가르고, 근육을 찢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감각이 손끝으로 전달된다.
‘조금만 더!’
‘카 라니엘’의 검날에서 딱딱한 물질이 닿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베어내기만 한다면…….
“내가 너무 쉽게 보였나 보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너무도 태연한 음성과 함께, 서우진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크으으윽!”
팔이 박살나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뼈가 산산이 부러진 게 맞았다.
갑작스러운 마기의 폭풍을 서우진의 육체가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재빨리 공간을 조절해 자세를 잡은 서우진이 앞을 확인했다.
“제법이긴 하다만, 아직 멀었다.”
신지환이 서우진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가슴이 시리도록 섬뜩한 얼굴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