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70)
570화.
강화.
보통 게임에서는 아이템을 더 강하게 만드는 시스템의 일종을 일컫는다.
강화를 거듭할수록 그 능력치와 옵션이 상승하고, 화려한 이펙트가 추가되기도 한다.
‘라샤스’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단 일회성에 불과하지만, 사용대상을 한 단계 성장시켜 주니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게임의 강화와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라샤스’가 성장시키는 것은, 단순한 능력치가 아니란 것이다.
물질의 격.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격을 성장시켜 준다.
게임에선 검을 강화한다고 해서 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라샤스’는 가능하다.
검이 지니고 있는 격 자체를 성장시켜,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더 강한 무기인 총이든, 아니면 미사일이든.
그렇다면 인간을 강화하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생각하자면 초인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보다 상위의 종족이 될 수도 있고.
엘프나, 드래곤 같은 존재들 말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이미 인간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필멸자(必滅者)의 극에 이르러 있다는 뜻이었다.
개개인의 무력은 성장할 여지가 충분했지만, 존재로서의 가치는 지금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라샤스’는 그런 한계를 무시하고, 서우진을 성장시켰다.
바로 불멸자(不滅者)로 말이다.
“후우우-”
숨을 내뱉었다.
딱히 변한 건 없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엄청나게 강해진 것도 아니었고, 범접하지 못할 존재가 된 것 같지도 않았다.
‘아, 이거 왠지 X된 거 같은데.’
이런 건 전혀 계획에 없던 상황이었다.
방금 전까지 신지환을 향해 똥 폼을 잡았던 것이 괜히 후회스러웠다.
‘아니, 뭐 변화가 조금이라도 있어야지.’
뭔가가 바뀐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혹시 드워프들이 사기를 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질의 격이라…….”
신지환이 괜한 눈치를 보고 있는 서우진을 향해 말했다.
“딱히 변한 건 없는 것 같다만.”
네가 보기에도 그러냐?
‘아쉽지만 나도 그래.’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비장의 수가 허무하게 사라졌으니, 허세라도 부려야만 했다.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차이가 벌어진 모양이네.”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호오.”
거짓말이었지만, 신지환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그의 눈에는,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이 범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실제로 서우진에게서 풍기는 기운이 조금 이질적으로 달라진 것도 사실이었고.
“그럼 한번 보여봐라, 성장한 너의 격을.”
‘X발.’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뭘 해야 저놈을 속여 넘길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단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겨야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대로 싸우면 필패야.’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을 때도 압도적으로 밀렸다.
그런데 지금은 고작해야 ‘마왕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 외의 수는 모조리 막혀 있었으니, 도저히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뭐하고 있는 거지?”
서우진이 가만히 노려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자, 신지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분명 너의 격을 보여보라 했을 텐데?”
“내 격은 너무도 드높아 함부로 보일 것이 아니…….”
“쯧.”
신지환의 혀 차는 소리가 서우진의 말을 막았다.
“괜한 시간 낭비를 했군.”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신지환은 약간이나마 떠올랐던 기대감을 완전히 지우곤, 천천히 걸어왔다.
“처음 이곳에 넘어왔을 때, 목숨으로 동료들을 구해주었던 아이가 너보단 백 배 나았다.”
김다혜를 말함이었다.
둘이 직접적으로 맞붙은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죽음을 선택했는지는 모두 느꼈다.
그러니 이렇게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서우진이, 더욱 하찮게만 보였다.
“너는 단순히 강하기만 할 뿐. 긍지라곤 찾아볼 수가 없구나. 나의 권속이 되라 했던 나의 제안을 모두 철회하지.”
후회스럽다는 듯 내뱉는 말에, 서우진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처음부터 그딴 제안은 받아들일 생각 따윈 없었는데 말이지.”
천천히 다가오는 신지환을 보며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완전히 회복을 한 덕분일까?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이긴 했지만, 운용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우우우우웅-
‘첫 수는 ‘지고화’로.’
조금 전에 불타오르던 마기를 본 서우진은 일단 ‘지고화’를 이용해 시야를 가리고 난 뒤 거리를 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흑암의 불꽃이라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고…….”
신지환이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을 때였다.
서우진이 기습적으로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핏-!
뭔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서우진은 인지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뭐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혼돈기조차 흐르질 않았다.
마치 마력회로가 끊긴 것처럼, 완전히 멈춰 버렸다.
스윽-
왠지 시야가 기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느낌이 아닌가?’
실제로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위아래에 있어야 할 하늘과 땅이 점차 서로의 위치를 뒤바꾸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제야 깨달았다.
방금 자신을 스쳐 지나간 것의 정체와 왜 시야가 기울어지는 것인지.
‘베였구나.’
그것도 목을 베인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혼돈기가 끊기며, 시야가 기울어질 리도 없었다.
투욱-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육체에선 그 어떤 감각도 느껴지질 않았다.
‘목이 완전히 잘린 건 아닌 거 같은데.’
목 아래로는 아무런 느낌도 없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베인 건 아닌 듯했다.
그저 척추가 끊어지며, 감각 자체만 사라진 게 분명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었다.
어차피 이 상태라면, 신지환에게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저벅-
눈앞에 신지환의 발이 보였다.
어느새 놈이 쓰러진 자신의 옆까지 다가온 것이었다.
“어쨌든 생명력 하나는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죽이려고 한 공격이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다니.”
놈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감탄이 아니었다.
오히려 차갑기 그지없는 조롱에 가까웠다.
마치 바퀴벌레라도 바라보는 듯한 말투에, 서우진은 헛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죽나?’
‘혼돈 세계’와 ‘셀레스티얼 윙’을 사용하지 못하는 서우진은 아쉽게도 신지환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마르테스의 안배도, 결국엔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덜 열심히 살걸 그랬나?
괜히 살아서 돌아가 보겠다고 아등바등한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기왕 이세계에 왔으니, 조금 즐기다 죽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실제로 용사들 중에서는 레벨을 올리기보다, 이 판타지 세계를 모험하는 것에 더욱 집중한 이들도 있었다.
물론, 나중에 용사 폐기 계획에 대해 들은 이후로는 모두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서우진도 차라리 그렇게 즐길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삶에 더는 미련 없는 듯하군.”
신지환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더 이상의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푸우욱-
검이 육체를 꿰뚫는 소리가 들려왔다.
척추가 끊어졌기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생명이 꺼져 가는 것만큼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죽어라.”
아무래도 심장이 그대로 관통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빠른 속도로 피가 흘러나오진 않았을 테니까.
마치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피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에 웅덩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신지환은 혹여나 피가 신발에 묻을까, 뒤로 물러나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전장을 향해 가는 것일 터였다.
‘안 되는데…….’
자신은 죽는다.
하지만 동료들만큼은 절대로 저놈에게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건 김다혜만으로 족하다.
더는 안 된다.
계수지, 구동환, 이지아, 진태성, 유홍설, 강병규, 박민성, 김우람.
남아 있는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약 그들이 신지환에게 죽는다면, 서우진은 죽어서도 절대 편히 쉴 수 없을 것 같았다.
‘거, 거기 멈춰.’
죽기 직전까지 신지환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져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그들이 피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면.
개처럼 기어서라도 이 망할 놈의 움직임을 막아야만 한다.
그때였다.
감겨가던 눈이 번쩍- 떠졌다.
방금 전까지 완전히 사라졌던 감각들이 빠르게 돌아오며, 통증과 함께 팔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으으윽-”
이를 악물고 땅에 손을 짚은 뒤,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멀어지던 신지환이 걸음을 멈추는 것이 보였다.
‘뭐지?’
삶에 대한 의지?
동료들을 위한 희생?
감동적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심장이 박살나고, 척추가 끊어진 이가 살아날 순 없었다.
서우진은 신지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검에 베인 목은 어느새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고, 검에 찔린 흉골과 심장도 빠르게 아무는 중이었다.
‘스킬도 아니야.’
‘마테아의 광명’은 이미 사용했다.
그렇다고 레벨이 오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라샤스.”
조금 전 서우진이 직접 자신의 육체에 사용했던, 드워프 일족의 보물.
그것 외에는 이걸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정확히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목에 흐르는 피를 닦아낸 서우진이 신지환을 보며 말했다.
“아직 갈 때가 아닌 모양이다.”
의미는 조금 달랐지만, 서우진과 신지환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
2차전, 아니, 3차전을 시작할 때였다.
필멸자의 탈을 벗고 불멸자가 된 서우진은, 그렇게 신지환을 향해 ‘카 라니엘’을 까딱였다.
* * *
“더는 버틸 수 없소!”
모히아딘이 소리쳤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병사들이 속절없이 밀리는 형국이었다.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 다섯 시간은 버텼다.
하지만 요른이 이야기했던 지원 병력은 여전히 보이질 않았다.
“지금이라도 후퇴해야만 하오!”
모히아딘은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대로는 정말 전멸이다.
더 움직일 수 없는 병사들까지 등장하고 있었으니, 더 이상 싸우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요른이 젤론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대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에르의 사제들도 모든 신성력을 소진한 뒤, 전원 탈진에 빠졌다.
더는 마기를 몰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죄송합니다.”
요른은 고개를 숙여 지휘관들을 향해 사과를 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모히아딘의 의견대로 후퇴를 했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병사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자신의 말을 믿고 기다려 준 이들이 얼마나 큰 절망감에 빠졌을지 생각하면, 고개가 아니라 무릎이라도 꿇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조차 사치다.
“전군 철수를 시작하죠.”
혹시 몰라 후퇴 계획을 짜놓긴 했으니, 그대로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미 때를 놓쳤기에 얼마나 잘 돌아갈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움직여라!”
요른의 말에, 각국의 지휘관들이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었다.
자국의 병사들을 한 명이라도 살려서 돌아가려면,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만 했다.
‘하아, 어쩌다가…….’
분명 제 시간 안에 지원 병력이 도착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도달하지 않은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겼거나, 생각보다 준비가 늦어졌다는 뜻일 터였다.
‘이젠 끝이네요.’
서우진이 마왕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내지 않는 이상은, 이번 전쟁은 패배다.
그렇게 생각한 요른이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쉴 때였다.
“아케인 캐논! 발사!”
전장의 비명을 뒤덮어버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외침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마왕군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