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73)
573화.
전장을 완전히 치우는 건 포기했다.
워낙 쌓여 있는 시체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정리하려면 하루이틀이 아닌, 년 단위의 시간이 필요할 정도였다.
결국 젤론과 요른은 병력을 후방의 요새들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물론, 전 병력이 한 곳으로 향할 순 없었다.
엘프와 드워프가 합류하며 병력의 수가 거의 300만에 달했으니까.
아무리 주민들이 피난을 떠나 텅텅 비었다고는 하지만, 그 많은 인원이 한 곳에 머무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셋으로 나뉜 병력이 후방의 도시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우진 역시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는 중이었다.
“피해가 너무 커요.”
계수지가 어두운 안색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병사와 기사의 피해는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아직 정확한 피해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20만에 달할 것이란 예측이 나왔던 것이다.
그야말로 학살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피해였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몇 명이나 죽었습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당연하지만 병력의 손실을 묻는 건 아니었다.
“스물일곱이요.”
계수지가 이를 악다물며 대답했다.
“…스물일곱.”
참담함에 말도 나오질 않는다.
단 한 번의 전투.
그것도 고작 열 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
무려 스물일곱 명이나 목숨을 잃다니.
이번 전투 이전에 생긴 피해를 아득히 넘어서는 숫자였다.
“시신은 수습했습니까?”
눈을 질끈- 감고 감정을 추스른 서우진이 다시 한번 물었다.
“가능한 분들은 수습했어요.”
그 말에 담긴 속뜻을 어찌 모를까.
“그러지 못한 분들은 유품이라도 챙겼고요.”
시신마저 찾을 수 없도록 처참하게 죽은 용사들.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그럼 몇 명이나 남은 겁니까?”
“총 59명이요.”
처음 이 세계에 소환된 용사의 수는 100명이다.
그런데 이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들의 희생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이딴 거지같은 세계가, 그들의 목숨보다도 중한가?
‘아니.’
서우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곳을 위해 죽을 바에는, 차라리 지구에서 취업과 생계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백배는 더 나았다.
최소한 서우진은 그렇게 여겼다.
‘그래도…….’
그들의 죽음을 정말로 무가치하게 만들 순 없었다.
“반드시 놈들을 막아야겠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된 일이 되지 않게.
그리고 똑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게.
10일, 아니, 이젠 9일 후에 있을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를 해야만 했다.
“도울게요.”
계수지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혜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라도.”
그래.
그 녀석을 잊으면 안 된다.
서우진은 주먹을 으스러지도록 꽉 쥐고 앞으로 걸었다.
저 멀리 제2방어선으로 예정된 전략 요새, 프레이온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기간의 성장은 힘들다네.”
반 슬레인이 고개를 저었다.
서우진의 검술이 발전할 여지는 아직 충분했다.
하지만 고작 일주일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건 무리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이 마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했다.
“프레이야 님.”
이번엔 프레이야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녀석아, 그런 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용사들에게 이 세계의 운명을 맡기지도 않았을 게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가장 믿고 있었던 두 사람에게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방법이 없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전쟁은 패한다.
지금의 서우진으로선 마왕을 이길 수가 없다.
물론, 마왕도 서우진을 죽일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만약 정말로 나를 가두어두기라도 한다면?’
자존심과 신념 때문에 한 번은 물러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귀찮아진다면, 말했던 것처럼 서우진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방법으로 무력화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이 세계를 멸망시킬 때까지만 방해하지 못하도록 가두어두기만 하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었다.
“글쎄다.”
프레이야도 답답한지 크게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방법이 생각날 리는 만무했다.
“일단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는 게 나을 것 같네.”
혼자가 안 되면 둘이, 그것도 부족하면 셋이.
고민할 수 있는 머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일단 그렇게 해야겠네요.”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에, 곧장 주요 인사들을 모집했다.
그리곤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빠르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다음 전투에서 모든 게 판가름 난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요른의 물음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왕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는 말이고?”
다에로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의자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카 라니엘’과 ‘루덴 가르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가능하단 말인가?”
“아쉽게도 그렇습니다. 이전에 지하 도시에서 받은 ‘라샤스’를 사용해서 간신히 패하는 건 막았습니다만…….”
일족 최고의 보물이 거론되자, 다에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으하하! 그것 참 다행이군.”
드워프의 보물이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다니, 기쁨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웃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닌가요?”
그런 다에로를 향해 요른이 핀잔을 주었다.
그의 말대로 아직 기뻐할 때는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전투가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어흠흠.”
다에로도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는지라,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외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부심이 차오르는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은 요른이 서우진을 바라보았다.
“마왕의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혹시 다른 용사들과 합공한다면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세계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다.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으니, 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이 달라붙어도 절대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머릿수가 많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닙니다.”
서우진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남아 있는 모든 용사와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들이 힘을 합친다면?
권속들에 의한 피해를 감수하고, 한꺼번에 놈을 공격한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답은 아니었다.
마왕, 신지환은 손짓 한 번으로 전원의 목을 베어버릴 정도의 힘이 있는 존재였다.
오직 한 명.
자신만이 살아남겠지.
차라리 그들의 힘은 지금처럼 권속들을 막아내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았다.
“그것 참 곤란하게 되었군.”
젤론이었다.
그는 어두운 안색으로 눈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마기는 신성력과 상극의 기운 아니외까? 혹시 아이에르 측에서는 방법이 있지 않으시오?”
프레이야를 향한 질문이었다.
“커다란 불은 물조차도 태우는 법이지. 불경한 말이지만, 성왕 전하께서 직접 나선다 해도 큰 힘이 되어줄 순 없을 게야.”
고대의 신인 마르테스의 남아 있는 신성력을 고스란히 흡수한 서우진조차도 고작해야 회복 속도를 늦추는 것에 그쳤다.
주신의 힘을 빌려 쓰는 정도로는, 마왕에게 그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왕과의 전투에는 나도 힘을 보태도록 하지.”
프레이야라면 다른 이들보단 훨씬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유일하게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초극의 강자였으니까.
“그런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겐 뭔가 확실한 방법이 필요해.”
싸가지 없는 말투에 좌중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예의를 갖추시게, 디아로크 공. 이곳은 레닌스탕이 아니니.”
젤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코웃음을 쳤다.
“예의는 개뿔. 지금 그딴 걸 따질 때인가?”
마력까지 끌어올리며 잡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압박한 디아로크가 요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엘프. 너희라면 뭔가 방법이 있지 않아? 그토록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니, 남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가 하나쯤은 있을 거 아니야.”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더는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왠지 그럴싸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우리 일족에도 ‘라샤스’라는 보물이 있었듯이, 엘프에게도 그런 게 있을 가능성이 크지.”
다에로가 슬쩍 나서서 다시 한번 ‘라샤스’를 자랑하며 말을 거들었다.
“으음…….”
그러자 요른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엘프에게 이만한 관심이 쏟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엘프에게 더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아요. 저희는 삶의 터전조차 잃었으니까요.”
잠시 당황했던 요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모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 명, 다에로만큼은 눈을 끔뻑이며 그의 말을 곱씹었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럼 이전에는 있었단 말인가?”
그의 의문에 요른이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의 역사는 결코 땅의 일족에 비해 부족하지 않아요.”
그런 게 존재했다는 뜻이 담긴 대답이었다.
“그럼 지금은 어딨는데?”
“잃었어요. 세계수 어머니가 품고 있었거든요.”
요른의 얼굴에 슬픔이 서렸다.
보물도 보물이었지만, 세계수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겨운 모양이었다.
“어떤 보물이었습니까?”
그때, 서우진이 나서며 물었다.
“아, 그건…….”
왜 저런 걸 묻는 것일까?
요른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서우진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세계수의 총화가 담긴 구슬이에요. 저희는 그것을 ‘리야스’라고 불렀죠.”
“능력은요?”
“존재의 뿌리를 세계에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도 전승으로만 들어서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본래는 세계수가 발아할 때 사용하는 보물이라고…….”
그 말에 서우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세계수가 품고 있다 했습니까?”
“마, 맞아요.”
갑작스러운 서우진의 행동에 요른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지금 세계수는 마왕의 강림지 내부에 있어요. 게다가 이미 생명을 다했고요.”
지금 찾아가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브리아니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전에 다크 엘프들이 섬기는 마목을 제거한 적이 있었죠.”
당시의 마목은 분명 서우진에 의해 생명력을 완전히 상실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품고 있던 신수의 알만큼은 무사했었다.
그렇다면 세계수가 죽었다 해도, 그 안에 있는 ‘리야스’는 무사할 수도 있다.
물론 마왕이 그것을 발견하고 가져가지 않았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해.’
만약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서우진의 설명을 들은 요른이 미간을 찌푸렸다.
“설령 무사하다 해도, ‘리야스’는 전투에 적합한 보물이 아니에요.”
세계수란 존재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쓰는 물건이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당장 ‘팔로타인 라세’로 출발할 기색이었다.
“왠지 쓸모가 있을 것 같거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