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77)
577화.
서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쯧.’
신지환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이야…….
권속들을 단번에 처리한 뒤 자리를 피하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10일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건가? 스스로 나의 땅에 찾아올 정도로?”
놈이 물었다.
“그럴 리가.”
서우진은 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겠군.”
신지환이 서우진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뜨끔-
왠지 놈의 시선이 품속에 있는 ‘리야스’를 향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 놈은 몰라.’
서우진이 ‘팔로타인 라세’에 들어온 이유.
뭔가 목적이 있을 것이란 정도는 짐작해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를 것이다.
혹여 뭔가를 찾으러 왔다는 것 정도는 알아차려도,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설명이 필요하겠군, 아직 약속한 때가 남아 있음에도 이곳에 온 것과 나의 권속들을 죽인 이유를.”
드드드드드드드드드-
마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아무래도 방금 전에 죽은 두 명의 권속 때문에 조금 분노한 듯했다.
“자기 부하들을 그렇게 아끼는 성격인 줄은 몰랐는데?”
“누군가가 감히 나의 것을 건드리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권속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서우진으로 인해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것, 그 정도일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
원하는 것은 얻었다.
컨디션도 그리 나쁘지 않다.
방금 전에 한바탕 움직여서 그런지, 전투의 시작과 동시에 최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리야스’가 있으니,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 굳이 약속의 날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결판을 보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서우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
압도적인 신지환의 마기에 이를 악다물고 있는 동료들이 보였다.
만약 여기서 놈과 싸운다면?
그럼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아무리 그들을 지키기 위해 애를 써도, 단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할 자신이 없었다.
죽지 않는 건 서우진이었지, 동료들은 아니니까.
그저 신지환의 드높은 자존심에 기대를 걸 수도 없었다.
싸움과 관련이 없는 자는 공격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놈이 서우진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내지 않는 이상,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동료들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으니까.
만에 하나의 확률이라 해도, 소중한 이들을 두고 모험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일단은 이 자리를 피해야겠군.’
문제는 그 방법이었는데…….
과연 신지환이 순순히 길을 터줄 것인가?
“내 물건을 좀 찾으러 왔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먼저 공격을 해온 건 네놈의 권속들이었고.”
서우진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말했다.
“네 물건이라…….”
다시 한번 놈의 시선이 가슴팍을 향했다.
“그게 뭔지 궁금하군.”
‘리야스’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물러날 기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을 이길 수 있는 비장의 수를 함부로 내보일 순 없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그날이 되면 볼 수 있을 거다.”
서우진의 대답에 신지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미소임이 분명했지만, 전해져 오는 느낌은 섬뜩할 정도로 짙은 살기였다.
“겁이 많아진 건가? 아니면 그만큼 옆에 있는 벌레들이 네게는 소중한 건가?”
‘젠장.’
확실했다.
놈은 지금 서우진의 생각을 훤히 읽고 있었다.
특히 동료들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쩔 수 없지.’
만약 싸움이 시작된다면, 곧장 도망을 치라고 해야겠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놈을 이 자리에 묶어두고, 동료들이 전장을 벗어나면 제대로…….
“좋다.”
그때, 신지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같잖은 수를 쓰는 것이 눈에 보인다만,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하지.”
놀랍게도 놈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숲을 벗어나기 위한 길을 터준 것이다.
동시에 사방을 짓누르던 마기의 영향력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허윽!”
“흡!”
순식간에 육체가 자유로워지자, 동료들이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지금까진 제대로 호흡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나 역시 아직은 네놈의 목숨을 끊어버릴 방법을 찾지 못한 터이니, 굳이 지금 다툴 필요는 없겠지.”
신지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돌아가라. 나의 자비는 여기까지다.”
그 말에 서우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놈을 노려보았다.
‘무슨 의도지?’
분명 자신들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그 어떤 위험도 없이 이 빌어먹을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은 신지환의 말을 완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냥 물러난다고?’
지금 상황은 어떻게 봐도 놈에게 유리했으니까.
여기는 마왕의 땅이었고, 놈에게는 수백만의 마수와 몬스터가 있었다.
거기에 권속들도 일곱, 아니, 방금 두 놈이 죽었으니 다섯이나 남아 있지 않던가?
그에 반해 자신들은 고작해야 아홉이 전부였다.
서우진이 신지환을 막는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이 상황을 결코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동료의 위기는 곧 서우진의 위기.
그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보면, 결국 서우진 역시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죽지 않는다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데도 놈이 순순히 물러난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 서우진의 마음을 눈치챈 것일까?
신지환이 피식- 웃었다.
“의심이 많은 놈이군.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다만.”
놈이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와 죽음의 대지에 발을 디뎠다.
마치 주인을 영접하듯, 땅은 그런 신지환을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쓸데없는 고민은 거기까지만 해라. 나는 단순히 네놈의 품속에 있는 그 물건이 궁금할 뿐이니까.”
그 어떤 적의나 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호기심? 흥미?’
놈의 눈동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게 전부였다.
정말로 서우진이 숨겨놓은 게 무엇인지 순수하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말했다시피, 아직은 네 머리를 잘라 버릴 방법이 완성되지 않았다. 하여 조금 뒤로 미룰 뿐이다.”
왠지 놈의 말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말로 믿어도 되나?’
신지환은 마왕이다.
놈의 틈을 노린 일격은, 그저 치명적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함정이라면?
이 기회에 용사들의 수를 줄이고, 서우진을 대항불능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수를 쓰는 것이라면?
‘그럼 어떡하지?’
서우진이 곧장 반응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을 때였다.
“잔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신지환이 조금 짜증난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호의를 폄훼하지 마라. 나는 판데모니엄의 지배자.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같잖은 수를 쓸 만큼 약한 존재가 아니다.”
사실이었다.
놈의 저 높은 자존심과 위치를 생각해 보면, 이딴 함정을 팔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주절주절 떠들지도 않았을 테지.
그런데도 서우진이 걱정한 건, 그만큼 동료들을 아끼기 때문이었다.
“좋아. 네 말을 한번 믿어보지.”
사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도 없었다.
서우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직 완벽하게 의심을 지운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신지환을 향한 경계심은 늦추지 않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동료들을 향해 다가갔다.
“…우진 씨.”
계수지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우진을 불렀다.
“얘기 들었죠?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아직 확신은 하지 못하겠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숲을 벗어나죠. 뒤는 돌아보지 말고, 곧장 병규의 안내에 따라서 달려요. 최대한 빠르게.”
“우진 씨는?”
“아저씨는요?”
그 말에 계수지와 이지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나도 바로 쫓아갈 거야.”
서우진도 이곳에 남아 있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아주 잠깐.
동료들이 안전해졌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만, 잠시 길을 막고 있을 생각이었다.
신지환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솔직히 적의 의도를 100% 신뢰할 순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요. 합류 장소는 병규가 지정해 놓을 테니, 거기서 보죠.”
“하지만…….”
“어서 가.”
이지아가 불안한 눈빛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려 했지만, 서우진이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서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 신지환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이지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서우진이 걱정스러웠지만, 그 역시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가자, 지아야.”
계수지의 손이 이지아를 붙잡았다.
“조금 이따 봬요.”
‘반드시’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서우진이라면 어련히 알아서 빠져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자신들의 안위부터 보살피는 게 우선이었다.
계수지를 포함해 다른 동료들은 서우진의 약점이었으니 말이다.
“가요.”
그사이 경로를 모두 찾아낸 강병규가 제일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른 동료들은 잠시 머뭇하다, 이내 그의 뒤를 따랐다.
계수지와 이지아가 마지막이었다.
둘은 시야에서 벗어나기 직전까지, 서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동료들이 빠르게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물론, 위험한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최소한 신지환은 이곳에 있으니 목숨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내가 바로 따라가면 되고.’
어차피 놈은 자신을 죽일 수 없었으니, 손해를 감수하고 움직인다면 절대 잡지 못할 것이다.
“의심이 많군.”
그런 서우진을 보며 신지환이 말했다.
“놓아주겠다 했음에도 이렇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네 말은 믿는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안일하게 대처했다가 괜한 후회를 하고 싶지 않거든.”
서우진이 조금 편해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런가?”
신지환은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그에게는 지켜야 할 동료라는 존재가 없었으니까.
죽여야 할 적이 아니면 자신에게 복종해야 할 부하들 뿐.
“잘은 모르겠다만, 왠지 알 것도 같군.”
놈의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서우진조차도 파악하기 힘든 복잡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지?”
서우진이 신지환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분명 말했다, 보내주겠노라고.”
혼돈기를 끌어올리는 서우진의 모습에 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정말로 이대로 끝이라고?”
서우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나는 한 번 뱉은 말은 지킨다. 누구처럼 일구이언하는 자가 아니니.”
서우진을 가리키는 말일 터였다.
하지만 딱히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동료들이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네 권속들을 죽인 건…….”
“상관없다. 감히 나의 명령을 어긴 놈들이니. 네가 죽이지 않았다면, 나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었다.
“물론 네 녀석도 약속을 어긴 건 마찬가지니, 그에 대한 대가는 후에 치르게 해주지.”
아마도 약속된 그날을 이야기하는 것일 터였다.
서우진은 잠시 그런 신지환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놈의 말에 진정이 가득했으니, 더는 굳이 구구절절 떠들 이유가 없었다.
“일주일 남았나?”
동료들의 뒤를 따르려던 서우진이 문득 물었다.
“그렇다.”
신지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우진은 말했다.
“그날 보자고.”
파아아아아앗-!
땅을 박차고는 순식간에 숲을 가로질렀다.
신지환의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그런 서우진의 등을 향했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