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85)
585화.
“…넌 뭐냐?”
서우진이 물었다.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묻는군.”
놈의 대답은 모호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알아들었다.
아니, 못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놈은 자신의 자아 중 하나였으니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왕’으로써의 서우진이었다.
“뭐 이런 진부한 전개가.”
내면을 관조했더니, 깊숙이 숨어 있던 또 다른 자신을 만났다.
서우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너랑 싸워서 이기면 되냐?”
그럼 각성을 통해 엄청난 힘을 지니게 되고, 뭔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 건가?
“웃기는군. 너와 내가 싸울 이유가 있나?”
“응? 원래 그런 거잖아.”
‘마왕’의 말에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으니까.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우리는 서로 싸울 이유도, 대립해야 할 필요도 없지.”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왠지 좀 아쉬웠다.
“그럼 뭔데? 여기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 거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뭐? 몰라?”
“말하지 않았던가? 너와 나는 하나다. 네가 모르는 걸 나라고 알 리가 없지.”
‘마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같은 얼굴을 한 놈이 저리 말하자,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리 와서 함께 대화나 하지.”
대화라…
“나쁜 생각은 아닌데.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지?”
어서 이곳에서 벗어나 동료들에게 가야 한다.
더 지체했다간,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동료들은 무사할 거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신지환이 조금 다친 걸 믿고 있다면, 큰 오산이었다.
놈은 더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이 세계 전체를 날려 버릴 힘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눈곱만큼의 적은 가능성만으로 안도할 순 없었다.
“모르는 건가?”
“뭘 몰라?”
서우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하자, ‘마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너 역시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건, 깊게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는 뜻이겠지.”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서우진은 잠시 고민을 해보았지만, 여전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어쨌든 우리의 동료들은 무사할 것이다.”
‘마왕’은 확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듯한데.’
저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을 속이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좋아. 동료들이 무사하다면 괜찮겠지.”
일단 대화를 나눠본다.
이 대화를 통해 격을 깨달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방법이 전혀 없으니 뭐라도 시도해 보는 게 나을 터.
“잘 생각했다. 여기에 앉지.”
대체 언제 생긴 것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허무의 공간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살짝 놀란 서우진이 머뭇거리다, 이내 ‘마왕’이 권한 의자에 앉았다.
“차나 커피는 별로 안 좋아하니 필요 없겠지?”
또 다른 자아라 그런지, 자신의 취향도 잘 알고 있었다.
“말해봐. 너는 뭐지?”
동료들이 안전하다지만, 그래도 역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가 깊숙이 묻어두었던 ‘마왕’의 자아다.”
“묻어둬?”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언제…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예전에는 ‘마왕화’를 했을 때, 미쳐 날뛰었지.”
그때의 사이코패스 같았던 자신이, 바로 눈앞의 존재라는 뜻이었다.
“네 덕에 꽤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다.”
‘마왕’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약 너와 나의 처지가 바뀌었다면, 이토록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네가 더 잘 싸울 수 있었을 거라고?”
“물론이다. 나는 그걸 위해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이니까.”
처음 ‘마왕화’가 발동된 건, 바로 여룡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였다.
“넌 너무 나약하다. 쓸데없이 정이 많고, 남을 위해 나서기에 주저함이 없지.”
그게 뭐가 나쁜가?
“네가 조금만 냉정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다.”
인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어.”
“알고 있다, 네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였다는 것을. 하지만 노력의 방향성이 틀렸다.”
‘마왕’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서우진과 눈을 마주쳤다.
“나라면 제국부터 무너뜨렸을 것이다. 사사건건 귀찮게 군 황제와 아그나를 죽였겠지.”
“뭐?”
“새로운 황제가 되어 제국의 모든 국력을 성장하는 것에 집중시켰다면? 고작 200레벨 언저리에 멈춰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친놈인가?
“왜 초극의 경지에 오른 놈들을 사냥하지 않은 것이지? 그들을 사냥하고 경험치를 얻었다면 훨씬 더 빠른 레벨 업이 가능했을 텐데?”
‘마왕’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동료들을 지키겠다고 낭비한 시간에 강해지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쓸데없는 것에 신경쓸 동안, 오직 성장에만 집중했어야 했어.”
“잠깐, 잠깐.”
‘마왕’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오직 파괴와 살육만을 저지르는 놈이란 건 알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놈은 서우진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가장 한심한 건 마르테스에게 ‘마테아의 징벌’을 사용한 것이다.”
신살(神殺)의 힘.
“그게 남아 있었더라면, 신지환 정도는 죽이고도 남았을 터. 하지만 너는 그 같잖은 정에 이끌려, 그만한 힘을 낭비하고 말았지. 어리석게도 말이야.”
이번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마르테스를 안식으로 인도하기 위해, 가장 큰 힘을 써버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마왕’의 말대로 했다면, 신지환을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놈의 목을 잘라 버렸겠지.
저토록 확신하는 태도를 보아,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기면? 좋냐?”
주위에 남아 있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지금껏 자신을 도와주었던 수많은 사람.
그들은 절대로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
“나 혼자 이기고, 혼자 고향에 돌아가서, 혼자 잘 먹고 잘살 수 있을 것 같냐고.”
절대로 아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함께 패배하고, 이곳에서 뼈를 묻는 게 나았다.
최소한 자신의 선택이 부끄럽진 않을 테니까.
“그것이 너의 생각인가?”
“그래. 나는 같은 상황이 또 온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거다.”
‘마왕’은 잠시 입을 다물곤, 서우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너로선 무리다.”
끼이이익-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마왕’이 서우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지금의 너는 신격을 획득한다 해도 신지환에게 이길 수 없다. 그러니 그 역할을 나에게 넘겨라.”
“뭐?”
“네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마. 신지환을 죽이고, 동료들을 지켜주지.”
‘마왕’의 손에서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지고화’.
그 지극히 높은 격을 지닌 불꽃은, 당장에라도 서우진을 집어삼킬 것처럼 불타올랐다.
“너는 할 수 있고?”
“물론이다. 우리는 하나이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존재이기도 하니까. 나는 너처럼 무르지 않다.”
놈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신지환을 꺾을 수 있다면?
그래서 동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거 꽤 괜찮은 제안 아닌가?’
솔깃했다.
누가 신지환을 죽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마왕’과 서우진은 하나였으니까.
“전투가 끝나면? 다시 몸은 다시 돌려주나?”
“물론이다.”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놈은 자신에게 단 한 번의 거짓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흐음…….’
잠시 고민을 했다.
확실히 전투에 관한 한, ‘마왕’은 자신보다 뛰어날 것이다.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놈은 오직 싸우고, 죽이기 위해 탄생한 존재였으니까.
심지어 싸움이 마무리되면 다시 육체의 통제권을 넘겨준다지 않은가?
서우진으로선 손해볼 게 전혀 없는 일이었다.
물론, 조금 꺼려지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컨트롤 하지 못한단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왕’은 자신이다.
조금의 불편함만 감수하면,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좋아. 그럼 네 말대로 하…….”
‘마왕’의 제안을 받아들이려던 서우진이 멈칫했다.
갑자기 왠지 모를 찝찝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뭐지?’
‘마왕’의 말은 진실이다.
몸을 돌려준다는 것도, 동료들을 지켜준다는 것도.
전부 한 치의 거짓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응? 동료?’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하고 있는 거지? 내 손을 잡아라. 그럼 끝이다. 내가 신격을 획득하고, 신지환을 죽인 뒤, 동료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이다.”
조금 전까지와 달리, 왠지 놈이 재촉하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야.”
서우진이 ‘마왕’을 불렀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내 동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반 슬레인, 아일린, 리나르, 프레이야, 디아로크 등.
그들은 동료가 아니다.
은인, 친구, 혹은 조력자.
명확히 구분을 짓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서우진은 그들을 향해 단 한 번도 동료라 부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육체의 통제권은 전투가 끝나면 바로 돌려주는 거냐?”
‘마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질문에도, 두 번째 질문에도.
그저 입을 다문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이 새끼, 나한테 사기를 쳐?”
드르르르륵-
서우진 역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앞에 놓여 있던 테이블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었군.”
‘마왕’의 얼굴에서 표정이 없어졌다.
차갑다 못해 시린 얼굴.
달콤한 제안을 할 때와는 달랐다.
“그래, 그게 원래 네 얼굴이었지.”
그 어떤 감정도 없는 냉혹한 괴물.
놈이 말한 동료들을 제외하면, 관심조차 주지 않았을 게 뻔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일지도 모르겠다.
저놈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태어난 ‘마왕’이었으니까.
“몸은 언제쯤 돌려줄 생각이었냐?”
“글쎄. 충분히 즐긴 뒤?”
“이 X새끼가…….”
서우진이 놈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신지환을 이길 수 있다는 말에, 하마터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후회스러운 결정을 할 뻔했다.
“어쩔 수 없군.”
‘마왕’은 ‘지고화’가 피어오른 손을 그대로 서우진에게 펼쳤다.
“강제로라도 빼앗는 수밖에.”
“내 이럴 줄 알았다.”
결국엔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
상황은 서우진이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전개대로 흘러가고 말았다.
‘그래,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겠냐?’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내면의 세계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서우진과 ‘마왕’ 서우진이 서로 격돌을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