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87)
587화.
불과 얼음이 만난다면 필연적으로 수증기가 피어오를 수밖에 없다.
불길마저 얼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온도였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겠지만, ‘대초열천공검’과 ‘대홍련나락가’는 거의 동급의 스킬.
끊임없이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충돌하는 과정에서 열기를 버티지 못한 얼음이 증발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치이이이이이이익-!
끓는 주전자 소리와 함께 서우진이 얼굴을 굳혔다.
‘안 보인다.’
공간에 온통 들어찬 새하얀 증기 덕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서우진은 시각의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였지만, 문제는 다른 감각들 역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혼돈기가 문제될 줄은 몰랐군.’
서로 전력을 다한 탓에 막대한 양의 혼돈기가 주변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기운에 시각은 물론이고, 청각과 촉각, 후각이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기감도 마찬가지였다.
‘마왕’의 힘은 서우진과 완전히 같았으니까.
자신이 사용한 힘과 놈이 사용한 힘을 구분하는 건 불가능했다.
‘쯧.’
어쩔 수 없다.
‘마왕’ 역시 자신과 같은 상황일 터.
조금이라도 먼저 놈을 발견하는 수밖에.
서우진이 땅을 박찼다.
팟-!
수증기를 가르며 얼음 숲을 지나 본래 ‘마왕’이 서 있던 곳에 도달했다.
‘없군.’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마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간……!’
흠칫-!
서우진이 생각을 끊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스아아아아아악-!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공간이 검에 의해 갈라졌다.
“…카 라니엘?”
너무도 익숙한 형태의 검이었다.
“피했군.”
‘마왕’의 아쉽다는 듯한 음성.
‘저긴가?’
서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음성이 들려온 곳으로 몸을 날렸다.
화르르르르르륵-!
‘지고화’.
검은 불꽃이 손길을 따라 타오르며, 허공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순간적으로 증기들이 사라졌다.
너무도 강력한 힘 앞에 주변으로 밀려난 것이다.
‘마왕’은 그곳에 있었다.
‘카 라니엘’을 들고 무심한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놈.
“내놔, 이 새끼야. 그건 내 거야.”
피식-
놈이 웃었다.
“가져갈 수 있다면 가져가 봐라.”
도발이었다.
너무도 낮은 수준의 도발.
서우진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신속!’
공간을 가로질렀다.
너무도 빠른 속도에 주변의 대기가 일렁이며 파동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렇게 앞을 가로막은 공기의 벽을 강제로 찢어발기자,
꽈아앙-!
충격파가 발생하며 서우진의 신형이 길게 늘어났다.
순식간에 음속을 돌파한 것이다.
‘마왕’이 무슨 반응을 하기도 전 서우진이 ‘카 라니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덥석-!
‘잡았다!’
‘카 라니엘’이 왜 자신이 아닌 놈의 손에 들려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놈이 먼저 그것을 빼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검이 서우진이 아닌 저 녀석을 택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되찾으면 되니까!
아직까지 불타오르고 있는 ‘지고화’의 뜨거운 열기가, ‘마왕’의 손을 불태웠다.
“으음!”
놈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손에서 힘을 빼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하게 ‘카 라니엘’의 손잡이를 쥐었다.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서우진과 ‘마왕’은 제자리에 박힌 듯 서서,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광폭.’
‘지고화’와 ‘신속’에 이어 한 가지 스킬을 더 사용했다.
조금 전 썼던 ‘대홍련나락가’ 덕분에 남아 있는 혼돈기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는지라, 순간적으로 핑 하며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어림없다.”
‘마왕’의 다른 손이 서우진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졌다.
파리를 쫓듯 성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은 막대했다.
서우진처럼 스킬을 사용하는 대신, 얼굴을 뭉개기 위해 집중한 듯했다.
‘피해야…….’
심상찮았다.
하지만 저것을 피하려면, 손을 놓아야만 했다.
으드드득-
‘그럴 순 없지!’
‘카 라니엘’은 서우진이 지니고 있는 최강의 무구다.
이게 ‘마왕’의 손에 계속 들려 있다면, 이 싸움은 명백하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다물고 머리를 내밀었다.
콰앙-!
안면이 그대로 날아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이, 이거 정말로 날아간 거 아니야?’
그 정도로 강렬한 충격이었다.
마치 ‘혼돈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사방이 일그러지며 돌았다.
뇌가 흔들린 것이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카 라니엘’을 놓지 않았다.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마왕’을 바라봤다.
동시에 ‘광폭’으로 미쳐 날뛰기 시작한 혼돈기가, 서우진의 육체능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내놔, 이 새끼야!”
‘카 라니엘’과 함께 ‘마왕’이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딸려왔다.
서우진은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해 놈을 땅에 처박았다.
완벽한 업어치기.
쿠우우웅-!
낮은 진동이 울려 퍼지며, 손이 가벼워졌다.
놈이 ‘카 라니엘’을 놓친 것이다.
서우진은 고개를 휘저으며 빠르게 균형감각을 되찾았다.
아직 얼굴이 지끈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마왕’이 일어나기 전에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기서 막아야 돼.’
망설임은 없다.
놈에게 육체의 통제를 넘기지 않으려면 지금 싸움을 끝내야만 했다.
“후우우우-”
짧은 심호흡과 함께, ‘카 라니엘’이 허공에 호선을 그렸다.
위에서 아래로.
깔끔하다 못해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완벽한 검격.
서우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검을 내리그었다.
그리고,
서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놈의 단단한 육체가 갈라졌다.
마왕을 베는 검.
그 이름처럼 ‘카 라니엘’은 다시 한번 ‘마왕’을 베었다.
* * *
싸움이 끝나간다.
이제 남은 권속의 수는 고작 하나.
“…카르뤼옌.”
계수지는 자신의 앞에 숨을 헐떡이며 서 있는 권속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이름을 불렀다.
“대단, 하구나.”
카르뤼옌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용사들을 인정했다.
“설마하니 우리를 모두 몰아, 낼 줄이야…….”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자조 섞인 음성.
계수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우리가 할 말인데.’
팀의 배분은 완벽했다.
강병규를 비롯한 지원 직업을 지닌 이들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가며 구성했으니까.
그런데도 피해가 발생했다.
그것도 무려 12명이나 되는 용사가 죽은 것이다.
‘상대를 얕본 건 우리였던가?’
카르뤼옌.
그녀는 마왕의 최측근답게 엄청난 힘이 있었다.
자신과 구동환, 엘리트 친구들로 이루어진 팀조차 끝없이 밀리기만 할 정도로 말이다.
만약 다른 용사들이 지원을 오지 않았더라면, 분명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용사들의 지원이 왔음에도,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었고.
그래도 다행히 싸움은 끝을 향했다.
며칠간 지치지도 않고 용사들을 압박하던 카르뤼옌도 더는 지쳐 움직이지 못했고, 병사들을 지원하러 간 이들을 제외한 용사들도 모두 집결했다.
이젠 그녀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절대 죽음을 피할 수 없을 터.
“원통하구나, 왕께서 이룩하실 세계를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카르뤼옌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했다.
“응, 못 봐. 네가 이겼어도 못 봤을걸?”
옆에 있던 구동환이 코웃음과 함께 대꾸했다.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죠. 마왕이 아저씨한테 개털린 모습을 보느니. 그쵸?”
이지아가 구동환의 말을 받았다.
“그치. 네 말이 맞지. 마왕이든 마신이든. 우진 씨한테는 상대가 안 되지.”
그것은 카르뤼옌을 도발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었다.
그저 바람.
서우진이 부디 마왕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카르뤼옌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감히…….”
자신의 왕을 모욕하다니?
드드드드드드-
분노한 카르뤼옌이 마지막 힘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내가 너희를 인정하기는 하나, 그것이 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끔찍할 정도로 짙은 마기.
계수지는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모두 준비해요.”
최후의 발악이다.
혼자서 무려 12명의 용사를 죽일 정도의 존재.
그런 극강의 권속이 최후의 발악을 하려 한다.
‘그게 약할 리가 없지.’
어쩌면 지금까지의 싸움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
계수지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뒤에 선 용사들도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남아 있던 모든 힘을 바닥까지 긁어모았다.
‘이번 한 번만 막아내면 돼.’
카르뤼옌은 한계다.
이게 그녀가 쏟아낼 수 있는 마지막 공격이다.
그러니 단 한 번.
이번에만 막아낸다면 승부가 갈릴 것이다.
끝없이 팽창하는 마기를 바라보며, 계수지가 이를 악다물었다.
자신의 생명력까지 모조리 불태우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나의 존재를 걸고, 너희를 왕께 바쳐야겠다. 비록 죽음을 피할 수 없겠으나 이 정도면 흡족해하시겠지.”
세상 전부를 뒤덮을 것만 같았던 마기가 어느 순간 멈추었다.
적막.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니 죽어라.”
카르뤼옌의 입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광대하게 펼쳐졌던 마기가 모조리 흑색 창으로 화했다.
‘만? 십만?’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계수지는 물론이고, 강병규조차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막아요!”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피해선 안 된다.
그랬다간 아직 전투를 이어가고 있는 병사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테니까.
그러니 반드시 모두 막아내야만 했다.
“풀 매그넘 블로우!”
“선 버스터!”
“후예사일!”
“철의 거인!”
용사들이 각자가 지닌 최강의 스킬들을 허공에 퍼부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흑색 창과 전력을 다한 용사들의 힘이 충돌했다.
천지개벽(天地開闢).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히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흑색 창은 마치 검은 비처럼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고, 용사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처절하게 움직였다.
“으으으윽!”
계수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육체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한 압박감에,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은 것이다.
‘멈춰선 안 돼!’
조금이라도 틈이 생긴다면, 그야말로 참사가 벌어진다.
결코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압!”
기합과 함께 그녀의 육체가 춤을 춘다.
“미르 나예.”
계수지는 한 마리의 용이 되었다.
그녀의 춤사위를 따라 유연한 용의 자태가 주변을 휘감았다.
부드럽지만 압도적인 힘.
천천히 회전을 거듭하던 그녀의 힘이 허공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잔잔한 바람에서 폭풍으로.
폭풍은 이내 거대한 회오리로.
하늘과 땅이 연결되며, 쏟아져 내리던 검은 비를 몰아쳤다.
“용오름.”
계수지의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용이 승천했다.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파괴력을 지니고.
“너나 죽어.”
그녀의 시선이 카르뤼옌을 향했다.
“감히……!”
카르뤼옌이 눈을 뜨며 소리를 치려는 찰나.
계수지의 신형이 그쪽으로 향했다.
콰자자자자자자자자자작-!
용의 승천을 견디지 못한 카르뤼옌의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피와 살점, 그리고 흐트러진 마기까지.
역겨운 향기를 풍기는 카르뤼옌의 잔해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