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88)
588화.
서우진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밑에는 가슴이 베인 ‘마왕’이 누워,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내가 이긴 건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서로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태가 되어서야, 승부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벌써 끝이라고?
물론, 쉬운 싸움인 건 아니었다.
전투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서우진은 그 짧은 순간에도 자신의 혼돈기를 모조리 쏟아부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도 허무하게 결판이 났다.
“너 뭐냐?”
가만히 누워서 위를 바라보고 있는 ‘마왕’에게 물었다.
“네가 이겼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서우진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이기고 자시고. 뭔데 이렇게 쉽게 쓰러지냐고.”
심각한 부상을 입긴 했다.
‘카 라니엘’에 가슴이 완전히 갈라졌으니까.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없는 상태냐고 묻느냐면…….
‘그건 또 아니지.’
서우진은 저것보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싸운 적도 많았다.
죽음을 각오하고, 절대 쓰러질 수 없다는 일념만으로 버틴 것이다.
‘마왕’ 역시 그러할 터다.
놈은 자신이었으니까.
그런데 움직이지 않는다.
단순히 쓰러져 있는 것을 넘어, 더는 싸울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네가 더 강했을 뿐. 그것이 전부다.”
갑자기 해탈이라도 한 것일까?
“뭔 개소리야.”
서우진이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끈적끈적한 피가 묻어 나왔다.
생각했던 것처럼 안면이 완전히 날아간 건 아니었지만, 짓뭉개진 것만큼은 확실했다.
“너랑 나는 같아. 그러니 이 정도로 싸움을 포기할 리가 없어. 무슨 수작이야?”
‘카 라니엘’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냥 이대로 목을 베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찝찝했다.
마치 화장실을 갔다가 제대로 처리를 하지 않고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건 없다. 그저 네가 이겼고, 나는 패배한 것일 뿐.”
‘마왕’은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서우진. 네 힘은 나와 완벽하게 동일하다. 혼돈기, 경험, 스킬까지.”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찝찝한 것이다.
그런 놈이 이토록 쉽게 패배를 인정했으니까.
“하지만 너와 나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게 뭐지?”
서우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궁금함보단, 혹시 또 뭔가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의지.”
“뭐?”
이건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아주 사소한 부분이지. 동료들을 비롯한 떨거지들을 살리고 싶다는 것이니까.”
“음…….”
그건 맞다.
애초에 ‘마왕’에겐 그들을 살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지 않던가?
“나의 욕망보다 네 바람이 더 컸다는 뜻이겠지. 그것이 너와 나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서우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마왕’을 내려다볼 뿐.
“애초에 이 싸움은 내게 승산이 없었다. 나는 그저…….”
놈의 무심한 눈동자에 씁쓸함이 깃들었다.
“네 녀석의 발판이 될 운명이었던 것이지.”
‘마왕’의 음성이 차츰 작아졌다.
치명적이긴 해도, 당장 죽을 만한 부상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놈은 빠르게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서우진, 네 의지는 알았다, 비록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만.”
‘마왕’이 팔을 들었다.
잘게 떨려오는 팔.
“어쨌든 이긴 건 너다.”
놈의 손바닥이 서우진의 몸에 닿았다.
스으으윽-
‘마왕’의 육체가 사라졌다.
마치 흡수되듯, 서서히 옅어지며 서우진을 향해 끌려 들어왔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마. 다시 패한다면, 그땐 내가 나서게 될 것이다.”
놈의 존재가 사라졌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우진과 합일(合一)되었다.
‘마왕’과 용사.
두 개로 나뉘어졌던 자아가 하나로 합쳐지자, 갑갑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동시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어렵군.”
신지환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서우진이 남긴 이 거대한 공간은, 신지환이 떠올린 그 어떤 방법으로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으득-
벌써 며칠째던가?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조급함 따위의 같잖은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딴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자존심.
왕의 격을 갖추고, 판데모니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이후부터 지금까지, 그가 원해서 이루지 못한 건 없었다.
오직 하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빼곤 말이다.
그런데 고작 용사 하나가 만들어놓은 결계조차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지환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었다.
“쯧.”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마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힘으로 부딪혀 볼 생각이었다.
한바탕 스트레스를 풀면, 머리가 돌아갈 것 같았다.
우우우우우웅-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광대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이 커다란 공간 자체를 순식간에 채울 정도의 마기.
신지환은 그 압도적인 힘을, 그대로 폭발시켰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마치 세상에 종말이라도 찾아온 것 같은 광경.
대륙 하나쯤은 가볍게 소멸시킬 수준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혼돈 세계’는 멀쩡했다.
그 가공할 폭발조차, 혼돈에 휘말려 그 힘을 잃고 허무하게 흩어졌다.
신지환은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이 정도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혼돈이 폭발을 집어삼킬 때.
붉은 검이 움직였다.
서우진에게 죽음을 선사한 기운을 품은 채.
화아아아아악-!
빛의 속도가 이러할까?
신지환의 검은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할 가공할 속도로 공간을 베었다.
지익-
뭔가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지환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방금 전에는 손에 뭔가 걸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확실히 이 빌어먹을 공간에 흠집이 생겼다.
‘몰아친다.’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또 기약 없는 감금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종말검.”
세상의 끝을 알리는 검이 쏘아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틈을 향해.
쩌어어어어억-!
신지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침내,
이 빌어먹을 공간이 찢어진 것이다.
“이제 나가야겠군.”
‘혼돈 세계’는 그의 생각보다도 강했다.
완벽한 틈을 노려, 세계에 멸망을 가져올 정도의 스킬을 사용했음에도 고작 틈을 벌리는 게 고작이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어쨌든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까.
이미 죽어버린 놈의 방해로 시간을 낭비하긴 했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혼돈 세계’를 벗어나는 즉시, 이 세계를 파괴하라는 퀘스트를 완료할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자.’
판데모니엄이 아닌, 지구로.
솔직히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기억이 많이 남진 않았다.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까닭이었다.
지구에서의 삶보다 판데모니엄에서 살아온 기간이 몇 배나 더 길었으니 당연했다.
지금 신지환에게 남아 있는 건, 그저 향수.
피로 점철된 이 지긋지긋한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퀘스트부터 끝내야겠지.”
신지환이 천천히 한 발 앞으로 내디딜 때였다.
“어딜 가려고?”
지금 들려와서는 안될 음성이 등뒤에서 들려왔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은 신지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였다.
분명히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 사라졌던 서우진이,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모습이 말이다.
“…살아 있었나?”
이해할 수가 없다.
서우진이 지닌 불사의 능력을 깨트려 버릴 힘이다.
절대로 되살아날 수 없다 확신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다시 살아났네. 설명해 달라고는 하지 마라. 솔직히 나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든.”
가볍다.
자신을 앞에 둔 존재라고 보기엔, 그 태도가 한없이 경박하고 가벼웠다.
마치 자신이 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신지환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명은 필요 없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죽이면 될 터.
다시 부활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으니, 이번엔 그사이에 퀘스트를 끝내면 될 일이다.
붉은 기운이 치솟아 오르며, 마기와 뒤섞인다.
“그거 다시 쓰려고?”
서우진이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뭐지?’
저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설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너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이젠 안 통해. 그 시뻘건 거.”
투욱-
서우진이 움직였다.
발끝으로 살짝 허공을 박찼다.
“어딜……?”
놈이 움직이는 경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신지환이 멈칫- 하며 눈을 부릅떴다.
서걱-!
뭔가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뜨끔한 통증이 밀려왔다.
신지환이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검을 든 팔이 잘려 나간 것이다.
“어때? 내가 좀 달라졌지?”
서우진이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여주마.”
가라앉았던 흥분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 * *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네.’
서우진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의 격인지 뭔지.
‘마왕’을 죽이며,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뭔가를 얻은 모양이었다.
내면의 세계를 빠져나와 현실의 ‘혼돈 세계’에 돌아온 걸 보면 말이다.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되었던 육체도 완벽하게 복구가 되어 있어, 살짝 어안이 벙벙하던 사이.
신지환이 ‘혼돈 세계’를 가르고 밖으로 나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일단 막아섰다.
‘이길 수 있을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는 마의 왕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마왕’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했었고.
하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지환은 정말로 강해졌으니까.
솔직히 뭐가 변했는지 체감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방심한 틈을 타 팔 한 쪽을 잘라내긴 했지만, 그건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신지환의 괴물 같은 회복력은 순식간에 팔을 회복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해야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마왕’이 말했던 것처럼, 여기서 이기지 못한다면 그땐 정말 끝이었다.
서우진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신지환을 보며 가슴이 떨려왔다.
하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짓곤 손가락을 까딱였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놈의 신형이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쇄도했다.
‘빠르다!’
‘마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뭐지?’
분명 신지환의 움직임은 빠르다.
제대로 반응하는 게 힘들 정도.
그런데도 서우진은 아무런 위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너무도 자연스럽게 옆을 향해 한 걸음을 옮길 뿐.
그것이면 충분했다.
스아아아아아아악-!
신지환의 검을 피하기에는.
“빗나갔네?”
그렇다면 이번엔 자신의 차례였다.
‘카 라니엘’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올랐다.
서걱-!
다시 한번 절삭음이 들리며, 놈의 팔이 허공에 떠올랐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치켜 뜬 신지환을 향해, 서우진이 말했다.
“이게 되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