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94)
594화.
아그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본래 존대했던 서우진의 바뀐 말투도 거슬렸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내용이다.
“…방금 뭐라고 했지?”
“네가 그걸 알아서 뭐하냐고.”
적대적이다.
굳이 정보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왜지?’
서우진과의 사이는 처음부터 그리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러 일이 있었고, 감추고 있는 속내도 따로 있었으니까.
농담으로라도 친구라 부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놓고 적대감을 표출하지는 않았었다.
태도가 바뀌었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설마?’
잠시 머리 한 구석에 밀어두었던 일이 떠올랐다.
제국의 신궁에 숨겨져 있던, 절대 유출되어서는 안 될 자료가 도둑맞은 사건.
아그나는 그 범인이 서우진일 것이라 의심했었다.
강림 전쟁이 발발하며 어쩔 수 없이 뒷전으로 미루긴 했지만, 그 사건은 절대 그냥 잊을 수 없는 중대한 일이었다.
‘이놈이 범인이라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
왜 지금까진 몸을 낮추고 있다, 갑자기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역시 너였군.”
후우-
왠지 뿌연 담배 연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서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자신들을 포함한 제국을 적으로 돌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벅-
“이제 와서 진실 공방을 하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 것도 우습고.”
아그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말하며 뒷짐을 졌다.
그러곤 빠르게 수신호를 보냈다.
아주 간단한 뜻을 지닌 동작.
‘신호하면 곧장 후퇴.’
요원들은 그것을 확인하곤 언제든지 발을 뺄 준비를 했다.
“그러니 다른 것을 물어보겠다. 마르테스는 어디 있지?”
서우진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과 동시에, 본래의 임무인 마공의 거취를 찾기 위한 질문이었다.
“너흰 못 찾아.”
다행히 서우진은 대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원하던 내용은 아니다.
“못 찾는다고? 왜지?”
그녀가 사라진 건 강림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점이었다.
그런 와중에 어디 먼 곳으로 떠나진 않았을 것이다.
마르테스는 자신이 맡은 바를 행하지 않고 잠적할 정도로 무책임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찾지 못할 상황이라면 뭐가 있지?’
서우진의 표정을 보니 크루시엘이 찾지 못할 것이라 믿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확신할 정도라면…….
“설마, 죽인 건가?”
마르테스의 마지막 행적은 서우진과 함께 어디론가 움직인 것이다.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서우진은 눈앞에 있었고.
용사 폐기 계획이 그의 손에 들어간 게 사실이라면, 서우진이 마르테스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타당했다.
“그래.”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1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뭐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의심을 하는 것과 기정사실이 되는 건 천지차이다.
서우진이 제국의 수호자 중 한 명이자, 하늘탑의 탑주이며, 세계 최고의 마법사를 죽였다고 시인한 것이다.
알지 못했다면 모를까, 들은 이상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서우진 역시 마찬가지일 터!
“퇴!”
아그나가 짧게 소리치고는 뒤로 몸을 날렸다.
방금 전에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들어 당황하던 요원들도 재빨리 하늘탑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 둔 상태였기에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빠져나가야 해!’
이곳에 수십 명의 요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서우진은 용사다.
그것도 마왕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 괴물.
고작 요원들 정도로는 몇 초 버티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그나는 그 잠깐의 사이 동안 안전한 곳까지 피신해야만 했다.
촤아아아아아아악-!
핏물이 범람했다.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동시에 사방으로 몸을 날렸던 부하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채 몸이 갈라져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아그나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핏줄기에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확인했다.
살아 있는 요원은 아무도 없었다.
단 일 검.
고작 한 번의 공격에 모든 요원이 절명한 것이다.
찰박-
서우진이 핏물이 고인 웅덩이를 밟고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른침을 삼켰다.
요원들이 서우진을 막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바란 건 아주 잠깐의 틈.
그러니까 1초 정도 시간을 벌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사이 하늘탑을 벗어나 귀환마법 스크롤을 사용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은 그 짧은 찰나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아그나는 하늘탑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다.
“자, 잠깐!”
평소의 냉철함과 이성적인 사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당혹과 서우진을 향한 두려움.
“거래하자!”
“…거래?”
어느새 그녀의 바로 뒤까지 도달한 서우진이 조용히 물었다.
“용사 폐기 계획! 그걸 전면 백지화시키겠다! 폐하께서도 나의 청이라면 들어주실 것이야!”
“그게 전부야?”
“궈, 권력을 보장하마!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무소불위한 권력을 안겨줄 수 있다!”
그 대답에 서우진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역시 돌려보낼 방법 따위는 처음부터 없던 거군.”
마르테스에게 이미 듣긴 했다.
하지만 아그나에게 직접 들으니, 다시 분노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해보아라! 나와 크루시엘의 힘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가능하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국의 뒤에서 온갖 음모와 조작을 획책하던 아그나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문제라면…….
“필요 없어.”
서우진이 원하는 건 따로 있다는 것.
“집에 돌아갈 방법은 네가 아니더라도 찾을 수 있으니, 그냥 죽어라.”
“잠깐-!”
서걱-
아그나의 머리가 허공에 날아올랐다.
한 시대를 풍미한 거대한 권력자치고는 너무도 초라하고 허무한 최후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아무런 감흥도 없는 표정이었다.
고작 아그나 따위를 처단한 게 무슨 대수라고.
진짜 흉수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고작해야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다.
서우진이 하늘탑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저 멀리 거대하고 웅장한 건축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신궁.
황제가 기거하는 장소이자,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저쪽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게 좋겠군.’
아그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면, 황제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괜히 신지환과 대화를 나눈다고 시간을 허비하다 뒤통수를 맞느니, 먼저 일을 처리하는 게 나았다.
서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허공으로 떠올라, 신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쐐애애애애애애액-!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신궁의 앞에 도달했다.
“누구냐!”
“검은 존재?”
신궁의 수호를 맡고 있던 근위기사단이 서우진의 모습을 발견하곤 눈을 부릅떴다.
여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는데, 그게 소문의 그 ‘검은 존재’라니?
기사들은 경악과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적이다!”
“경보를 울려!”
순식간에 신궁이 소란스러워졌다.
“적이라…….”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적으로 온 게 맞았으니까.
“비켜요, 죽고 싶지 않으면.”
하지만 서우진의 진짜 적은 기사들이 아니다.
애초에 그들은 용사들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존재들이었다.
용사 폐기 계획 같은 일은 알지도 못했으니까.
그저 명을 받은 대로 신궁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서우진은 그런 이들의 목숨까지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무장을 해제하고 순순히 우리를 따라라!”
물론, 기사들은 서우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하아-’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서둘러야겠군.’
이미 황제는 자신의 방문에 대한 보고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도망을 갈 수 없도록.
“나중에 원망이나 하지 마세요.”
움직였다.
마치 느리게 흘러가는 세상을 유영하듯, 서우진은 기사들이 인지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움직였다.
툭- 투툭-
그러면서 한 명씩 슬쩍 건드렸다.
아주 작은 충격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고작해야 중, 상급 기사들을 무력화시키기에는 말이다.
눈 한번 깜빡이는 것보다 짧은 찰나.
서우진은 기사들을 스쳐 지나가며, 신궁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콰과과과과곽-!
서우진을 향해 달려들던 기사들이 쓰러졌다.
육체를 감싸고 있던 갑주가 형편없이 구겨진 채로 말이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기사를 때려눕힌 서우진은 땅을 박찼다.
쿠웅-!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기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방어 마법진이 발동하지 않았네.’
1분 1초라도 줄이고 싶은 서우진에겐 다행이었다.
“막아라!”
뒤늦게 달려오던 기사들이 막으려 했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무리였다.
채 접근도 하기 전에 서우진은 이미 사라진 뒤였으니까.
200레벨이 넘는 용사의 속도를 따라잡기엔, 기사들의 능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성문을 뚫고 들어간 지 고작 십여 초.
서우진은 그사이에 신궁의 본궁에 들어섰다.
‘어디 있을까?’
‘신룡안’을 발동했다.
이곳으로 집결하는 수백 명의 병사와 기사들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우진이 찾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오직 한 명.
‘저기 있군.’
황제뿐이었으니까.
서우진이 다시 한번 땅을 차고 날아올랐다.
황제의 위치를 찾았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도망가는 건가?’
황제의 노쇠한 마력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달리는 게 아닌, 마법이나 기계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의 움직임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빨랐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기사는 물론이고, 최상급 기사가 전력으로 달리는 것보다도 빨랐다.
그러니 분명 다른 도움을 받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애쓰네.”
서우진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굼벵이나 달팽이나, 그게 그거였으니까.
피잉-!
대기를 가르며 황제를 향해 다가갔다.
중간 중간 앞을 가로막는 기사들이 나타났지만, 모두 무시했다.
그들로선 서우진을 결코 멈춰 세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시 십여 초.
서우진이 멈춰 서며 입을 열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십니까?”
놀랍게도 황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혼자서 달리고 있었다.
주위의 마력 흐름이 심상찮은 것으로 봐선, 마법 아이템이라도 갖고 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서우진이 길을 막고 섰으니까.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멈춰 세우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꽤 빠르시네요. 좋은 거라도 많이 드셨나 보죠?”
서우진이 그를 비꼬았다.
“예를 갖추거라.”
이 와중에도 황제는 서우진을 꾸짖었다.
“짐은 제국의 황제이니라. 그러니 마땅히 머리를 조아리고 예를 갖춰…….”
“까고 있네.”
서우진은 턱을 들고 그런 황제를 내려다봤다.
“죽고 싶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