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595)
595화.
가식적인 예의는 벗어던졌다.
이제는 그런 걸 갖출 필요와 이유가 사라진 상대였으니까.
눈앞에 있는 황제는 서우진의 적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있었을 뿐, 강림 전쟁이 끝난다면 언제든 용사들을 용도 폐기할 생각만 하고 있던 적.
지금까지야 필요에 의해 머리를 숙였지만…….
“감히!”
황제가 노호성을 터트렸다.
마력은 쥐뿔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제국의 유일한 지배자답게 엄청난 존재감을 풍겼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벌벌 떨었겠지.
물론, 서우진에게는 해당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스르릉-
‘카 라니엘’을 뽑았다.
동시에 거짓말처럼 황제가 입을 다물었다.
주위엔 단 한 명의 호위기사도 없었다.
오직 황제 혼자서 서우진을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게 가능할까?
‘어림도 없지.’
황제가 수천, 수만 명이 달려든다 한들, 서우진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은 이 늙은이 역시 잘 알고 있을 터.
그렇기에 입을 다문 것이다.
“아그나는 죽었어.”
‘카 라니엘’의 날 끝을 황제의 턱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하지만 별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건 아닌 듯하고, 아무래도 아그나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다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하긴, 지금 누굴 걱정할 때가 아니긴 하지.’
자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이다.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더냐?”
황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와중에도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를 보니, 과연 제국의 지배자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안 무사하면? 나를 막을 방도는 있고?”
호위 기사들을 부른다고 해도, 이곳까지 도착하려면 최소한 몇 분은 걸릴 것이다.
그사이에 황제의 목 정도는 수백 번을 날리고도 남는다.
아니, 그들이 온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황제를 호위하는 이들인 만큼 실력이 뛰어나기야 하겠지만, 기사들로선 서우진의 힘을 1초도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설마 내 등 뒤에 있는 놈을 믿고 있는 건 아니지?”
서우진이 웃으며 말하는 것과 동시에, 허공에서 검이 나타나더니 뒷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웬만한 기사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기습.
하지만 서우진은 처음부터 몸을 감추고 있는 암중 호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리나드와 같은 이능의 소유자.
예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었기에 그를 감지하는 건 너무도 쉬웠다.
스윽-
고개를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검격을 피해냈다.
“넌 조금 자고 있어라.”
평생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오직 황제의 그림자로만 살아온 존재다.
굳이 죽일 필요성까진 느끼지 못했다.
투욱-
관자놀이에 충격을 줘, 기절시켰다.
털썩- 하며 황제의 앞에 쓰러졌다.
“더 준비한 거 있습니까?”
눈을 부릅뜨고 있는 황제를 보며 물었다.
“남은 게 있으면 다 꺼내보세요. 괜히 아끼다 똥 될 수도 있으니까.”
단순히 조롱하기 위해 꺼낸 말은 아니었다.
황제에게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절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 의도를 눈치챈 것일까?
황제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분노한 것이다.
“후회하게 될 것이니라.”
이를 악다물며 씹어뱉듯 말했다.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부러 존대와 하대를 번갈아가며 신경을 긁어댔다.
그러자 황제는 빠르게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막으려면야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지만, 그냥 가만히 두고 봤다.
무슨 방법을 쓸지 궁금했으니까.
황제가 꺼내 든 것은 돌돌 말려 있는 양피지였다.
‘스크롤?’
제작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아, 하늘탑에서도 몇 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다.
기껏해야 1년에 대여섯 장이 전부일까?
당연히 그만큼 귀하고,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황제다.
제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한들, 그가 원한다면 가질 수 있었다.
문제는 저 스크롤에 어떤 마법이 저장되어 있느냐는 건데…….
‘설마 귀환인가?’
그럼 좀 곤란하다.
이 자리에서 빠져나간다면 찾기가 꽤 귀찮아질 게 뻔했으니까.
‘빼앗아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황제가 스크롤을 찢으며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이곳으로 오너라!”
화아아아아아악-!
빛과 함께 강대한 마력이 주변으로 터져 나왔다.
다행히 텔레포트나 귀환 따위의 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누군가를 이곳으로 불러오는 소환이었던 것이다.
‘카 라니엘’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면, 굳이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빛이 사그라졌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는 이곳에 없던 존재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인원은 총 세 명.
하나같이 막대한 마력을 품고 있는 강자들이었다.
“하하…….”
하지만 서우진은 그들을 보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호자들.
영원한 안식에 든 마르테스와 전쟁에서 사망한 카론을 제외하고, 남아있는 세 명이었던 것이다.
“수호자들은 저 간악한 놈을 처단하라!”
황제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서우진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 셋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을 터.
그사이에 몸을 피하면 된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무, 무엇하는 게냐? 당장 저 악도를 처단하지 않고!”
움직이는 수호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검공 다리엘과 암공 스트레인의 영혼에는 ‘낙인’이 찍혔으니까.
그 둘은 서우진을 공격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아니, 적대적인 마음을 먹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랬다간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부터 불타오르는 고통을 느낄 테니까.
거기에 대공인 브리아니는 서우진의 편이었다.
‘낙인’ 같은 족쇄가 걸려 있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폐하, 저는 저 아이를 공격할 의사가 없나이다.”
브리아니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황제에게 말했다.
“무, 무어라?”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황제가 눈을 부릅떴다.
“송구하오나 저희 역시 명을 받들 수 없사옵니다.”
다리엘과 스트레인이 고개를 숙이며 브리아니의 옆으로 물러났다.
황제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일 터였다.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서우진이 손짓하자, 세 수호자는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옮겼다.
“허, 허허-”
황제가 헛웃음을 흘렸다.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던 존재들이, 알고 보니 상대의 것이었다.
그만큼 허무하고 어이없는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괜찮니?”
가까이 다가온 브리아니가 조용히 물었다.
“네, 저는 괜찮아요.”
“…고생했어.”
“뭘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녀는 전장에서 서우진의 모습을 몇 번이나 봤을 것이다.
자신의 뒤통수를 치려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가며 싸운 용사들.
브리아니는 그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에 얼굴도 들지 못했다.
“이제 곧 끝날 거예요.”
서우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이고는, 황제를 바라봤다.
“이젠 더 없나 봅니다?”
황제가 지닌 최강의 무기가 무용지물로 돌아갔으니, 더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터.
서우진은 이제 그만 이 상황을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저벅-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황제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위엄 넘치고 충만한 존재감을 뽐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서우진의 행동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추악한 늙은이의 생존본능이 고개를 들었다.
“머, 멈추어라. 거기 멈추라고 하지 않았느냐! 돈? 돈을 원하느냐? 얼마든지 주마! 공작의 직위는 어떠하냐? 제국이 네 손에 들어오는 것이니라!”
뒤로 물러나며 쉴 새 없이 소리쳤다.
하나같이 살려달라는 애원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혹여나 일말의 동정심에 놈을 살려둔다면, 반드시 후회하고 말 테니까.
“그, 그래! 용사 폐기 계획! 그것을 백지화시켜 주겠노라! 그리하면 굳이 나를 죽이지 않…….”
거기까지 말을 하던 황제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뭐지?’
혹시 자신의 죽음을 막을 만한 다른 방법이라도 생각난 것일까?
서우진이 잠시 걸음을 멈추자, 황제가 다급히 움직였다.
손가락에 있던 반지를 빼 들고는 앞으로 내민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방금 전까지 보여주었던 추악한 민낯을 감추고,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게 뭔데? 마법이라도 나가는 물건입니까?”
반지에선 별다른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껏해야 손톱만큼 미약한 수준.
서우진이 경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황제는 무슨 생각인지,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아 완벽한 성능을 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네놈 하나 정도라면 충분히 죽일 수 있는 물건이니라.”
“그래요?”
서우진이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 팔짱을 꼈다.
“오만한 놈! 네 경솔함이 너를 죽인 것이니라!”
황제가 반지에 박혀 있는 보석을 꾹 눌렀다.
찰칵-
아주 작은 소음과 함께, 반지에 깃들어 있던 미약한 마력이 허공에 흩어졌다.
“음?”
서우진이 미간을 찌푸렸다.
별것 아닌 게 확실한데, 본능은 저 마력이 위험하다고 알려주었다.
‘대체 뭔데?’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러다 문득- 황제가 갑자기 태도를 바꿀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용사 폐기 계획을 백지화시키겠다는 말을 하다 멈췄지?’
그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저 실낱같은 마력 한 가닥에, 용사를 폐기할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
서우진이 땅을 박찼다.
황제는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혹여나 저 힘이 다른 동료들에게 향한다면?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제 돌아갈 일만 남은 마당에, 어이없게 동료들을 잃을 순 없었다.
후와아아아아아아악-!
공간을 찢어발기며, 가공할 속도로 황제를 향해 ‘카 라니엘’을 휘둘렀다.
하지만 마력은 그보다 한 발 빨랐다.
덜컥-!
당장에라도 황제의 목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던 서우진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끌끌끌- 네가 아무리 강하다 하나, 이 힘은 이겨내지 못할 것이니라. 애초에 너희를 소환할 때부터 심어둔 제약을 발동하는 것이니.”
말했다시피, 반지에 있던 마력은 미약했다.
서우진은커녕 평범한 용사들에게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트리거를 당기는 것 정도는 충분했다.
머릿속에서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거구나.’
뇌의 깊숙한 곳에 폭탄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까지 서우진조차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고, 조용한 폭탄이었다.
용사들의 육체가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다고는 하지만, 이게 터진다면 결코 견딜 수 없었다.
밖에 아닌 안쪽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폭발에, 뇌가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쿠웅-!
서우진의 육체가 들썩였다.
폭탄이 터진 것이다.
결코 약하지 않은 폭발에, 뇌는 순식간에 곤죽이 되어버렸다.
눈과 코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으하하하! 감히 짐에게 이빨을 드러낸 더러운 짐승의 최후이니라!”
황제가 광소를 터트렸다.
뇌가 갈가리 찢겨졌으니, 절대 견뎌낼 수 없을 것이라 믿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짓을 벌이려고 했단 말이지?”
서우진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동시에 황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마법은 제대로 발동되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아 모든 용사가 아닌, 오직 눈앞의 서우진만을 죽일 수 있을 정도였지만.
확실히 발동해 뇌를 터트렸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사고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까지 더듬는 걸 보면 말이다.
스윽-
흘러내리던 피를 짜증스러운 손길로 닦아낸 서우진은 붉게 물든 눈동자로 황제를 노려보았다.
“더 보여줄 게 없다면, 이제 그만 죽어라.”
‘카 라니엘’이 허공을 갈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