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1)
#60화.
베었다.
아니, 그보다는 녹였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무스펠하임’의 화염에 살덩이는 문자 그대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검에 닿은 부분부터 빠르게, 마치 뜨거운 치즈가 흘러내리듯이.
서우진은 검을 회수하고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몸을 감싸고 있던 화염은 꺼지듯 사라지고,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이 살덩이를 향했다.
‘역시 기사들이 맞구나.’
녹아내리는 살덩이 사이로 보이는 갑주에는 제국 기사단임을 증명하는 문양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대체 몇 명이나…….”
눈으로 확인한 머리의 수만 해도 20개가 넘었다.
그러니 최소한 그 이상의 기사들이 저 살덩이를 이루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애들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서우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기사들의 실력은 뛰어나다.
용사나 루데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중급 이상의 실력을 자랑할 정도였다.
웬만한 몬스터쯤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도륙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기사 수십 명이 이런 꼴이 되어버렸다는 건…….
“이곳에 들어온 지 아직 하루도 채 되지 않았는, 아니. 아니지.”
말을 하던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 유적은 시간선이 뒤틀려 있다.
서우진의 시간은 하루가 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다를 수 있었다.
만약 임태은처럼 일주일이 넘는 시간을 이곳에서 헤맨 것이라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가설도 아니었다.
“어서 유적의 중심지를 찾아야겠어.”
이러한 이상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은, 유적의 가장 중심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보통 게임이나 소설에선 그러하니까.
하지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 것도 문제였다.
오직 일자로 쭉 뻗어 있는 복도.
이곳을 따라 걷는다 해도, 중심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단순한 일이었으면, 다른 사람들이 찾지 못할 리가 없었을 테니까.
서우진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살덩이가 뚫어놓은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무스펠하임’의 초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리긴 했지만, 서우진 한 명이 드나들기에는 충분히 커다랬다.
“…좀 무서운데.”
구멍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어둠이었다.
마치 복도 밖에 우주 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곳에 발을 딛는 것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
‘차라리 몬스터랑 싸우는 게 낫지.’
미지에 대한 공포는 서우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 복도만 따라가서는 결코 중심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할 바에는, 차라리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만약 저 바깥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다.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무스펠하임’처럼.
서우진에겐 드러난 힘보단, 감춰진 힘이 더욱 많았다.
살짝 심호흡하며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이내, 서우진의 모습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 * *
“야! 너 일부러 그랬지?”
성유라는 잔뜩 성이 난 표정으로 김다혜를 몰아붙였다.
방금 전 총알 한 발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아님요.”
김다혜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안 피했으면 뒤통수에 그대로……!”
성유라가 이를 악물며 부들부들 떨었다.
처음 총을 봤을 땐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것의 위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자신이 김다혜의 총알을 정통으로 맞아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물론 약간의 부상은 입겠지만, 고작 그게 한계였다.
그것을 깨달은 성유라는 김다혜를 더욱 무시했다.
‘화공’이라는 직업이 나름 쓸모가 있다는 사실에, 김다혜를 거의 시녀처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김다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성유라가 시키는 대로, 집이나 편의시설들을 만들어주었다.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고.
덕분에 성유라는 김다혜를 더욱 막대할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여기 두고 가버릴 테니까, 알아서 잘해!”
끄덕.
김다혜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쯧.”
그 모습에 성유라는 혀를 차고는 앞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방금 만난 몬스터는 꽤나 강했다.
만약 김다혜가 제때 지원해 주지 않았더라면, 조금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녀의 직업인 ‘성녀’는 전투에 적합한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점점 더 어려워지네.’
성유라가 이곳에 체류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처음 만났던 몬스터들은 손가락 하나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버거워지고 있었다.
특히 방금 전의 놈은 정말로 강했다.
‘어서 애들을 만나야 되는데… 하필 저런 모자란 걸 만나가지고.’
그동안 김다혜에게 받은 도움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음에도, 성유라는 그것을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다혜는 그저 짐덩이일 뿐이라고.
실상은 전혀 달랐지만…….
“얼른 와! 밍기적거리지 말고.”
김다혜의 움직임은 둔했다.
서둘러서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성유라의 입장에선 답답할 지경이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로 떼어놓고 혼자 다니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다시 혼자 이곳을 돌아다니고 싶진 않았던 것이다.
“몬스터요.”
그때, 갑자기 김다혜가 총을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뭐?”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소대가리를 한 근육질의 거대한 몬스터가 달려들고 있었다.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구였음에도, 이상하게도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울음도, 발소리도, 살기도.
타타타타탓-!
다시 한번 김다혜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녀와 몬스터 사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딴 건 개의치도 않는 표정이었다.
“야! 너 정말!”
깜짝 놀란 성유라가 간신히 총알들을 피해내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건 실수였다.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는, 그녀가 한눈을 팔아도 될 만한 놈이 아니었다.
김다혜의 총알세례를 맨몸으로 모두 받아낸 소대가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멀쩡한 상태로 주먹을 휘둘렀다.
여전히 아무런 소음도 나지 않는 공격에 성유라는 깜짝 놀라 두 팔을 들어 몸을 방어했다.
퍼어억-!
“꺄악!”
두 팔이 박살나는 듯한 충격이 온몸에 전해졌다.
콰앙-!
다행히 직격은 피했지만 충격을 모두 해소하진 못한 탓에, 성유라는 벽에 반쯤 파묻혀 버렸다.
그것을 본 김다혜는 ‘소환’을 해제했다.
아무래도 K-2로는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힐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재빨리 스케치북을 펼쳐 ‘저장고’에 저장되어 있던 것들 중 하나를 선택했다.
“소환요.”
밝은 빛과 함께 그녀의 손에 기다란 무언가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너, 너! 설마……!”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성유라가 김다혜의 손에 쥐어진 것을 확인하곤 눈을 부릅떴다.
“너 그거 쏘면 절대 가만 안 둬어!”
하지만 김다혜는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손에 든 것을 작동시켰다.
푸슈우웅-!
알라의 요술봉.
핑크색 리본이 달린 알록달록한 RPG-7의 탄두가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야아아!”
근처에 있던 성유라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탄두가 폭발했다.
쿠아아아앙-!
* * *
“응?”
서우진이 귀를 쫑긋- 세웠다.
“방금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크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고막을 자극하는 뭔가가 들리긴 했다.
서우진은 소리가 난 쪽을 향해 방향을 바꿔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긴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네.”
잔뜩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었건만, 암흑의 공간은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편안해.’
마치 레벨 업을 할 때 본 그 장소처럼.
서우진은 포근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어두운 공간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찾을 만한 단서를 발견하지 못해 난감하던 차였다.
그런데 드디어 뭔가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서우진은 빠르게 발을 놀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서우진의 눈앞에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균열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 한 복판에, 금이 가 있었다.
서우진은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만져지네.”
눈으로 보기엔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이었다.
하지만 균열은 만져졌다.
실체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서우진은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곤 온힘을 다해 검을 내려쳤다.
쩌어억-!
그러자 천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균열의 크기가 점점 넓어졌다.
그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우진은 기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너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와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무너져 내렸다.
“어?”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서우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혜야!”
놀랍게도 균열 너머에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팀원들 중 한 명인 김다혜가 있었다.
하지만 반가운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성유라? 그리고 저건…….”
커다란 몬스터였다.
방금 전까지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인지, 소머리를 한 몬스터는 전신에 화상을 입은 채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자세한 얘기는 좀 이따 하자.”
김다혜를 만나 반갑긴 했지만, 서우진은 일단 몬스터부터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오러.”
눈앞의 몬스터는 처음 보는 놈이었다.
꽤나 강해 보이긴 했지만, 살덩이처럼 괴물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스킬 하나만 써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정도.
심지어 꽤나 심각한 부상까지 입고 있었으니, 처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서걱-!
‘오러’를 두른 서우진의 흑검이 소대가리를 분리해 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일격이었다.
머리가 잘린 놈은 그대로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동시에…….
화아아악-!
서우진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레벨 업 하셨습니다.]서우진의 레벨이 올랐다.
살덩이를 처치하며 경험치가 거의 다 채워졌다는 느낌을 받긴 했는데, 이렇게 바로 레벨 업을 할 줄은 몰랐다.
서우진의 눈앞에 검은 공간이 펼쳐졌다.
유적의 어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아늑했다.
정말로 어머니의 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는 못 오는 줄 알았는데.”
10레벨 이후로 레벨 업을 해도 오지 못했으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우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충만함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저건 또 뭐지?”
검은 공간 한복판에 뭔가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책?”
커다란 책이었다.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책의 제목을 읽었다.
[이계마왕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