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69)
#68화.
세상이 느려진다.
1초가 마치 한 시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건 오직 하나.
서우진의 정신뿐이었다.
그의 손에 든 보석에서 가늠도 할 수 없는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마력뿐만이 아니야.’
너무도 강대한 마력 탓에 아무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소량의 마기도 섞여 있었다.
서우진은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보석을 손에 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마왕’이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마력과 마기가 서서히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몸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점점 압축되기 시작했다.
‘으으윽!’
서우진이 속으로 신음을 터트렸다.
압축과 흡수가 지속되면 될수록, 서우진은 지옥과 같은 고통을 느꼈다.
폭주하는 야생마가 혈맥을 타고 질주하는 듯했다.
이대로 몸이 터져 나갈 것만 같은 통증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멈출 방도는 없었다.
미증유(未曾有)의 마력은 끊임없이 서우진을 파고들었다.
‘저, 정신이.’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 레벨 업을 하며 완전히 회복된 몸이 뒤틀리고 꺾였다.
너무 심한 고통에 혼절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시간이 느리게 가는 바람에 정확히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체감 상으론 며칠이나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더는 안…….’
마침내 한계에 부딪혔다.
압축에 압축을 거듭하던 마력은, 서우진의 육체가 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라도 한 듯 흡수를 멈추었다.
으드득- 으드득-!
대신 그릇을 넓히고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덕분에 서우진은 온몸이 찢어지고, 부러지는 듯한 고통에 시달렸다.
마력을 흡수하며 느꼈던 고통은 마치 애들 장난 같을 정도였다.
‘아아아악!’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서우진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어 잡았다.
‘제, 제어를 해야…….’
본능적으로 마력을 제어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이 거대한 기운을 제어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력은 서우진의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간신히 버티고 있던 마력회로가 놈의 광폭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찢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의 고통이 몰려왔다.
‘아, 안 돼!’
서우진은 미친 듯이 날뛰는 마력을 컨트롤해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폭주한 것처럼 날뛰는 마력은 서우진의 몸속을 질주하며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절망이다.
‘이대로 죽는 건가?’
끔찍한 고통에 서우진이 죽음을 떠올릴 때였다.
‘……마기?’
여태껏 잠자코 있던 마기가 고개를 들었다.
마기는 망가진 서우진의 육체를 보듬기 시작했다.
아아-
지금까지 서우진이 느껴온 마기는, 불쾌하고 역겨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마력보다도 훨씬 순수한 느낌이었다.
마기가 지나갈 때마다, 상처 입은 육체가 복구되었다.
찢겨진 마력회로는 더욱 넓고 튼튼해졌고, 부러진 뼈와 근육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회복되었다.
그러자 몸을 터트릴 것만 같았던 마력이 천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넓어진 마력회로를 타고 도도하게 흐르며, 전신으로 흩어져 흡수됐다.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마력이 서우진의 육체에 자리 잡은 것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편안해지는 기분이,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만 것이다.
눈을 감은 서우진의 주변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유적은 사라지고,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진 씨!”
“아저씨!”
걱정이 가득한 이들의 외침이 숲을 울렸다.
* * *
“으음.”
서우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이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저씨! 눈떴다! 오오, 아저씨가 눈을 떴어요!”
일어나자마자 들려오는 이지아의 호들갑에 헛웃음부터 나왔다.
“여긴……?”
분명 유적 내에서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여긴 다른 장소인 듯했다.
그 복도의 천장에는 저런 등이 없었으니 말이다.
“얘기는 잠시만요! 일단 사람들 불러올게요!”
이지아는 대답 대신 우다다- 하며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다.
‘바쁘구만.’
그런 이지아의 뒷모습을 잠깐 본 서우진은 다시 눈을 감았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아무래도 로지 루비가 죽었기 때문이겠지?’
그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따로 없었다.
“다행이다.”
도무지 방법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어떻게든 탈출에 성공했다.
서우진은 조만간 백시우에게 감사인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별로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기운들은 뭐지?”
마력과 마기.
로지 루비의 몸속에 있던 보석이 깨지며, 뿜어져 나왔던 두 기운을 떠올렸다.
정말로 터무니없이 방대한 양이었다.
만약 그것들을 로지 루비가 모두 사용할 수 있었다면, 아무리 백시우라도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우리가 먼저 다 죽었겠지.’
불행 중 다행으로 놈은 그 기운을 다루지 못했다.
로지 루비와 보석의 기운은 별개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았다.
‘유적을 구성하고 있던 힘인가?’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른다.
보석이 깨지며, 유적 역시 사라져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고.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보석을 누가 남긴 것인지,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운이 어떻게 자신에게 흡수된 것인지.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이 많았지만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마기가 관련된 일이야.’
괜히 보석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겠다고 설치다가, 서우진의 몸속에 마기가 흡수되었다는 것을 알면 곤란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알아보더라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겠지.”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눈을 떴다.
그러곤 몸 상태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것을 넘어 그 어떤 때보다도 좋았다.
정신을 잃기 전 느꼈던 고통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좀 어색했던 것이다.
“시야가…….”
높아졌다.
조금이기는 하지만 분명 평소보다 시야가 높아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아래로 내린 서우진의 눈이 커졌다.
“몸도 좋아졌어.”
서우진의 육체는 본래도 좋았다.
북방에서 가혹할 정도의 훈련을 받았으니, 안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달라졌다.
마치 조각 같았다.
오밀조밀하게 뭉친 근육이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압축되어 있었고, 피부에서는 윤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허.”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 그 일과 연관이 있는 건가?’
서우진은 마력을 순환시켜 봤다.
“흐억!”
그러곤 깜짝 놀랐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마력이 몸을 휘감았다.
이전까지의 마력이 개울이라면, 지금은 망망대해와 같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마력 량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보석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의 아주 일부분만을 흡수했음에도, 그 양은 너무도 거대했다.
하지만 당황은 잠시.
서우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백시우와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마력 량으로만 따지면, 반 슬레인과도 비벼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뿐인가?
변화된 육체는 성장을 넘어 진화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가득차다 못해 넘쳐흐를 정도의 힘이 서우진에게 다신 없을 충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로지 루비랑 다시 싸워도 이기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마왕’의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우진은 작게 웃으며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상의를 주워 입었다.
이지아가 소식을 전하러 갔으니, 이제 곧 다른 사람들이 올 터.
괜히 반라의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하고 싶진 않았다.
깨끗하게 세탁되어 있는 하얀 셔츠를 걸쳐 입고 단추를 잠그자, 때마침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우진 씨.”
가장 먼저 방으로 들어온 것은 단연 아일린이었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지만,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찮아?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래.”
그다음은 강병규.
“괜찮음요?”
김다혜까지 서우진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 뒤로 줄줄이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지아, 유홍설, 진태성, 그리고 루데인까지.
“저는 괜찮습니다.”
서우진은 그들을 보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저 안심시키려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그 어느 때보다 상태가 좋았다.
“갑자기 쓰러지셔서 걱정했습니다.”
루데인이 다가왔다.
“보석… 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던 겁니까?”
붉은 보석을 만지자마자 서우진이 쓰러졌으니, 당연히 가질 만한 의문이었다.
“저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네요.”
보석을 잡았더니 강한 충격이 느껴지며 정신을 잃었다고 둘러댔다.
마력과 마기를 흡수했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루데인은 뭔가 더 물어볼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입을 다물었다.
“그나저나 제가 정신을 잃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아!”
서우진의 질문에 나선 것은 당연하게도 이지아였다.
그녀는 말을 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허락을 구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응, 그래.”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이지아는 신나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보석을 만지니까 갑자기 마력이 뻥! 하고 터졌어요. 다들 깜짝 놀라서 굳었는데, 유적이 무너지기 시작하지 뭐예요?”
서우진이 예상했던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다른 기사들은 못 찾았어요.”
유적이 붕괴되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본래 있던 숲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루데인의 부하들을 비롯한, 수색대의 일부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하진 않았지만, 모두 눈치를 채고 있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들은 모두 죽었음을.
“아, 백시우 오빠 친구들도 전부 무사해요.”
살덩이를 떠올리며 표정이 어두워졌던 서우진은 다행이라는 듯 반색했다.
“다행이네.”
잠깐 만났다가 사라진 임태은.
친구인 성유라와는 달리, 그녀는 예의도 있었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사람이었다.
펫인 ‘용가리’도 사라져 조금 걱정했는데,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여기는 아카데미예요.”
“……아카데미?”
마경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아카데미까지 돌아왔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돌아온 거야?”
“우리를 찾으려고 제국의 마법사 아저씨가 한 명 왔거든요. 그 얼음땡이 아저씨가 게이트를 열어서 곧장 이동했죠!”
마법사라는 말에 서우진이 호기심 서린 표정을 지었다.
용사가 아닌 진짜 마법사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맞다. 아저씨 깨어나면 알려달라 했는데. 저 그럼 금방 그 냉혈한 아저씨한테 다녀올게요!”
마법사에서 얼음땡이를 거쳐 냉혈한이 된 마법사가 궁금해졌다.
‘잘됐네.’
마침 서우진도 마법사에게 볼일이 있었다.
바로 ‘이계마왕록’의 표지에 새겨져 있던 기이한 문양.
그것의 정체에 대해 알아볼 기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