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0)
#69화.
“바르시크다.”
마도사가 손에 낀 검은 장갑을 벗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바르시크?”
“하늘탑의 마도사지.”
이지아와 함께 왔기에 예상하긴 했는데, 역시 그가 얼음땡이였다.
“아, 네. 반갑습니다.”
“잠시 둘이 이야기를 좀 하지.”
바르시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하자,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말속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 조금 이따 올게요! 몸조리 잘하고 계세요!”
발랄한 이지아의 인사와 함께 모두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방금 전까지 떠들썩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적막이 내려앉았다.
‘역시 얼음땡이.’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은 좀 괜찮은가?”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쳐다만 보던 바르시크가 문득 입을 열었다.
“네? 네, 괜찮습니다.”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좋았다.
“다행이군.”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이 흘렀다.
‘뭐 하자는 거지?’
서우진은 이 어색한 분위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분명히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정말로 ‘보고만’ 있을 줄은 몰랐다.
“저기…….”
서우진이 어색한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내려던 때였다.
“로지 루비를 처치한 게 그대라고 하던데.”
“아닌데요.”
말이 끊긴 것이 좀 짜증났지만, 대화가 시작된 것에 안도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놈을 죽인 건 제가 아니라 백시우라는 녀석입니다.”
“그런가? 역시 잘못된 정보였군.”
그는 흐음- 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상관없겠지. 어쨌든 유적을 붕괴시킨 것은 그대이니.”
“……제가요?”
“보석을 만졌다고 들었네만.”
맞다.
서우진은 자신의 예상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보석이 유적을 구성하고 있던 거였어.’
서우진이 손을 대자, 유적을 지탱하고 있던 마력과 마기가 해방되며 결국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고.
어떤 원리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혹시 그 과정에서 이상한 일은 없었나?”
“이상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이상한 일이야 있긴 했다.
거대한 마력이 몸 안으로 밀고 들어왔고, 그 덕분에 죽음의 문턱을 반쯤 넘었다가 돌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말을 아꼈다.
설명하다가 괜히 말실수해서 마기에 대한 말을 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해줄 이유도 없고.’
처음 본 사람에게 세세한 모든 걸 설명해 줄 의리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물며 언젠간 적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는 더욱더.
“아쉽군.”
바르시크는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에 그늘이 지는 모습이 꽤나 신기했다.
“아, 그런데.”
서우진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유적을 돌아다니다가 뭔가를 봤거든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이계마왕록’의 표지에 있는 문양에 대해 말을 꺼냈다.
“문양? 그것을 어디서 봤지?”
“글쎄요? 아시다시피 거기가 막 휙휙- 바뀌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기억은 잘 안 나네요.”
‘이계마왕록’이라는 책 표지에서 봤다는 얘기는 할 수 없었으니, 대충 그렇게 둘러댔다.
그런데 의외로 바르시크는 그 서툰 변명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어떤 문양이지?”
약간의 의심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잔뜩 서려 있었다.
과연 진리의 탐구자라고 불리는 족속다웠다.
새로운 지식이나 현상에는 사족을 못 쓴다더니…….
서우진은 속으로 슬쩍 웃으며 종이와 펜을 찾았다.
“자세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충 이렇게.”
기억을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문양을 그렸다.
중간에 엄청난 일이 있어 혹시나 까먹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려낼 수 있었다.
크기가 다른 원 여섯 개와 그 안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선.
디테일한 부분이야 조금씩 틀릴 수 있겠지만, 서우진이 보기엔 큰 차이가 없었다.
“여기요.”
10분에 걸쳐 꼼꼼하게 문양을 모두 그린 뒤, 그것을 바르시크에게 보여주었다.
“마법진이군.”
그것을 본 바르시크의 눈에 더욱 강한 흥미가 일었다.
“봉인식인가?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고차원적인…….”
그는 품 안에서 안경까지 꺼내 쓰고는, 문양에 푹 빠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부분은 서우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귀에 박히는 단어가 몇 개 있었다.
자격, 증명, 존재 등등.
‘그 책을 보려면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단어 몇 개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가설을 몇 개 만들어보고 있는데, 바르시크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혹시 뭔지 알아내셨나요?”
생각을 멈춘 서우진이 물었다.
궁금해 죽겠지만, 그런 티는 내지 않았다.
“고대의 마법진이다.”
“고대?”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조금 더 설명을 덧붙였다.
“적어도 1500년. 어쩌면 그 이상의 과거에 사용되었던 마법식이지.”
고대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시대다.
“자격증명을 위한 술식에 가깝다. 무엇을 위한 자격인지는 모르겠다만, 상당한 고위급의 마법이군.”
서우진은 자신의 가설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했다.
혹시 그 책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바르시크의 말은 실망스러웠다.
“아쉽군. 이것만으로는 전체적인 마법 설계를 파악할 수 없으니.”
구동 방법과 증명 방법, 그리고 정확한 마법의 존재 이유까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지금 알아낼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수많은 문양 중 극히 일부분이다.
그러니 바르시크의 말이 옳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일 테니 말이다.
아쉬운 건 서우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도사 급의 마법사라면 무슨 방법을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실패로 돌아갔으니.
‘그래도 얻은 게 아예 없지는 않으니까.’
자격 증명.
그것을 통과하면 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그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단지 시간이 좀 필요할 뿐.
‘레벨 업을 할 때마다 문양을 조금씩 외워서 와야겠다.’
그렇게 해석을 부탁하면, 언젠가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서우진은 진심을 담아 감사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바르시크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마법진을 보는 일이라면, 내가 부탁하고 싶을 정도이니 그럴 필요 없다.”
“그럼 종종 부탁드려도 될까요?”
“찾는다면.”
그렇게 말한 바르시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를 알아내고 싶었는데, 서우진이 아는 게 없으니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몸조리 잘하도록. …딱히 필요는 없어 보인다만.”
놀랍게도 그는 서우진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괜히 마법사가 아니네.’
서우진이 알았다 대답하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섰다.
“역시 얼음땡이.”
문양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한기가 풀풀 풍기는 남자였다.
괜히 몸을 한 번 떨며 엄살을 피운 서우진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조만간 실험을 좀 해봐야지.’
자신의 육체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것을 알아보고 싶었다.
* * *
“로지 루비가?”
“그렇습니다.”
리오크는 아그나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확실해?”
혹시나 착각한 건 아닌지 되물었다.
“하늘탑의 마도사 님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사실이라는 이야긴데.”
그 바르시크가 확인해 주었다는 말에, 아그나의 표정에 놀람이 서렸다.
로지 루비가 죽다니?
마경 헬데인에서도 가장 위협적인 적들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토벌이 가능… 아니지.”
아그나가 말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로지 루비가 죽은 지금은 토벌을 하기에 최적기였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전력을 낭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마왕 강림이 얼마 남지 않았지.’
강림 전쟁을 생각하면, 지금은 최대한의 전력을 보존해야만 했다.
‘헬데인에는 로지 루비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마경이라는 이름답게 헬데인에는 수많은 괴물이 존재한다.
다크 엘프도 그렇고, 로지 루비에 버금가는 놈들도 몇 있다.
필연적으로 수많은 피해가 뒤따를 터.
지금은 그런 출혈을 감수할 수가 없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아그나는 토벌에 관한 사항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로지 루비를 죽인 사람은?”
“백시우 님입니다.”
“오호-”
아그나가 감탄성을 내뱉었다.
“꽤 많이 성장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벌써 로지 루비를 상대할 정도였나?”
“듣기로는 일격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역대 최강의 용사.
그런 인재에게 제국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으니, 강한 게 당연했다.
“용사들의 피해는 없고?”
“그렇습니다. 유적 내에서 오랜 시간을 헤맸기에 컨디션이 조금 떨어진 분들은 있어도, 사상자는 전무합니다.”
“그거 다행이군.”
용사는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자신들을 위해 마왕과 싸워야 할 ‘병기’들이니 말이다.
전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런 곳에서 죽어나자빠지면 곤란하다.
아그나는 계속되는 좋은 소식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부터는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다크 엘프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지?”
마경의 중심지에 있어야 할 다크 엘프들이 외곽에 나타났다.
지난번에 이어, 또다시 용사들을 습격한 것이다.
그리고 크루시엘은 이번에도 그 사실을 미리 알아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우연에 의한 습격일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우연?”
“조사 결과, 게랄드를 비롯한 추종자들의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고 있습니다.”
리오크는 확신하듯 말했다.
하지만 아그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정보국의 국장답게, 그녀는 우연이라는 말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건 우리 쪽에서도 한 번 제대로 파보도록 해야겠군.’
기사들의 능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은 너무 단순했다.
“좋아. 보고는 이쯤하지. 혹시 다른 특이 사항 있나?”
그냥 형식상 물어본 말이었다.
그런데 리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우진이라는 용사를 알고 계십니까?”
서류를 향하던 아그나의 시선이 위로 올라왔다.
“서우진?”
“D급 용사입니다. 시온에서 지원을 받…….”
“그건 알고 있으니, 본론으로.”
“하늘탑에서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아그나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늘탑이? 그 고지식한 미치광이들이 왜?’
마법사는 기본적으로 세상일에 무관심하다.
물론 용사들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지극히 좋은 소재였지만,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용사라는 존재가 이 세상의 존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사에 대한 호기심을 강제로 억눌러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관심을 가져?’
그것도 고작 D급에?
아그나는 서우진을 기억 속에서 다시 끄집어냈다.
요즘 들어 그 이름이 계속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다.
‘별다른 특이점이 보고되지는 않았는데…….’
등급에 비해 높은 실력이 있다,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하늘탑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면 더는 무시하고 있을 순 없을 것 같았다.
“한번 만나봐야겠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