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78)
#77화.
‘무슨 여자애 말투가…….’
열 살이나 되었을까?
마치 인형처럼 생긴 여자아이는 손에 찻잔을 들며 서우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마치 세상 다 산 노인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서우진이 슬쩍 옆에 있던 바르시크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여자아이의 그 말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음…….’
서우진도 괜히 이상한 티를 내지 않기로 했다.
‘반 슬레인 같은 경우인가?’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육체가 재구성 되며 젊어진다.
그래서 서우진도 처음 반 슬레인을 봤을 때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저 앞의 여자아이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인 것 같았다.
“생각은 끝났느냐?”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여자아이의 물음에 서우진이 냉큼 대답했다.
“넵.”
“그럼 이리 들어와 앉거라.”
서우진은 살짝 긴장하며 그녀가 권한 자리에 앉았다.
아그나의 집무실에 있던 의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푹신하고 포근했다.
“그 문양을 이 아이가 가져왔다고 했던가?”
여자아이는 이번엔 바르시크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그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겉모습이 다가 아니었어.’
바르시크의 모습을 보니, 여자아이의 신분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게 확실했다.
‘오늘은 계속 이런 사람들만 만나네.’
대련이 끝나자마자 아그나를 만나고, 이번엔 하늘탑에 끌려와 이 정체 모를 여자아이까지.
긴장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서우진은 약간의 피로감을 느꼈다.
“아이야, 네가 가져온 문양을 어디에서 보았는지 나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느냐?”
그녀의 질문에 서우진은 오랜만에 반 슬레인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가 누구보고 아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서우진은 속으로 허허- 웃었다.
“아, 그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추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으니, 적당히 사실과 거짓을 섞어 말해주기로 했다.
“유적에는 기다란 복도만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벽을 부수고 그 너머로 들어갔는데…….”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검은 공간이 나타났고, 그 안에 있던 웬 이상한 돌기둥에서 발견했다, 라고 짧게 설명했다.
“그 문양 외에도 많이 있었지만, 제 머리로는 그것들을 전부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로지 루비가 죽고 유적은 사라졌다.
그러니 서우진의 말을 증명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을 끝낸 서우진이 여자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거짓말이 들통 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여자아이는 서우진의 그럴싸한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카데마인이라고 했었지.”
“그의 인장이 찍혀 있는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술식은?”
“공간과 시간의 축을 비틀고, 개념과 혼돈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가 있어 정신을 집중해 들어봤지만, 가면 갈수록 전문용어가 난무했다.
서우진은 멍- 하니 둘의 대화를 듣는 척, 잡생각에 빠졌다.
‘저 여자애는 누굴까? 도대체 신분이 뭐지? 하늘탑에 있는 걸 보니까 마법사인 거 같긴 한데. 설마, 반 슬레인보다 나이가 많지는 않겠지?’
마법에도 조예가 깊어 보였고, 신분 역시 예사롭지 않은 듯했다.
마치 전공과목 수업을 듣는 대학생의 심정으로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때였다.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네, 네?”
어느새 대화를 끝낸 여자아이가 서우진에게 물었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서우진은 그 마법의 마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자아이의 질문은 그것이 아니었다.
“문양 말이다. 그것이 왜 그런 곳에 새겨져 있었던 것 같으냐?”
빙긋- 웃으며 질문하는 여자아이의 모습은 순진무구한 소녀 같기도, 세상에 달관한 현자 같기도 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일이 한두 개도 아니고.
그냥 마법이구나, 하고 넘기면 될 것 같았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하냐?”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우진을 바라보는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왠지 자신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눈동자.
서우진은 그것이 조금 거북했다.
그는 숨기는 것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럼 유적 내에서 있었던 일들을 한번 이야기해 보거라. 그런 것이 발견된 건 실로 오랜만이라, 호기심이 동하는구나.”
여자아이의 말에 서우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할 일이 태산이었다.
새로 얻은 검도 길을 들여야 했고, 저녁 식사도 해야 했으며, 오후 훈련도 해야 한다.
오늘부터는 구동환과 계수지가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꽤나 바빴다.
‘그 귀한 시간을 내서 왔더니, 썰이나 풀라고?’
그는 개그맨이 아니었다.
높으신 분들 자리에 불려 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는 그런 광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서우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될까요?”
* * *
“30분에 한 번씩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다? 네가 해석한 술식이 맞았나 보구나.”
“호오, 살덩이라?”
“과연. 로지 루비는 만만히 볼 만한 녀석이 아니지.”
“허어, 그 녀석과 한 시간이 넘도록 붙었단 말이냐?”
“대단하구나!”
조카와 놀아주는 삼촌의 심정이 이러할까?
권력과 힘에 쫄아 썰을 풀긴 해주었지만, 솔직히 마음에 내키진 않았다.
그런데 여자아이의 리액션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말주변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서우진의 이야기에도 눈을 반짝이며 들어주었다.
덕분에 서우진이 더 신나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로지 루비의 몸에서 보석이 나왔…….”
말을 하던 서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이건 말하면 안 되는데!’
여자아이의 반응이 재밌어 말을 하다 보니,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내뱉고 말았다.
“보석?”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여자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서우진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보단, 갑자기 유적이 무너…….”
재빨리 말을 돌리려 할 때였다.
“보석에 대해 이야기해 보거라.”
마치 지금까지의 모습은 거짓이었다는 듯, 여자아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서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눈동자가…….’
우주를 보는 듯했다.
너무도 깊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빠져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혹, 붉은색의 보석이더냐?”
흠칫-
서우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여자아이는 그 반응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붉은 보석이라… 바르시크.”
“하명하시지요.”
여자아이가 바르시크를 부르자, 그는 더없이 예의바른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밖에 나가 대기하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볼 법도 하건만, 바르시크는 단 한 점의 의문도 가지지 않은 듯 바로 방을 나섰다.
졸지에 둘만 남게 되었다.
“D급. 거기에 레벨도 낮은 아이가 어찌 그리 뛰어난가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나.”
여자아이가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귀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지만, 서우진은 웃을 수가 없었다.
숨기고 있던 사실들 중 하나가 밝혀지기 일보직전이었기 때문이다.
‘괜찮을 거야. 설마 그 안에 들어 있던 걸 내가 흡수했단 사실을 어떻게 알겠어?’
서우진은 그렇게 애써 자신을 도닥여 봤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그 안에 있던 마력을 네가 흡수한 게로구나?”
여자아이는 그 사실을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식은땀이 흘렀다.
솔직히 로지 루비가 떨어뜨린 보석의 마력을 흡수한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일종의 기연이었고, 용사들이 강해지는 것은 제국이나 하늘탑에서도 반길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보석 안에 있던 것은 마력뿐만이 아니다.
‘마기.’
평범한 이 세계의 존재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기운.
서우진은 소량이긴 했지만, 그 마기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질 않았지만, 몸속의 기운을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조사한다면 분명 흔적이 나올 터.
‘내 실수다.’
괜히 혼자 신이 나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나불거렸다.
서우진은 그것을 자책했다.
반면 여자아이는 홀로 고민에 빠져 있는 서우진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재미있지 않은가?’
사실 여자아이는 서우진이 눈치채지 못한 사이, 한 가지 마법을 발동시켜 둔 상태였다.
‘베르다드’.
자신도 모르게 감추고 있던 속내를 말하도록 강제하는 정신마법이었다.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이 마법에 저항하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특히나 자신이 건 마법은 더욱더.
그런데…….
‘이 아이는 저항했다.’
순간적으로 말을 꺼내긴 했지만, 이내 멈추었다.
이건 여자아이의 입장에선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아직 초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존재가 자신의 마법에 저항했다?
다른 마법사들이 알게 된다면, 서우진을 해부라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날 게 분명했다.
‘마력을 흡수했기 때문인가? 용사이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일단 마력 때문은 아닐 확률이 높았다.
단순히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자신의 마법에는 저항할 수 없다.
초월종인 드래곤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인간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용사라…….’
여자아이가 용사라는 존재를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하늘탑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입장한 용사는 서우진이 처음이었으니, 여자아이가 본 용사도 서우진이 유일했다.
‘그 시스템이라는 ‘신급 마법’ 덕분일지도 모르겠구나.’
평생을 바쳐서 그것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아직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그것은 이름 그대로, 신의 마법이었으니까.
여자아이는 서우진이 자신의 마법에 저항한 이유를, 용사와 시스템 때문일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유를 배제한 건 아니었다.
단서와 실마리를 찾는다면, 어떻게든 진짜 이유를 밝혀낼 생각이었다.
“아이야.”
여자아이는 심각한 표정의 서우진을 불렀다.
“네, 네?”
깜짝 놀란 서우진이 시선을 돌려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네가 감추고 있는 비밀의 한 자락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겠느냐?”
밥을 먹다 옆에 있는 간장 좀 달라는 것처럼 가벼운 말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숨은 뜻과 무게감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런 거 없는데요.”
서우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전에는 실수를 했지만, 다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여자아이가 미소를 지었다.
“네가 무엇을 경계하는지는 알지 못하나, 하나 약속할 수는 있느니라.”
약속?
무슨 뜻인지 몰라 가만히 쳐다보자, 여자아이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을 걸고, 너의 비밀은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으마. 또한 그것으로 인해 너에게 단 한 점의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
여자아이의 음성은, 어울리지 않게도 위엄이 가득했다.
서우진은 자신의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여자아이의 입에서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는 하늘탑의 주인이자, 제국의 수호자인 나. 마르테스의 이름으로 맹세하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