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0)
#79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워지기 시작했네.”
하늘탑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아직 해가 창창했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하루 겪은 일이 너무도 많았다.
대련 훈련에서 우승을 하고, 아그나라는 정체 모를 여자를 만난데다.
“설마 마공을 직접 볼 줄이야.”
아무리 인간을 벗어난 육체의 소유자라 해도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특히나 마르테스와의 대화는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 더욱 힘이 들었다.
‘제국의 수호자들은 다들 그런가?’
검공 다리엘도 첫 만남에 다짜고짜 연무장으로 끌고 가 검부터 겨누지 않았던가.
마르테스는 그나마 마법을 난사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혀는 웬만한 정신공격보다도 무서웠다.
하마터면 서우진이 자신의 비밀을 모두 토해낼 뻔했을 정도이니…….
‘조심해야겠어.’
솔직히 지금까진 좀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직접 말하지만 않으면, 자신이 ‘마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리가 없다.
바보가 아닌 이상, 서우진은 그것을 말할 생각도 없었고.
그런데 이젠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할 것 같았다.
언제 또 이런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쉰 서우진은 자연스럽게 연무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있으려나?”
대련 훈련이 끝난 뒤, 연무장에서 함께 훈련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겨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다.
혹여 함께 훈련하기로 한 용사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서우진이 빠르게 발을 놀렸다.
“어디 보자.”
잠시 후 도착한 연무장에는 아직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열심히 하고 있네.”
서우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늦어서 죄송… 어?”
힘들어서 쉬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세 명을 빼고는 모조리 딱딱한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서 있는 세 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지아, 구동환, 그리고… 계수지?’
세 사람의 얼굴은 서우진에게도 낯이 익었다.
그런데 그들은 잔뜩 지친 기색으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서우진이 조심스럽게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저…….”
“우왁, X발! 깜짝이야!”
구동환이 깜짝 놀라며 오함마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살벌하게 들려왔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것을 쉽게 피해내고는 손을 들었다.
“접니다, 저. 서우진.”
“아저씨!”
그제야 서우진을 알아본 이지아가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대체 어디 갔다 오신 거예요? 금방 온다더니!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요?”
“미, 미안하다.”
구동환의 오함마보다도 무서운 이지아의 질문 폭격에 서우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사과했다.
“으하하! 괜찮으십니까? 저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그만……. 죄송합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구동환은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놀랐다고 해도, 그런 흉기를 휘둘렀으니…….
서우진은 노랑 드레스를 입고 있는 구동환을 애써 외면하며 이지아를 쳐다봤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왜 다들 저렇게 뻗어 있어?”
김다혜, 강병규, 유홍설, 진태성.
심지어 아일린까지.
네 사람은 엉망이 된 모습으로 숨 쉰 채 쓰러져 있었다.
“아, 그게요…….”
이지아가 슬쩍 한쪽의 눈치를 봤다.
‘계수지.’
그곳에는 ‘싸울아비’라는 직업을 지닌 A급 용사, 계수지가 있었다.
“언니랑 같이 대련 훈련을 좀 했거든요.”
이지아는 설명을 이어갔다.
‘음… 그러니까 죄다 맞고 뻗은 거라 이 말이구만?’
그나마 버틴 사람은 이지아와 구동환이 전부였고.
서우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계수지를 쳐다봤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우리 한번 붙기로 했었잖아요.”
서우진이 아는 척을 하자, 계수지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긴 하죠.”
서우진 역시 그녀와 붙는 걸 고대하고 있었다.
일정이 꼬이지만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신나게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서우진이 은근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러자 계수지가 여자답지 않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저야 좋죠!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저도 많이 지쳤네요.”
하긴.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녀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이 많은 사람과 손을 섞었으니 지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구동환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강했으니 말이다.
“그럼 다음 기회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서우진이 아쉽다는 듯 말하자, 계수지가 손을 내저었다.
“아뇨. 잠시만 쉬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어요.”
“예?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괜찮아요. 회복 관련 스킬이 있어서 10분 정도면 될 거예요.”
‘회복 스킬?’
서우진이 놀란 표정으로 계수지를 쳐다봤다.
회복에 관련된 힘은 희귀하다.
이 세계에서는 오직 아이에르의 사제들에게만 허락된 힘이었고, 용사들 중에도 극히 일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성녀’ 성유라 같은…….
그런데 ‘싸울아비’인 계수지가 회복 스킬이라니?
서우진의 표정에 계수지가 작게 미소 지었다.
“생각하시는 그런 스킬은 아니에요. 타인에게는 사용하지 못하고, 회복 범위도 체력 정도에 국한되니까요.”
부상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종류의 회복이 아니었다.
단순히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키는 스킬.
게다가 다른 사람은 회복시킬 수 없었으니, 조금 아쉬웠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스킬을 갖고 계신 거예요? 언니는 전투 직업이잖아요?”
이지아가 물었다.
“네 스킬 한번 확인해 봐. 너도 ‘피스트 마스터’인데, 그와 관련 없는 스킬이 몇 개쯤은 있을걸?”
“아…….”
서우진과 이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스킬이 종종 뜨긴 한다.
서우진 역시 ‘마왕’임에도 기사나 검사들이나 쓸 법한 스킬이 몇 개나 있지 않던가?
“하긴. 저도 마법 스킬이 있긴 해요.”
그렇게 말한 이지아가 허공에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라이트닝!”
쿠르릉-!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한 줄기 뇌전이 꽂힌 연무장 바닥은 검게 그을린 채, 연기를 내뿜었다.
“너 그런 스킬도 있었어?”
서우진이 놀라 묻자, 이지아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실전에선 딱히 쓸 일이 없었어요. 소모되는 마력도 엄청나고, 무엇보다…….”
건틀릿을 낀 주먹을 들어올린다.
“제 주먹이 더 세거든요.”
벼락보다 강한 주먹.
예전이었다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며 웃어넘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지아의 주먹은 확실히 강했으니까.
저런 마법 한두 개를 사용하는 것보단 주먹을 휘두르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맞는 말이긴 해. 그래도 혹시 사용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익숙해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떤 식으로요?”
“글쎄. 그건 나중에 천천히 같이 생각해 보자.”
“넵! 알겠습니다, 아저씨 선생님!”
…저놈의 아저씨 소리는 그만 좀 해줬으면 좋겠다.
서우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세 회복하고 올 테니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서우진이 대답하자 계수지는 연무장 한쪽 구석으로 가서 스킬을 사용했다.
은은한 녹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는 것이 보였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저 빛이 자가 회복력을 증폭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다들 계수지 씨한테 당한 거야?”
서우진이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으하하! 저한테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구동환이 자랑스럽다는 듯, 자신의 오함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계수지와 구동환.
두 사람의 실력이라면, 저들이 지쳐 쓰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같이 훈련하며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저 둘은 A급 용사들 중에서도 특히나 더 뛰어난 이들이었으니까.
“많이 강해?”
사실 서우진은 계수지가 싸우는 것을 제대로 보진 못했다.
이지아 때는 너무 금방 끝이 났고, 그 이후로도 분석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종합격투기와 가까운 전투기술을 사용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언니 엄청 강해요! 이번엔 처음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덤볐는데도 얼마 못 버텼어요.”
이지아도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 정도라면 정말로 강한 듯했다.
“흠흠, 아쉽게도 제 마법 역시 잘 통하지가 않더군요.”
구동환이 쑥스럽다는 듯 말하자, 서우진이 깜짝 놀랐다.
‘구동환의 마법이 안 통해?’
구동환은 마법도 사용할 줄 알았다.
애초에 ‘마법소녀’였으니까.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서우진은 구동환의 마법이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멘탈이 나갈 것 같은 이름과 그 반짝거리는 효과.’
그리고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조금씩 노출되는…….
‘생각하지 말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급격하게 속이 나빠졌다.
마법의 위력도 강했지만, 그 시각 공격은 마르테스에 못지않을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머리를 털며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애써 지워낸 서우진이 잽싸게 쓰러진 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일단 좀 치우자.”
계수지의 회복이 끝나면 한바탕 날뛰어야 했다.
그러니 미리 주변 정리를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이거 참, 기대가 되는군요.”
이지아와 구동환이 쓰러진 이들의 다리를 붙잡고 연무장 구석으로 질질 끌고 갔다.
그 와중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계수지에게 꽤나 호되게 당한 것 같았다.
연무장 정리가 끝나자, 때마침 계수지가 회복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끝나셨습니까?”
“아, 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서우진도 계수지와의 한 판을 기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애초에 늦은 것은 자신이었으니, 그녀가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두 사람은 연무장 한가운데로 가서 마주보고 섰다.
“아참, 우승 축하드려요.”
계수지는 웃으며 축하를 해주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꺾은 백시우와 싸워 이긴 서우진이다.
그런 사람과 제대로 한판 붙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뜬 것 같았다.
‘역시 호승심이 강하구나.’
웬만하면 주눅이 들 만한데도 그녀는 오히려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저런 사람이 강해지는 거겠지.’
향상심.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욱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
서우진은 그런 계수지를 보며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먼저 오세요.”
서우진이 검을 뽑아 들었다.
새로운 검 ‘룬 데아’.
순백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살을 에는 듯한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검의 기운을 느낀 계수지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전투를 앞에 두고, 진중해진 것이다.
“그럼… 갑니다!”
콰앙-!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계수지의 오른발이 서우진의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아니, 강타하기 직전 서우진의 팔이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강하다.’
왼팔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서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충격은 충격이고, 서우진은 반사적으로 검을 올려쳤다.
별다른 기술도, 스킬도 아닌 단순한 올려 베기.
하지만 그 속도는 계수지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스아악-!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