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1)
#80화.
검은 머리카락이 올올이 떨어진다.
꿀꺽-
계수지가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속에 놀란 게 분명했다.
하지만 서우진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치솟았던 검이, 반원을 그리며 계수지의 허리를 노렸다.
유려하기 짝이 없는 아름다운 검로.
서우진의 검술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검은 자연스럽게 그어졌다.
쩡-!
하지만 계수지 역시 만만찮은 용사였다.
검이 향하는 곳을 눈치챈 그녀가 주먹을 내리꽂은 것이다.
주먹과 서우진의 검면이 충돌했다.
힘을 이겨내지 못한 검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그녀의 발밑을 스쳐 지나갔다.
‘대단하네.’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었음에도, 계수지는 당황하지 않고 완벽한 방어를 해냈다.
같은 주먹을 쓰는 이지아와 비교해도 훨씬 뛰어났다.
“…빠르시네요.”
뒤로 물러난 계수지가 감탄한 표정으로 서우진의 검을 쳐다봤다.
“계수지 씨도요.”
서우진 역시 그녀를 인정했다.
‘이 정도면 힘을 좀 더 써도 되겠다.’
방금 나눈 공방은, 서우진이 힘을 아껴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계수지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백시우에게 3합도 채 견디지 못하고 패배했으니까.
서우진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 하면 제대로 된 싸움도 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힘을 최대한 뺐는데, 실력을 보아하니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여도 될 것 같았다.
‘그편이 저쪽한테도 좋겠지.’
지금은 단순히 실력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닌, 훈련의 일환이었다.
자신이나 계수지나 대련을 통해 얻을 게 분명히 있을 터.
서우진은 힘 조절을 하며 최대한 길게 대련을 이끌어갈 생각이었다.
“그럼 이번엔 제가 먼저 갑니다.”
가볍게 땅을 박찼다.
하지만 그 속도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쏜살같이 앞으로 쇄도한 서우진이 어깨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바위 흘리기!”
계수지의 스킬이 발동됐다.
이름처럼 단단하게 경화된 그녀의 팔이 검을 빗겨냈다.
카가각-!
“천둥 밟기!”
쿠르르릉-!
계수지의 진각이 땅을 울렸다.
단순히 흔들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노란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주위를 모조리 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서우진은 굳이 그것을 마주하지 않고 뒤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것이 계수지의 노림수였다.
“돌개 걸음.”
작은 회오리와 함께 그녀의 신형이 쑤욱- 하고 다가왔다.
서우진이 물러서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이야.’
서우진은 지금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부분의 용사는 스킬을 마치 게임처럼 사용한다.
단순히 위력과 효과만을 생각한 채, 아무런 생각 없이 단발성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계수지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스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 한 치의 낭비도 없었다.
모든 스킬이 의도가 있었으며,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계했다.
‘재능만 보면 백시우 급이야.’
아쉽게도 직업 등급은 그에 비해 낮았지만, 전투 센스 만큼은 백시우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서우진은 질 수 없다는 듯, 자신도 스킬을 사용했다.
“강격.”
마력이 흘러들어 가며 무지막지한 힘이 검에 깃들었다.
서우진은 그것을 바닥에 내려쳤다.
콰아앙-!
‘강격’의 힘을 이겨내지 못한 연무장이 박살났다.
“이런!”
당황한 계수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서우진 설마 연무장 바닥을 부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마법이 걸려 있어 잘 부서지지도 않는 걸 저렇게 쉽게 박살낼 줄도 몰랐고.
‘강격’으로 인해 파편이 사방으로 폭사했다.
그것들 중 일부는 계수지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다급히 손을 휘둘렀다.
“는개 흘리기!”
계수지의 손이 원을 그리며 쏘아지는 파편을 모조리 밑으로 쳐냈다.
마치 빗방울을 빗겨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나하나가 심상찮은 위력을 품고 있었는지라, 계수진은 혼신의 힘을 다해 단 하나의 파편도 허락하지 않고 모두 흘려보냈다.
“대단하네요.”
그때, 뒤에서 서우진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슨……!”
파편으로 시야를 가리고, 뒤로 돌아간다.
계수지는 서우진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가속’을 사용한 그의 움직임을 모두 포착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실례.”
따악-!
검이 아닌, 검집이 계수지의 정수리를 찍었다.
“끄윽-”
계수지의 눈이 순식간에 풀렸다.
머리에서 시작된 충격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다.
“더 하면 조금 위험할 것 같아서요. 좀 쉬고 계세요.”
다시 한번 검집이 휘둘러졌다.
퍼억-!
결국 계수지는 기절을 하고 말았다.
“휴우.”
서우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회수했다.
“아저씨! 우와… 대단해요!”
이지아가 호들갑을 떨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정신을 잃었던 다른 사람들 역시 언제 깨어났는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길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쉽게…….”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잖아요.”
구동환을 제외한 사람들은 그리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생각보다 오래 버틴 계수지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끝이 날 줄 알았으니 말이다.
“아저씨, 봐준 거 맞죠?”
이지아가 쓰러진 계수지의 눈치를 보며, 서우진의 귓가에 속삭이듯 물었다.
“좀 떨어져라. 그리고 봐준 거 아니야.”
봐줬다기보다는 실력을 테스트해 봤다는 쪽이 더 맞았다.
그리고 서우진은 계수지를 인정했다.
‘강해. 그리고 더 강해질 거야.’
조금 더 시간을 끌었으면 부상을 입을 것 같아 서둘러 기절을 시키긴 했지만, 확실히 계수지의 잠재력은 압도적이었다.
만약 등급도 성장이 가능했다면, 그녀는 충분히 S급 이상에 도달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말이다.
‘운이 안 따라줬네.’
안타깝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S급에 못지않은 실력을 지닐 수도 있을 터.
서우진은 계수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성장하면 할수록 나한테도 좋은 일이지.’
요즘 들어 다른 이들과의 대련 훈련이 썩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것은 로지 루비의 마력과 마기를 받아들인 후로 더욱 심해졌다.
너무 압도적인 차이가 났기에, 서우진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계수지나 구동환이 나타났다.
저들이라면 조금 아쉽긴 해도 충분히 대련할 맛이 났다.
‘다른 애들한테도 도움이 될 테고.’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자신보단, 저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을 게 분명했다.
“여러모로 좋은 일이지.”
서우진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아일린, 이지아, 김다혜, 강병규, 진태성, 유홍설, 구동환, 계수지.
처음 소환되었을 당시.
병사들에게조차 무시당하고 멸시받던 때를 생각해 보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렇게 하나씩 내 편을 늘려가다 보면…….’
만에 하나, 일이 틀어졌을 경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들 피곤할 텐데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쉽시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어스름하던 하늘은 완전한 어둠으로 물들어, 달빛만이 은은하게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이거 아쉽네요.”
구동환이 입맛을 다시며 서우진을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다시 한번 붙고 싶은데, 시간이 늦어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듯했다.
“오늘만 날은 아니니까요.”
당분간은 아카데미 내에서의 교육만 이루어진다.
그러니 같이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은 차고 넘쳤다.
“뭐, 그렇죠? 으하하!”
구동환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듯, 호탕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럼 모두 내일 봅시다!”
상남자의 상징인 그의 떡 벌어진 등빨이 눈에 박혔다.
‘저 드레스만 안 입고 있었으면 더 멋있었을 텐데…….’
짧은 치마가 살랑거리며 뭔가가 보일 듯, 말 듯 했기에 서우진은 잽싸게 시선을 돌렸다.
“저도 이만 들어가 봐야겠네요. 계수지 씨 좀 잘 챙겨줘.”
“걱정 마세요! 제가 책임지고 언니 방까지 무사히 옮겨놓을게요!”
으쌰- 하며 계수지를 안아 들었다.
“그, 그래.”
작은 키 때문에 발이 질질 끌리긴 했지만, 서우진은 못 본 척 연무장 밖으로 나섰다.
“피곤하구만.”
하루가 너무 길었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 씻고 쉬고 싶었다.
서둘러 숙소로 향하던 서우진이 문득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바로 마르테스가 소원을 들어준다며 건네준 선물이었다.
‘소환석’.
마르테스는 그 돌을 그렇게 불렀다.
“이것도 사용해 봐야 하는데…….”
잠시 걸음을 멈춰 생각에 잠겼던 서우진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하는 게 낫겠다.”
마르테스의 설명대로라면, 지금 ‘소환석’을 사용하면 꽤나 큰 소란이 벌어질 것이다.
괜히 아카데미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으니, 내일 루데인과 상의를 한 뒤 사용해 보기로 했다.
“오늘은 푹 쉬자.”
* * *
“……그것을 주셨습니까?”
바르시크가 물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답지 않게 꽤나 심각해 보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은 변화였지만, 마르테스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걱정이 되느냐?”
“그렇습니다. 보통 물건이 아니니 말입니다.”
확실히 마르테스가 건넨 ‘소환석’은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에게 건넬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큰 재앙이 될 수 있었으니까.
“이미 주의할 점은 숙지시켰느니라.”
“하지만…….”
마르테스의 안심하란 말에도 바르시크는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네가 보기에 그 아이가 어떻더냐?”
“글쎄요.”
바르시크는 눈을 감고 서우진을 떠올렸다.
비범한 마력과 완벽에 가까운 육체.
그것만으로도 서우진은 초극의 경지에 이를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인재였다.
용사로서가 아닌, 인간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먼 미래의 일.
지금은 아직 부족했다.
“그러하냐?”
마르테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직은 덜 여문 아이지.”
마르테스가 차갑게 식은 차를 다시 데우곤 입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우습게 볼 것도 아니니라.”
“그 말씀은?”
홀짝-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짝 긴장하고, 한편으론 겁까지 먹은 듯한 모습.
하지만 그 내면에는 그녀조차 모두 꿰뚫어 볼 수 없는 무엇인가가 들어차 있었다.
“혼돈.”
“…예?”
“그 아이의 운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화가 될지, 복이 될지는 이 나조차 확신할 수가 없구나.”
예지에 가까운 예감.
그 말에 바르시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제거해야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크루시엘에서는 서우진을 조금 수상하다 여기는 중이었다.
마르테스마저 알 수 없는 존재라 하니, 차라리 지금 없애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늘탑의 주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거라, 나의 아이야.”
마르테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너의 그 경솔한 행동 하나가 세계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느니라.”
바르시크가 고개를 숙였다.
“그저 지켜보거라. 그 아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보듬어주거라.”
마르테스가 눈을 감았다.
‘그리해야 하느니라.’
가슴속에 차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누르며, 마르테스는 서우진이란 이름을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