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88)
#87화.
“소환석이라…….”
마르테스의 심연과도 같은 눈빛이 서우진의 내면을 훑었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 같은 기분에 서우진은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알 법하다.”
서우진의 경지, 즉 레벨을 꿰뚫어봤다.
“그 짧은 사이에 많이도 성장하였다. 과연 용사라는 존재는 괴이하구나.”
“마공 덕분입니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든다니 족하다.”
마르테스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허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 아이야, 너는 ‘소환석’의 가치를 아느냐?”
가치?
금액을 말하자는 것이라면 모르겠다.
애초에 이쪽 세상의 경제 관념을 아직 숙지하지 못했으니까.
소환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서우진은 돈이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이 지원이었고, 보급이었으니 말이다.
이전에도 생각했다시피 ‘소환석’은 이 세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아닌 듯했다.
그러니 가치, 그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가치가 없다는 말과 희귀하지 않다는 말이 같은 말은 아니었다.
마르테스가 저리 물어보는 것을 보면, ‘소환석’은 구하기가 꽤 까다로운 물건인 듯싶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서우진은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귀하다. 오직 마도사의 위에 앉은 마법사만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낼 수 있는 귀물이니.”
‘쩝.’
하늘탑의 주인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아쉬움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열 개를 주마.”
“여, 열 개요?”
깜짝 놀랐다.
앞에 깐 떡밥과는 달리, 파격적인 이야기였으니까.
‘1개에 열 번씩 사용할 수 있으니까, 무려 100번이나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어.’
하나라도 얻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는데, 그 열 배에 달하는 수를 주겠다니 놀랄 수밖에.
서우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감사, 압도적으로 감사합니…….”
“물론 공짜는 아니니라.”
허리를 꾸벅 접던 서우진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구하기 어렵다는 걸 쉽게 내줄 리가 없었다.
‘돈인가? 그건 좀 곤란한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지원된다고는 하지만, 돈은 아니었다.
물론 외출해서 사용할 용돈 정도는 지급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로 ‘소환석’ 열 개를 살 순 없을 것 같았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느니. 나의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족하니라.”
“부탁… 말입니까?”
서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마르테스의 말에 조금 안심했다.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메르노타인이라는 도시를 아느냐?”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있는 제국의 수도 이름도 잘 모른다.
눈을 끔뻑이고 있는 서우진의 모습에 마르테스가 풋- 웃었다.
“제국 동부의 도시니라.”
“아, 그렇군요.”
서우진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곳에 가서 한 가지 일을 해주어야겠다.”
“…그 메르 어쩌고 하는 곳에서 말입니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라.”
“대공이라…….”
서우진은 조금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검공과 마공에 이어 대공이라니.
남들은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양반들을 연달아 보게 생겼다.
“그 부탁이라는 것도 가봐야 알 수 있다니. 이거 귀찮게 됐네.”
마르테스는 그 이름 긴 도시로 가서 대공 브리아니를 만나면, 자연스레 그 부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괜히 또 이상한 일에 엮일 것만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소환석’이라는 아이템이 너무도 탐났다.
한 개도 아니고 무려 열 개다.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부탁을 들어줄 만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마르테스가 직접 제국과 아카데미 측에 일시적인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요즘 아카데미의 교육이 딱히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 이 기회에 좀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아. 다녀오자.”
마르테스는 같이 갈 사람이 있다면 동행해도 좋다고 했지만, 서우진은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다.
자신은 아니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아카데미의 교육이 큰 도움이 됐으니까.
‘기차 노선도 있다니, 이틀이면 일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겠지?’
시온과는 달리, 제국은 확실히 교통편이 좋았다.
서우진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에 들어섰다.
“아저씨 왔다!”
“오늘은 안 늦으셨구만.”
때마침 식사를 마치고 연무장에 모인 녀석들이 서우진을 반겼다.
그들을 향해 웃어주곤 훈련하기 위해 몸을 풀었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서 레벨을 올리자.’
앞으로 남은 ‘소환석’의 소환회수는 여섯 번.
적어도 10레벨은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마치 서울역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많은 사람이 대체 어딜 가는 걸까?’
서우진은 눈앞에 펼쳐진 인산인해를 보며 혀를 찼다.
기차 티켓은 웬만한 사람들은 살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값비싸다고 들었다.
그래서 당연히 플랫폼이 한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구만.’
서우진은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메르노타인 행 기차를 기다렸다.
아카데미 제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있었기에 그가 용사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씩 서우진을 힐끗- 쳐다보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그의 외모 때문이었다.
육체의 진화를 거친 뒤 서우진은 꽤 잘생겨졌다.
이전에도 나쁘진 않았지만, 신체의 균형이 맞춰지고 피부가 좋아지자 훨씬 더 깔끔한 외모가 된 것이다.
농담으로라도 절세의 미남 소리는 못 듣겠지만, 호감형이라는 이야기는 충분히 들을 만했다.
서우진은 애써 그들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용사님이라며 아이돌 취급당하는 건 부끄러웠지만, 잘생겨서 쳐다보는 건 기꺼웠다.
후후- 하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때마침 메르노타인 행 기차가 플랫폼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왔구나.’
서우진은 품에 있는 기차 티켓을 만지작거렸다.
이것 역시 마르테스가 준 것으로, 무려 1등석 티켓이었다.
‘황금 티켓이란 건 들어봤는데, 진짜로 금으로 만든 티켓이 있을 줄이야.’
종이처럼 얇게 가공되어 있긴 했지만, 24K 순금이었다.
서우진은 혹시 모를 소매치기에 주의하며 멈춰 선 기차에 올라탔다.
“이쪽인가?”
북적이던 플랫폼과는 달리, 기차 내부는 한산했다.
비싸디 비싼 1등석으로 향하는 복도였기에 그런 것 같았다.
서우진은 그 조용한 적막을 즐기며 티켓에 적혀 있는 자신의 좌석으로 갔다.
“여기다.”
1등석답게 프라이빗한 룸으로 되어 있었다.
‘오, 고급스러워.’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미닫이문을 열자, 내부가 보였다.
“이야…….”
서우진이 감탄했다.
무슨 고급 살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엔틱함으로 가득한 객실이었다.
“응? 그런데…….”
좌석이 두 개다.
단순히 의자가 두 개가 있는 게 아닌, 누가 보더라도 2인석이라는 인테리어였다.
“1등석인데도 합석이야?”
서우진은 살짝 실망하며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푹신-
고가의 소파가 서우진의 몸을 구름처럼 받쳐 주었다.
생각보다 편한 느낌에 만족하며 눈을 감았다.
‘네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면 될 듯했다.
그때였다.
드르륵-
객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슬쩍 뜨자,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어?”
서우진이 눈을 끔뻑였다.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긴 머리에 차가운 표정.
그리고 푸른색의 갑주까지.
“아일린?”
“혼자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아일린은 약간은 삐친 표정으로 서우진을 흘겨보았다.
“여긴 어떻게?”
“마공께서 우진 씨와 함께하라 부탁하셨어요. 티켓까지 손수 사주셨죠.”
“하, 하하.”
어색한 웃음이 났다.
아무도 데려오지 않고,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 했는데…….
‘글렀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욱 차가운 얼굴을 한 아일린을 보며, 콧물을 훌쩍였다.
“불편하신가요?”
“그럴 리가!”
서우진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했을 뿐.
“설마 저까지 떼어놓고 가실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요.”
“개인적인 일이라서 널 데리고 갈 생각은 하지 못했어. 아카데미에서 네가 맡은 일이 있으니까.”
아일린은 다른 기사들과 함께 여러 임무를 맡았다.
아카데미 경계와 교육 준비 등.
교육만 받으면 되는 용사들과는 달리,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을 터였다.
“제 임무는 우진 씨를 옆에서 보필하는 거예요.”
하지만 아일린은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서우진이었다.
아카데미의 일조차, 서우진을 곁에서 돕기 위함이었다.
“애초에 우진 씨는 혼자서 돌아다닐 만큼 저희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하시죠.”
할 말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 관념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처음 소환되었을 당시에 교육받긴 했지만, 그건 잊은 지 오래였다.
오직 검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바빴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오랜만에 같이 다니게 됐네.”
서우진이 기꺼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잘못을 가리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아일린은 그것을 모두 눈치챈 것처럼,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
“메르노타인에 대해서 말씀드릴게요.”
기차의 1등석에서 난데없는 상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여유로운 여행은 종쳤구나.’
북방에서의 스파르타 교육을 떠올린 서우진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일린의 주입식 교육을 들었다.
그것은 메르노타인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네 시간 동안 끊이지 않았다.
푸쉬이이-
마력의 잔재가 뿜어져 나오며, 기차가 정차했다.
“도착했네요.”
스트레스가 풀렸는지, 조금은 부드러워진 표정의 아일린이 먼저 기차에서 내렸다.
“……그래, 드디어 도착했어.”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서우진이 뒤를 따랐다.
‘1초도 안 쉴 줄이야.’
1등석이 아니라 꼬리칸에 탄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쪽이에요.”
아일린은 앞장서 길을 안내했다.
마치 와본 적이 있는 것처럼, 그녀의 걸음걸이에는 거침이 없었다.
‘시온에서만 지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아일린은 묘하게 제국에 익숙해 보였다.
처음 제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느꼈던 점이었다.
하지만 굳이 캐묻지 않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와-”
기차역을 빠져나온 서우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화려하다.
눈앞에 펼쳐진 메르노타인의 정경은, 제국의 수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도시였다.
마치 럭셔리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아일린에게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교육받으며 메르노타인 동부 최대의 축복받은 도시라는 사실을 숙지했다.
하지만 귀로 들은 것과 눈으로 직접 본 것의 차이는 컸다.
“대공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던 서우진이 묻자, 아일린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예요.”
손가락 끝에는, 거대한 성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