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0)
#89화.
‘그거?’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데요?”
그러곤 물었다.
브리아니의 곁에 누군가 있었다면, 무례하다며 호통을 쳤을 만한 언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귀엽다는 듯 서우진을 쳐다볼 뿐이었다.
“마르테스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니?”
“아, 네. 그냥 대공께서 가르쳐 주실 거라고만…….”
아찔한 브리아니의 외모에 서우진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별것 아니란다.”
눈이 호선을 그렸다.
장난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우아해 보였다.
‘황족이라더니.’
마치 로판 소설에서나 나오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그대로 꺼내온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냥 마르테스에게 전해줄 것이 있을 뿐이지.”
서우진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물건을 전달하는 심부름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걸 시키려고 날 보냈다고?’
‘소환석’ 열 개가 걸린 부탁이다.
마르테스의 말을 들어보면 간단한 부탁일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쉬워도 너무 쉽지 않은가?
‘그냥 하늘탑의 시종 아무나 보내도 될 일을 왜 나한테?’
쉬우면 쉬울수록 서우진에겐 좋은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건 여전했다.
서우진의 아리송한 표정을 본 브리아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다?”
“그게 무슨…….”
“직접 보여줄게.”
배시시- 미소 지으며 서우진의 뒤를 가리켰다.
“어?”
언제 나타난 것일까?
분명 방금 전까지는 없던 커다란 무언가가 등 뒤에 있었다.
서우진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브리아니가 손가락을 튕겼을 때 나타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능이라더니.’
마법은 아니다.
마력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서우진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마법일 확률도 있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이게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능력일 것이라 생각했다.
‘초능력 같은 건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녀가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말이다.
직접 물어보는 것도 실례가 될 게 뻔했기에, 서우진은 다른 질문을 했다.
“이게 뭡니까?”
가로세로 1미터는 되어 보였다.
검은 천으로 뒤덮여 있어 안쪽이 보이진 않았다.
“한번 걷어보겠니?”
브리아니가 턱으로 그것을 가리켰다.
조금 내키지 않았지만, 심부름을 하려면 내용물을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짝 긴장하며 천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뭘까?’
형태로 본다면 커다란 상자인 것 같은데…….
스르륵-
서우진의 손에 의해, 천이 바닥으로 끌어내려졌다.
그리고 안에 있는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철창이었다.
상자가 아닌, 쇠로 된 커다란 철창 말이다.
그런데 그 안에 누군가 갇혀 있었다.
“…다크 엘프.”
검은 피부에 뾰족한 귀.
제국에서 토벌을 갈 때마다 부딪혔던, 마왕의 추종자들.
열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서우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놀랐니?”
브리아니는 호기심 서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조금이요?”
설마 다크 엘프를 배달해야 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철창 안에 갇혀 있는 다크 엘프는, 서우진을 사나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입이 막혀 있고, 육체도 구속되어 움직이지는 못했다.
“다크 엘프가 마왕을 추종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죠.”
모를 수가 없었다.
“저 아이도 마찬가지란다.”
그런 것 같았다.
다크 엘프는 적대감 가득한 눈빛으로 서우진과 브리아니를 번갈아 보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묘한 곳이 있어서 말이지.”
“묘한 곳?”
“그건 너에게 밝힐 만한 일이 아니라서 대답은 못 해주겠네.”
브리아니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마르테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거든. 그걸 너에게 맡긴 모양이야.”
“…그냥 시종들을 시켜서 옮기는 게 낫지 않나요?”
굳이 자신을 부려서 보상까지 쥐여 주는 것보다는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이야기했지?”
브리아니가 손가락을 들어 다크 엘프를 가리켰다.
“저 아이를 구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단다. 꽤나 성가실 정도로 말이야.”
서우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대공이 성가시다고 말할 정도다.
만약 그녀가 검공이나 마공과 동급의 강자라고 치면, 그것은 단순히 귀찮은 일이 아닐 터였다.
서우진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브리아니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너 정도의 강자라면 이 녀석을 하늘탑으로 데려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테니까.”
그저 마법사가 올 것이라 상정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용사가 왔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큰 전력이었다.
아무리 이 녀석을 구하기 위해 다크 엘프들이 몰려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사들도 몇 내어줄 생각이니, 크게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렵지도 않다.
그 정도의 일.
브리아니의 말에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소환석’을 받기엔 충분한 거 같다.’
오히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생각해도 될 것 같았기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럼 언제 출발하면 될까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옮기고 싶었다.
그래야 빨리 보상을 받고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브리아니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최대한 빠르게 보내고 싶은데, 일이 좀 있어서 당장은 힘들어.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에 갈래?”
왠지 조금 더 놀다 가라는 말처럼 들렸기에, 헛기침을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가도록 할게요.”
“고마워. 혹시 원하는 게 있니? 마르테스가 나름대로 챙겨주긴 하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보내긴 조금 그러네.”
서우진의 눈이 반짝였다.
‘보상이 복사가 된다고?’
무려 대공이 한 말이다.
어설픈 보상은 주지 않을 것이다.
서우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소환석이 있을까요?”
“응? 그건 없어. 하늘탑에도 몇 개 없을 걸?”
서우진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구하기 어렵다더니, 진짜인 것 같았다.
“그럼…….”
서우진이 고민하고 있는데, 브리아니가 손뼉을 짝- 하고 치며 소리쳤다.
“아, 이걸 주면 되겠다!”
“네?”
“잠깐만 기다려 보렴. 안 그래도 전쟁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게 몇 개 있거든?”
살짝 눈을 감고 있던 브리아니가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겼다.
‘이건…….’
이번엔 확실히 봤다.
분명 아무것도 없던 그녀의 손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여전히 정체는 알 수 없는 능력이었지만, 확실히 마법은 아니었다.
오히려 용사들의 스킬과 비슷했다.
“자, 받아.”
브리아니가 건넨 것은 둥근 팔찌였다.
별다른 장식도 없는 은색의 심플한 팔찌.
이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브리아니가 설명을 이어갔다.
“마도사 급의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 팔찌야.”
조용히 있던 아일린이 옆에서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대단한 물건 같았다.
“‘셀레스티얼 윙’이라는 마법이 영구적으로 부여되어 있어.”
마법 부여 아이템?
“본래는 내 휘하의 아이에게 줄 생각이었는데, 네가 사용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가, 감사합니다.”
서우진은 일단 냉큼 받아들었다.
아일린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으로 봐선, 꽤 좋은 물건 같았던 것이다.
“잘 사용하렴.”
웃으며 말한 브리아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푹 쉬어. 루마스에게 말을 해놓을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그에게 부탁하고.”
특유의 우아한 발걸음으로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서우진이 아일린에게 물었다.
“‘셀레스티얼 윙’이 무슨 마법인데 그렇게 놀라?”
가만히 서우진의 손에 있는 날개를 지켜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천상의 날개라는 마법이에요. 이름대로 마법을 사용하면 등에 날개가 돋아나죠.”
“오, 그래?”
서우진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팔찌를 쳐다봤다.
하지만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브리아니나 아일린의 반응을 보면 뭔가 더 뛰어난 능력이 있을 것 같았는데…….
‘그냥 룩덕 아이템이잖아.’
보기엔 멋있을지 몰라도 쓸모를 생각해 보면 딱히 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런 기색을 눈치챈 아일린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날개를 이용한 비행도 유용하지만, 진짜 중요한 능력은 따로 있어요.”
말을 하는 아일린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그게 뭔데?”
이쯤 되자 서우진도 궁금해졌다.
얼마나 대단한 아이템인지 말이다.
“10분이라는 시간 제약이 있긴 하지만…….”
단어를 고르던 아일린이 말을 이었다.
“쉽게 요약하면, 마법 사용자의 전체적인 능력을 상승시켜 줍니다.”
“얼마나 상승되는데 그래?”
순간 버프 아이템이라는 뜻이었다.
‘버프 좋지. 룩덕질도 하면서 효과도 좋다면 금상첨화야.’
그리고 이어지는 아일린의 말에 서우진이 눈을 부릅떴다.
“최소 두 배에서 최대 다섯 배까지 증폭 가능해요. 물론 그만큼 시간의 제한이 줄어들고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요.”
입을 열 수 없었다.
* * *
“슬슬 움직여야겠군.”
게랄드가 눈을 떴다.
몸 상태는 만반이었다.
충분한 휴식으로 마기도 충만했고, 육체 역시 힘이 넘쳐났다.
이 정도라면 마공 하나쯤은 감당할 만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게랄드가 한쪽으로 팔을 뻗었다.
슈우우욱- 팍-!
벽에 걸려 있던 거대한 도끼가 날아와 그의 손에 잡혔다.
마병 ‘타르케’.
수많은 이의 피와 생명을 먹고 성장한 저주받은 무기.
게랄드의 애병이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지난 계획은 검공 때문에 실패했지.”
너무도 아쉬웠다.
제국의 버러지 같은 기사들과 용사들까지 모조리 ‘타르케’의 먹잇감으로 줄 수 있었는데.
그 이상한 용사 놈과 더불어 검공 때문에,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계획이 틀어졌다.
“허나, 오늘 일을 성공하면 될 일이다.”
다섯 수호자 중 하나를 줄인다.
그것은 제국의 무력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거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었다.
“때가 머지않았다.”
그의 주인이 이 더러운 위선자들을 몰아내고, 세상을 정화할 때가.
그분께서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걸으시도록 오늘 반드시 대공의 목을 잘라내야만 했다.
후우우-
기다란 숨결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불쾌하고 끈적끈적한 마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12호.”
조용히 속삭이자, 그의 그림자에서 12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준비는 되었나?”
“명령만 내리시면, 즉시 제국의 암캐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충분한 피를 뿌려야 할 것이다.”
“금일 메르노타인에는 피의 강이 흐를 것입니다.”
“족하다.”
게랄드의 검은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타르케’를 어깨 위에 걸친 그가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어라.”
“명을 받듭니다.”
12호가 모습을 감췄다.
게랄드 역시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는 대공성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