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2)
#91화.
“조금 쉬고 있어.”
서우진은 아일린의 몸을 침대에 뉘였다.
마기에 영향을 받아 몸이 굳어버린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일린은 필사적으로 서우진을 말리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안…….”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를 뒤로한 채 몸을 돌렸다.
‘게랄드.’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로 소름이 끼치는 기운이었다.
마기에는 포근함을 느끼는 서우진이었음에도 전신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복도는 조용했다.
그럴 만도 했다.
중급 기사인 아일린조차 가까스로 정신을 놓지 않는 게 전부였다.
대공성의 시종들이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걸음을 옮기며 주위에 쓰러져 있는 이들을 확인했다.
눈을 감은 채 기절하긴 했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기운만으로 사람들을 초죽음으로 만들다니……. 대체 얼마나 강한 거냐?”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자부했지만, 아직 게랄드는 하늘 위의 존재였다.
근래에 본 마공이나 대공과 같은 초극의 경지에 이른 괴물.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마기의 근원지 쪽으로 이동했다.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확률이 낮다거나,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로 서우진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불가능했다.
감추고 있던 모든 스킬을 개방해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버티는 것 정도라면 모를까.
“괜찮아.”
그런데도 서우진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만용이 아니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대공.’
이 성에는 게랄드와 같은 초극의 경지에 오른 대공 브리아니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오늘 게랄드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일 수 있을지도.’
그 괴물은 심대한 대적이다.
마왕의 추종자인 것도 그렇고, 서우진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아는 점도 그렇다.
할 수만 있다면 어서 목을 베어 죽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대공이 당하기라도 하면 더 곤란해질 수도 있어.’
자신이 게랄드를 느꼈듯, 그 역시 서우진을 찾아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 아일린에겐 미안하지만, 대공과 함께 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저벅- 저벅-
적막으로 가득차 있는 복도에 서우진의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앞이다.”
서우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게랄드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가공할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멈출 순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움직이려 할 때였다.
구우우우우웅-!!!
앞쪽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니, 폭발이 아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뒤틀리고 쪼개진다.
“으으윽!”
그것에 닿지도 않았건만, 서우진은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고, 공간 능력!’
게랄드가 이전에 보여준 기술이었다.
다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적이고 두려운 위력이었다.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저기에 휩싸였다간 뼛조각도 찾지 못할 정도로 짓이겨질 게 분명했다.
‘대공은?’
그 와중에도 대공의 안위를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붉은 머리카락이 눈앞에 휘날렸다.
“더러운 종자야, 이제 그만 죽어서 네 주인에게 돌아가렴!”
빠드득- 빠드드득-!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게랄드로 인해 왜곡된 공간이 그 규모를 점차 줄여 나갔다.
방 하나를 통째로 쥐어짜던 것이 이내 마늘구멍만큼 작아지더니, 이내 소멸했다.
‘공간… 능력?’
서우진은 이제야 대공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게랄드와 같은 공간을 지배하는 능력이었다.
마법도, 스킬도 아닌.
문자 그대로의 이능.
응접실에서 보여준 커다란 철창을 옮긴 능력도 그 능력을 이용한 것이었다.
“여긴 왜 왔니?”
서우진이 멍하니 서 있자, 앞에 선 브리아니가 물었다.
“도, 도움을 드리고자…….”
깜짝 놀란 서우진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것을 들은 브리아니가 풋- 하고 웃었다.
“그 마음은 가상한데, 아직은 네가 낄 자리가 아니란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온 것이었고.
그때였다.
“낯이 익은 얼굴이구나.”
흠칫-
서우진이 시선을 돌렸다.
심유하게 내려앉은 게랄드의 눈빛이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래. 그때 그 아이였어.”
붉은 머리가 그와 서우진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숨이 막힐 것만 같던 압박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 광신도 놈을 본 적 있니?”
브리아니가 물었다.
“…예전 고블린 부락 토벌 때 마주쳤습니다.”
“아아, 들은 적 있어. 다리엘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여 용사들을 구해냈다고 했었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주억였다.
“기억에서 지우렴. 저런 더러운 정신병자랑 얽힌 일 따위는 잊는 게 좋아.”
브리아니는 계속해서 게랄드를 도발했다.
아름다운 입술에서 내뱉어진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열한 단어들이었다.
물론 게랄드는 일말의 타격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저 서우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을 뿐이었다.
“불가해의 힘을 다뤘었지. 그날은 네게 크나큰 빚을 지었다.”
심장이 덜컹-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저 망할 새끼가…….’
혹시나 서우진의 능력에 대해 말을 할까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게랄드는 이 자리에서 굳이 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히죽-
게랄드가 웃었다.
“계획에는 없던 일이나, 제국의 일익을 꺾음과 동시에 희망 하나 정도는 꺼트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서우진과 브리아니를 모두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의외로 혀가 기네? 시궁창에서 홀로 구르다 보니 말상대가 필요했던 모양이야?”
딱-!
브리아니가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게랄드가 도끼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공간과 공간이 부딪히며 대폭발이 일어났다.
대공성의 일부가 통째로 날아가며 밤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기와 이능이 한데 뒤섞이며 불길한 보랏빛 오오라가 피어올랐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이제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크게 틀리지 않은 판단이었다.
현재의 서우진은 굳이 구분 짓자면, 분명 강자 쪽에 속했으니까.
그런데도 저 둘의 싸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진화한 육체도, 끝없는 마력도.
저 싸움에 휩쓸렸다간 먼지도 남기지 않고 스러져 버릴 것이다.
‘대체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는 거지?’
초극의 경지에 다다르려면…….
50레벨? 100레벨?
모르겠다.
지금의 서우진으로선 짐작조차 가질 않았다.
30레벨 정도면 반 슬레인과 비등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이전의 자신이 우스웠다.
‘어서 더 강해져야만 해.’
어디 가서 개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였다.
“이러다 내 집 다 날아가겠다.”
엉망이 된 대공성을 내려다본 브리아니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표정에선 장난기를 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이번 폭발로 목숨을 잃은 이가 수십에 달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브리아니가 서우진을 향해 말했다.
“얘,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니?”
서우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칠칠치 못한 녀석 좀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렴.”
브리아니가 손가락을 튕기자 서우진의 앞에 정신을 잃은 기사 한 명이 나타났다.
메이거스였다.
“알겠습니다.”
서우진은 처음 보는 기사였지만,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물어보진 않았다.
그저 그의 신형을 안아들 뿐이었다.
“고마워.”
싱긋- 웃어주고는 다시 게랄드를 쳐다본다.
“우린 장소 좀 옮기자. 여기서 싸웠다간 우리 애들 다 죽겠어.”
팟-!
동시에 브리아니와 게랄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마기 역시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안 느껴지는 건 아닌가?’
대공성에서 한참을 떨어진 곳에서 마기와 투기가 함께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다가 있는 쪽.’
브리아니가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저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우진 씨!”
그때, 뒤에서 아일린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검을 뽑아 든 그녀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게랄드의 마기가 사라졌으니, 그녀의 마비도 풀린 것 같았다.
아일린은 빠르게 다가오다 주변의 풍경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설마?”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랄드가 출몰했어요. 대공이 막고 있죠.”
“그런…….”
아일린 역시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마기에 몸이 굳어지는 경험을 직접 겪어본 적 있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입술을 짓씹던 아일린이 서우진의 품에 안겨 있는 기사를 발견했다.
“그분은… 메이거스 경이군요.”
“메이거스?”
“대공의 수호기사세요. 다행히 전사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정신을 잃긴 했지만, 호흡은 정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뚜렷한 부상도 없었고.
서우진은 아일린에게 그를 넘겼다.
“우진 씨?”
그녀가 미간을 좁혔다.
서우진의 표정이 심상찮아 보였던 것이다.
“안 돼요.”
아일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 전, 자신을 침대에 눕혀둔 채 혼자 달려갔던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가봐야 돼, 아일린.”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신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공 홀로 싸우게 둘 순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게랄드는 대공과 자신을 모두 죽일 셈이었다.
‘만약 대공이 당하면, 그땐 나도 죽음을 피하지 못해.’
그렇기에 더더욱 대공을 도와야만 했다.
비록 그녀가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도망쳐요.”
서우진의 결연함을 느낀 아일린이 말했다.
“대공께선 강해요. 게랄드에게 당할 분이 아니에요. 혹, 이겨내지 못한다 해도 결코 단 시간에 끝나진 않을 확률이 크죠.”
그사이에 도망을 가야한다.
아일린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우진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도망? 그 괴물한테서?”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도 개죽음을 당할 생각은 없으니까.”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서우진이 피식- 하고 웃었다.
“아일린은 이분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 그리고 제국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겠어. 이미 연락이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게랄드가 나타났다는 건 모를 수도 있으니까.”
제국의 수도와 메르노타인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늘탑.’
그들의 마법이라면…….
게이트든 순간 이동 마법이든.
금방 이곳에 지원이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부탁할게.”
아일린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서우진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도 자괴감을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우진의 말을 받아들였다.
“알겠어요.”
“고마워.”
서우진이 웃으며 몸을 돌렸다.
방향은 바닷가.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