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5)
#94화.
서우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 삼키려 했지만 그 작은 움직임조차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쿨럭- 하고 기침이 나왔다.
가슴이 부서지는 것 같았다.
“아직 이야기할 상태가 아닌가?”
브리아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셀레스티얼 윙’을 전력으로 사용했으니 멀쩡할 리가 없지. 아무리 사제들의 치유력이 강력하다고 해도 말이야.”
이미 사제들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니…….
‘대체 얼마나 망가져 있었던 거지?’
다신 ‘셀레스티얼 윙’을 전력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것도 이 상황을 모면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서우진은 무겁게 가라앉은 브리아니의 눈동자를 쳐다봤다.
“물을 게 많긴 한데, 대답을 못하는 상태인 것 같으니 일단 듣기만 하렴.”
얼핏 자상한 듯했지만, 음성 역시 싸늘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날 본 게 사실이라면, 네 검에 맺혀 있던 기운은… 마기와 비슷했단다.”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왕의 종자도 같은 말을 했었지, 아마? 어떻게 마기를 다루느냐고 물었어. 그렇지?”
브리아니의 시선이 전신을 훑었다.
그 차가운 시선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마저도 고통스러웠고.
“어떻게 된 걸까? 용사가 마기라니. 이해하지 못할 일이잖니.”
실제로 차갑게 내려앉은 브리아니의 눈동자에는 혼란이 가득해 보였다.
“나도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거든?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더라고.”
그녀의 손이 서우진의 이마 위에 얹혀졌다.
이대로 머리를 짓눌러 죽일 것만 같았다.
서우진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브리아니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래서 그냥 불문에 부치기로 했단다.”
‘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녀의 눈빛은 부드러웠다.
“생각해 보니, 넌 내 생명의 은인이잖아. 그런 너를 궁지에 모는 짓 따위를 어떻게 하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는 게 낫지.”
배시시- 웃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렴. 나는 네가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지 궁금해하지 않을 테니.”
의외였다.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아 올려 추궁할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모를 거야. 내가 입을 다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너는 그저 회복에만 집중하도록 해.”
브리아니가 몸을 일으켰다.
사라락- 하며 붉은 머리카락이 서우진의 코끝을 스쳤다.
아팠지만, 그보다 안도감이 훨씬 컸다.
“아참, 너와 함께하던 기사 아이가 많이도 걱정했어. 몸이 나으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주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 그녀의 눈은 마치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처럼 밝게 빛났다.
“난 간다. 푹 쉬어.”
브리아니의 모습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환상이었다는 것처럼.
서우진은 가만히 누워 그녀가 서 있던 곳을 쳐다봤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밖에 나갔던 아일린이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물이 가득 담긴 그릇과 새 수건이 들려 있었다.
문득 브리아니가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 * *
“많이 상했구나. 나의 잘못이 크다.”
마르테스.
무려 하늘탑의 주인이 문병을 왔다.
‘겸사겸사 들른 것이겠지만.’
서우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인형 같은 마공이 자신의 안부를 묻는다는 사실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좋았을 터인데…….”
마르테스는 서우진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용사의 가장 확실한 회복 방법은 레벨 업이다.
만약 서우진이 손가락만이라도 까딱일 수 있었다면, 그녀는 몬스터를 떼거지로 데려와 버스를 태워주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기에 저리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도 아쉽네요.’
버스를 타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몸을 회복시킬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만 더 참거라. 내 너에게 보은을 할 터이니.”
보은이라니?
게랄드와 싸우다 이 지경이 된 게 어떻게 보은이 된단 말인가?
서우진의 의문을 눈치챈 것일까?
마르테스가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브리아니는 내가 참으로 아끼는 아이니라. 이 땅에서 유일하게 친우라 부를 수 있는 이기도 하고. 네가 그런 아이를 구했으니, 보은하지 않고 어찌 가만있을까?”
그건 몰랐다.
‘하긴, 부탁할 사이라면 그 정도의 친분이 있었겠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에도 이야기를 해두었느니라. 하니 너는 회복에만 힘쓰면 될 터.”
‘애들이 걱정하겠네.’
휴가를 받아 놀러간 것으로 알고 있을 텐데, 갑자기 반송장 시체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얼마나 놀랄까?
특히나 이지아는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오겠다며 난리를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탁의 대가로 약속했던 ‘소환석’은 몸이 낫는 대로 주겠노라. 그에 더해 선물 몇 가지를 더 생각하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으리라.”
‘소환석’만으로도 기쁜데, 더 준다니?
서우진은 눈을 끔뻑이며 기쁨을 표시했다.
그 모습에 마르테스가 미소를 지었다.
“네 마음에도 들 터. 조속히 회복하고 나를 찾아오너라.”
서우진은 몸이 낫자마자 하늘탑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조잘거리던 마르테스가 떠난 뒤에도, 많은 사람이 병문안을 왔다.
브리아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고, 메이거스라는 최상급 기사도 왔다.
대공을 구해주어 고맙다며 시종들도 들락이며 편의를 봐주니, 몸이 아픈 것만 빼면 사치스러울 정도로 편한 생활이 이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서우진은 놀라운 속도로 회복을 했다.
“진짜 놀랍네. 대체 어떻게 일주일 만에 이렇게…….”
브리아니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천천히 비틀거리며 걷는 서우진을 쳐다봤다.
아일린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최소한 한 달은 정양해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메르노타인의 의사들도 그런 말을 했다.
몸이 너무 엉망으로 망가진 탓에, 한 달도 짧다고.
그런데 서우진의 진화한 육체는 시간을 압도적으로 단축해 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감사 인사가 끊겨 나왔다.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탓이었다.
“이 정도면 가능하겠어.”
“어떤, 걸?”
서우진이 묻자 브리아니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르테스가 가르쳐 준 방법이지.”
서우진의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 * *
“후우-”
천천히 심호흡했다.
숨이 담길 때마다 찢겨 나갈 것만 같았던 통증이 사라졌다.
손을 움직여봤다.
막힘없이 잘 움직였다.
마력 역시 이전처럼 힘차게 흘렀다.
“완전히 회복됐네요.”
서우진의 말에 브리타니가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용사란 정말 신기하네.”
레벨 업을 하는 장면을 처음 본 탓일까?
그녀는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덕분에 빨리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공성의 기사들이 몬스터를 쓸어 담아 왔다.
브리아니가 직접 손을 써 몬스터들을 초죽음으로 만든 뒤, 서우진의 앞에 던졌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룬 데아’를 들고 힘겹게 한 마리, 한 마리 찔러 넣은 것뿐이었다.
그리 격 높은 몬스터가 없었기에 꽤나 많은 놈을 죽여야만 했다.
50마리쯤 되었을까?
서우진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레벨 업을 했다는 글자가 떠올랐다.
망가진 몸이 회복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상태를 확인한 서우진이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덕본 건 나지. 네 덕분에 살았으니까.”
서우진이 침대에 누워 있을 때 했던 말을, 브리아니는 철저하게 지켰다.
다시는 그 마기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게 너무도 고마웠다.
“그나저나 아쉽네.”
브리아니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어쩔 수 없죠. 하늘탑에도 들러야 하고, 아카데미에 돌아가야 하니.”
“내가 볼 땐 그 아카데미라는 거. 너한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던데?”
그녀의 말이 맞다.
아카데미 교육은 모든 용사에게 공평한 수준으로 진행되니까.
서우진과 엘리트 친구들 같은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아카데미를 나와 혼자 훈련과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데도 서우진은 아카데미를 떠나지 않았다.
‘내 편을 더 만들어야 하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편을 들어줄 용사들.
그들과의 인연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혼자는 좀 외롭기도 하고.’
이미 많은 인연이 묶였다.
솔직히 그들을 뒤로하고 혼자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뭐,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브리아니는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 서우진을 두고 싶었다.
단 하루였지만, 서로 생명을 빚진 사이다.
이렇게 빨리 헤어지는 게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붙잡을 수도 없었기에, 브리아니는 쿨하게 서우진을 놓아주었다.
“아, 그리고…….”
서우진이 팔찌를 뺐다.
“이건 돌려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애초에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받은 아이템이다.
그런데 마르테스가 직접 와서 그 다크 엘프를 데리고 갔으니, 서우진이 대가를 받을 순 없었다.
‘아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꿀꺽- 하기엔 지나치게 좋은 아이템이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난 한 번 준 건 안 빼앗아. 이래 봬도 명색이 황족이란다?”
당연하게도 브리아니는 그것을 거절했다.
오히려 뭔가를 더 주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지금은 성과 메르노타인을 먼저 챙겨야 해서 정신이 없지만, 정리가 되면 선물을 들고 찾아갈게.”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말했지? 나 황족이라고. 내 목숨을 구한 값은 절대 싸지 않아.”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거부할 수도 없었다.
서우진은 고개를 주억이며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바로 돌아갈 거니?”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요.”
정신을 잃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벌써 10일이 넘는다.
애들이 걱정할 테니 빨리 돌아가서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조만간 아카데미로 놀러 갈게. 그동안 몸조심하고 있으렴.”
“알겠습니다. 그때 뵙죠.”
서우진은 담백하게 이별을 고하고는, 대공성을 빠져나왔다.
루마스와 메이거스가 따라와 배웅해 주었다.
“……1박 2일만 있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오래 있었네.”
“살아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요.”
게랄드를 만나 전투까지 벌였는데도 목이 붙어 있다는 건,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제국의 수도는 이미 발칵 뒤집어졌을 수도 있다.
“이제 당분간은 밖으로 나다니지 말자.”
아카데미를 나서 외유를 할 때마다, 일이 생긴다.
그것도 죽음을 떠올릴 정도의 커다란 일이 말이다.
마가 끼었다고 생각하며 다신 아카데미를 벗어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일린이 픽- 하고 웃었다.
저렇게 말을 해도, 또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 돌아가요.”
기차가 도착했다.
황금 티켓을 꺼내 들고는 1등석에 올랐다.
짧지만 긴 외유가 끝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