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Genius Spy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평온 (完)
무너진 세상에 없는 계절에서 체나루스로 돌아온 지도 8년이 흘렀다. 로마네크 평원 전투로부터 13년이 지났다는 뜻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내가 없을 때도 있을 때도. 돌아온 처음에야 상당히 바빴다. 만날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환영식이자 결혼식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은 지구에서도 이곳에서도 처음이라 긴장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첩보원으로 훈련받은 내가 대악마를 싸울 때보다 긴장한 것이 우스웠다. 물론 그만큼 행복하기도 하였다.
결혼식을 겸한 행사였기에 오르헨을 따로 만나지는 못했었다. 에렌딜과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 따로 움직였다.
오르헨을 만난 뒤에는 따로 프히리와 첩보장을 찾아가기도 했고 툰 자하와도 술을 먹었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동부와의 교류가 시작된 것이 그것이었다.
대악마를 잡기 위해 트라팔 산맥에 거대한 진입로를 뚫었으므로, 그 길을 통해 동부와 소통이 시작되었다.
과거 동부의 왕국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악마가 사라진 후, 제국은 적의 편에 선 자들을 응징했으니.
‘잘 물갈이가 되었지.’
동부도 제국의 힘을 알고 제국도 그 원한을 계속 유지할 생각은 없었다. 에렌딜이 그런 성향은 아니었으니.
어쨌든 트라팔 산맥에 생겨난 길은 ‘평화의 길’로 불리며 대륙과 동부를 잇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동부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드워프와 엘프들과의 관계도 조금씩 개선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반발하는 이들도 많았었다.
엘프들이야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해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낌새를 내가 엘프 대마법사를 죽이며 봉쇄했으니까.
‘드워프는 아니었지.’
드워프는 직접적으로 적들의 편에서 제국에게 해악을 끼친 이들이었다. 실제로 악마가 사라진 직후 동부와 함께 응징을 당하기도 했고.
하지만 에렌딜은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먼 과거의 선례를 들먹이면서 말이다.
기실 이종족들이 적에게 가담한 이유는 원초적으로 제국에 있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으니까.
이종족들이라고 하여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쌓인 증오가 많다. 에렌딜의 노력이 있었다.
‘과거의 일을 사과하고 모든 이종족 노예를 해방하며 노예 금지령을 내렸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힘으로 밀어 버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제국 내에선 이종족들의 씨를 말리자는 얘기도 나왔었으니까.
다만, 에렌딜은 혹여나 이러한 일의 재발을 막고 싶어 하였다. 제국의 과오도 인정하였고.
금방 해결된 일은 아니었다. 몇 차례 사절이 오갔고, 에렌딜이 직접 엘프나 드워프들의 수장을 만나기도 하였다.
엘프 쪽은 수월하였으나 드워프 쪽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최근에도 직접적으로 부딪쳤으니.
‘그나마 드워프 쪽 수장이 바뀌어서 다행이었지.’
대악마가 사라진 이후, 강경파 드워프들이 자리를 잃었다고 하였다. 원래 모든 일이 그런 법이다.
에렌딜은 과거 제국의 과오를 사과한 뒤, 제국 내에 이종족들을 위한 자치령을 마련한다고 약속했다.
물론 제국 쪽에서 온전히 지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얘기가 오가며 그 당시 악마의 편에 붙어먹었던 이종족들의 응징을 요구했다.
켐벨 백작이 바쁘게 움직였다. 수십 차례의 회의 끝에 어느 정도 합의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물꼬를 트고 있었다. 당장 세계수와 산맥 속 지하 도시를 버리고 이주할 수는 없겠지만…….
그 도시에 일부 이종족들이 이주해 살기 시작하였으므로, 점차 상황은 나아질 것이었다.
나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앞으로의 세계를 위해서 대륙이 평화롭기를 바랐으니까.
내가 그걸 바라는 이유는 그동안 안정된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에렌딜과 나 사이에서 우리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아버지!”
“케리킨.”
올해로 일곱이 된 아이는 내 삶의 새로운 빛이었다. 흔히들 아이가 생기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들 한다.
예전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빛을 안아 들었다.
“아빠가 그렇게 좋아?”
“네!”
“나도 그래.”
웃으며 따라온 에렌딜이 케리킨의 볼을 쓰다듬고는 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웃으며 입을 맞추었다.
“빨리 나왔네.”
“일찍 출발하고 싶다며.”
케리킨은 호기심이 많았다. 나와 에렌딜이 대악마를 몰아냈다는 걸 안 순간부터 그때의 얘기를 듣는 걸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서부 얘기를 해 주었었다. 케리킨은 바다에 대해서 알고 나서 그곳을 보고 싶다고 했었고.
그렇기에 오늘은 서부로 향하는 날이었다. 카스막이 우리를 위해 지어 준 별장으로 말이다.
에렌딜이 빨리 나왔다고 한 건 연무장에서 나왔단 뜻이었다. 검을 잡으면 시간 감각을 잊는 편이니까.
하지만 케리킨과의 약속까지 잊어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당연히 출발시간보다 일찍 나왔고.
“왜? 조금 이따가 다시 올까?”
“아니.”
에렌딜이 장난스럽게 나를 노려보았다. 아, 달라진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에렌딜의 말투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황실의 말투를 사용하곤 했으나 나에게만은 예외였다. 그때, 기사 하나가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왔다.
“폐하, 하이센의 소드 마스터 데니프 경께서 찾아오셨습니다.”
“…….”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에렌딜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사람은 할 일도 없다느냐?”
“그…….”
보고하러 온 기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황제와 소드 마스터 사이에서 어떤 말이든 하긴 쉽지 않으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다. 일단 알겠으니 가 보거라.”
“예.”
물러나는 기사를 보며 에렌딜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볼을 긁적였다.
데니프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하나뿐일 거다. 같이 검주의 자리를 놓고 검을 가다듬고 있었으므로.
‘괜한 짓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 직후, 나는 데니프의 줄어든 열망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일부러 도발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때의 데니프가 이해되었다. 반려자와 아이가 생기는 건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거싱었다.
물론 검에 대한 열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케리킨과 에렌딜이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데니프도 나와 비슷했었다. 다만, 데니프는 내 도발과 자식이 조금 나이가 들면서 검에 대한 열망이 다시 샘솟은 거고.
‘그리고 데니프의 딸도 데니프와 판박이란 말이지.’
이제 10살이 넘은 데니프의 딸아이는 옛날의 데니프처럼 검을 휘두르는 것을 좋아했다. 데니프와 함께 나를 만났을 때도 검을 알려 달라고 할 정도였으니.
딸을 가르치면서 그 열망을 보고 과거의 기억을 되찾았다고 해야 할까.
에렌딜의 시선이 내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뭐, 아무 일정이 없으면 데니프와 수련을 하러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돌아가거나 기다리라고 할게.”
“기다리겠지.”
“응. 그럴 거야.”
어차피 소드 마스터인 데니프가 할 일이라곤 없었다. 검을 수련하는 것뿐이다. 제국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진 않을 거다.
아마 내가 서부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지. 그리고 수련을 하기 위해 어디론가 가자고 할 것이고.
“칼.”
“금방 돌아올게.”
에렌딜의 눈총이 따가웠다. 아직 데니프와 수련하러 가기는커녕 서부로 떠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저번에도 그렇게 얘기하고 2주 동안 연락도 없었잖아.”
“아, 그건…….”
할 말이 있긴 했다. 원래는 데니프와 수련하러 떠난다고 해도 일주일 안으로 돌아왔었다. 연락을 하는 건 당연하고.
솔직히 말하면 성에 차지 않는 기간이었으나 에렌딜과 케리킨이 내게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때는 무언가 깨달음의 벽을 마주했던 때였다. 실마리가 보였다고 해야 할까. 넘어서진 못했지만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이번엔 다를 거야.”
“그냥 여기서 하면 안 돼?”
에렌딜이 되물었다.
“나랑 케리킨을 많이 사랑하는 거. 칼이 검에 집중하는 게 싫은 것도 아니고.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할게.”
“정말?”
“응. 에렌딜의 부탁이잖아.”
굳이 따지면 검을 수련한다고 해서 멀리 떠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편이 편하긴 했다. 온전히 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니까.
에렌딜이 나와 케리킨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황궁을 벗어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에렌딜이 저렇게 얘기하는데 고집하고 싶지는 않았다. 원래 서로 조금씩 맞춰 가는 것이다.
나나 에렌딜이나 서로에게 불평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이런 불만도 몇 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반려자와 아이를 두고 며칠 떠나 있는 것도 옳게 된 행동은 아니고. 에렌딜에겐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고 데니프가 싫어하거나 투정 부리진 않을 것이었다. 데니프 역시 많이 바뀌었다.
예전처럼 아이 같진 않았다. 열망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꽤 어른스러워졌다.
아무래도 리나와 함께하고 아이가 생긴 탓이겠지. 그 변화가 낯설 때도 있지만 나는 지금의 데니프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고마워.”
미소 지은 에렌딜이 나를 껴안았다. 나도 그 등을 마주 안았다.
“내가 더 고맙지, 이해해 줘서.”
“나도! 나도!”
우리가 서로를 끌어안자 케리킨이 자기도 안아 달라고 손을 뻗었다. 우리는 웃으며 케리킨을 안아 주었다.
“출발할 준비하고 있어. 얘기하고 올게.”
가족들과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평온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데니프를 만났을 때 나는 친구가 다른 이유로 찾아온 것임을 깨달았다.
혼자 검을 들고 온 것이 아니라, 리나와 딸인 셀레네와 함께 찾아왔으니까.
“아저씨! 안녕하세요!”
붙임성 좋은 셀레네가 나를 보고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황궁 안, 보는 시선이 많아 리나가 말리는 게 보였다.
“괜찮아. 갑자기 무슨 일이야?”
“여행 중에 셀레네가 케리킨을 보고 싶다고 해서. 미리 연락 못 해서 미안하다.”
“미안하긴. 그런데, 음…….”
검 때문에 온 게 아니라면 얘기가 살짝 달리지긴 했다. 에렌딜도 셀레네를 꽤 귀여워하는 편이었고 케리킨도 누나라고 하며 잘 따랐다.
실제로 1년에 두 번 정도는 데니프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긴 하였다. 에렌딜도 좋아하였고.
아무래도 에렌딜 주변엔 또래 친구가 없으니 나와 친한 데니프와 리나를 재밌어했다. 그래도 혼자 결정할 수는 없었다.
“왜?”
“사실 서부에 바다를 보려고 떠나려던 참이었거든.”
“정말? 이런. 셀레나, 케리킨은 다음에 봐야겠다.”
“응? 바다? 나도 가고 싶은데!”
데니프가 얘기했으나 셀레나는 더욱 큰 호기심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데니프처럼 바보 같으면서도 리나처럼 눈치 빠른 면이 있었다.
저 눈빛은 내게 자기도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바로 거절할 생각은 없다.
“잠시만 기다려 봐. 에렌딜에게 얘기해 볼게.”
그리고 에렌딜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승낙했다.
“좋아.”
“괜찮아? 가족끼리 보내자고 한 거였잖아.”
“다녀와서도 칼이 수련하러 가지 않는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셀레나도 귀엽고.”
음, 아무래도 같이 여행을 간다기보다는 그 이후에도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았다.
나도 웃었다. 에렌딜과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행복한 편이었으니까.
“케리킨!”
승낙이 떨어져 데니프 가족을 데려옴과 동시에 셀레나가 케리킨을 향해 후다닥 달려오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던 케리킨이 손을 벌리자 셀레나가 케리킨을 껴안아 들었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사실 황자인 케리킨에게 저러는 건 절대 불가능한 행동이었지만 우리 사이니까 가능한 것이다. 리나가 말렸다.
“셀레나, 케리킨이 싫어할 수도 있잖니.”
“아니에요. 좋아하는걸요!”
셀레나의 말대로였다. 케리킨은 셀레나에게 안긴 채 웃고 있었으니까. 보면 볼수록 리나와 데니프를 닮은 것 같았다.
“조금 늦어졌으니 이제 출발할까?”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꽉 손을 잡은 케리킨과 셀레나가 용력거를 향해 앞장섰다.
그 뒤에서 따라가는 나와 에렌딜, 데니프 리나는 눈을 맞추고 미소 지었다.
“지금이라도 약혼시킬까?”
“데니프!”
데니프의 호들갑에 리나가 그 어깨를 찰싹 때렸다. 아직 이르긴 이르다. 에렌딜은 그냥 내 손을 잡았을 뿐이다.
새삼스럽지도 않게, 나는 이러한 행복이 좋았다. 평생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아니, 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