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Scrapped Extr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08
라일락 꽃이 피지 않는 혼돈의 옥좌 위에서 (2)
“…필요해.”
그 순간, 온몸이 짜르르 울리며 각성한다. 찔러 들어오는 단검을 고개를 꺾어 피하고는 곧바로 양손으로 집사의 관절들을 꺾어 단검을 낚아챈 후 역으로 목을 찌른다.
“커허어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지는 집사. 목줄기에서 피가 분수처럼 예쁘게 예쁘게 솟구친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붉은 물방울들이… 이미 시들어버린 보랏빛 꽃 위를 덮는다.
난 천천히 걸어서… 라일락. 이제야 이름을 알게 된 메이드를 안아 들었다.
– 먹어버리거라.
그 순간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 미친 소리냐고,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 그걸로 영원히 함께하는 거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틀렸는데, 틀린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맞는 말….
손을 뻗었다. 검은 멍울이 맺히더니, 이내 아가리를 벌린다. 라일락을 점점… 잡아먹는다. 뱀이 먹잇감을 삼키듯, 한입에 꿀꺽.
아아, 아아아….
– 자, 가자. 복수의 시간이다.
난 천천히 일어서서… 울브하딘 가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음…? 뭐야, 마틴 도련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정문에 포진된 경비들이었다. 그들이 날 보며 들으란 듯 비웃는다.
“하! 결국 돌아왔군.”
“차라리 영영 떠나버리지.”
“쯧!”
경비들이 날 보며 엽총을 들고 겨눈다.
“마틴 도련님, 어떻게 밖으로 나가셨는지, 뭘 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가주님께서 곧 오실….”
경비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내가 던진 단검에 심장이 관통당했으니까.
“라일락의 고통을, 너희도 겪어라.”
당황한 다른 경비가 격발한 탄환이 날아오고 난 그걸 손으로 잡아서 도로 던졌다.
손으로 던진 탄환에 미간이 관통당한 경비가 쓰러진다. 난 천천히 다가가서 경비의 엽총과 탄약집을 집어 들었다.
약실을 열고, 살인을 기다리는 텅 빈 공허의 약실에 내 살심을 담아 탄환을 장전한다.
“으악!”
“꺄아아악!”
“마틴이 미쳤다!”
울브하딘의 저택으로 들어가서, 다 죽였다. 다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마, 틴….”
그리고 이내, 가주인 윌리엄마저.
그의 영혼의 반려인 거대한 울브하딘의 엽견도 죽였다. 그리고… 저 멀리서 또 다른 개 한 마리가 내게 다가온다.
세바스찬. 나와 다른 방에 구속되어 있던 나의 엽견.
세바스찬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똥 마려운 개처럼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놈이 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이리 와.”
명령.
어쩔 수 없다는 듯 다가온 세바스찬이 덜덜 떤다. 놈을 잡고, 혼돈을 주입했다.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지만 그것 또한 찰나. 곧 세바스찬이 거대한 사냥개로 거듭난다.
“…먹어치워.”
곧, 세바스찬이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포식하기 시작했다.
‘지치는군….’
이 혼돈의 힘은 강력하지만…, 그만큼 피곤하다. 난 조용해진 저택을 나와서 지하수로로 숨어들었다.
가장 더러운 곳에 도달한 나는, 쓰러지듯 잠들었다.
*
“아, 일어났군요.”
눈을 뜬 나는,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메이드 라일락이 날 보며… 일어났냐고. 그렇게 물어봐 주었다.
‘…아냐.’
라일락은 죽었다. 나와 함께하고 있지.
정신을 차린 나는… 상아빛 머리카락의 여인을 볼 수 있었다. 웃는 얼굴이 인상적일 것 같은 나긋한 표정의 여인.
“넌.”
“안녕하세요. 전 헤레인이에요.”
그녀의 뒤로 펼쳐진, 뼈. 그리고 살점. 그리고 피의 웅덩이.
나는 그 정중앙에 위치한 제단 위에 눕혀져 있었다.
또 그 뒤에는… 분홍색 양갈래 머리를 한 소녀도 보였는데. 분홍빛 눈동자가 텅 비어 있어서, 정신이 빼앗긴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운이 좋네요.”
“….”
그 둘은 아카데미 생도복을 입고 있었다.
아아… 그래, 본 적 있는 것 같다. 헤레인과 루리. 제법 유명한 듀오다.
“내 아지트 근처에 누워서 자다니. 거기다가… 뭔지 모를 아름다운 향까지 풍기면서요.”
“….”
그래, 있다. 원작에서도. 엘리도르 후작가의 금지옥엽 딸이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 분명 악마군주와 연관된 사건이었을 터.
“고마워요. 당신의 시체는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게요.”
손을 뻗어오는 헤레인. 나도 손을 뻗어서 헤레인의 손목을 잡았다.
“후후, 내 몸은 지금 인간을 초월한…, 어?”
움직이지 않는 손에 당황하는 헤레인.
“…배가, 고파.”
곧, 내 손에서부터 피어오른 혼돈의 아가리가 헤레인을 집어삼킨다.
으적거리는 소리. 끔찍한 비명. 그러나 혼돈의 아가리는 곧 그 소리마저 삼켜버렸다.
새로 채워진 힘을 무미건조하게 확인했다.
‘음.’
새로운 연결이 느껴진다. 루리. 저 여인의 정신지배권이 내게로 이양된 것이다.
‘…쓸 데가 있으려나.’
정신을 지배당한 후작가의 영애라. 당장 죽이기보다 더 유용한 쓰임새가 있을 터.
“이건.”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헤레인의 것이었을 책을 발견했다. 인간의 가죽으로, 인간의 피로, 인간의 힘줄로 형성된 책.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 흐르는 책이었다.
손을 뻗어 건드리자, 책이 마기를 뿜어내며 홀로 떠올라 펼쳐지며… 하나의 형상을 그렸다. 염소 머리에 정장을 쓴 기묘한 악마.
‘악마군주, 켈투.’
[오오, 이게 누군가. 내가 풀어놓은 장난감이 소멸해서 당황했는데, 이거 귀한 분이셨군. 카오스의 사도라니. 한낱 장난감 따위는 기꺼이 선물로 내어드리지.]일곱 악마군주. 이 세계를 종말로 이끄는 원인 중 하나. …난, 이놈들도 싫다.
“난 카오스의 사도가 아니다.”
[아니라고? 어….]켈투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웃는다.
[상관없지. 인류를 적대한다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이 책을 가지고 다니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열어주기만 해줘.]그러고는 책이 알아서 닫히더니 내 손등 위로 수납되며 기형학적 마법진이 새겨졌다. 대충 수습은 끝났다.
‘이제…, 어쩐다.’
할 게 없다. 정말로.
– 이리로, 와라….
그때, 내 삶의 이정표처럼. 혼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 경계 너머, 나의 처소로….
‘잘 됐군.’
난 정신지배에 조종당하는 루리를 조종해서 경계로 향하는 마차를 살 수 있었다. 대충 필요한 식량 같은 걸 싣고 출발하려는데, 화살이 날아와 내 발치에 꽂혔다.
“이봐!”
저 멀리서 나타난 붉은 궁수는.
“멈춰! 어딜 가려는 거지?!”
엘리샤. 길버트 일행이 자랑하는 최속의 궁수.
“이미 제국 경비대에 신고했어! 내 친구들도 오는 중이고! 울브하딘 가문이 멸망한 것과 분명 관련 있는 거겠지?!”
난 기분이 더러워져서.
“어쩐지 수상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어?”
손을 뻗었다. 혼돈이 아가리를 벌려서, 저 멀리 있던 붉은 궁수를 덮친다.
으적, 으적.
뼈가, 살이 씹힌다. 난 포식을 계속하며 마차에 탑승했다.
“가자.”
내 말에 루리가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카오스가 날 부른다. 동쪽, 아아 동쪽으로 가자.
나무가 빼곡한 숲을 지나, 너른 들판을 지나서. 강을 건너고 산 사이의 협곡을 지나… 저주받은 마경으로.
무법지대를 통해 경계로 넘어간 우리는 마경을 한참 내달렸는데, 그리하여 도착할 수 있었다. 멸망한 코스모스 제국의 수도로.
“어서 오도록. 카오스님께 들었다.”
“후후, 이거 진귀하군.”
교황 듀라카프텔, 교황 발렌디스. 그 둘이 나를 반겼다.
“카오스님께선 널 그분의 가장 강력한 용사로 육성하라고 하셨다. 지금부터 무술과 혼돈을 다루는 각종 방법에 대해 가르칠 것이다. 당연히 혹독할 것이고, 사지를 넘나들며… 실제로 몇 번은 죽겠지만 걱정하지 말도록.”
그 말대로… 난 혹독한 수련을 받았다. 2년 동안이나. 그 와중에 몇 번이 아니라 수만 번은 죽었는데, 카오스의 영역에서는 죽음도 강해지는 과정일 뿐이었다.
버텼다. 내 꽃을 시들게 한 이들을. 또 그리되도록 방치했던 모든 것들을 불태워버리기 위해서.
“오….”
“굉장하군.”
2년에 걸쳐 카오스가 주는 양분을 무럭무럭 먹고 자란 나는, 제법 강자가 되어 있었다. 듀라카프텔에 의하면.
“금강.”
이라는 듯했다.
“후후, 이제 대륙의 정복도 코앞이군.”
“그분의 위업을 모두가 두려워하리라.”
황제와 교황이 껄껄 웃으며 자기들이 만들었노라고 착각하는 카오스 최강의 용사를 보며 만족에 겨워하는데.
– 이제, 잡아먹거라.
카오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의 몸이 경직된다.
난 손을 뻗어 두 사람을 포식했다. 아주 간단하게 고열량의 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
– 저것도.
거대한 혼돈의 구에 봉인되어 있는 여인이 보였다. 황제와 교황은 그녀를 ‘성녀 카렌’이라 불렀었지만, 됐다.
‘상관없지.’
그저 손을 뻗어 혼돈의 아가리로 카렌을 통째로 먹어치웠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가 본래 얼마나 강했는지. 이전에 먹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달콤했으며, 포만감이 차올랐다. 실로 전에 없을 진미(珍味)였지만.
‘여전히 부족해….’
– 자, 가라. 세상에 복수를 이행해야 할 때다.
카오스의 인도를 따라서, 나는 루리와 함께 대륙으로 돌아왔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세계의 기둥, 이라 불리우는 북방의 산이었는데.
“난장판이군.”
폭탄 터지는 소리가 쉼 없이 울린다. 거대한 두 개의 기운이 충돌하며 폭주한다. 저 산꼭대기에서… 누군가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의 여파가 산 아래에 미칠 만큼 강한 전투력을 가진 이들이다.
– 올라가라. 저 위에, 네 허기를 달랠 성찬이 준비되있다.
난 루리를 대기시키고, 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는데, 격렬한 전투음은 그사이 더 거세졌다.
난 루리를 대기시키고, 홀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데만 꼬박 이틀이 걸렸는데, 격렬한 전투음은 그사이 더 거세졌다.
도착해보니… 거기에는 팔이 여덟 개인 악마 투사가 쌍권총을 든 순백의 남자와 싸우고 있었다.
‘아.’
카오스가 전해주는 지식들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코스모스. 그 빌어먹을 위선자 놈의 성자.
그리고 팔이 여럿인 투사는 연고 없는 폭력의 악마군주 툰칼.
‘재미있군.’
난 간만에 책을 빼 들었다. 2년 전, 헤레인에게서 빼앗은 책이었다. 혼돈을 불어넣자, 다시 켈투의 형상이 나타났는데.
“난입하지. 코스모스의 성자를 죽이겠다. 툰칼에게 오인하지 말라고 전해두도록.”
[오, 세상에. 우리야말로 대환영이지! 기껏 지옥 최강의 전사를 완전 강림시켜놓았거늘, 어떻게 알고 찾아온 성자 때문에 엉망진창이었는데 잘 됐군!]툰칼과 합력하여… 코스모스의 성자와 싸웠다. 칠주야 동안의 전투를 치른 끝에 마침내… 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크으, 괜찮은 전투였다! 하하! 내가! 이 몸이! 코스모스의 성자를 꺾었다!]고작 인간 한 명 꺾은 걸로 저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난 죽어가는 성자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감겨가는 눈동자를 억지로 뜨고 나를 본다. 순백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넌…. 카오스의, 사도….”
“네가 성자 알렌인가.”
“약관도, 쿨럭! 안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어찌…. 네 이름이, 뭐지.”
성자의 질문에 나는 못 알려줄 것 없겠다 싶어서 말했다.
“마틴.”
“네게… 축복 있으라…. 이 세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혼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거라….”
“글쎄.”
난 손을 들었다. 혼돈의 아가리가 성자에게로 입을 벌린다.
“성녀라던 네 여동생을 잡아먹을 때도 별생각 안 들던데.”
성자의 두 눈동자가 찢어질 듯 크게 뜨인다.
마지막 순간까지 날 위해 축언을 읊던 그의 눈동자에 담긴 건, 분노와 증오였다.
하지만 늦었다. 혼돈의 아가리가 그를 씹어 삼킨다.
– 이제, 네가 나의 가장 강력한 전사다.
곧…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고양감이 들었다.
‘아, 아아, 배고프다…!’
뒤돌아서, 기뻐 환희하는 악마군주 툰칼에게로 손을 뻗었다. 오랜 전투로 지친 녀석이, 저항도 채 못하고 그대로 뼈까지 씹혀가며 죽었다. 그를 영혼째로 포식하고선 아쉬움에 혀를 찼다.
‘맛있지만, 성자의 영혼만큼 맛있는 건 다시 찾기 힘들겠군.’
[이게! 무슨 짓이냐아아아!]책이 펼쳐지며, 켈투의 형상이 튀어나왔다.
[우린 협력…!]그러나 곧바로 혼돈의 아가리가 책을 집어삼켰다.
이젠 필요 없는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