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먼저 먹는 게 임자 (2)
가을 대륙을 떠난 비공선은 무난하게 비행을 이어 나갔다.
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쌍둥이는 여전히 창문에 붙어 밖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저렇게 신기한가?’
전생에서 비록 해외여행은 해 보지 못했지만, 제주도를 가는 비행기는 타 봤었다.
때문에 로이스는 하늘을 나는 비행체는 크게 신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쌍둥이에게는 이것이 색다른 경험이었나 보다.
“높아!”
“엄청 높이 날고 있어!”
드래곤에게 있어 가장 취약한 부위가 바로 날개였다.
그중에서도 피막.
때문에 헤츨링 시절에는 날개 근육이 자리 잡지 않았다는 이유로 높은 비행을 금기시했다.
혹여라도 돌발 상황에 피막이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은화성을 갈 때 각자의 아빠에게 업혀 대기권을 돌파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 정도 높이까지 올라와 본 게 처음이리라.
충분히 신기해할 만했다.
하지만 로이스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널찍한 침대.
그곳에 몇 가지 물건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실상 로이스가 페이지와 다른 방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가진 물건들을 그녀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은 참룡검.
학술제를 마치고 떠나오며 얻어낸 정신파 변환 물질의 샘플.
그리고 겨울 대륙에서 죽을 위기를 겪으며 얻은 영웅왕의 무법까지.
그중 참룡검과 영웅왕의 무법을 바라보는 로이스의 눈은 매우 깊었다.
‘검성 켄드릭을 있게 만든 최강의 패가 전부 내 손에 들어왔다.’
참룡검과 영웅왕의 무법.
이것이 우연인지, 혹은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래의 검성을 만들어 낸 모든 도구를 손에 쥐게 되었다.
자신이 이를 봉인한다면 검성이란 존재는 나타나지 않게 되리라.
하지만 로이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 좋은 걸 왜 안 써?’
아직 참룡검이야 봉인을 풀 히든피스가 나타날 시기가 되지 않았다지만, 영웅왕의 무법은 다르다.
‘슬슬 이것도 익혀 봐야겠지.’
그간 이러저러한 일에 치여 수련을 할 시간이 부족했었다.
이동 계획을 세우랴.
극성맞은 쌍둥이를 챙기랴.
종종 벌어지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랴.
지난 2년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것이 로이스였다.
그런 노력으로 많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고, 그렇게 생긴 시간을 자신을 위해 투자할 생각이었다.
‘이제 가을 대륙을 넘었으니 절반… 남은 시간이면 충분히 집에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부터는 조금 여유 있게 움직여도 되겠지.’
물론 그 여유는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이 되리라.
‘우선은 틈틈이 영웅왕의 무법을 익히고. 남은 시간은…….’
로이스의 시선이 이번에는 정신파 변환 물질에 닿았다.
어찌 보면 영웅왕의 무법보다, 그리고 참룡검보다 정신파 변환 물질이 로이스에게 더 값어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연이 만들어 낸 기적의 산물이라….”
정신파 변환 물질을 처음 고안해낸 광휘의 탑 와트와 법사들.
하지만 그들도 정작 어떤 원리로 이것이 만들어졌는지는 몰랐다.
그저 그들은 여러 가지 물질을 섞어 가며 정신파 변환 물질을 만들어내는 배합법을 찾아냈을 뿐이었다.
로이스가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 여겼다.
‘이건 혁명이다!’
그것도 성법의 체계를 완전히 뒤바꿀 혁명 말이다.
‘속성과 속성이 치환되고 연동되는 과정… 그것만 풀어낸다면.’
자신의 성법은 한 차원,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리라.
이를 생각하니 로이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귀하디귀한 세 가지 물건을 다시 품에 갈무리한 로이스.
때마침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똑똑-.
“들어와요.”
로이스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브로와 페이지가 나타났다.
방 중앙에 모인 이들.
페이지를 향해 로이스가 입을 열었다.
“계획은?”
“우선은 장물을 숨겨 둔 곳을 알아내야 해요.”
“의심 가는 곳은 없어?”
“비공선 내에 비밀 공간이 있을 거는 확실한데… 아직 어딘지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물건의 정확한 위치를 꼭 찾아야 해요. 도둑질 성공 여부의 80%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 찾는 데서 결정되거든요. 저와 파브로 씨가 같이 다니며 찾아볼게요.”
장물을 중간에 가로채는 계획일은 비행의 마지막 날.
중간에 장물이 사라진 걸 저들이 알면 안 되기에.
모든 여정이 끝나고 장물과 함께 사라질 계획이었다.
비행에 걸리는 시간은 총 2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기상 악화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2주 뒤 여름 대륙에 닿을 것이다.
그 안에 장물이 숨겨진 곳을 찾아야 했다.
이에 로이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라고. 내가 그럴 줄 알고 최고의 수색팀를 보내 뒀으니까.”
“수색팀요?”
페이지는 그제야 방 안에 카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카이?”
비공선 어딘가에 숨겨진 비밀의 방.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비공선을 수색하기에 카이와 만큼 훌륭한 존재는 없었다.
실제로 지난 세월 카이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도움을 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로이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말했잖아. 수색‘팀’이라고.”
“……?”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로이스.
이에 페이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한편 그 시각.
-뀨뀨.
“가자, 흰둥아!”
-뀻!
비공선의 천장 배관을 타고 움직이는 카이와 핀.
로이스에게 특별 지령을 받은 이들이 비공선을 샅샅이 뒤져 나가기 시작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핀과 카이, 둘의 조합은 로이스가 선택한 최고의 수색팀답게 놀라운 효율을 보였다.
로이스가 믿는 수색팀이 첫 성과를 가져온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가량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로이스 님! 찾았어요!”
창밖,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구경하고 있던 로이스는 핀의 목소리에 화색을 지었다.
“오! 어디? 어디야?”
* * *
비공선은 그 뒤로도 순항을 이어 나갔다.
약 일주일간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비공선이 어느 섬에 정착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곧 떠나야 한다!”
비공선이 착륙한 곳은 항해 중간 떨어지는 부식과 각종 소모품을 재충전하는 섬이었다.
사전에 해로를 통해 많은 양의 물자를 옮겨 놓고, 비행 중간 채워 놓는 방식이었다.
잠시 정착한 비공선으로 승객과 선원, 약 150명이 이용할 물건들이 빠르게 실리기 시작했다.
약 세 시간에 걸친 적재 작업.
넓은 창고에 수많은 상자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출항!”
모든 작업이 끝나자 비공선이 다시금 하늘로 떠올랐다.
그렇게 다시금 비행을 이어 나가는 비공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륵-.
창고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들어섰다.
그의 정체는 창고지기.
불조차 켜지 않은 사내가 어둠 속을 향해 말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창고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부스럭-.
꽉꽉 들어차 있던 커다란 상자가 들썩이고.
파직-.
그 안에서 검은 인영이 불쑥 치솟았다.
그와 같은 현상은 부식 창고 곳곳에서 일어났다.
그 수가 모두 수십.
어둠 속, 새하얀 눈동자 하나가 빛을 발하며 창고지기를 응시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문제?”
“준비해 온 약이 못 쓰게 됐습니다. 어떤 꼬맹이와 부딪혀 깨졌는데… 이륙 시각이 촉박하여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계획에 차질이…….”
“상관없다. 어차피 약을 먹고 죽나 검에 베여 죽나, 저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건 똑같다. 계획은 원래대로 진행한다.”
“…알겠습니다. 그럼 때가 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창고 출입은 제가 맡고 있으니 편히 쉬시지요.”
“그러지.”
끄덕-.
짧게 깜빡인 눈동자가 그대로 어둠 속에 모습을 숨겼다.
* * *
“좀… 편하게 계시죠?”
어쩌다 보니 파브로와 한방을 쓰게 된 페이지.
20년간 음지에서 지내며 산전수전 다 겪은 그녀이다 보니, 남녀가 한방을 쓴다는 것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방은 다른 듯싶었다.
“저, 저, 저는 이게 편합니다!”
“하나도 안 편해 보이시는데요?”
“아, 아닙니다! 전 지금 매우 편합니다!”
침대에 각을 잡고 앉은 파브로.
지난 일주일 내내 저 자세였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보는 사람이 불편할 지경이었다.
페이지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파브로를 바라보았다.
‘생긴 거는 무슨 온갖 못된 짓을 일삼을 것처럼 생겨서는…….’
하는 짓은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 잠든 틈을 타 혹여 못된 짓을 해 올까 싶어 경계해 보았지만, 그는 자신이 잘 때도 저 자세를 풀지 않았다.
대체 잠은 언제 자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거기에 부부 행세를 하며 팔짱을 끼고 다닐 때는 살짝살짝 가슴이 닿으면 저 우락부락한 얼굴이 귀까지 빨개질 정도.
‘흐음… 그렇단 말이지?’
살짝 새초롬하게 파브로를 바라보던 페이지.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파브로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각을 잡고 앉은 그의 옆에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였다.
이에 화들짝 놀란 파브로.
“여, 여기는 제 침대입니다만?”
“뭐 어때요? 어차피 한방을 쓰는 처지인데? 이 침대나 저 침대나 그게 그거죠.”
그리 말하면서 은근슬쩍 조금 더 파브로에게 바짝 밀착하는 페이지.
그녀가 비록 지금은 서른아홉의 노처녀라고 카이에게 놀림 받기는 하지만, 전성기 시절에는 수많은 남정네의 눈물을 뽑아냈다고 자신했다.
이런 순진한 남자를 찜 쪄 먹는 거는 일도 아니었다.
요사스러운 미소를 보내며 페이지가 물었다.
“그런데요…….”
“왜, 왜 그러시죠?”
파브로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었다.
물 주전자를 올려놓으면 김이 끓어오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그런 반응을 즐기며 페이지는 그간 품고 있던 궁금증을 던졌다.
“대체… 그 애늙은이 꼬맹이랑은 무슨 사이세요?”
“…네?”
“그 괴물 같은 꼬맹이… 대체 정체가 뭐냐고요?”
페이지의 그 물음에 붉었던 파브로의 얼굴이 사르르 제 색을 되찾았다.
그는 살짝 굳은 얼굴로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주저리주저리 떠벌릴 줄 알았던 파브로.
하지만 그의 반응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그게 왜 궁금하십니까?”
“네? 아, 아니, 그게… 아무리 봐도 보통 꼬맹이가 아닌 거 같아서요.”
세상을 떠돌며 많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꼬맹이처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애는 없었다.
‘요망한 꼬맹이 같으니라고!’
자신을 단번에 제압할 무력에 성법까지 구사하는 괴물 같은 꼬맹이.
어떻게든 정체를 알아야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꼬맹이가 부리는 이 순진한 사내를 잘 꼬드겨 정체를 알아내고자 했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
파브로는 단호했다.
어찌나 단호하던지 이 사내가 조금 전까지 얼굴을 붉히던 이랑 동일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페이지가 놀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브로는 덤덤하고 잔잔한 눈빛으로 페이지를 보며 경고했다.
“깊게 알려고 하지 마십쇼. 그걸 아는 순간… 그대가 더 수렁으로 빠져들 테니까.”
“…….”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파브로의 말에 페이지는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올랐다.
파브로의 눈에 담긴 절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진짜… 그 꼬맹이 정체가 뭐야?!’
그것을 끝으로 둘 사이에 대화는 사라졌다.
그 순간이었다.
쾅쾅-.
거칠게 두들겨지는 문.
어색한 분위기에 눌려 있던 페이지와 파브로가 동시에 문으로 달려 나갔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둘의 손이 살짝 스치고.
“큼.”
“…….”
흠칫하며 손을 회수하는 두 사람.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감돌았다.
쾅쾅-.
그새를 못 참고 다시 울리는 거친 노크 소리.
그제야 침묵이 깨지고 파브로가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로이스가 심통 난 얼굴로 서 있었다.
“뭐 하느라 이제야 문을 열어?”
게슴츠레한 그 시선에 당황한 파브로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살짝 귀가 빨개진 파브로를 보며 로이스의 의심이 더욱 증폭됐다.
[너 뭐 했냐?]“…….”
[하라는 감시는 안 하고 헛짓거리하고 있는 거는 아니지?]“…….”
로이스의 살벌한 경고에 파브로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결백의 표현이었다.
그 순간 당황한 파브로를 구해 주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무슨 일이세요?”
페이지의 물음에 로이스는 그제야 자신의 목적을 상기했다.
그가 신난 얼굴로 답했다.
“찾았어!”
페이지는 로이스의 그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지난 일주일간 자신이 파브로와 부부 행세를 하며 돌아다닌 이유가 무엇이던가.
“어디죠?”
굳은 눈을 한 페이지의 물음에 로이스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함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