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먼저 먹는 게 임자 (3)
로이스에게 소식을 듣고 방에 모인 일동.
페이지가 살짝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함교라…….”
지난 며칠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는 했지만, 설마 장물을 숨겨 둔 곳이 함교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긴… 선내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면 당연히 함교겠지.’
잠시 고민하던 페이지가 로이스를 보며 물었다.
“정확히 함교 어디라고 하나요?”
“함교에 달린 함장의 침실. 그쪽에 어딘가로 이어지는 비밀 공간이 있다고 했어. 비밀 공간에 뭐가 있는지는 확인해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
“그 정도면 충분하죠.”
“그렇긴 하지.”
로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인은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함교라는 장소의 특수성과 비공선 내에서 가장 지위 높은 이의 침실.
그런 공간에 추가로 비밀 공간을 만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함장이었단 말이지?’
사실상 함장은 비공선을 운항하는 책임자이자 장물 운송과 판매의 총책임자일 가능성이 컸다.
생각을 정리한 로이스가 미소 지으며 페이지를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실력 발휘 좀 해 봐.”
“예?”
눈을 동그랗게 뜬 페이지.
로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그랬잖아. 도둑질의 성공 여부는 물건이 어디 있는지를 찾는 데서 80%가 갈린다고.”
“…그랬죠.”
“이쪽에서 80%를 채웠으니 이제 네가 나머지 20%를 채워야 하지 않겠어?”
“……?”
“가서 장물을 어떻게 들키지 않고 훔칠지 계획을 좀 세워 와 봐.”
페이지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저게 무슨 말이겠는가.
명백하게 자신을 부려 먹겠다는 뜻이었다.
페이지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
“그러는 공자님은 뭐 하시게요?”
“에이, 나 같은 꼬맹이가 왔다 갔다 하면 그것만큼 더 이목을 잡아끄는 것도 없잖아? 안 그래?”
“…….”
“이런 건 전문가가 알아서 해야지.”
꼭 이럴 때만 나이 어린 걸 유리하게 써먹어.
작게 구시렁거린 페이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았어요.”
그녀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둑질의 ‘도’ 자도 모르는 어중이떠중이가 옆에서 끼어들어 훈수질 하는 것보다는 자신 혼자서 계획을 짜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계획을 잡을 수도 있고. 후후.’
속으로 웃으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봐야겠네요.”
자신감을 보이는 페이지를 향해 로이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마음껏 실력 발휘해 보라고!”
자, 얼른 가서 일해라, 노예야!
로이스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곱게 휘어졌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페이지는 자발적 노예로서 착실히 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그렇게 예정된 비행의 모든 일정이 끝나기 하루 전.
다시금 로이스의 방에 모인 이들.
그들의 중심에서 페이지가 그간의 성과를 보고했다.
“대략 제가 확인한 함교의 구조는 이러해요.”
페이지가 정밀하게 그려진 도면을 내보였다.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함교의 승무원은 모두 14명. 그중 함장과 부함장을 제외한 남자가 8명, 여자가 4명.”
“…….”
“비공선 운항은 함장과 부함장, 둘을 기준으로 2교대가 이뤄지며 함장은 야간 비행의 지휘를 맡고 있어요. 비공선이 여름 대륙에 도착해 착륙하는 시간은 대략 오후 10시쯤이고요.”
“비공선이 착륙하기 직전 물건을 터는 게 원래 계획이지? 털고 튄다?”
“네. 그래서 저희가 잠입할 시기는 함장이 근무하는 시간대일 거예요. 저희에게도 나쁘지 않은 시간이죠.”
“차라리 함장이 잠들어 있을 때를 노리는 게 쉽지 않나? 오늘 밤 당장은 어때?”
“아뇨. 방주인이 있는 거보다는 차라리 비어 있는 시간을 노리는 게 좋아요. 그리고 함장은 선내 모든 생활을 자신의 침실에서 하고 있어요. 숙면, 식사, 용변까지……. 한시도 침실을 떠나지 않고 있죠.”
“그 말은 설마… 함장이 장물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다는 건가?”
“추측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그런 거 같아요.”
“음….”
“그래서 저희 계획을 실행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비공선 야간 근무 교대가 이뤄지는, 함장이 침실을 비웠을 때뿐이죠.”
“…방법은?”
“다른 비공선 승무원으로 위장해서 함교에 잠입할 거예요.”
막힘없이 계획을 읊는 페이지를 보며 로이스는 놀랍다는 눈빛을 보냈다.
‘확실히… 전문가는 전문가네.’
지난 며칠간 로이스는 페이지가 어떻게 정보를 모아 오는지 관찰했다.
동시에 그녀가 어떻게 가을 대륙에서 이름 높은 도둑이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이 말을 여기에 쓰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딱히 페이지의 변장술을 칭찬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달라지냐?’
현대에는 특수분장이라는 게 있었다.
로이스가 보기에 페이지의 변장술은 그보다 더 대단하면 대단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하루는 기품 있는 귀부인.
하루는 생기 넘치는 소녀.
어떨 때는 죽음을 목전에 둔 노파.
풍기는 분위기도 휙휙 바뀌었다.
도도하거나.
처량하거나.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거나.
모든 요소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페이지는 진정한 변장의 귀재였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음에도 일순간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 이 사람이 페이지가 맞는지 몇 번이나 뒤돌아볼 정도였으니, 생판 모르는 이가 봤다면 분명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으리라.
그렇게 페이지는 놀라운 변장술로 비공선 내부를 오가며 이리저리 정보를 모아 오더니 계획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왔다.
도둑질에 관해서 잘은 모르지만, 분명 예사의 솜씨가 아니었다.
로이스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페이지가 파브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계획에서 파브로 씨의 역할이 중요해요.”
“거, 걱정하지 마십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파브로의 역할은 함교 앞에서 난동을 피워 함장과 승무원의 시선을 돌리는 것.
그사이 페이지와 로이스가 함교로 침투한다는 것이었다.
페이지의 작전에 로이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거… 영화 같잖아?!’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물건을 훔치기 위해 비공선에서 벌어지는 침투 활극.
스릴 넘치는 침투 임무에 흥분한 로이스가 홍조를 띠었다.
그때 쌍둥이가 로이스의 옆에 착 달라붙었다.
“로이 우리는 뭐 해?”
“우리는?”
쌍둥이의 재촉에 흠칫한 로이스.
‘아, 이것들을 까먹었네.’
뭔가 재밌어 보이는 일에 이 녀석들이 끼어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만 문제는 이번 계획에 천방지축 쌍둥이가 끼어들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다는 거였다.
잠시 고민하던 로이스가 쌍둥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는 유인조야.”
“유인조?”
“웅?”
“파브로랑 같이 움직이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막, 중, 한, 임무지.”
“그, 그런거야?”
“그, 그거 우리가 해도 돼?”
“너희니까 믿고 맡기는 거야. 침투조인 나와 페이지의 목숨은 너희에게 달렸어. 잘할 수 있나, 쌍둥이?”
“응응!”
“응! 할 수 있어!”
가볍게 쌍둥이를 파브로에게 맡겨 버린 로이스.
순식간 혹덩이 2개가 붙어 버린 파브로의 안색이 거무튀튀해졌다.
파브로가 살려 달라고 입을 뻥긋거렸지만, 로이스는 이를 사뿐히 무시했다.
‘저 녀석들의 연기력만큼은 믿을 수 있으니까 유인조로 잘 해내겠지.’
최종적으로 계획이 세워지고.
이후 늦은 시각까지 계획 검토가 이뤄졌다.
“그럼 시행은… 내일 밤. 그때까지 푹 쉬어 두세요.”
“응, 너도.”
로이스와 페이지가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페이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가자 파브로가 쭈뼛쭈뼛 그 뒤를 쫓았다.
그런 파브로의 뒤통수에 대고 로이스가 메시지를 날렸다.
[마지막까지 긴장 놓지 말고 잘 감시해!]움찔한 파브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그렇게 비행의 마지막 날.
어둠이 내리고 결행의 시간을 향해 평온한 시간이 이어졌다.
* * *
다음 날 오후.
쾅- 쾅-.
함교의 문이 거칠게 울렸다.
평소에는 이런 소란이 없었던 만큼 함교 승무원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뭐야?”
“어떤 미친놈이 함교 문을 저렇게 두들겨?”
“교대 근무할 놈이 장난치는 거 아냐?”
쾅- 쾅- 쾅-.
함교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 사이 다시금 울리는 함교의 문.
“막내야, 나가 봐라.”
“네.”
승무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이가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함교 문 앞에는 험상궂은 거구의 사내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막내 승무원이 애써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누구시죠? 아니, 그것보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네가 함장이냐?”
“함장님을 찾아오셨습니까?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면 넌 빠져라! 내가 함장한테 직접 전할 테니! 여기 아주 고객 응대가 개판이야!”
“함교는 승객들의 안전과 직결되는 장소입니다. 그러니…….”
“내가 무슨 못 만날 사람을 만난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함장 좀 만나자고 하는데 그게 어렵나!”
“그게 아니라…….”
“여기 함장 나오라고 해! 당장!”
너무도 막무가내의 행태에 막내 승무원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사이 함교 한쪽 공간에서 안대를 한 사내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
어깨에 견장을 찬, 다른 승무원들과는 다른 복식을 한 중년 사내.
그는 함교 입구에서 벌어진 소란에 눈살을 찌푸렸다.
함장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 미친놈들이!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함교 문을 열라고 했어!”
“그, 그게…….”
함장의 불호령에 그제야 비행 시 불문율을 기억해 낸 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나밖에 없는 눈이 함교 내 승무원들을 노려보았다.
“이것들이 내일 착륙한다고 다들 정신머리가 빠졌지? 이번 비행이 끝나면 너희들 전부 감봉이다!”
“죄, 죄송합니다!”
승무원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사이 성난 얼굴의 함장이 함교 입구로 다가갔다.
“비켜라!”
함장의 매서운 손길에 막내 승무원이 뒤로 물러났다.
함장이 함교 앞에서 난리를 핀 거구의 사내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인가! 당장 돌아가시오!”
“네가 함장이냐?”
조금 전의 막무가내식 행태는 온데간데없고 거구 사내의 얼굴에 서늘함이 감돌았다.
일순간 돌변한 분위기에 함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킁킁-.
함장의 코가 살짝 씰룩였다.
지금에야 비공선의 함장 노릇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그도 이름 날리던 해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겹도록 맡아 왔던 냄새.
그리고 지금에 와서도 종종 맡는 비릿한 향.
‘피 냄새?’
사내에게서는 바로 피 냄새가 옅게 나고 있었다.
함장이 눈앞의 사내를 훑었다.
거구 사내의 바짓자락이 피로 얼룩진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놈 뭐야?!’
이상함을 감지하고 놀란 황급히 몸을 빼려 한 함장.
하지만 그보다 불청객의 행동이 더 빨랐다.
푹-.
“큽!”
기묘한 파열음과 함께 함장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함장의 등판을 뚫고 튀어나온 은빛 칼날.
“컥?!”
짧은 단말마를 내뱉고 함장은 그대로 쓰러졌다.
“하, 함장님?!”
“뭐, 뭐야?!”
놀란 승무원들이 자리에서 분분하게 일어났다.
그사이 함교 복도의 천장에서 일단의 사내들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함장의 시체를 넘어, 우르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습격자들이 사방으로 날뛰며 칼날을 휘둘렀다.
“크악!”
“컥!”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가는 승무원들.
함교 내 승무원들이 모조리 정리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히익?!”
유일하게 살아남은 막내 승무원은 주검으로 변한 선배들과 그들이 흘린 피를 보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때 한쪽에서 복면을 내린 이가 걸어왔다.
좌측 눈 밑에서 오른쪽 뺨까지 가로지르는 큰 흉터가 있는 사내.
스르릉-.
칼을 뽑아 든 이가 천천히 걸어가며 칼을 휘둘렀다.
푸확-.
툭-.
막내 승무원의 목이 그대로 땅에 떨어지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함교의 유리창까지 튀긴 핏물.
어둠 속 달빛에 핏물이 번들번들 일렁였고.
이를 눈에 담은 칼자국 사내의 눈빛도 덩달아 일렁였다.
“푸흐.”
작게 미소 짓는 사내의 입꼬리가 들썩이며 흉터가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두 눈 가득 번들거리는 살기를 담은 남자가 명령했다.
“모조리 죽여라.”
그 명령에 부하들이 빠르게 함교를 빠져나갔다.
그렇게 비행의 마지막 날.
로이스 일행이 계획을 실행하기 30분 전.
음산한 달빛을 배경 삼아 살육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