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영웅 (2)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페이지의 반응.
그녀가 다급하게 시선을 돌렸지만, 이미 로이스에게 모든 것을 들켜버린 상황이었다.
로이스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너 이게 뭔지 알아?”
페이지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페, 페이지 씨!”
놀란 파브로가 다급하게 외쳐 봤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
로이스는 달려 나가는 페이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분명 뭔가를 알고 있는 거 같은데?’
그가 페이지를 잡을 수 있음에도 잡지 않았던 것은 상황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쫓아.”
로이스의 명령이 끝나기 무섭게 파브로와 쌍둥이가 달려 나갔다.
로이스도 뒤지지 않고 그 뒤를 쫓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페이지는 멀리 가지 않았다.
바로 옆방.
그곳에서 그녀는 로이스가 해치운 의문의 습격자를 살피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로이스가 살피느라 헤쳐 놓은 문신을 뚫어지게 보는 중이었다.
페이지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럴 리… 이럴 리가 없어.”
경악, 당황, 혼란, 공황.
부정적인 감정이 혼재된 목소리.
“아…….”
기운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페이지를 보며 로이스가 물었다.
“똑같지? 아까 그놈의 문신이랑?”
“…….”
“이제 털어놔 봐. 넌 알고 있는 거지? 저 문신이 뭘 뜻하지?”
로이스의 물음에 페이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건…….”
막 페이지가 입을 열려는 찰나.
쿠궁-.
비행선이 크게 요동쳤다.
순식간에 뒤로 쏠리는 육신.
파브로가 놀라 소리쳤다.
“뭐, 뭐야?! 갑자기 속력이 왜?”
비행선이 흔들린 것은 급가속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 급가속을 한다고?’
이제 조금 있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낀 로이스의 표정이 변했다.
그 순간 페이지가 결심한 얼굴로 답했다.
“이 문신은… 레온 혁명군의 문장이에요.”
“레온 혁명군?”
“그들은…….”
처음 들어 보는 명칭이었다.
로이스의 되물음에 페이지가 답하려는 순간.
쿠그그긍-.
비공선이 또 한 번 급가속했다.
“윽!”
“으에에! 로이 로이 몸이 뒤로 쏠려!”
“꺄하하! 이거 재밌다!”
파브로가 바로 균형을 잡았고, 쌍둥이는 뒹구르르 굴러가 벽을 찍고 돌아왔다.
도무지 페이지가 말을 이어 나갈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은 자세한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는 게 먼저라고 여긴 로이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쌍둥이, 그리고 파브로.”
“웅!”
“응응!”
“옙.”
“수상한 녀석들을 보면 모조리 잡아 족쳐. 아니…….”
말을 바꾼 로이스.
그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전부 죽여.”
다짜고짜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며, 지금도 그들의 동료가 비공선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망할 놈들이 감히 내 목숨을 노렸다 이 말이지?’
여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망 플래그에 시달려 온 로이스이다 보니 누군가 자신의 목숨을 노렸다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분노한 로이스는 손속에 사정을 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알겠습니다.”
로이스가 진심으로 분노한 것을 본 파브로가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로이스가 아공간에서 그들의 무기를 꺼내 건넸다.
이를 본 페이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자!”
“싸움이다!”
오랜만에 검을 휘두를 생각에 신이 난 쌍둥이.
그들이 막 방을 나서려는 찰나.
“아, 안 돼요!”
페이지가 다급하게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로이스의 눈빛이 대번 싸늘해졌다.
“뭐 하는 짓이냐?”
“주, 죽이면 안 돼요.”
“헛소리 말고 비켜.”
로이스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솟구쳤다.
이를 정면에서 맞은 페이지.
“아으으…….”
그녀는 아찔해진 정신을 혀를 깨물어가며 버텨 냈다.
파브로는 그녀를 안쓰럽게 볼 뿐 나서지는 않았다.
이번만큼은 로이스의 말이 백번 옳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위, 위험해!’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눈앞의 작은 꼬맹이.
하지만 그녀가 느끼기에 저건 꼬맹이가 아니었다.
통제 불가의 괴물이었다.
‘이대로는 모두… 모두 죽을거야!’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큰 결단을 내린 페이지가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동시에 로이스를 향해 살짝 자신의 어깨를 내보였다.
페이지의 어깨를 본 로이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페이지의 어깨에는 의문의 습격자들과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놈들과 한패였냐?”
로이스의 살기가 더욱더 짙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페이지는 죽기 살기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니에요! 이건… 이건 달라요!”
“뭐가 다르지?”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로이스의 싸늘한 눈빛을 쉽사리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지는 어떻게 해서든 눈앞의 괴물을 설득해야만 했다.
“제가 아는, 아니, 제가 몸담은 레온 혁명군은 절대 이런 일을 벌일 이들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요.”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제발요, 공자님… 부탁드려요. 그들을 죽이지 말아 주세요.”
“왜 죽이지 말라는 거냐? 혹여 진짜 이들이 네 동료일까 봐?”
“제가 걱정하는 건 이들이 레온 혁명군이 아닐 경우에요. 만일 그렇다면…….”
“누군가 레온 혁명군을 사칭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페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다면 이들의 배후를 캐야 해요. 하지만 만약 이들이 진짜 레온 혁명군이라면 제가 책임지고 죗값을 치르게 하겠어요.”
“…….”
간절한 페이지의 눈빛.
이에 로이스의 살기가 살짝 누그러졌다.
“레온 혁명군에서 너의 지위는 높은 편인가? 지금 네 말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낮은 편은 아니에요.”
그녀에게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음을 깨달은 로이스가 덤덤하게 답했다.
“일단… 살려는 줄게.”
긍정적인 답에 페이지의 얼굴이 환해졌다.
“단, 이들의 생사 여부는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결정할 거다. 저들이 진짜 너의 동료이든 아니든 간에.”
여전히 싸늘함이 남아 있는 로이스의 말에 페이지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로이스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
“장물은 이쪽에서 모조리 가져간다. 네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네?”
이런 상황에서 로이스가 장물 이야기를 꺼낼 줄 몰랐던 페이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싫어?”
“아, 아뇨! 마, 마음대로 하세요!”
페이지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렇게 됐음에도 여전히 장물을 포기하지 못한 로이스.
그가 씨익 미소 지었다.
‘오히려 지금이 적기지!’
안 그래도 함교에 숨어들기 위해 혼란이 필요했던 상황.
지금만큼 완벽한 혼란은 없었다.
“좋아 가자!”
로이스의 명령에 먼저 파브로가 나섰고 이어 쌍둥이가 신난 얼굴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 뒤로 로이스와 페이지가 뒤쫓았다.
* * *
캉- 캉-.
좁은 격실에서 한 사내가 칼날을 피하고 있었다.
노부부를 뒤에 두고 의문의 습격자를 막아서고 있는 사내가 소리쳤다.
“당장 피하십쇼!”
“어, 어디로 피한단 말인가!”
“큭! 아, 거 아무 데나 가란 말이오!”
문 앞에서 벌어지는 공방에 노부부는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 모습에 노부부가 고용한 호위는 이를 악물었다.
‘젠장! 검만 있었어도!’
비공선을 이용하는 이들이 돈 많은 부호인 만큼 호위를 고용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사내 역시 그렇게 고용된 무사였다.
3티어 하급의 실력 있는 무사였지만, 무기를 반납한 탓에 습격자들의 맹공에 속수무책으로 제 몸을 사리기 바빴다.
더군다나 습격자들은 2인 1조로 움직였다.
“경, 경비! 경비들은 뭘 하고 있소! 여기 좀 도와주시오!”
노인이 큰 목소리로 비공선에 상주하는 경비를 불렀으나 나타나는 이는 없었다.
호위 무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작정하고 비공선에 숨어든 놈들이 경비가 있는 거를 몰랐을까!’
정해진 정원 때문에 비공선에 상주사는 경비의 수는 열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가장 먼저 습격을 받은 탓에 모조리 전멸해 버린 상태였다.
‘이 미친놈들이?!’
더욱이 호위 무사를 더욱더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습격자들의 태도였다.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거냐?!’
마치 자신의 목숨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습격자들.
호위 무사가 매서운 눈으로 놈들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이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건데…….’
습격자 두 명 모두 4티어급으로 보였다.
‘기회를 봐서 단번에 처리해야 한다!’
사방에서 흩날리는 칼날을 피하며 호위는 기회를 포착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다가왔다.
‘지금!’
두 습격자의 신형이 일직선으로 겹치는 순간, 호위가 크게 발을 굴렀다.
쾅-.
나무 바닥을 찍고 그의 신형이 홀연 듯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하늘빛 잔상만 남은 상태.
뒤쪽에 있던 습격자는 호위의 움직임을 놓쳤고, 호위 무사가 오랜 시간 갈고닦은 무법이 자연스레 발동했다.
‘잔바람 밟기!’
풍속성력을 한껏 끌어올린 그가 쾌속으로 뒤쪽의 습격자에게 달라붙었다.
“헛!”
놀란 습격자가 몸을 빼려 했지만, 그의 팔목을 어느새 호위의 손에 잡혀 있었다.
우득-.
팔목이 부러지며 검을 놓친 습격자.
떨어지는 검을 빠르게 받아 든 호위가 그대로 손잡이를 역수로 잡아 습격자의 심장을 찔렀다.
호위의 동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걱-.
“……?!”
동료 죽음에 놀라 몸을 돌리던 다른 습격자의 목줄기가 베어진 것.
털썩-.
기회를 틈타 순식간에 둘을 해치운 호위.
그제야 살았다는 듯 노부부의 얼굴에 안도가 서렸다.
“여, 역시!”
가을 대륙 용병계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이라기에 특별히 비싼 값에 이번 여행에 호위로 고용했다.
그의 실력은 이것으로 증명이 된 셈이었다.
촥-.
호위 무사가 피를 묻은 검을 털어 낼 때였다.
푹-.
“……?!”
호위 무사의 가슴께를 뚫고 나온 은빛 검날.
그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너, 너는……?!”
은빛 검날에 맺혀 있는 하늘색의 기운.
그것은 자신이 다루는 속성력과 같은 풍 속성었다.
풍 속성을 다루는 의문의 습격자.
‘이자… 강하다.’
3티어급의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실력자.
‘바, 방심했다.’
동급의 실력자를 상대로 방심을 한 결과는 처참했다.
상대와 검을 맞대 보기도 전에 심장이 꿰뚫린 것.
그의 귀속으로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호위 중에서는 그나마 네가 가장 실력이 있는 놈이었군.”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싸늘한 목소리였다.
귓가에 아른거리는 목소리에 호위 무사는 겁에 질린 노부부를 눈에 담았다.
‘제, 젠장…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것이 가을 대륙에서 제법 이름 날리던 호위 무사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털썩-.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 시체.
이를 보며 그의 고용주였던 노인이 외쳤다.
“대, 대체 왜 이러는 게요!”
아내와 같이 여름 대륙으로 휴양을 즐기기 위해 나섰던 한 부호.
그는 두려움에 질린 아내 앞에서 습격자를 막아서며 소리쳤다.
하지만 습격자는 그런 이를 무시하고 저벅저벅 걸어갔다.
대화 따위는 필요 없다는 태도.
노인이 소리쳤다.
“도, 도와주시오! 거기 아무도 없소!”
그러나 부호의 도움 요청을 듣는 이는 없었다.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 상황.
오로지 절망과 죽음만이 그들 부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파즉-.
어디선가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