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영웅 (5)
무사에게 있어 4티어의 경지가 체내에 쌓은 속성력을 육신 곳곳으로 퍼트려 초인이 되는 기틀을 만드는 거라면.
3티어는 그 기틀을 밟고 본격적으로 날아오르는 단계였다.
체내에 축적한 속성력을 외부로 끄집어내 속성력이 타고난 고유 특성을 마음껏 활용하는 경지.
물론 3티어의 경지도 숙련도에 따라 급이 나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의미에서 파브로와 그를 상대하고 있는 이는 완숙된 3티어에 도달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슥-.
칼날이 파브로의 볼을 스쳤다.
뒤이어 따라오는 화 속성의 뜨거운 열기에 이마가 절로 씰룩였다.
하지만 금세 되돌아오는 검의 궤적을 보며 파브로는 망치를 휘둘러야 했다.
쿵-.
다시 한번 검과 망치가 부딪치며 두 사람의 몸이 훌쩍 떨어졌다.
“후욱 후욱-.”
파괴력 강한 망치를 피하려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파브로의 상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반면, 몸 곳곳 자상을 입었지만, 파브로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모습에 칼자국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 내가 토 속성 놈들을 상대하기 싫어하는 거다!’
토 속성을 타고나 무사들은 그 어떤 속성의 무사보다 높은 체력과 생명력을 지닌다.
토 속성의 무사를 상대하는 자들은 이를 ‘징그럽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내가 먼저 지치겠군.’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단숨에 끝낸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의 숨통을 끊는 방법뿐이었다.
뇌전 속성 다음으로 뛰어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게 바로 화 속성.
칼자국 사내는 자신이 보유한 속성의 공격력을 믿었다.
“후욱…….”
길게 심호흡을 한 칼자국 사내가 검을 비스듬하게 내렸다.
곧 그의 주변으로 후끈한 열기가 몰아쳤다.
상대방이 이번 한수로 승부를 보려는 것을 깨달은 파브로도 그에 맞서 모든 속성력을 끌어올렸다.
우직 우직-.
파브로의 육신이 강대한 힘을 머금고 비명을 내질렀다.
“…….”
“…….”
파브로와 칼자국 사내.
둘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오오!”
“오와!”
쪽쪽-.
쌍둥이는 흥미진진한 결전의 순간에 흥분하여 사탕을 거세게 빨았고.
꿀꺽-.
페이지 역시 이번 한 번으로 지금까지의 싸움이 결론 지어질 것이란 것을 깨닫고 마른침을 삼켰다.
마지막 겨룸은 칼자국 사내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츠츠츠-.
붉게 빛나는 그의 온몸에서 강렬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로 뜨거워진 함교.
“파열참!”
사내가 피워 올린 열기가 검조차 달궜고, 시뻘겋게 변한 한 자루의 검이 파브로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를 본 파브로도 자신이 익혀온 최고의 기술로 대응했다.
“흐아아아!”
당차게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 나가는 파브로.
웅웅-.
혼신의 힘을 담은 그의 망치가 울부짖었다.
“얼음산…….”
황토색으로 물든 파브로의 망치가 수직으로 떨어질 준비를 마쳤다.
겨울 대륙의 칼바람을 맞으며 단련한 최고의 공격기.
수백에 달하는 겨울 오크의 머리통을 날려 버린 공격이 이번에도 역시 적의 머리를 날리기 위해 기세를 뽐냈다.
“가르기이이이…이이…이?!”
당차게 외치며 적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려는 찰나.
퍼걱-.
칼자국 사내의 머리가 뒤로 꺾였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두 줄기의 붉은 액체.
이를 본 파브로가 동작을 멈추고 눈을 끔뻑였다.
‘…뭐야?’
자신이 본 게 맞다면 지금 저건…….
“코피?”
선명하게 허공을 가로지르는 건 붉은 코피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퉁- 퉁- 퉁-.
갑자기 허공에서 생겨난 탁구공 크기의 검은 결정이 칼자국 사내의 전신을 두들겼다.
퍽- 퍽- 퍽-.
“컥?!”
사방에서 날아드는 산탄총 같은 공격에 반응해 보려 했지만,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자신의 반응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검은 결정에 칼자국 사내는 속수무책으로 쉼 없이 얻어맞았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5분이 넘는 시간 동안 두들겨 맞은 칼자국 사내가 그대로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런 그의 얼굴은 벌에 쏘인 듯 퉁퉁 부어올라 알아볼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빡!
곧 주먹만 한 검은 결정이 쓰러지는 칼자국 사내의 뒤통수를 후렸고.
“컥!”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는 기절하고 말았다.
“어…….”
죽을 둥 살 둥 맞상대하던 적수가 허망하게 쓰러진 것을 보고 파브로는 말을 잊지 못했다.
곧이어 뒤따르는 뚱한 목소리.
“뭐야, 얘들 아직도 싸우고 있었네?”
배부르게 포식해, 얼굴이 반들반들해진 토끼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껄렁껄렁 나타났다.
* * *
함교가 정적에 휩싸였다.
불과 20여 분 사이,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나타난 로이스.
그가 파브로를 뚱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난 한 10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었어?”
“…….”
로이스가 팔을 뻗어 파브로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원래라면 어깨를 토닥여 주려 했지만 말이다.
“뭐, 어쨌든 고생했어.”
“아… 예……. 뭐 그렇죠…….”
심히 허탈한 얼굴의 파브로.
그가 애먼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 뭘 한 거냐.’
자신이 이 악물고 싸워 온 상대를 파리 잡듯 때려잡은 로이스를 보고 있자니 삶의 회의감이 들었다.
“아앗! 로이 치사해! 내가 도와주려 했는데!”
“아닌데! 내가 하려 했다고!”
쌍둥이가 나타나 자신들이 할 일을 가로챈 로이스에게 원망을 퍼부었다.
물론 로이스는 이를 깔끔하게 무시했지만 말이다.
그사이 로이스는 숨만 쉬고 있는 습격자 무리의 대장을 내려다보다가 무언가를 깨닫고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 맞다! 뭐 때문에 이 짓을 벌였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함장실의 장물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아 이들의 목적이 장물이 아닌, 순수하게 비행선을 탈취하는 것이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비행선을 탈취해 뭐에 쓰려는지를 모른다는 점이다.
그것도 승객들을 전부 죽이면서까지…….
로이스가 페이지를 보며 물었다.
“아는 자야?”
그 물음에 페이지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페이지는 혼란스러웠다.
파브로와 싸운 사내는 분명 처음 보는 이였다.
사내가 혁명군이 아닐 확률이 높음에도 페이지의 안색이 좋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보내 온 세월에 있었다.
페이지가 여름 대륙을 떠난 지 20년.
그 사이 혁명군 진영에 새로운 이들이 가담했을 것이다.
이자 역시도 그런 혁명군 중 한 명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자가 혁명군이 아니라면……?’
대체 이들은 혁명군을 가장해 무엇을 얻으려 한 거지?
그것도 비공선의 주인인 사무엘 영주를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말이다.
고민하는 페이지를 보고 로이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됐어. 자세한 얘기는 깨워서 캐물으면 되니까.”
그리 말한 로이스가 기절한 사내를 깨우려는 찰나였다.
쿵-.
비공선이 크게 흔들렸다.
“뭐, 뭐야?!”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에 놀란 파브로가 옆의 기둥을 부여잡았다.
놀라기는 로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어라?”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의 원인은 간단했다.
‘고도가 낮아지고 있어?’
그것도 급격하게 말이다.
그제야 이상함을 알아차린 로이스.
그는 황급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안개와 같은 구름, 거기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 대체 어디쯤이냐?”
습격자들을 처리하며 함교로 이동하랴.
누가 볼까 재빨리 장물을 주워 담으랴.
정신없이 지나간 상황에 잠시 까먹고 있었다.
이미 비공선이 착륙했어야 시간을 훌쩍 넘었다는 것을 말이다.
쿵-.
그사이 또 한 번 비공선의 고도가 낮아졌다.
급격하게 앞으로 쏠리는 비공선의 몸체.
곧 구름 속을 헤매던 비공선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제야 함교 선창 너머로 풍경이 펼쳐졌다.
비공선의 유리창.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뭐야? 웬 도시?”
드문드문 불이 켜진 도시의 야경은 높은 곳에서 보니 제법 운치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눈앞에 나타난 도시를 본 페이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정확히는 도시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궁전을 말이다.
“서, 설마?!”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 있던 페이지가 낯익은, 그리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장소의 등장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비공선의 직선 궤도를 살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비공선이 떨어질 장소.
그곳은…….
“버니엄 궁전!”
“응?”
페이지의 외침에 놀란 로이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 여긴 프렌체 왕국이에요!”
“역시 이 자식들 그 레온 뭐시기 혁명군이 맞았던 거야?”
“아니요!”
페이지가 큰 목소리로 부정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겪은 사건이 모두 일목 정연하게 정리되기 시작됐다.
어째서 이들이 비공선을 탈취했는지.
왜 승객들을 죽인 건지.
그들의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깨달은 페이지가 소리쳤다.
“이들은 프렌체 왕가의 무사들이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놈들이 노리는 게 바로 왕궁이라고요! 이대로 왕궁에 비공선을 떨어트릴 작정이라고요!”
“아니, 프렌체 왕가의 무사들이 왜 왕궁을 노리는데?”
페이지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궁을 노리는 왕가의 무사라.
그렇게 로이스와 페이지가 대화를 나눌 때 옆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지금 그러고 한가하게 이야기 나누실 땝니까?! 어떻게 좀 해 보세요!”
새파랗게 질린 파브로가 덜덜 떨며 외쳤다.
‘20년 동안 50번밖에 안 떨어졌다며! 그렇다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지상.
51번째의 추락을 자신이 겪게 될 거라고 생각한 파브로는 덩치에 안 맞게 울먹였다.
이에 로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페이지를 뒤로하고 곧장 조종대로 간 로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거…….”
비공선의 조종키는 뽑혀 있었고, 그마저도 박살이 난 상태였다.
다른 이것저것을 만져 보았지만, 모두가 먹통이었다.
그제야 로이스는 지금의 사태가 습격자들이 꾸민 계획이란 것을 깨달았다.
‘아까 급가속을 한 것도, 지금에 와서 고도가 낮아지는 것도 계산된 거였구나!’
그게 사실이라면 이는 하루 이틀 계획해서 될 것이 아니었다.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비공선을 떨어트려야 완벽하게 목표를 부술 수 있을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했어야 할 테니 말이다.
‘하이재킹이라니!’
전생에서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하이재킹을 실제로 당하게 될 줄을 상상도 못 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뭐가 이상해요?”
파브로의 물음에 로이스가 볼을 긁적였다.
“음… 그… 조종 키가 박살 났는데?”
“…….”
로이스의 말에 정적이 흘렀다.
잠시 뒤 파브로가 괴성을 내질렀다.
“으아아! 그, 그러게 왜 저 새끼 대갈통을 깨 버리셔서는!”
파브로가 말하는 ‘저 새끼’는 비공선 한쪽에 굴러다니고 있는 습격자 무리의 대장이었다.
놈이라면 이번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지만.
‘…너무 많이 팼나?’
기절한 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양새를 보니 쉽게 깨어나기는 그른 듯싶었다.
로이스가 다시금 볼을 긁적였다.
“아니, 내가 이럴 줄 알았나.”
판타지 세상에서 하이재킹당할 거라고 내가 어찌 예상했겠냐고.
투덜거린 로이스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이대로라면 아주 제대로 꼬라박겠네.’
떨어지는 각도상으로 봤을 때 왕궁의 정중앙 건물을 그대로 들이박을 듯싶었다.
그것도 몇 분 내에 말이다.
“음…….”
로이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꺄하하!”
“누나, 누나 이것 봐라!”
쌍둥이는 기울어진 함교를 붕붕 뛰어다녔고.
“으어어어!”
파브로는 기둥 하나를 부여잡고 괴성을 내질렀다.
페이지도 급경사에 제 몸 하나 가누는 게 전부인 듯 보였다.
그나마 멀쩡한 것은 핀뿐.
“어쩌시게요?”
핀의 물음에 로이스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지.”
현 상황을 해결할 존재는 여기서 자신뿐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로이스의 드래곤 하트가 맹렬하게 기운을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