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시간은 금(金)이다 (2)
노인과 페이지는 갑작스럽게 나타난 로이스와 쌍둥이를 보고 기겁했다.
물론 그들이 놀라는 이유는 서로 달랐다.
‘맙소사! 여길 어떻게?!’
페이지가 놀란 이유는 그 누구에게도 발각된 적 없는 레온 혁명군의 비밀 거점이 너무도 손쉽게 아이들에게 발각됐다는 점이었고.
노인은…….
“너희는… 쌍둥이가 아니더냐!”
실로 오랜만에 본 반가운 얼굴에 놀라고 있었다.
반가움이 가득한 우렁찬 목소리에 로이스의 시선이 돌아갔다.
화색을 짓고 있는 노인을 보며 로이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라……? 저 노인네는?”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저 징글징글한 얼굴을.
로이스가 손가락으로 노인을 가리켰다.
“쌍둥이 유괴범!”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
노인, 검은 물소 용병단의 단장인 그렉이 버럭 소리쳤다.
이에 로이스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노인네가 여긴 왜 있어?”
“노인네라니! 그러는 너희야말로 어찌 여기 있는 거더냐?”
“질문은 제가 먼저 드렸습니다만?”
겨울 대륙에서 가을 대륙으로 오는 배편에서 만났던 노인 그렉.
그를 이런 장소에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이스와 쌍둥이, 그리고 그렉이 서로 안면이 있는 듯싶자, 주변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페이지가 로이스와 그렉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서로 알고 있는 사이셨나요?”
“알다마다!”
가장 먼저 답한 것은 그렉이었다.
그가 쌍둥이를 가리키며 외쳤다.
“내가 점찍은 제자들이다. 그리고…….”
연이어 로이스에게 향하는 시선.
영 탐탁지 않은 눈빛이었다.
“우리 제자들의 보호자라고나 할까?”
“누가 누구 마음대로 제자래!”
로이스가 어림도 없다는 듯 쌍둥이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
그가 헤벌쭉 웃고 있는 그렉을 노려보았다.
‘진짜 이 노인네들과는 전전생에 무슨 악연이 있는 건지!’
겨우겨우 로건과 에이든을 떼어놓고 왔다 싶었더니, 이제는 한 대륙을 건너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다시금 쌍둥이에게 주입식 교육을 시작했다.
“쌍둥이,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까까 준다고 하면?”
“저희는 입이 고급이라 그런 싸구려 까까는 안 먹어요!”
“1,000만 골드짜리 까까로 가져오세요!”
“쌍둥이, 낯선 사람이 제자로 삼고 싶다고 하면?”
“저희는 저희보다 약한 사람은 취급 안 해요!”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세요!”
“옳지, 잘했어.”
로이스가 믿음직하다는 얼굴로 쌍둥이를 칭찬했다.
무언가… 한 단계 더 철벽으로 변한 로이스의 방어 태세에 그렉은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교육을 끝낸 로이스가 페이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둘러 볼일을 보고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기에 그는 빠르게 용건을 꺼냈다.
“여기 가출한 드워프 있지?”
“드워프요……?”
페이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로이스가 말을 정정했다.
“너랑 야반도주한 그놈.”
“네?”
“파브로 말야!”
“아! 그분이라면 계셔요. 그런데 야반도주는 무슨 소리이신지……?”
그때 한쪽 방에서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로이스가 그쪽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좋은 말로 할 때 나오지?”
“…….”
“곱게 두 발로 걸어 나올래? 아니면 실려 나올래?”
“가, 갑니다! 저 여기 있습니다!”
로이스의 협박이 끝나기 무섭게 파브로가 방문을 박차고 튀어나왔다.
후다닥 달려오는 파브로를 노려보던 로이스.
그는 파브로가 앞에 서기 무섭게 정강이를 걷어찼다.
“끄악!”
정강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구는 파브로.
난데없는 상황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이 넋을 놓고 말았다.
다만 로이스만이 매서운 얼굴로 손가락을 까딱거렸으니.
“원위치.”
“우, 원위치!”
“상황 설명. 간단하게. 세 줄로 요약.”
“페이지 씨를 미행하는 수상한 자 발견! 제가 쫓았습니다! 수상한 자, 그러니까… 저 노인네한테 얻어맞고 기절했습니다!”
“확실해?”
“조, 조금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짧지만 완벽에 가까운 상황 설명이었다.
이에 로이스가 핀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된 거야? 야반도주라며?”
“어… 그… 분명 같이 나가는 것을 봤는데. 분명히 파브로가 페이지를 안고 담을 넘었어요!”
“하아…….”
로이스의 한숨이 깊어졌다.
아마도 핀은 파브로가 페이지를 안고 담을 넘는 장면을 보고 오해를 한 듯싶었다.
그 작은 오해 하나 때문에 이 밤중에 이 사달이 났으니….
‘뭐 엎질러진 걸 어쩌겠어.’
로이스가 파브로를 향해 검지를 까딱였다.
이리 오라는 뜻이었다.
혹여 용서해 주시는 게 아닌가, 슬슬 눈치를 보고 로이스에게 다가가는 파브로.
그리고.
퍽-
“끄아아악!”
그가 다시 정강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로이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소리쳤다.
“너 때문에 오밤중에 이 난리 쳤잖아!”
“죄, 죄송합니다!”
“넌 일단 나가서 보자.”
“흑…….”
여기서 나가면 또 얼마나 까일지…….
파브로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뭐 해? 얼른 안 따라와?”
“가, 갑니다!”
“다들 실례했습니다. 그럼 수고들 하세요.”
가볍게 손을 들어 대충 사과를 한 로이스.
한밤중에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가려는 그들을 가만히 두고 볼 레온 혁명군이 아니었다.
“이 정신 나간 꼬맹이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너희들 마음대로 들락날락이냐!”
“우리가 보내 줄 거 같아?”
상황을 듣고 모여든 레온 혁명군의 숫자는 어느덧 서른을 넘어갔다.
쌍둥이에게 얻어맞고 파들거리는 이까지 포함하면 마흔 명에 달했다.
제법 널찍한 복도였지만, 그들로 인해 북적거릴 지경.
흉흉한 분위기에 로이스가 대충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앗! 여기가 아니었네? 이런 잘못 찾아왔구나. 그럼 진짜로 다들 수고하세요!”
“인제 와서?!”
“어림없는 소리!”
로이스의 어색한 연기.
도무지 겁이 없는 그 모습에 혁명군 단원들의 기세가 더욱더 사나워졌다.
그때 그렉이 나섰다.
“물러나거라.”
“단장님!”
“물러나라.”
그렉의 명령에 단원들이 소리치기는 했지만, 그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는지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단원들 앞으로 나온 그렉이 로이스와 쌍둥이를 보며 말했다.
“너희가 여기를 어떻게 찾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내 줄 수는 없겠구나.”
“에이, 그냥 보내 줘요. 저희는 파브로만 찾으러 온 건데. 어디 가서 여기에 뭐가 있는지 말 안 하고 다닐게요.”
“허허, 이쪽도 여러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라 어쩔 수 없단다. 얌전히 이곳에 있어 주거라.”
“그러지 못하겠다면요?”
“내 너희들의 재능을 어여삐 여기기는 하나… 천지 분간 못 하고 날뛴다면 훈육을 하는 수밖에.”
그 말에 로이스는 고민했다.
물론 그가 고민하는 거는 이곳에 남을지 말지가 아니었다.
‘어쩔까.’
눈앞의 그렉, 그는 생각보다 실력 있는 자였다.
지금까지 상대해 온 일반 단원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실력자.
그런 존재를 손쉽게 처리해 버린다면?
그것도 어린아이들이 말이다.
로이스가 페이지를 흘끗거리고는 피식했다.
‘하긴, 이미 보여 줄 거 다 보여 줬는데, 이제 와서 뭘 고민하냐.’
차라리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다시는 제자니 뭐니 하며 들러붙지 못하게 하는 편이 나으리라.
더는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말이다.
로이스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누굴 훈육한다고요? 쌍둥아, 가서 저 할아버지 맴매 좀 해 드려.”
“응!”
“웅웅!”
밝게 웃는 쌍둥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와 같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그렉은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 그렇지. 이 그렉이 점찍은 아이들인데 고작 이런 일에 겁을 먹어서야 쓰나.”
매우 흡족하다는 듯한 얼굴을 한 그에게 한 단원이 속삭였다.
“조심하시지요. 보통 꼬맹이들이 아닙니다.”
“쯧, 내 그러게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지 않았더냐.”
“그… 진짜 보통 꼬맹이들이 아닙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지. 못 본 사이에 어디서 몇 수 재간을 배워 온 모양이구나.”
쌍둥이의 무서움은 당해 본 자만이 알았다.
그저 단편적으로 쌍둥이의 재능만 보아 온 그렉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그가 손을 내밀어 까딱였다.
“자, 오너라. 어디, 너희가 뭘 익혔는지 보고 내 한 수 가르쳐 주마.”
그렉의 여유 넘치는 모습에 로이스는 실소했다.
한편, 걱정하던 단원도 적당히 뒤로 물러섰다.
‘그래도 단장님이시니.’
그렉.
한때는 프렌체 왕가 호위무단의 단장까지 역임한 이였다.
순수한 실력으로만 따져도 여름 대륙 내에서 열 손가락에 꼽히는 이였다.
자신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렉이 저런 꼬마들에게 진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곧 그렉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로이스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암 속성 2티어라….’
분명 인간들 사이에서는 제법 방귀 좀 뀌고 다닐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칸, 카니, 얼른 끝내고 가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쌍둥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파즉-.
녀석들이 있던 자리에 남은 것은 한줄기의 뇌전뿐.
그리고.
“빠샤!”
“아자!”
순식간에 그렉의 곁에 나타난 녀석들이 정면과 후면에서 주먹을 내질렀다.
“……?!”
일순간 쌍둥이의 움직임을 놓친 그렉은 깜짝 놀라 허둥거렸다.
그사이 뇌전에 휩싸인 쌍둥이의 주먹이 그렉의 몸에 닿았다.
“명치!”
칸의 외침과 함께 명치를 얻어맞고 뒤로 튕겨 나가는 그렉.
“뒤통수!”
카니의 주먹이 닿으며 그의 신형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쾅-.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크나큰 소리.
파즈즉-.
뇌전에 휩싸인 그렉은 팔다리를 파들파들 떨다가 서서히 잠잠해졌다.
“…….”
잠시 정적이 감돌더니 이내 폭풍 같은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다, 다, 단장님?!”
“마, 말도 안 돼!”
믿고 있던 그렉이 단 두 방에 침몰해 버린 이 상황을 단원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이들을 무시한 쌍둥이가 로이스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로이 배고파…….”
“나도…….”
“가서 맘마 먹자.”
로이스가 쌍둥이의 손을 잡고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길목에 자리한 단원들은 감히 그들을 막을 생각을 못 하고 좌우로 길을 텄다.
개선장군처럼 나아가는 로이스와 쌍둥이 뒤를 파브로가 죄인처럼 따라붙었다.
터무니가 없어도 너무도 없는 상황.
그곳에 모인 이들 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이는 다름 아닌 페이지였고, 그녀가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만요!”
다급하게 뛰어가 로이스 일행의 붙잡은 페이지.
“잠깐…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공자님들!”
“왜? 너도 우리 못 가게 막을 거야?”
상대가 공주임을 알았음에도 로이스는 여전히 반말이었다.
페이지도 딱히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뇨, 보내 드릴게요. 다만 이야기를 좀 들어 주세요! 그리고 저희 사이에 청산할 빚이 있지 않아요?”
“빚?”
“비공선 습격자들의 처분요! 저번에 설명드린다고 했는데 못 드린 거! 지금 해 드릴게요!”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로이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필요 없어.”
“네?”
“알 게 뭐야.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인데.”
그 당시에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였기에 자신이 처리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거 괜히 쑤셨다가 귀찮은 일이 줄줄이 따라올 거 같단 말이지.’
또 로이스가 이런 냄새를 기가 막히게 알아맞히지 않던가.
어차피 다시는 볼일도 없고 자신들이야 이곳을 떠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로이스를 페이지는 끝까지 붙잡았다.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세요. 부탁드릴 게 있어요.”
“거절.”
단호해도 너무 단호했다.
더는 듣지 않겠다는 듯 걸어 나가는 로이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페이지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2분에 1골드!”
로이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쫑긋거리는 그의 귀를 본 것일까?
페이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이어 외쳤다.
“이야기를 들어 주시면 2분당 1골드씩 드릴게요! 제 부탁은 그 이후에 들어주실지 말지 결정하셔도 돼요!”
그 말은 로이스를 붙잡기 충분했다.
그가 살짝 고개만 틀어 물었다.
“그러니까 이야기만 들어 주면 2분에 1골드란 거지?”
“네!”
“에이.”
실망했다는 듯 얼굴로 다시 고개를 튼 로이스는 발길을 돌렸다.
다급해진 페이지가 액수를 높였다.
“1분에 1골드!”
잠시 멈칫한 로이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몸은 출구를 향해 있었다.
이를 악문 페이지가 승부수를 띄웠다.
“1분에… 2골드!”
페이지의 승부수가 먹힌 것일까.
로이스가 완전히 돌아서며 환한 미소를 보내왔다.
“헤헤, 어디로 가면 돼?”
“…….”
말이 없는 페이지를 힐끗거린 로이스가 품에서 시계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
로이스의 시계가 째깍째깍 흘러갔다.
시간은 금이라는 명언을 몸소 실천하는 로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