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운명 (1)
시간을 거슬러 결혼식이 열리기 전.
레온 혁명군 비밀 거점.
한 자루의 긴 장도로 땅을 짚은 채 눈을 감고 있던 그렉의 뒤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단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렉이 눈을 떴다.
그의 뒤에 나타난 이는 자택에서 근신하고 있어야 할 바론이었다.
오래전의 호칭에 그렉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단장이라니. 내가 왕실 호위 무단을 그만둔 지 20년이 넘었네, 이 사람아.”
바론이 처음 왕실 호위 무단에 들어갔을 때부터 단장을 역임하고 있던 그렉.
그가 페이지를 데리고 여름 대륙을 탈출하며 무단장직을 이어받은 사람이 바론이었다.
그렉의 타박에 바론이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제게 영원한 무단장님이십니다.”
“되었네. 같이 늙어 가는 처지에 무슨……. 그보다 준비는 되었는가?”
손사래를 친 그렉이 바론의 뒤를 바라보았다.
널찍한 지하 강당에 80명의 왕실 호위 무단과 300명의 레온 혁명군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무려 400명에 가까운 병력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
그것은 로이스의 조언 때문이었다.
[일이 벌어지면 약골 할배가 해 줄 일이 있어.] [약골 아니래도! 흠흠… 아무튼,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왕실의 위엄을 바로 세우는 일이랄까나? 후후.]기억 속 로이스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녀석이 전해 준 ‘할 일’을 떠올린 그렉의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번졌다.
그가 바론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쯤 결혼식이 시작되었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바론이 살짝 망설이며 물었다.
“저… 한데.”
“왜 그러는가?”
“정녕 왕궁 쪽에 지원을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바론의 질문에는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안 그래도 인력이 모자란 호위 무단 인데 그중 열 명 남짓을 남기고 전부 왕궁을 빠져나왔다.
아무리 국왕의 허가가 떨어진 일일지라도 왕족의 안위를 책임지는 이로서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으리라.
이에 그렉은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하지만…….”
“거기에는 왕실호위무단 100명, 아니, 200명보다도 더 괜찮은 실력자가 붙었으니… 전하는 괜찮을 걸세.”
“대체 그 실력자가 누구입니까? 누구기에…….”
“그건…….”
그렉의 얼굴에 작은 고통이 스쳤다.
‘끙…….’
쌍둥이에게 얻어맞고 기절했던 기억이 떠올라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낸 그렉.
차마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던 그는 대충 에둘러 답했다.
“…있네, 그런 사람이. 확실한 실력자니, 걱정일랑 접어 두게. 내 그들의 실력은 확실히 보증하니까.”
“단장님이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런 거겠지요.”
그들이 그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다, 단장님!”
한 명의 단원이 헐레벌떡 뛰어와 그렉의 앞에 고개를 숙였다.
깔딱거리는 숨을 겨우 진정시킨 단원이 다급히 보고를 올렸다.
“놈들의 사병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왕궁으로 향하고 있더냐?”
“예!”
단원의 보고에 그렉과 바론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이었다.
그렉이 장도를 허리에 찼다.
‘드디어… 틀어진 모든 것을 바로잡을 기회가 왔구나.’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린 일이었다.
그가 자신을 뒤따르는 바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 어디 그럼 빈집을 한번 털어 보러 가 보세.”
“그거참… 기대되는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바론의 눈에 형형한 안광이 번뜩였다.
곧 그렉과 바론을 필두로 400명의 병력이 모종의 임무를 띠고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피유융- 펑!
프렌체 왕궁의 수도 위로 하나의 신호탄이 다시금 떠올랐다.
다만 그전과는 달리 이번 신호탄의 색깔은 청록색이었다.
* * *
쾅- 쾅-.
강한 진동이 울렸다.
버니엄궁의 지붕에 고요히 눈을 감고 있는 로이스.
핀은 그런 로이스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일을 계획하면서 모든 것을 지켜본 핀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기에 지금 버니엄 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상식 밖의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버니엄 궁을 축소한 독창적인 성법부터.
공간 압축, 진공 폭발을 일으키는 기물 형태의 함정.
파브로를 이용해 적을 유도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까지.
“대단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었음에도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비록 발로 뛰는 것은 파브로라지만, 그 모든 걸 조율한 것은 로이스였다.
특히 핀의 존경심은 4개의 기둥이 빛을 발하면서 더욱 커졌다.
기둥 하나하나에 담긴 서로 다른 성법.
그것을 원격에서, 그것도 이 정도로 대단위로 발동시킬 수 있는 원리가 무엇인지 핀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감탄하고 감탄할 뿐.
‘염원의 탑에서 보낸 시간 동안… 로이스 님은 성장하셨구나.’
일반적인 성법 발동이 아닌 함정식의 발동은 분명 염원의 탑에서 익힌 기물 제작의 원리이리라.
로이스의 성장은 티어가 상승하는 등의 큰 성장은 아니었지만, 분명 성법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는 괄목한 만한 성과가 있었다.
한편,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던 파브로.
비록 로이스의 성법에 걸려 약화된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 수가 수이다 보니 파브로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파브로는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뭐지?’
마치 열탕에 들어온 듯 온몸이 달아오르는 기분.
전신을 맴도는 속성력의 향연에 파브로는 알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다.
쾅- 쾅-.
해머질 한 방 한 방에 속성력이 요동치며 더 큰 쾌감이 몰아쳤다.
“좋구나!”
파브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는 곧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적들을 몰아붙였다.
“마, 막아!”
“밀집대형!”
로이스의 법진에 갇힌 적들이 방진을 구축해 파브로에 대항했다.
그리고 이에 정면으로 들이받는 파브로의 모습은 마치 성난 황소와 같았다.
로이스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이야, 미친 소처럼 날뛰네.”
이대로라면 파브로의 말처럼 15분 안에 상황이 정리되리라.
“여긴 이제 파브로한테 맡기면 될 테고. 그럼 슬슬 외부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데…….”
작게 중얼거린 로이스가 그렇게 중얼거릴 때였다.
피유웅- 팡!
수도의 성 저 너머에서 청록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를 본 로이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콰득- 콰직-.
파브로의 해머질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다가 어느 순간 정적이 찾아 들었다.
“정확히 15분 걸렸네.”
로이스가 슬며시 미소 지을 때 자고 있던 쌍둥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로이… 끝났어? 나 심심해에….”
“언제 끝나아아?”
로이스가 심심함에 몸부림치며 칭얼거리는 녀석들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거의 끝났어. 나쁜 놈 대장만 때려잡으면 끝이야.”
그리 답하는 로이스의 시선이 결혼식장을 향했다.
* * *
여전히 결혼식장에 남아 있던 20여 명.
레반스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소수의 호위였다.
쾅- 콰릉-.
왕궁을 요란하게 울리던 소리가 멎자,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잡았나 보군요.”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쯧, 고작 그 한 놈 잡는다고 이토록 오래 걸리다니.”
“덩치는 커다랗지만, 내빼는 재주가 있는 놈이었나 봅니다.”
조금도, 눈곱만큼도 파브로를 놓쳤을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 이들.
그들은 곧 파브로가 피투성이가 되어 끌려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드르륵-.
결혼식장 밖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결혼식장에 자리한 이들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그때, 부서진 문으로부터 무언가 날아들었다.
털썩-.
“크윽!”
정확히 레반스의 앞에 떨어진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팔다리가 기괴하게 꺾여 신음하는 무사.
“헛?!”
“뭐, 뭐야?!”
모두가 놀라 떨어진 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
“어이.”
파브로가 서 있었다.
하얀 예복은 이제 흰 부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400명의 피를 머금은 워 해머에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저벅저벅-.
신랑 신부를 위해 마련된 카펫 위를 걸어 들어오는 파브로.
그의 걸음걸음마다, 붉은 족적이 남았다.
섬뜩한 광경에 호위를 위해 남았던 무사들이 다급하게 레반스와 귀족들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칼을 뽑아 들고 경계하는 이들.
마침내 레반스와 거리가 10m 정도가 남았을 때.
파브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지?”
“네놈…….”
파브로의 이죽거림에 레반스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의 옆에 있던 보좌관이 팔다리가 꺾여 날아온 부하에게 물었다.
“어찌… 어찌 된 거냐?”
“모, 모두… 저, 전멸…….”
그 한마디를 남기고 사내는 기절하고 말았다.
완전히 의식을 잃었기에 더 상황을 묻지 못했지만,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안색이 창백해진 보좌관이 어깨를 덜덜 떨었다.
전멸이란 단어와 붉은 피로 물든 파브로.
그것만 보더라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겁에 질린 귀족이 소리쳤다.
“마, 막아라! 아니, 죽여!”
겁에 질린 외침에 일곱 명의 무사들이 파브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쾅-.
한 명의 무사가 명치에 해머가 처박히며 튕겨 나갔고.
쾅-.
파브로가 한 걸음을 내디디며 또 한 명의 무사가 튕겨 나갔다.
쾅- 쾅-.
한 걸음 한 걸음.
파브로의 걸음걸이마다 하나둘씩 무릎 꿇는 레반스의 호위무사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로이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어라? 이것 봐라?’
조금 전 파브로를 향해 달려들었던 이들은 모두가 3티어 하급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너무도 손쉽게, 단번에 나가떨어진 것이다.
무언가 정제된 듯한 파브로의 움직임을 보고 로이스는 깨달을 수 있었다.
‘벽을 넘으려고 하는구나?!’
안 그래도 2티어의 벽 앞에 정체되어 있던 파브로.
그런 그가 거듭되는 싸움을 통해 벽을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한편 파죽지세로 걸어오는 파브로를 보고 있던 레반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세 명의 무사에게 명했다.
“너희가 나서거라.”
레반스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최후의 보루였다.
각각 3티어 상급의 무사 셋.
레반스가 보유한 무사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스르릉-.
레반스의 명령을 받은 무사 셋이 검을 뽑아 들고 걸어 나갔다.
이에 로이스는 고민했다.
‘어쩔까나. 도와줘? 말어?’
원래대로라면 현재 파브로의 실력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벽을 부수기 일보 직전.
여기서 조금의 자극만 주어진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때문에 로이스는 도움의 손길을 거둬들였다.
‘이것도 네 복이다. 어디 한번 벽을 넘어 봐.’
이번 일은 지난 십여 년간 3티어에 머물러 있던 파브로에게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한편 파브로는 기묘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
적이 다가오고 있었다.
파브로는 직감적으로 저들이 절대 만만치 않은 이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질 거 같지는 않다.’
파브로는 눈을 감았다.
적을 코앞에 두고 눈을 감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반드시 이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눈을 감자마자 내부에서 들끓는 속성력이 느껴졌다.
‘이건…….’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해 온 속성력이 외치고 있었다.
‘내보내 줘! 내보내 달라고!’
마치 어린아이의 칭얼거림과 같은 느낌.
이에 파브로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놀고 싶더냐?’
처음 망치를 잡고, 무법을 익혀 온 세월이 무려 40년.
그간 파브로가 차곡차곡 쌓아 온 속성력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파브로의 눈이 뜨였다.
그가 눈을 감았다 뜬 것은 고작 3초 남짓.
그사이 적들이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흉흉한 기세로 몰아치는 세 명의 무사를 보며 파브로가 씨익 미소 지었다.
그는 자신의 속성력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 놀고 싶거든… 어디 한번 날뛰어 봐라!’